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IT 칼럼니스트 최호섭입니다. 애플이 요즘 게임 시장에 보이는 관심이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해 PC와 콘솔 게임기로 인기를 누렸던 ‘바이오하자드 빌리지’가 맥으로 등장해서 내심 놀랐었는데 올 6월 WWDC23에서도 애플은 새 프로세서들과 함께 이른바 AAA(트리플 에이)로 불리는 대작 게임 ‘데스 스트랜딩’을 함께 공개했습니다. 이 게임도 몇 년 전 콘솔 게임기와 PC로 등장했던 게임이지만 이걸 맥에서, 더구나 게이밍 PC하면 떠올리는 별도 그래픽 카드 없이도 게임을 할 수 있다니 맥 이용자로서는 분명 눈여겨볼 일입니다.
현재 맥이 게임기로서 맞닥뜨린 가장 큰 장벽은 부정적인 시선입니다. 성능이나 운영체제 환경이 게임에 적합하냐는 인식이 있는 듯합니다. 사실 저도 마음 한켠으로는 맥에서 게임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이건 기기가 게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맥과 게임 사이에 놓여 있던 심리적인 거리가 너무나도 컸던 거죠. 저도 한편으로는 ‘맥으로 게임을 하지 않아서 일에만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깔려 있습니다.
물론 디아블로3라든가 툼레이더, 심즈 시리즈처럼 맥에서도 흥미로운 게임들이 꽤 있기는 하지만 그동안 맥에서 게임을 한다는 건 그리 깊게 생각해 보지도, 또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입니다. 물론 오래전 애플II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 플랫폼 중 하나였고,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시리즈는 최근까지도 맥으로 즐기기도 했지만 여전히 게임이라고 하면 PC나 콘솔 게임기가 우선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근 게임을 대하는 애플의 행보를 보면 이전과는 사뭇 다릅니다. 애플 아케이드를 비롯해, 바이오 하자드 빌리지, 데스 스트랜딩 등 이른바 ‘트리플A’급 게임들을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맥이 또 하나의 게임 플랫폼이 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시기인 듯 합니다.
조금 늦게 나온 것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이 게임들은 단순히 ‘맥으로도 게임이 된다’는 의미를 넘어서 우리가 잘 아는 그 게임들이 기대하는 수준으로 나올 수 있다는 메시지로 보입니다. 게이머 뿐 아니라 게임 개발사에게도 캡콤이나 코지마 히데오가 만드는 대형 프렌차이즈 게임이 맥에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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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실리콘으로 보는 성능의 표준화
짚어보면 지금 게임 플랫폼으로서의 맥은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충분한 성능’, 그리고 ‘예측할 수 있는 하드웨어의 표준화’라는 점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맥은 PC와 콘솔 게임기의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유통까지 이미 갖춰져 있는 환경입니다.
콘솔 게임과 PC 게임의 가장 큰 차이는 개개인의 하드웨어 조건에 있습니다. 콘솔 게임기의 가장 큰 장점은 게임 성능이 보장된다는 점입니다. 이용자들은 어떤 게임이 내 기기를 지원하는지만 살피면 됩니다. 심지어 일부 독점작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게임은 이제 멀티 플랫폼 전략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일단 소니나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기가 있다면 못 할 게임은 별로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PC는 조금 다릅니다. 운영체제만 윈도우로 같을 뿐 CPU와 그래픽카드, 심지어 메모리 용량과 저장장치의 속도도 다릅니다. 모니터의 해상도와 크기, 화면 비율도 제각각입니다. ‘최소 사양’이니 ‘권장 사양’ 같은 걸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어려운 부분입니다. PC는 최고의 게임 머신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가장 어려운 플랫폼이기도 합니다.
맥도 얼마 전까지는 PC의 특성을 고스란히 갖고 있었습니다. CPU와 GPU의 종류, 그리고 조합이 너무 많았고, 성능도 제각각입니다. 또한 PC의 다이렉트X처럼 게임 개발을 위한 환경도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문제가 단번에 풀립니다. 바로 M1 이후의 애플 실리콘입니다.
기본적으로 애플의 실리콘은 통합 메모리를 바탕으로 성능이 좋습니다. 게임의 경우 다른 작업들과 특성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성능이 게임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GPU가 커지는 프로, 맥스, 울트라의 경우 그래픽 성능은 더 좋습니다.
지포스 RTX4090이 필요할 만큼의 고성능 게임까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아주 높은 성능만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당장 모바일로 나오는 게임들만 해도 상당하죠. 가장 기본이 되는 M1을 기준으로 두어도 맥은 적절한 성능과 최적화라는 점에서 개발자들의 짐을 크게 덜어낼 수 있습니다.
