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망한 사진은 없다, 인스탁스 미니12

인스탁스 미니12를 들고 포항 여행을 다녀왔다
인스탁스 미니12를 들고 포항 여행을 다녀왔다

2023. 07. 03

안녕, 에디터 유정이다. 최근 포항으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입사한 지 두 달 반만의 첫 여행. 친구들과 도란도란 기차를 타고 익숙한 동네를 벗어나 오랜만에 바다 볼 생각을 하니 설레더라. 오래 기억하고 싶은 여행이 될 것 같다는 예감에 즉석카메라를 챙겼다. 지난 5월, 즉석카메라의 대명사 인스탁스의 신작 ‘인스탁스 미니12’.

back0001

인스탁스 카메라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아날로그 카메라와 하이브리드 카메라. 인스탁스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건 별다른 기능 없이 찍는 즉시 출력되는 아날로그 카메라일 거다. 반면 하이브리드 카메라는 사진을 찍고, A컷을 고르고, 보정까지 할 수 있다. 기능이 더해질수록 가격도 올라가기 마련이니, 단순하고 부담 없는 카메라를 찾는다면 오늘 소개하는 미니12가 적당하겠다. 하이브리드 카메라 ‘미니 에보’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12만 9,000원이니까.

back0002

아마 미니11을 쓰고 있다면 이번 신제품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3년 만에 나온 신제품이지만 전작인 미니11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소소한 변화만이 있을 뿐이다. 전원을 켜는 방식이 바뀌었고, 클로즈업 모드라는 게 생겼다. 무게는 293g에서 306g으로 조금 늘었다.

back0003

주변 밝기를 감지해 셔터 스피드와 플래시 밝기를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데, 전작인 미니11부터 적용된 기능이다. 이 기능 덕분에 초보자도 부담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을 여러 장 찍어보니 플래시의 역할이 상당하더라. 플래시 유효 범위인 2m 내에서 인물을 찍을 때 사진이 가장 멋스럽게 나오고, 밝은 곳보다는 어두운 장소에서 플래시가 강하게 터지니 대비감이 살아서 분위기 있는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인스탁스 특유의 빈티지한 색감은 덤이다.

back0005 back0006

또 하나 유용한 건 렌즈 옆에 부착된 ‘셀피 미러’. 작은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며 셀카를 찍을 수 있다. 셀피 미러는 인스탁스 시리즈의 2015년 모델부터 있었는데 직접 사용해 보니 새삼 편했다. 셀피 미러가 없는 미니7로 셀카를 찍을 땐 오로지 감에 의지하며 찍느라 처음 몇 장을 날리기도 했는데, 확실히 있으니까 셋이 찍은 사진에 둘만 담길 일은 없더라. 물론 인원수에 따라 촬영의 난이도는 다르다. 두 명은 거뜬하고, 세 명 정도는 오케이. 하지만 넷 이상이 다 멀쩡한 모습으로 담기는 건 (개개인의 팔 길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챌린지에 가깝다.

back0004

‘클로즈업 모드’는 30~50cm 거리에 있는 피사체를 선명하게 찍을 수 있는 기능이다. 여기까지는 미니11의 ‘셀피 모드’와 동일한데, 거기에서 약간 업그레이드됐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뷰파인더 상으로 피사체를 중심에 두더라도 막상 결과물에서는 오른쪽으로 치우쳐 보일 때가 있다. 뷰파인더와 렌즈의 위치가 달라서 발생하는 현상인데, 클로즈업 모드를 켜고 찍으면 뷰파인더로 본 것과 거의 똑같은 구도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여기까지가 상세 페이지에 적힌 설명이지만 이 기능을 실제로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윗줄에 있는 사진 4장은 클로즈업 모드가 없는 미니7으로 찍은 사진이고, 아랫줄에 있는 4장은 미니12 클로즈업 모드로 찍은 사진. 큰 차이가 보이진 않았지만, 적어도 미니12로 사진을 찍으면서 구도 왜곡 현상을 느끼진 못했으니 목표는 이룬 셈이다.

