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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보틀 커피를 마시는 가장 쉬운 방법

프리미엄 인스턴트 커피의 등장
프리미엄 인스턴트 커피의 등장

2023. 07. 31

안녕, 에디터 유정이다. 집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핸드 드립, 캡슐 커피, 드립백 등등. 이 모든 게 여의치 않을 때 마지막의 마지막에 떠오르는 게 인스턴트 커피다. 나에게 인스턴트 커피란 그런 존재다. 어쩔 수 없을 때나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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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블루보틀에서 인스턴트 커피를 출시했다. 무려 3년 반의 준비기간 끝에 야심 차게 선보인 ‘크래프트 인스턴트 커피’다. 미국 3대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중 하나인 블루보틀이 만들었다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커피 퀄리티에 진심인 브랜드가 만든 인스턴트 커피는 뭔가 좀 다를까?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이 리뷰를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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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보틀의 ‘뭔가 좀 다름’은 외관부터 시작한다. 인스턴트 커피라 하면 당연히 네모난 박스 패키지에 담긴 스틱 커피가 떠오를 거다. 하지만 블루보틀은 유리병을 택했다. 한 손에 잡히는 딸기잼 정도 크기의 유리병. 흰 라벨에 하늘색 로고가 그려진 디자인은 블루보틀의 다른 굿즈들과 마찬가지로 심플함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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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에는 라떼 레시피가 적혀 있다. 라떼가 인기 메뉴인 블루보틀답게 인스턴트 커피도 라떼에 최적화되어 있다. 블루보틀의 설명에 따르면 다크 초콜릿, 당밀, 구운 맥아의 향미를 낸다고. 테이스팅 노트만 읽어봐도 벌써 라떼와 잘 어울리는 고소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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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을 열면 커피 가루가 크리스탈 조각처럼 반짝인다. 모양과 크기가 불규칙하고, 사실 가루라고 하기엔 입자가 큰 편이다. 색깔은 흑설탕 같고 생김새는 고춧가루 같다.

장인정신으로 커피를 대하는 브랜드인 만큼 인스턴트 커피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더라. 블루보틀은 스페셜티 등급 기준을 충족한 커피만을 사용하는데 인스턴트에도 마찬가지로 스페셜티 커피를 사용했다. 인스턴트 커피는 맛이 없다는 편견을 뚫고 어쩌면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괜찮은 라떼를 마실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슬쩍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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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보틀 커피로 라떼를 만드는 방법은 다른 인스턴트 커피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커피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은 뒤 얼음을 넣고 우유를 추가하면 끝. 단 30초 만에 라떼 한 잔을 뚝딱 만들 수 있다.

블루보틀 레시피에 나와 있는 분량은 커피 4g, 뜨거운 물 16g, 우유 200g. 그대로 만들어 한 입 마셔봤는데… ‘이 밍밍한 맛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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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러움을 뒤로 한 채 우유 양을 150g으로 줄이니 그제야 내가 기대한 진한 라떼 맛을 느낄 수 있더라. 커피 가루에서 달콤한 향이 진하게 풍기는 데 비해 단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고소하고 정직한 라떼에 가까웠다. 인스턴트 커피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군내나 탄 맛이 나지도 않더라. 뒷맛이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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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하게 먹자고 인스턴트 커피를 선택했는데 저울을 동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우유를 조금씩 추가해 가며 최적의 비율을 찾길 권한다.

그런 맥락에서 따뜻한 라떼는 그냥 카페에서 사 마시는 게 좋겠다. 집에서 68℃의 적정 온도를 맞춰 우유를 데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어찌어찌 집에서 우유를 데웠다고 해도 카페에서 만들어 주는 고운 질감의 벨벳 밀크보단 훨씬 맛이 떨어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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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블루보틀이 권장하는 대로 아이스 라떼로 마시는 게 가장 맛있었지만 아메리카노도 꽤 괜찮았다. 반전인 건 아메리카노로 마실 때 오히려 향이 더 풍부하게 느껴졌다는 거다. 거기에 산미와 쌉쌀함이 아주 살짝 더 강조되더라. 인스턴트 커피치고 괜찮은 게 아니라 내가 오늘 아침에 2,000원 주고 사 마신 메가커피 아메리카노보다도 훌륭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만드는 사람에 따른 맛의 편차가 없다는 거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 커피를 내리는 사람에 따라서 혹은 바쁘거나 한가한 시간대의 차이에 따라서 맛이 천차만별일 때가 있다. 하지만 블루보틀 인스턴트 커피는 특별한 도구나 기술이 필요 없이 일관된 맛을 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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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하고 맛도 좋은 이 커피에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가격이다. 60g에 3만 5,000원. 레시피대로 한 번에 4g의 커피 가루를 사용하면 총 15잔을 만들 수 있으니 한 잔에 쓰이는 커피가 대략 2,300원어치인 셈이다. 맛있고 만들기 쉬운 만큼 손이 자주 가는데 생각날 때마다 만들어 먹기엔 비싼 게 사실이다. 그래서 가성비는 떨어지지만 캡슐 커피나 드립백에 질린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마셔 보는 걸 추천한다.

About Author
손유정

98년생 막내 에디터. 디에디트 다니고 하고 싶은 거 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