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느긋한 쇼핑, 서울 예약제 편집숍 3

빈티지 신발, 가구부터 소품샵까지
빈티지 신발, 가구부터 소품샵까지

2023. 09. 12

안녕. 시간만 남으면 이런저런 소규모 매장에 들어가 구경하기 좋아하는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나는 도시 곳곳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다양한 가게에 관심이 많다. 산책 중에 우연히 발견한 가게와 그곳을 지키고 있는 주인장을 만나는 순간은 생각지 못한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예약제로 운영하는 곳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갈 수 없거니와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맞춰 예약해야만 경험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손님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여 가게의 존재를 알리고 판매 기회도 늘리면 좋으련만, 왜 굳이 구매할지 안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예약’이라는 장벽을 두는 걸까?

이참에 평소 궁금했던 편집숍들을 방문해 그 이유를 들어보기로 했다. 프라이빗한 쇼핑 경험을 제공하는 예약제 숍의 매력은 무엇일까. 사전 예약을 통해 한층 쾌적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서울의 편집숍 3곳을 소개한다.


[1]
빈티지 신발

그린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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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어를 오픈하기 전부터 그린하우스의 주인장은 빈티지 신발을 수집해 왔다. 본인의 취미와 관심사를 남들과 나누고 싶어 인스타그램에 아카이브 계정을 개설했고, 신발을 포함한 자기 일상과 라이프스타일을 자유롭게 공유하고자 집과 작업실과 스토어를 겸하는 공간을 운영 중이다. 의류나 오브제도 만나볼 수 있지만 역시나 이곳의 핵심 아이템은 신발. 헤리티지가 뚜렷한 아웃도어 브랜드를 중심으로 요즘 유행하는 아이템과는 다른 클래식한 무드나 착용자 본인만 알 수 있는 소소한 디테일이 숨은 신발을 소개한다. 물론 기능성이 잘 유지되는 제품만 셀렉하므로 바로 신고 다니는 데도 전혀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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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제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건 이곳이 실제로 생활하는 집이기 때문이다. 작업실과 쇼룸을 겸하는 건 많이 봤어도 집인 경우는 처음 본다. 살림과 업무와 손님맞이를 모두 같은 공간에서 하는 만큼 예약 없이 지나가다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닐 거다. 처음에는 이처럼 현실적인 이유로 예약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진행하면서 한 사람 혹은 한 팀이 이 공간을 오롯이 점유하는 방식의 매력을 알게 됐다고 한다. 1시간 남짓 다른 사람들 눈치 안 보고 물건 구경하면서, 의자에 앉아 쉬었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부담 없이 물어볼 수 있는 프라이빗한 시간. 일반적인 쇼핑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에 주인장과 손님 모두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동시간대 최대 2팀까지 예약 가능하나, 대개 한 타임에 한 팀만 머무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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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어를 구상할 때 가장 신경 쓴 지점은 집에 초대받은 것처럼 편하게 머물다 가는 것. 화이트와 우드 톤을 베이스로 아늑한 느낌을 주고, 판매 제품을 위한 필수적인 디스플레이를 제외하고는 실제 생활에 불편하지 않도록 공간을 꾸몄다. 느긋하게 쉴 수 있도록 손님용 의자와 스툴을 곳곳에 마련한 것도 섬세한 포인트다.

건물 입구부터 스토어 내부로 진입하기까지 총 4개의 문을 거쳐야 한다는 점도 재밌다. 문을 하나하나 통과할 때마다 누군가의 집으로 들어서는, 조심스러우면서도 설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물건을 구매하기도 전에 경험하게 되는 일련의 시퀀스는, 번화가 거리를 걷다가 즉흥적으로 들어가는 가게보다 훨씬 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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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s Pick

Mootopia
by MERRELL

1981년에 미국 유타주에서 시작해 세계 하이킹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아웃도어 브랜드 머렐. Mootopia는 머렐의 여타 하이킹 슈즈와는 달리 스웨이드 모카신 형태로 제작돼 캐주얼한 무드가 돋보인다. 일본 에도 시대의 목판화 ‘우키요에’ 대표작인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를 연상시키는 그래픽이 아웃솔에 새겨진 게 특징. 걸을 때마다 살짝살짝 보이는 그림이 매력적인 신발이다.