back0016 back0007

인스탁스 미니12는 렌즈를 돌려서 전원을 켜는 방식이다. 첫 번째 사진처럼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 렌즈를 반시계 방향으로 한 번 돌리면 ON, 한 번 더 돌리면 클로즈업 모드. 당연히 끌 때는 반대로 돌리면 된다. 그런데 이게 여간 헷갈리는 게 아니다. 카메라를 내려놨을 때는 돌리는 방향이 반대로 바뀌니 켜고 끌 때마다 왼쪽으로 돌렸다가, 오른쪽으로 돌렸다가… 청기백기도 아니고 너무 복잡한 거 아닌가. 전원 버튼이 그리워진다.

back0008 back0009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셔터 버튼의 감도가 심히 좋다는 것. 대부분의 카메라는 셔터를 살짝 누르면 초점이 잡히는데, 미니12로 초점 잡기를 시도하다가는 그대로 필름 한 장을 날리게 된다. 게다가 감도가 너무 좋다 보니 전원을 끄지 않고 다니거나 만지작거리다가 실수로 스쳐서 사진이 찍힐 수도 있다. 나와 두 친구가 번갈아 가며 서로를 찍어주는 동안 모두가 한 번씩 실수로 셔터를 눌렀다. 의외로 분위기 있는 사진을 건지거나 차라리 아주 우스꽝스러운 사진이 찍힌다면 좋겠지만, 아무 의미 없이 한 장을 날리면 속상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필름 한 장이 천 원이다. 여분의 필름이 없다면 더욱 마음 아파질 수 있다.

back0010

이쯤에서 미니12와 함께 여행하면서 생긴 일화 하나. 산책로를 걷다가 예쁜 철길을 발견해 친구들도 찍어주고, 나도 한 장 남겼다. 한산해 보이지만 실은 철길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도로변이었기 때문에 차, 자전거, 오토바이 할 것 없이 온갖 탈것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녔다. 눈치를 잘 살피다가 통행이 조금 잦아들면 ‘지금이야!’ 외치는 소리에 맞춰 재빨리 포즈를 잡고 유지한다. ‘하나, 둘.. 잠깐만 또 차 온다.’

back0011

그렇게 해서 겨우 건진 사진 한 장과 친구가 실수로 셔터 버튼을 잘못 눌러서 찍힌 한 장. 제대로 찍은 사진마저 피사체가 카메라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어두컴컴하게 나왔다. 잘못 찍힌 오른쪽 사진을 보면 하늘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철길 바닥만 한 가득에, 사람이 모서리에 서 있는 이상한 구도의 결과물이 탄생했다. 그래도 상관은 없다. 내게 즉석카메라의 용도는 고퀄리티의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한 장의 필름에 추억을 담는 것에 가까우니까. 언제고 이 사진을 다시 볼 때면 영화감독이라도 된 것처럼 통행 차량을 살피고 내게 큐 사인을 주던 친구의 모습이 선명히 떠오를 거다.

back0012 back0013

필름 사진을 찍으면 한 장 한 장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정해진 필름 장수만큼만 찍을 수 있으니, 애초에 소중한 순간을 고르고 골라 카메라를 들게 된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건질 때까지 수십 장씩 연속 사진을 찍을 때와는 한 장에 담긴 의미가 다르다.

back0015

즉석카메라로 찍은 사진에는 망한 사진이 없다. 설령 구도가 이상하거나, 흔들렸거나, 심지어는 손가락이 렌즈를 조금 가렸어도 괜찮다. 그 사진을 다시 볼 때마다 그날 그때의 추억을 곱씹으면서 웃게 될 테니까. 평소 같았으면 바로 휴지통 신세가 됐을 철길에서 잘못 찍힌 사진도 소중히 간직하게 되는 이유다. 내가 즉석카메라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About Author
손유정

98년생 막내 에디터. 디에디트 다니고 하고 싶은 거 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