안녕, 간헐적 다이어터 에디터B다. 성공에 대한 경험은 스스로를 강하게 만든다. “그래, 나는 마음만 먹으면 해내는 유능한 사람이야.” 하지만 이 다짐이 다이어트에 적용되면 부작용을 일으킨다.
“나는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뺄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오늘은 일단 치킨을 먹자!”
나는 미국 주식처럼 끝도 없이 오랐다가, 빠질 땐 국내 주식처럼 슬금슬금 내려가는 비운의 유전자를 지녔다. 2020년, 90kg에서 75kg까지 감량한 적이 있다. 다시 살이 쪘고, 2021년에 다시 15kg를 뺐다가 최근에 또 다시 쪘다.
일주일 동안의 다이어트를 기록했다. 15kg이나 감량했던 그 식단으로 딱 일주일 동안 시도했다. 그리고 이 글이 나간 후부터 다시 한 달 동안 도전을 하려고 한다. 많은 응원 부탁하며, 나도 모든 다이어터에게 응원을 보낸다. 비만은 성인병의 근원이니까.
9월 11일 월요일
아침 공복 몸무게: 80.06kg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다. 어제 저녁에 BHC 마법클 치킨을 먹어서인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9시에 먹었기 때문이다). 그 치킨은 뱃속 어딘가에서 소화되고 있겠지. “한 번만 더 치킨을 먹으면 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지금도 생각했지만, 민망하게도 나는 그 다짐을 지킬 자신이 없다. 바삭한 튀김옷이 벌써 아른거린다. 이런 정신 상태로는 이번 다이어트도 실패일 것 같다.
참고로 나의 식단은 이렇다. 아침엔 프로틴 두 스푼, 점심엔 현미밥 반 공기, 저녁은 샐러드 혹은 단식.
나는 살빼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어서 문제다. 15kg 감량이라는 훈장이 뱃속 어딘가 헌팅트로피처럼 걸려 있다(성수동의 설경구, 맷데이먼이라 불러달라). 하지만 이번 식단, 첫날부터 쉽지 않다. 입맛이 너무 좋다. 세상엔 맛있는 게 너무 많고, 남겨 놓은 BHC 마법클 반 마리가 냉장고에 남아 있다. 내가 어찌 그걸 안 먹을 수 있을까?
9월 12일 화요일
아침 공복 몸무게: 80.15kg.
어제 저녁, 결국 남은 치킨을 싹싹 긁어먹었다. 덕분에 아침에도 배가 고프지 않아 식사를 걸렀다. 오전부터 바쁘게 일하다보니 12시가 되었다.
오늘 점심은 현미와 카무트쌀을 섞은 밥이다. 카무트쌀은 현미보다 맛이 없고, 영양가 있으며, 크기는 현미의 1.5배 정도 되는 품종이다. 당분이 적어서 당뇨 환자의 식단에 포함되는 쌀이라고 한다.
오후에는 전주에서 올라온 친구가 얼굴이나 잠깐 보자고 했다. “커피 한잔 할 시간은 되지?” 나는 된다고 했다. 어니언 커피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고민하다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아몬드라떼를 시켰다. 달다. 나는 단맛을 좋아하지 않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다 마셨다. 인간은 당분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생명체다.
오후 6시가 되자 급격히 배고파지기 시작했다. 허기져서 식은땀이 났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리뷰해야 할 모니터를 설치했다. 오늘 저녁을 안 먹으려고 했지만, 배가 고파서 결국 샌드위치를 시켰다. 심지어 떡갈비 샌드위치다. 블루베리잼까지 야무지게 들어간, 도저히 다이어트 식단이라 할 수 없는 메뉴다. 오늘 저녁도 망했다.
퇴근 후 밤 12시에 40분 동안 산책을 했다. 떡갈비 샌드위치를 먹은 죄책감 때문이다.
9월 13일 수요일
아침 공복 몸무게: 79.16kg
아침에 일어나서 몸무게를 재니 79.16kg였다. 거의 1kg가 줄었다. 야식을 안 먹고, 가벼운 산책만 해도 몸무게가 줄어든다는 건 숱한 식단 조절을 통해 알고 있는 이론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아니 알기 때문에 더 안 하는 것 같다.
오늘도 역시 점심은 현미밥, 저녁은 샌드위치. 오랜만에 연락이 온 전 직장 동료K가 점심 메뉴가 뭐냐고 물었다. 나는 현미밥이라고 답했다. “에디터님 뱃속에는 현미가 자랄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말해줬다. “그 현미밭 옆에는 닭들이 뛰어다닐 거예요.”
