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가자! 산으로 계곡으로, South2 West8

편집숍에서 종종 보이는 이 브랜드, 우리나라에서 '남이서팔'로 불린다고
편집숍에서 종종 보이는 이 브랜드, 우리나라에서 '남이서팔'로 불린다고

2023. 08. 23

안녕, 객원 에디터 김고운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에는 에어컨 앞을 떠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에어컨 빵빵한 실내에만 있다 보면 감기에 걸리기도 쉽다. 도시의 삶이란…

자연 속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에 앉아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을 맞으면 이보다 쾌적할 수 없다. 오늘 소개할 브랜드는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에 가까운 삶의 양식을 추구하는 브랜드, South2 West8이다. 한국에서는 ‘남이서팔’로 불린다.


[1]
남이서팔의 탄생
“헤비듀티 아이비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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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서팔은 일본의 편집숍 ‘네펜데스’의 설립자인 시미즈 케이조가 2003년에 론칭한 브랜드이다. 남이서팔의 핵심 컨셉은 ‘헤비듀티 아이비’. 헤비듀티는 뭐고 아이비는 뭘까.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뚜렷한 이미지는 떠오르지 않을 거다.

헤비듀티는 쉽게 말해 ‘튼튼하다’는 거다.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캠핑이나 낚시를 할 때 필요한 옷을 비롯한 각종 도구를 헤비듀티라고 한다. 미국의 헤비듀티는 원주민을 바탕으로 유럽의 것을 수용하여 미국의 북부지방에서 발전했다. 추위를 보호하기 위해 탄생한 패딩이나 백패킹용 백팩과 같은 이 당시의 헤비듀티 아이템은 패션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것들을 즐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과 가까워지고 싶었던 거다. 자연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도구로서 헤비듀티 아이템을 착용했지만 문화적 요소로 자리 잡은 만큼 헤비듀티 아이템은 일상에서 다양하게 활용됐다. 마운틴 파카에 반바지를 입기도 하고 반팔 위에 패딩 조끼를 입는다. 이렇게 도구로서의 기능과 패션의 요소가 혼합된 스타일을 헤비듀티 아이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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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2 West8 X Helinox 캠핑의자]

남이서팔을 만든 시미즈 케이조의 어린 시절로 가보자. 1960-70년대는 Men’s Club, Made in USA catalog, 뽀빠이 같은 잡지를 중심으로 헤비듀티 아이비 같은 미국 문화가 일본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거친 환경 속에서 패션이 아닌 도구로 착용되는 옷과 동부 아이비리그 학생 패션의 조합이라니 생각만 해도 자유롭지 않은가. 시미즈 케이조는 헤비듀티 아이비의 자유로움에 푹 빠졌다.

분카 패션 대학 졸업 후 취업한 수입 신발 편집숍에서 일하며 본격적으로 의류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손님으로 방문한 다이키 스즈키(훗날 엔지니어드 가먼트 디자이너가 된다)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미국 문화를 동경한다는 점에서 취향이 비슷하여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시미즈가 독립하여 네펜데스를 시작할 때 동업자로 함께하여 지금까지도 연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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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펜데스의 동업자이자 각각 엔지니어드 가먼츠, 니들스의 디렉터인 다이키 스즈키(좌)와 시미즈 케이조(우)]

시미즈 케이조와 다이키 스즈키는 네펜데스의 이야기를 넘어 일본 패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들의 편집숍 네펜데스를 비롯하여 시미즈 케이조의 니들스, 다이키 스즈키의 엔지니어드 가먼츠 역시 한국은 물론 해외까지 충성도 높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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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남이서팔 매장 내부]

2003년대 초반, 헤비듀티 아이비 흐름은 대중화되어 경쟁력이 약화된 상태였다. 하지만 시미조는 그렇다 하더라도 헤비듀티 아이비의 자유로움과 자연 친화적인 핵심 가치는 유효할 것이라 생각하고 남이서팔을 시작하였다. 시미조가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바람이 드디어 이루어진 셈이다. 남이서팔은 2003년 네펜데스의 삿포로 매장에서 시작하였다. 이름은 당시 매장의 주소에 南2, 西8이 들어간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나라면 헤비듀티를 오랜 기간 동안 좋아했던 만큼 철학을 담아 거창하게 이름을 지을 것 같은데 시미즈 케이조의 단순함이 뭔가 쿨하게 느껴진다. 역시 거장은 다르다.


