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파인트 아이스크림이 그리웠던 객원 필자 김정년이다. 파인트는 영미권에서 사용하는 부피 단위다. 영국에서는 570mL, 미국에서는 470mL를 의미한다. 뚜껑이 있는 둥근 종이컵에 아이스크림을 500mL 정도 담아 팔던 아이스크림은 대부분 파인트라 부른다.
빵에 스프레드처럼 발라먹으면 간편한 한 끼 식사, 느끼하거나 매운 걸 먹고 나면 입가심 도우미, 한여름엔 무더위를 날릴 구원자. 파인트 아이스크림을 냉장고에 채워두면 여러모로 쓸 일이 많다. 2023년 상반기를 보내며 여러 아이스크림을 해치웠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만 엄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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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합의 시대를 여는 민초맛”
벤앤제리스 민트초코쿠키
은은하게 깔리는 박하 향이 일품! 무더운 여름에 어울리는 벤앤제리스 파인트를 딱 하나만 고르자면 ‘민트초코쿠키’를 고르겠다. 풍부한 우유맛에 잘게 으스러진 쿠키앤크림칩이 골고루 박혀있다.
민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과하지 않은 깔끔한 맛으로, 민초를 싫어하던 사람에게는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기억될 것이다. 반민초단 3명, 친민초단 3명에게 시식을 시켰을 때 만장일치 호감 표시를 얻었다. 아이스크림 플레이버의 오랜 논쟁, ‘민트초코 호불호’를 종결시키는 기적의 아이스크림이다.
이 제품의 유지방 함량은 무려 15%. 유지방 함량이 높기로 유명한 하겐다즈 파인트보다 높다. 덕분에 잘 녹지도 않고, 녹은 걸 재냉동해도 맛이 크게 무너지지 않는다.
벤앤제리스의 국내 유통역사는 짧지만, 시그니처 플레이버 대부분이 순조롭게 유통되고 있다. 파인트 아이스크림 1+1 프로모션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선보이며 가격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 편의점 2+1 이벤트가 잦은 편이니 구매에 앞서 점포별 월간 할인 소식을 눈여겨보는 게 팁이다. 가격은 1만 4,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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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다구리의 극한을 찍는 젤라또”
폴바셋 솔티드 카라멜 젤라또
국내산 고급 우유로 고소한 풍미 내기. 우리가 폴 바셋 표 아이스크림에 기대하는 미덕이다.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이번 파인트 아이스크림은 매장에서 먹던 소프트아이스크림의 질감과 사뭇 다르다. 일단 식감이 쫀득쫀득하다. 비결은 휘젓기. 젤라또는 재료를 천천히 휘저으며 만드는 유제품이다. 크림 내부의 공기가 빠져나가며 크림의 밀도가 빽빽해진다. 유지방 함량도 많다. 일반 젤라또의 유지방 함량은 4~8%인데 폴 바셋 젤라또는 무려 10% 이상.
쫀득쫀득한 젤라또에 부재료로 캐러멜 시럽이 들어가니, 완벽하게 다른 아이스크림이 탄생한다. 한입 물면 옅은 소금기가 느껴지지만, 그것도 잠시. 단짠단짠이 아니라 단단단단. 달다구리의 극한을 찍는 젤라또가 탄생했다.
이는 굵게 들어간 케러멜칩 영향이다. 폴 바셋 특유의 우유 풍미를 가릴 정도로 지배적이다. 단 게 엄청 당기는 날, 서너 스푼 떠먹으면 급속당충전이 가능하다. 여하튼 극단적인 단맛이다.