애플도 이 부분을 강조합니다. 지난해 WWDC에서 발표한 바이오하자드 빌리지는 상당한 수준으로 맥에 등장했습니다. 한 차례 인기를 휩쓸고 지나간 터라 판매량이 돋보일 정도는 아닌 듯 하지만 그 가능성은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M1 맥북 에어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으니 말이지요. 올해 공개한 데스 스트랜딩 역시 바이오하자드 빌리지와 비슷한 시기, 같은 콘솔 게임기로 등장했던 게임인 만큼 그 결과물은 기대해 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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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화, 게임기와 PC의 중간 여는 열쇠
여기에 프로세서의 최적화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맥은 PC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상 기본 아키텍처가 통일되어 있고, 그 안에서 코어의 개수에 따른 성능의 차이만이 있습니다. 또한 모든 칩의 특성이 같고, ‘메탈’을 비롯한 맥OS의 API 세트들은 모두 칩에 직접 접근해서 성능을 그대로 끌어 씁니다. PC도 그 부분에 대한 개선이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범용 운영체제의 특성상 오버헤드, 즉 손실을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렵습니다.
맥은 프로세서의 구조, 그리고 시스템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게임의 최적화가 수월합니다. 기기마다 성능에 차이는 있지만 최적화가 이뤄지고, 적절한 옵션을 제공해서 괜찮은 게임 경험을 누릴 수 있습니다. 플랫폼 관점으로 보면 PC보다는 콘솔 게임의 환경에 조금 더 가까운 것이지요.
개발 환경도 달라졌습니다. 애플은 게임이 프로세서에 직접 접근해서 손실 없이 성능을 끌어낼 수 있는 메탈 API를 오랫동안 제공해 왔습니다. x86 기반의 맥에서도 적용되긴 했지만 메탈의 본질은 iOS와 A시리즈 애플 실리콘에서 잘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그게 맥에도 적용이 되는 것이지요.
이미 iOS에서 애플의 게임 환경은 잘 드러났고, 게임의 결과물도 게임기 못지않습니다. 게다가 프로젝트 카탈리스트로 시작한 소프트웨어의 멀티 배포 전략으로 개발자들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용 게임을 아주 손쉽게 맥으로 배포할 수 있습니다. 기기의 성능이 충분하고 개발 환경을 바꾸지 않아도 맥의 게임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애플이 최근 공개한 게임 포팅 도구는 윈도우의 상징인 다이렉트 X 게임을 맥에서 구동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윈도우 가상화 도구로 유명한 ‘와인’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마침 블리자드의 디아블로4가 출시되면서 맥 이용자들이 약간의 번거로움이 따르긴 하지만 맥북 에어서도 디아블로4를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애초 게임 포팅 도구는 에뮬레이팅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 게임들을 맥으로 가져오기 쉽게 하는, 어떻게 보면 아이패드OS용 앱을 맥으로 바꾸는 카탈리스트의 역할을 윈도우, 다이렉트X로 넓힌 셈입니다. 맥OS의 네이티브처럼 기존 게임들을 즐길 수 있도록 패키징하고 앱스토어에 출시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게임 포팅도구는 에뮬레이팅 환경이지만 지금도 판올림할 때마다 성능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이렉트X의 그래픽 처리를 메탈로 대신하는 효율을 크게 높이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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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게임 생태계로서의 매력
이로서 맥은 네이티브 게임뿐 아니라 PC의 게임도 끌어안는 환경이 갖춰집니다. ‘맥이 게이밍 플랫폼’이라고 콕 집어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그 밑그림은 다 깔려 있습니다. 유통 역시 앱스토어가 있고, 게임의 형태에 따라 구독형 애플 아케이드를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만들고 팔 준비가 되어 있으니 이제 게임을 끌어모아서 그 순환을 시작하면 되는 상황인 셈이지요. 이 플랫폼 전략은 애플이 가장 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맥에 게임 시장이 활발하지 않았던 것은 이제 하드웨어의 한계나 개발 환경만의 어려움은 아닙니다. 아주 단순하게 보면 맥으로 게임을 하는 수요가 없었고, 그래서 게임이 나오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맥으로 할 수 있는 게임이 없으니 수요도 없는 악순환이 일어난 겁니다. 업무를 위해서 맥을 사는 건 아깝지 않지만 게임을 위해서 맥을 구입하는 것은 고개를 갸웃할 일이지요.
하지만 맥은 게임 플랫폼으로서 엄청난 시장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M1 이후 맥의 판매량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애플은 지난 2021년에는 약 2,900만 대, 2022년에는 2,600만 대의 맥을 팔았습니다. 애플 실리콘 전환 이후 대략 2년 동안 5,500만 대가 팔린 셈입니다. 기기의 성격도, 성능도 다르긴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5가 3월 기준 3,840만 대 팔린 것과 비교해 볼 만 하죠.
당장은 ‘맥이 최고의 게임 머신’이라는 게 아니라 이제 맥에서도 게임이 소외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맥은 시장으로도, 하드웨어로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많은 부분이 이미 준비되어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게임 시장에 맥도 함께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걸 내다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게이밍 맥도 나오냐고요?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대중성이기 때문에 그렇게 기기를 구분하는 것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생태계가 충분히 성장한다면 언젠가는 애플TV를 닮은 형태의 거치형 게임기나 스팀덱 같은 모바일 게임기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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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섭
지하철을 오래 타면서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모바일 기기들이 평생 일이 된 IT 글쟁이입니다. 모든 기술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공부하면서 나누는 재미로 키보드를 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