[2]
Must Item
Sunforger Funny P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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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서팔의 초기 제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Sunforger 원단으로 제작된 제품들이다. 이 원단은 캔버스 원단인데 워낙 두텁게 짜여 있어 방수는 물론 방화의 기능도 있다. 남이서팔은 제품의 색을 자연에서 찾는다는 생각이 든다. Sunforger 힙색의 올리브 색과 황토색 역시 자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색상이다. 이 가방을 메고 캠핑을 한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비가 와도, 불을 피우다 불똥이 튀어도 끄떡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 가방은 바로 이런 상황을 위함이었다는 생각에 뿌듯할지도 모르겠다. 구매는 [여기]에서.

  • SUNFORGER FUNNY PACK 23만 5,000원

Tenkara V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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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변화 없이 헤비듀티 아이비 컨셉을 이어가던 남이서팔은 2015년 대대적으로 변화를 감행한다. 기존 상품을 유지하면서 낚시 제품군을 추가했다. 여기서 말하는 낚시는 일본의 전통 방식인 ‘텐카라(Tenkara)’를 뜻한다. 텐카라 낚시는 기다란 낚싯대의 끝에 낚싯줄을 고정해서 하는 낚시 종류이다. 낚싯줄이 고정되어 있으니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물에 들어가서 물의 흐름을 따라 이동하는 물고기를 낚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낚시에 정적인 요소가 있다면 텐카라는 동적이고 아웃도어의 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텐카라 제품군이 매력적인 건 단순히 제품의 기능과 디테일을 넘어 제품을 통해 삶의 양식을 제안하는 데 있다. 울창하고 푸르른 산속 시원한 냇가에 발을 담그고 흘러가는 낚싯줄을 바라보며 낚시하는 모습. 상상만 해도 청량해지지 않나. 유튜브에 South2 West8을 검색하면 계절별로 텐카라 낚시 영상이 남긴 채널이 있는데 놀랍게도 남이서팔의 공식 채널이다. 옷에 대한 설명은 일절 없고 남이서팔의 제품을 입고 낚시하는 영상이 업로드 되어 있다. 대부분 남이서팔의 직원이며 심지어 시미즈 케이조도 등장한다. 디렉터와 그 직원이 얼마나 텐카라에 열광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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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카라 제품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제품은 바로 텐카라 베스트. 이 제품은 군용제품 같이 주머니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텐카라는 물에 들어가서 움직이기 때문에 낚시에 필요한 장비를 담을 공간이 필요하다. 아쉽지만 이 제품은 국내에서 구할 수 없다. 혹시 일본 여행 계획이 있다면 네펜데스 매장이나 남이서팔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Belted C.S Sh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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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상황을 위한 헤비듀티 아이비의 필수 아이템은 아이러니하게도 반바지이다. 자유로움을 잘 보여주면서 여름의 무자비한 더위를 극복하기 위한 도구니까. 나일론 옥스포드 원단이어서 쉽게 헤지거나 찢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벨트가 정말 헤비듀티 아이비의 진수를 보여준다. 아웃도어 활동 시 큰 동작에도 흘러내리지 않게 꽉 잡아주는 역할을 하면서 또 전체적인 분위기를 캐주얼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아웃도어, 패션 그 둘 중 어느 것을 중심으로 구매해도 상관이 없는 그런 반바지란 말씀. 구매는 [여기]에서.

  • BELTED C.S. SHORT 26만 원

아웃도어 환경에서의 옷이란 단순한 패션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을 너머 ‘도구의 기능’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좋은 도구를 골라 아웃도어 환경을 즐기는 것, 그 재미가 옷을 고를 때도 해당된다. 예를 들어, 위에서 소개한 나일론 옥스포드 원단의 반바지를 입고 런닝을 한다고 해보자. 그때 느낄 수 있는 쾌적함은 예쁜 옷을 고르는 기쁨이 아니라, 도구를 잘 골랐을 때 느낄 수 있는 기쁨이다. 어쩌면 남이서팔의 옷은 요즘처럼 장마와 더위가 번갈아 사람을 괴롭히는 날씨에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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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운

패션 관련 글을 씁니다. 헛바람이 단단히 들었습니다. 누가 좀 말려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