이런 과격한 아이스크림의 쓸모는 아주 적은 양을 먹을 때도 드러난다. 혓바닥에 충격을 준다 해야 할까. 식사를 모두 마치고 입가심으로 먹을 때 가장 뛰어난 퍼포먼스를 자랑했다. 다른 폴바셋 젤라또와 달리 우유 본연의 맛을 기대할 수 있는 제품은 아니었다. 깔끔한 우유 맛을 원한다면 밀크 플레이버를 고르는 걸 추천한다. 가격은 1만 3,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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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은 아니지만 아이스크림인 것”
헤일로탑 초코/피넛버터
나라마다 조금씩 기준이 다르지만, 오늘날 아이스크림은 유지방 함유량으로 아이스크림과 ‘아이스크림이 아닌 것’을 구분한다. 한국에선 법적으로 ‘유지방분 6% 이상, 유고형분 16% 이상’ 들어가야 아이스크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 아래를 웃돌면 아이스밀크나 셔벗으로 분류된다. 사람들은 즙을 얼린 과자를 모두 아이스크림으로 부르지만, 엄밀히 따졌을 때 아이스밀크와 셔벗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살다 보면 아이스크림을 너무 먹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당뇨가 있어서 당분과 지방이 많은 아이스크림이 부담스럽다거나 다이어트 중인데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거나. 헤일로탑의 지방 함유량은 4%대. 당분까지 절제한 셔벗 제품이다. 일반 아이스크림이 버거운 사람들을 위한 ‘대체품’이라 볼 수 있다.
헤일로탑은 대체 아이스크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제품을 출시하며 조금씩 성장 중이다. 오직 쾌감을 주는 맛에 집중한 아이스크림은 아니지만, 특정 플레이버를 골라야 한다면 초코와 피넛버터를 추천. 가격은 1만 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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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꾸덕해진다면”
슈퍼말차 말차 파인트 아이스크림
잎차향이 물씬 나는 아이스크림. 얼음덩어리의 메마른 질감이 인상 깊다. 유지방이 적은 탓인지 표면이 무척 건조하다. 먹다 보면 입안이 바짝 마른다. 입가의 수분을 모두 흡수할 기세랄까. 건조한 식감이 인상 깊게 체험된다.
시식 전에는 나뚜루 같은 꾸덕꾸덕한 녹차 아이스크림을 기대했다. 한입 몰고 나서 이것은 ‘대체 아이스크림’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패키지를 뒤집어 제품 성분표를 확인하니 아이스’밀크’로 적혀있다. ‘유지방분 2% 이상, 유고형분 7%’ 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아이스밀크’로 분류된다. 아이스크림과 셔벗 사이에 놓여있다.
슈퍼말차는 원래 천연 대체당을 가미한 말차로 사랑받은 브랜드. 쌉싸름한 잎차맛은 덜고 단맛을 보완한 가루분말차가 이들의 시그니처 아이템이다. 아이스크림에선 맛이 달랐다. 가루분말차에서 느꼈던 달콤함이 줄어들고 말차 특유의 쌉싸름한 향미가 강조됐다. 먹으면 먹을수록 유지방 함량이 아쉽다. 아이스밀크는 말차와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유지방 함량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린 신제품이 나온다면 재구매 의사가 있다. 가격은 1만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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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은 선택이지만 필수”
크리크리 그릭요거트 아이스크림 허니
크리크리는 그릭 요거트 브랜드다. 아이스크림은 2023년부터 국내 수입이 본격화됐는데, 요거트 마니아 사이에서 입소문이 번지고 있다. 플레인 그릭 요거트의 꾸덕꾸덕한 제형에 단맛이 살짝 감돈다. 이 단맛은 신선도가 낮아진 복숭아를 설탕에 절였을 때 나는 맛과 비슷하다.
식품 유형은 셔벗으로 분류되지만, 유지방 함량이 높은 아이스크림처럼 크리미한 물성을 갖고 있다. 그릭 요거트 자체가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음식인 만큼 부드러운 식감을 기대할 수 있다.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기쁨이 가장 큰 제품이었다. 숟가락을 푹 찍어 아이스크림 덩어리를 돌려 깎거나 커다란 식칼로 아이스크림 단면을 일도양단할 때, 쇠붙이 날이 매끄럽게 파고드는 느낌이랄까. 빵 위에 스프레드처럼 얹었을 때 갈라진 빵 껍질 사이로 요거트 크림이 알맞게 스며든다. 요거트와 빵을 즐겨 먹는 사람들에게 강력추천한다. 가격은 8,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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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년
미식과 브랜드에 대한 글을 씁니다.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 나란히 산책하는 일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