저녁에는 통새우튀김 샌드위치를 먹었다. 새우에 튀김가루를 묻혀 기름에 튀겼기 때문에 이것 또한 다이어터를 음식은 아니지만 오늘도 현기증이 나서 참을 수 없었다. 게다가 밤 10시까지 마라톤 회의를 했기 때문에 기운이 나게 하는 뭔가가 필요했다. 에디터M은 샌드위치 대신 홈메이드 부리또를 먹었는데, 회의 도중 에디터M쪽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모른 척했다. M은 퇴근하고 야식을 먹을 것 같다는 합리적인 추측을 했다. 내일 출근하면 물어봐야겠다. “어제 야식 안 먹었어요?”
9월 14일 목요일
아침 공복 몸무게: 78.51kg
아침을 프로틴 파우더 하나로 때우는 데 성공했지만, 점심을 계획대로 먹는 데 실패했다. 현미밥 밥 공기와 닭가슴살과 닭가슴살 소시지를 먹었다. 소시지에는 육즙이 흘러나왔다. 황홀했다. 이게 얼마만에 먹어보는 기름이냐, 라고 생각하다가 겨우 3일 전에 치킨을 먹었음을 깨닫고 민망해졌다.
저녁에는 지코바를 먹었다. 보통 저녁은 나의 제안으로 시작되는데, 비가 살짝 내리니 오븐에 구운치킨이 당겼다. 양념 한 마리, 소금 한 마리씩 시켜 네 명이서 나눠 먹었다. 옆자리의 에디터M은 입맛이 없다며 먹지 않았다. 존경심이 들 정도의 자제력이다. 역시 한 회사의 대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 후유증으로 입맛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해줬다.
지코바는 건강한 저녁 메뉴에 속한다(그렇지 않나요?). 밀가루 튀김 옷을 입히지 않았고, 기름에도 튀기지 않았으니까. 양념에 설탕이 들어가기 때문에 양념만 안 먹으면 되는데, 사실 양념이 소금구이보다 맛있어서 많이도 먹었다. 습관적 허기인지, 파블로브의 개가 된 건지 모르겠지만 오후 여섯시만 되면 뭔가 먹고 싶어진다. 그래도 오늘 밤에도 자기 전에 봉제산을 30분 넘게 걸었다.
9월 15일 금요일
아침 공복 몸무게: 78.36kg
오늘은 소수점 단위로 살이 빠졌다. 어젯밤 지코바를 먹었기 때문이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철저히 식단을 지켰다. 아침은 프로틴 파우더, 점심에는 현미밥을 먹었다. 반찬은 들기름과 저염간장, 구운 김이다.
저녁은 에디터M이 남긴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건강한 맛의 닭가슴살 부리또다. 에디터M은 “그거 먹고 오늘 저녁에 또 치킨 먹는 거 아니야?”라고 물었다. 나는 다이어트에 대한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매콤한 치킨일 당겼다.
치킨플러스에는 조선레드라는 치킨이 있다. SBS 치킨 요리 서바이벌 <대한민국 치킨대전>에서 김종운 도전자가 선보인 치킨이다. 청양고추가 토핑으로 올라가 일반적인 매콤양념치킨으로 보이지만 양념이 다르다. 된장과 고추장이 함께 들어갔다. 된장을 넣었다고는 하지만 된장 맛이라는 게 강렬하게 느껴지지는 않고 ‘뭔가 색다른데?’ 싶은 정도다. 배가 고파서 배달 앱을 켜는 대신 치킨플러스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치킨대전에서 100년을 이끌어 갈 K-양념치킨으로 선정된 100년대계 치킨!” 나는 이 문구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치킨은 먹지 않았다. 대신 취침 전 30분 산책을 했다.
주말에는 철저하게 식단을 지키지 못했고, 일요일 저녁의 몸무게가 금요일 아침의 몸무게와 같았다. 유혹이 많은 주말은 유지만 해도 선방이라는 게 내 지론이다. 결론적으로 일주일 시도한 끝에 약 2kg 정도 감량을 했다. 하지만 식단을 완벽히 지키못했기 때문에 이 도전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말하는 것도 애매하다. 기초대사량이 떨어진 30대 중반의 남성이 다이어트에 성공하기를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11월 중순에 10kg 감량 성공기로 돌아오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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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