그린하우스

  • 주소 서울 성북구 안암로 27 5층(안암동4가, MG빌딩)
  • 예약 방법 네이버 예약
  • @greenproduct_house

[2]
빈티지 가구

통 쉬르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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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돈화문 건너편, 오래된 빌딩 12층에 숨겨진 매장이 있다. 20세기 유럽의 빈티지 가구와 조명 등을 수입해 판매하는 통 쉬르 통이다. 기존 빈티지 가구 시장에서 많이 보이는 제품 외에 좀 더 다양한 디자이너와 건축가, 브랜드를 소개해 보자는 생각으로 지난 6월에 문을 열었다. 아직까지는 부피가 큰 파스토(Pastoe)의 유닛 선반이나 기스 바커(Gijs bakker)가 디자인한 스트립 체어, 스튜디오 테터로데(Studio Tetterode)의 글라스 월 램프 등 네덜란드 기반의 제품 위주로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조명이나 소품의 비중을 늘리고 자체 제작 가구를 판매하는 등 크고 작은 변화를 줄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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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가구나 조명은 충동적으로 구매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워낙 고가인 데다 인테리어 제품 특성상 공간 내 다른 요소와의 조화를 고려해 심사숙고 후 구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장 오픈 후 2주 동안은 워크인 방문도 열어놨는데, 방문한 손님 중에서 최종 구매까지 이어진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높은 관심과 이해도를 가진 예약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할 수 있으니 지금의 운영 방식이 가장 효율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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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궁금했던 건, 인스타그램에 제품 외 공간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는 내부 사진은 공개하지 않는 이유다. 물어보니, 쉽게 노출되고 퍼질 때 생기는 이미지 소모를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덕분에 예약까지 하며 방문한 손님 입장에서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던 공간의 풍경을 실제로 만났을 때 더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오히려 좋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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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나 역시 그랬다. 베일에 감춰진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가든타워라는 이름의 건물에 들어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에 내린 뒤, 오른편에 펼쳐진 남산타워 뷰에 한 번 넋을 놓고 구경하다가, 정신 차리고 통 쉬르 통 로고 바로 옆문을 열고 들어가기까지. 일반적인 가구 쇼룸처럼 밝고 따스한 분위기일 거라 예상했는데 확연히 달랐다. 러프한 노출 콘크리트와 검은색 바닥, 입체적인 공간 구조와 시선을 천장으로 이끄는 빨간 파이프라인 등 베를린을 위시한 유럽의 투박한 창고형 스토어에서 영감을 얻었다나. 베를린 한 번 가본 적 없는 나조차도 왠지 이해되는 기분이었다. 웜-하고 코지-하기보다는 쿨-한 쪽에 가까운 느낌. 거실이나 침실, 오피스를 상상해 보도록 그럴듯하게 세팅하는 ‘연출’ 요소를 배제했다는 점이 되려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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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s Pick

Table lamp “Fukushu”
by Ingo Maurer

‘빛의 시인’으로 불리는 독일 출신 조명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가 1986년에 디자인한 테이블 램프. 잉고 마우어의 다른 조명은 여타 가구 숍에서도 만나볼 수 있지만, 국내에서 fukushu를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는 곳은 통 쉬르 통이 유일하다. 무광 PVC 소재의 납작한 쉐이드와 얇은 금속 막대가 이루는 유려한 디자인은 오브제로 두기에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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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쉬르 통

  • 주소 서울 종로구 율곡로 84 12층
  • 예약 방법 인스타그램 DM 문의
  • @tonsurtonshowroom

[3]
라이프스타일 소품

카인더앤젠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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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더앤젠틀러는 실용적인 해외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판매하는 편집숍이다. 아기자기한 파우치나 키링부터 노트・스탬프・재단 가위・오븐 장갑까지 경계 없이 일상의 다양한 영역을 채워줄 개성 있는 아이템을 선별한다. 온라인 숍을 조금만 둘러봐도 온화하고 다정하면서도 유쾌한 기운이 느껴진다.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쓴 게 아니다. 제품 설명 하나하나 고객에게 말을 걸듯 정성스럽게 적고, 중간중간 위트 있는 문구로 환기하며, 포장과 자필 카드 등 섬세한 고객 서비스까지 놓치지 않는다. 단순히 독특한 제품 하나 구매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상품을 둘러볼 때부터 택배를 받고 언박싱할 때까지 그 일련의 과정 전체가 즐거운 경험으로 남는, 언제 들어와도 기분 좋은 선물 가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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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숍을 주력으로 하되 오프라인 쇼룸은 초반 1년 동안 B2B로만 오픈했다. 시간이 흐르며 단골이 늘고 물건을 직접 보고 만지고 경험하길 원하는 반응이 늘어남에 따라 현재는 예약제로 운영 중이라고.

온라인 숍을 오픈할 때부터 대면 서비스를 받는 듯한 기분을 주기 위해 신경 쓴 만큼, 온라인에서 전달했던 다정하고 친근한 태도와 셀렉한 제품의 클래식한 무드를 쇼룸으로 충실히 옮겨 오는 데 집중했다. 독일 파벽돌을 직구해 벽에 붙이거나 근처 성당에서 사용하던 의자를 나무 선반으로 활용하고, 오래된 빈티지 수납장과 테이블을 곳곳에 배치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려는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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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스러운 접객 때문에 오프라인 쇼핑을 꺼리는 분도 걱정할 필요 없다. 편하게 구경할 수 있도록 손님의 시야에서 최대한 벗어나는 것,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되 필요할 땐 다정하고 친근하게 응대하는 것이 매장 운영의 방향성이니까. 제품의 상세 정보가 궁금하거나 원하는 제품을 못 찾겠을 때, 하지만 바로 말을 걸어 물어보기 민망할 때면 공간 한쪽에 구비된 아이맥을 사용해 온라인 숍에 접속해도 된다. 쇼핑할 때면 ‘제발 저 좀 내버려 두세요’ 마인드가 되는 내향인 고객들을 위한 사려 깊은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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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s Pick

Lemon Stress Ball
by People I’ve Loved

팍팍한 하루를 보냈을 때, 극심한 스트레스가 밀려올 때 조물조물 눌러주면 좋은 스퀴즈 스트레스 볼. 캘리포니아 오클랜드를 기반으로 다정하고 위트 넘치는 작업물을 선보이는 People I’ve Loved와 아티스트 Leah Rosenberg의 콜라보 제품이다. 슬라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손안에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다 보면 굳었던 마음이 풀어질지도 모른다. 키링으로 활용해도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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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더앤젠틀러

About Author
김정현

라이프스타일 잡지부터 토크 프로그램까지, 분야 안 가리는 프리랜스 콘텐츠 에디터. 멋있는 사람과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할 때 제일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