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 유정이다. 최근 포항으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입사한 지 두 달 반만의 첫 여행. 친구들과 도란도란 기차를 타고 익숙한 동네를 벗어나 오랜만에 바다 볼 생각을 하니 설레더라. 오래 기억하고 싶은 여행이 될 것 같다는 예감에 즉석카메라를 챙겼다. 지난 5월, 즉석카메라의 대명사 인스탁스의 신작 ‘인스탁스 미니12’.
인스탁스 카메라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아날로그 카메라와 하이브리드 카메라. 인스탁스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건 별다른 기능 없이 찍는 즉시 출력되는 아날로그 카메라일 거다. 반면 하이브리드 카메라는 사진을 찍고, A컷을 고르고, 보정까지 할 수 있다. 기능이 더해질수록 가격도 올라가기 마련이니, 단순하고 부담 없는 카메라를 찾는다면 오늘 소개하는 미니12가 적당하겠다. 하이브리드 카메라 ‘미니 에보’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12만 9,000원이니까.
아마 미니11을 쓰고 있다면 이번 신제품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3년 만에 나온 신제품이지만 전작인 미니11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소소한 변화만이 있을 뿐이다. 전원을 켜는 방식이 바뀌었고, 클로즈업 모드라는 게 생겼다. 무게는 293g에서 306g으로 조금 늘었다.
주변 밝기를 감지해 셔터 스피드와 플래시 밝기를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데, 전작인 미니11부터 적용된 기능이다. 이 기능 덕분에 초보자도 부담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을 여러 장 찍어보니 플래시의 역할이 상당하더라. 플래시 유효 범위인 2m 내에서 인물을 찍을 때 사진이 가장 멋스럽게 나오고, 밝은 곳보다는 어두운 장소에서 플래시가 강하게 터지니 대비감이 살아서 분위기 있는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인스탁스 특유의 빈티지한 색감은 덤이다.
또 하나 유용한 건 렌즈 옆에 부착된 ‘셀피 미러’. 작은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며 셀카를 찍을 수 있다. 셀피 미러는 인스탁스 시리즈의 2015년 모델부터 있었는데 직접 사용해 보니 새삼 편했다. 셀피 미러가 없는 미니7로 셀카를 찍을 땐 오로지 감에 의지하며 찍느라 처음 몇 장을 날리기도 했는데, 확실히 있으니까 셋이 찍은 사진에 둘만 담길 일은 없더라. 물론 인원수에 따라 촬영의 난이도는 다르다. 두 명은 거뜬하고, 세 명 정도는 오케이. 하지만 넷 이상이 다 멀쩡한 모습으로 담기는 건 (개개인의 팔 길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챌린지에 가깝다.
‘클로즈업 모드’는 30~50cm 거리에 있는 피사체를 선명하게 찍을 수 있는 기능이다. 여기까지는 미니11의 ‘셀피 모드’와 동일한데, 거기에서 약간 업그레이드됐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뷰파인더 상으로 피사체를 중심에 두더라도 막상 결과물에서는 오른쪽으로 치우쳐 보일 때가 있다. 뷰파인더와 렌즈의 위치가 달라서 발생하는 현상인데, 클로즈업 모드를 켜고 찍으면 뷰파인더로 본 것과 거의 똑같은 구도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여기까지가 상세 페이지에 적힌 설명이지만 이 기능을 실제로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윗줄에 있는 사진 4장은 클로즈업 모드가 없는 미니7으로 찍은 사진이고, 아랫줄에 있는 4장은 미니12 클로즈업 모드로 찍은 사진. 큰 차이가 보이진 않았지만, 적어도 미니12로 사진을 찍으면서 구도 왜곡 현상을 느끼진 못했으니 목표는 이룬 셈이다.
인스탁스 미니12는 렌즈를 돌려서 전원을 켜는 방식이다. 첫 번째 사진처럼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 렌즈를 반시계 방향으로 한 번 돌리면 ON, 한 번 더 돌리면 클로즈업 모드. 당연히 끌 때는 반대로 돌리면 된다. 그런데 이게 여간 헷갈리는 게 아니다. 카메라를 내려놨을 때는 돌리는 방향이 반대로 바뀌니 켜고 끌 때마다 왼쪽으로 돌렸다가, 오른쪽으로 돌렸다가… 청기백기도 아니고 너무 복잡한 거 아닌가. 전원 버튼이 그리워진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셔터 버튼의 감도가 심히 좋다는 것. 대부분의 카메라는 셔터를 살짝 누르면 초점이 잡히는데, 미니12로 초점 잡기를 시도하다가는 그대로 필름 한 장을 날리게 된다. 게다가 감도가 너무 좋다 보니 전원을 끄지 않고 다니거나 만지작거리다가 실수로 스쳐서 사진이 찍힐 수도 있다. 나와 두 친구가 번갈아 가며 서로를 찍어주는 동안 모두가 한 번씩 실수로 셔터를 눌렀다. 의외로 분위기 있는 사진을 건지거나 차라리 아주 우스꽝스러운 사진이 찍힌다면 좋겠지만, 아무 의미 없이 한 장을 날리면 속상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필름 한 장이 천 원이다. 여분의 필름이 없다면 더욱 마음 아파질 수 있다.
이쯤에서 미니12와 함께 여행하면서 생긴 일화 하나. 산책로를 걷다가 예쁜 철길을 발견해 친구들도 찍어주고, 나도 한 장 남겼다. 한산해 보이지만 실은 철길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도로변이었기 때문에 차, 자전거, 오토바이 할 것 없이 온갖 탈것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녔다. 눈치를 잘 살피다가 통행이 조금 잦아들면 ‘지금이야!’ 외치는 소리에 맞춰 재빨리 포즈를 잡고 유지한다. ‘하나, 둘.. 잠깐만 또 차 온다.’
그렇게 해서 겨우 건진 사진 한 장과 친구가 실수로 셔터 버튼을 잘못 눌러서 찍힌 한 장. 제대로 찍은 사진마저 피사체가 카메라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어두컴컴하게 나왔다. 잘못 찍힌 오른쪽 사진을 보면 하늘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철길 바닥만 한 가득에, 사람이 모서리에 서 있는 이상한 구도의 결과물이 탄생했다. 그래도 상관은 없다. 내게 즉석카메라의 용도는 고퀄리티의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한 장의 필름에 추억을 담는 것에 가까우니까. 언제고 이 사진을 다시 볼 때면 영화감독이라도 된 것처럼 통행 차량을 살피고 내게 큐 사인을 주던 친구의 모습이 선명히 떠오를 거다.
필름 사진을 찍으면 한 장 한 장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정해진 필름 장수만큼만 찍을 수 있으니, 애초에 소중한 순간을 고르고 골라 카메라를 들게 된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건질 때까지 수십 장씩 연속 사진을 찍을 때와는 한 장에 담긴 의미가 다르다.
즉석카메라로 찍은 사진에는 망한 사진이 없다. 설령 구도가 이상하거나, 흔들렸거나, 심지어는 손가락이 렌즈를 조금 가렸어도 괜찮다. 그 사진을 다시 볼 때마다 그날 그때의 추억을 곱씹으면서 웃게 될 테니까. 평소 같았으면 바로 휴지통 신세가 됐을 철길에서 잘못 찍힌 사진도 소중히 간직하게 되는 이유다. 내가 즉석카메라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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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정
98년생 막내 에디터. 디에디트 다니고 하고 싶은 거 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