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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보다 키보드가 좋아, 모조84

키보드 덕후가 원하는 모든 걸 지원한다
키보드 덕후가 원하는 모든 걸 지원한다

2023. 12. 29

안녕, 키보드를 좋아하는 에디터B다. 이미 키보드가 넘쳐남에도 “하나만 더”를 외치게 된다. 키보드를 사든 말든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으니 구매로 이어진다. 도독도도독! 키보드를 두드리는 짜릿한 손맛과 함께 가계 재정 악화가 심해진다. 내가 보통 ‘저 키보드 사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디자인이 예쁘거나, 타건감이 환상적이거나.

mojo84(이하 ‘모조84’)는 전자에 가깝다. 물론 그렇다고 타건감이 나쁜 건 절대 아닌데…음, 타건감에 대해서는 뒤에서 얘기하기로 하고, 우선 모조84의 알파이자 오메가라 할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제품은 멜긱에서 제공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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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컬러는 Neon, Retro, Pegion, Plastic 등으로 출시되었다. 컬러명이 직관적이지 않다. 하지만 제품을 자세히 보니 헷갈리게 지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검은색, 빨간색으로 명명하기 힘든 복잡다단한 컬러가 한 제품에 녹아들어 있으니까. 특히 내가 고른 플라스틱 컬러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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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이 컬러만 버거웍스와 협업한 제품이라 다른 색과 디테일한 디자인이 다르다. 상하좌우 요리조리 살펴보면 장난스러운 문구가 각인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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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plastic”

“No photo”

“NOT for res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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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징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Need keyboard not friend’라고도 적혀 있다. 키보드 덕후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일까. 극단적이다. 키보드가 아무리 중요해도 친구보다 중요하진 않을 텐데. 친구가 돈, 명예, 사랑 때문에 나를 배신해도 키보드는 그럴 일이 없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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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는 크고 두껍다. 어르신용 폰트처럼 큼지막하다. 그럼에도 귀엽다. 전체적인 키보드 디자인은 복잡스러워 보이지만 큼지막한 폰트가 키캡 한 가운데 질서정연하게 정렬되어 있어서 어지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장난기 많은 초등학생들이 운동장에 오와 열을 맞춰 조례 받기 위해 모인 것 같은 인상이다. 메인 컬러는 화이트, 연한 민트와 진한 오렌지 컬러로 포인트를 줬다. 투명한 하우징에도 민트 빛깔이 은은하게 감돈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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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는 950g. 생각보다 가볍지는 않다. 특별히 무거운 건 아니어서 불만은 없다.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되어 위험하지 않으며 장난감처럼 아기자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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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mAh의 배터리가 탑재되었고, LED를 사용하지 않으면 최대 3000시간까지 쓸 수 있다. 블루투스, 유선, 2.4G 세 가지 방식을 모두 지원하며, 최대 8대 기기에 블루투스 연결을 할 수 있다. 8대? 그렇게까지 많이 연결할 일이 뭐가 있냐고 묻는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그래도 뭐,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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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보면 키캡 높이와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된 MDA 프로파일 키캡이다. 덕분에 타이핑할 때 손가락과 손목을 효율적이고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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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스왑 기판을 이용해서 스위치가 질리면 다른 스위치로 쉽게 교체할 수 있다. 이 정도면 키보드 덕후가 원하는 건 다 넣어줬다고 보면 된다. 나는 키보드 덕후라고 부르기엔 여러 고수들에 한참을 못 미치기 때문에 이 정도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모조84도 내게 과분하다.

유일하게 걸리는 부부은 가격. 219달러! 필요한 걸 반드시 다 넣어야 하는 가격이긴 하다. 모조84의 디자인에 반해 꼭 구매해야겠다면 조금 더 저렴한 모조68을 구매하는 것도 방법이다. 최저 159달러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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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장 중요한 타건감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스위치는 카일픽셀L 스위치로 골랐다(2022년 12월, 멜긱 픽셀 키보드와 함께 출시된 스위치다). 반발력이 강하지 않은 편이라 가볍게 타이핑할 수 있고 키압은 40g 정도인데 체감상 더 낮게 느껴진다. 낮은 키압의 스위치에 익숙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겐 좀 어색했다. 리니어 계열이기 때문에 소리가 조용한 편이긴 하지만, ‘다각다각’ 소리가 나서 사무실에서 쓰면 쉽게 주목받을 소리다. 1인 1기계식 키보드를 쓰는 사무실이 아니라면 품을 수 없는 스위치. 조용한 영화관에서 귓속말로 떠는 것처럼 귀에 쏙쏙 꽂히는 사운드라 집에서 혼자 쓰는 걸 추천한다.

혹시 기계식 키보드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도 있을 수 있으니, 기본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기계식 키보드의 종류를 따질 땐보통 스위치 종류를 의미한다. 스위치는 리니어, 택타일, 클리키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타건했을 때 걸리는 느낌 없이 스무스하게 눌린다면 리니어 스위치(적축, 흑축)다. PC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시끄러운 청축 키보드는 클리키, 그사이에 애매하게 걸친 갈축은 택타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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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84에서 또 한 가지 마음에 들었던 건 ‘스테빌라이저’가 굉장히 잘 잡혀 있다는 것. 스테빌라이저는 스페이스바/쉬프트키처럼 긴 형태의 키에 들어가는 장치다. 키의 어떤 부분을 눌러도 입력이 균등하게 되도록 도와주는 장치인데, ‘스테빌’이 얼마나 잘 잡혔느냐에 따라 ‘이 집 잘하네’라는 브랜드 신뢰도로 이어진다. 한식당으로 치면 밑반찬이 훌륭한 거다. 스테빌이 전부는 아니지만,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모든 비싼 키보드가 스테빌이 잘 잡혀 있는 건 아니어서 모조84는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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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84와 함께 모조패드도 사용해 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유선, 무선, 2.4G 세 가지 방식의 연결을 지원하고 핫스왑 기판이라 손쉽게 스위치 교체가 가능하다. 스위치는 카일 박스 플라스틱 스위치로 골랐다. 크게 나쁠 것도 특별히 좋을 것도 없는 평범한 리니어 스위치다. 키압은 38g으로 카일 픽셀L보다 가볍지만 큰 차이는 느껴지지 않았다. 가격은 89달러. 나는 풀배열 키보드를 쓰기 때문에 넘버패드 키보드는 별도로 필요하진 않지만, 언젠가 텐키리스로 넘어가면 쓰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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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스위치다. 그 말인즉, 핫스왑을 지원하는 디자인이 예쁜 키보드를 사면 그게 곧 인생 키보드라는 뜻이다. 언제든 스위치만 바꾸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이건 이론적인 이야기라는 걸 나도 알고 있다. 항상 새로운 키보드를 보면 갖고 싶어서 두근두근하는 게 덕후들 마음이니까. 내년 1월에 기계식 키보드 엑스포가 있던데 거기를 한 번 가봐야겠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