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객원필자 조서형이다. 오래 주저하고 고민하다가 몇 달 전, 중고차를 샀다. 차를 샀다는 건 그동안 없던 모양의 캠핑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배낭에 짊어지지 못하는 것은 소유하지 않고 걸어서 닿을 수 없는 거리는 상상하지 않았다. 차가 생기고서 가장 먼저 두들긴 주제는 비가 오는 날 캠핑을 하는, 우중 캠핑이다.
비나 눈이 오는 날 텐트를 치고 잔 경험은 이전에도 있다. 그러나 비를 즐길 준비를 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비에 몸을 웅크린 채 날이 개기만을 기다린 것일 뿐. 차가 생긴 지금, 악천후에 대비하는 일이 덜 부담스러웠다. 비바람에도 움츠리지 않고 당당하게 캠핑을 하리라.
시원하게 비가 쏟아지는 동안 작은 냄비에 보글보글 카레 우동을 끓여 먹었다. 몸을 덥히기 위해 뜨거운 커피도 한 잔 마셨다. 착 가라앉은 날씨 탓에 기분도 차분해져 텐트로 기어들어 갔다. 천장을 두들기는 기운찬 빗소리를 들으며 텐트 안에서 책장을 넘긴다. 타프 아래 피워놓은 인센스는 맑은 날보다 비 오는 날에 오히려 향을 오래 유지한다. 노곤해져 그대로 낮잠에 빠진다. 한 시간을 자고 일어나니 하늘은 어둑하지만 아직 해는 지지 않았다. 매운 안주를 프라이팬에 볶아 지역 막걸리를 곁들여 저녁을 해결한다. 알딸딸한 기분으로 2000년대 한국 코미디 영화를 본다. 과자 가루를 마구 흘리며 깔깔 웃다 보니 다시 잠이 쏟아진다. 침낭에 몸을 파묻고 푹 자고 일어나니 아침이다. 밤새 내리던 비가 개고 깨끗한 공기만 남았다. 우중 캠핑이 이런 거구나.
여기 우중 캠핑을 준비하고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해 보았다. 읽고 나면 더 이상 장마철이 캠핑 비수기가 아니게 될 것이다.
[1]
“가라앉거나 떠내려가지 않을 장소를 찾는다”
비가 오는 날, 계곡 근처에 야영을 했다가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에 사고를 당할 수 있다. 절벽 아래에서 야영을 하다가 산사태가 나는 경우도 있다. 지대가 높고 물과 떨어진 캠핑장을 선택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 캠핑장 중에서는 배수시설이 잘 만들어진 자연휴양림과 국립공원 야영장이 좋다. 사설 캠핑장이라면 데크 바닥이 최적이고 파쇄석이 깔린 자리도 괜찮다. 잔디와 모래 바닥은 피한다. 배수가 안 되어 위험하기도 하고, 텐트와 타프에 진흙이 묻어 철수할 때도 고생한다. 부득이하게 흙바닥에서 야영을 해야 한다면 배수로를 만들어 준다. 삽으로 바닥을 파서 텐트 근처로 물이 흘러갈 수 있는 길을 만들면 된다. 비 오는 날 바닥을 파헤칠 자신은 없어 파쇄석 바닥을 선택했다. 비가 내리는 날씨가 이미 큰 고난이므로 이외의 변수는 최대한 줄이는 게 좋다. 나는 동행인이 이미 경험해 알고 있는 장소를 찾는 것으로 변수를 줄였다.
- Tip. 장마철에는 환경을 더욱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 일기예보를 수시로 확인하자. 시간당 30mm 이상의 비 예보와 평균 초속 6m/s 이상의 바람이 예상되는 때는 캠핑을 포기하는 게 좋다. 야외활동에서는 안전이 최우선이다.
[2]
“타프를 가장 먼저 친다”
평소에 바람과 태양 빛을 막아주던 타프가 이날은 빗방울을 막는 역할을 한다. 타프부터 쳐 놓으면 나머지 장비는 여유롭게 세팅해도 된다. 차에 캠핑 짐을 실을 때 텐트와 타프는 가장 마지막에 싣는다. 설치에 필요한 망치와 장갑, 비옷도 바깥쪽에 꺼내놓는다. 우중 캠핑은 스피드가 생명이다. 짐을 다 꺼내놓고 천천히 준비물을 찾을 여유는 없으니 패킹부터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타프는 물이 고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흐르도록 팽팽하게 친다.
타프는 사용법을 숙지하고 있는 제품이 좋다. 공간이 큰 거실형 텐트의 경우 타프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 4인용 텐트지만, 텐트 안에서만 생활하기엔 어려움이 있고 비 오는 걸 구경하고 싶어 타프를 쳤다. 나는 타프가 없어 동행인의 것을 공유했다. 타프도 그가 알아서 다 쳐줬다. 물이 한 곳에 잔뜩 고여 타프가 무너지고 한 번에 쏟아지며 등을 적시는 등 고난을 겪었지만, 타프가 있어서 좋았다.
- Tip. 벼락 예보가 있는 날엔 타프 설치도 조심해야 한다. 카본으로 만든 폴대가 낙뢰를 맞을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 예보가 애매해 고민이라면 폴 없이 나무에 낮게 묶어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바람의 영향도 덜 받고 벼락 맞을 위험도 줄어든다. 비와 함께 강풍이 있는 경우 평소보다 굵고 긴 팩으로 텐트와 타프를 고정한다.
[3]
“비를 대비한 준비물을 챙긴다”
비옷이나 방수가 되는 재킷_텐트를 치는 동안에는 우산을 쓸 수 없다. 일회용 비닐 우비보다는 다회용이 튼튼하고, 길이가 짧은 것보다는 다리까지 덮을 수 있는 우비가 좋다. 모자가 있어 머리까지 가릴 수 있으며 움직임이 자유로운 판초 우의를 추천한다.
슬리퍼_물이 스미지 않는 고어텍스 신발을 신더라도 변수는 어디에나 있다. 물웅덩이를 밟을 수도 있고 타프에 고여있던 물이 쏟아지기도 한다. 축축하게 젖은 발은 불쾌하고 냄새가 난다. 신발은 쉽게 마르지 않기 때문에 집에 돌아갈 때까지 고통받을 수 있다. 여분의 신발 또는 슬리퍼를 차에 보관한다.
걸레, 수건, 행주_젖은 몸엔 뭐든 잘 달라붙는다. 흙과 풀, 나무껍질, 벌레 등. 텐트 안에 물이 들어오기도 하고 의자에 고여 있기도 하다. 매번 휴지를 둘둘 말아 닦아내고 싶지 않다면 수건과 손수건 등을 넉넉하게 준비한다.
따뜻하고 시원한 것_비가 오는 날은 맑은 날보다 온도가 떨어진다. 6월이라도 비 오는 저녁은 춥다. 직전 캠핑에 침낭 없이 추위에 떤 기억으로 이번에는 보온 용품을 제대로 챙겼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면 핫팩까지 챙겨도 좋겠다. 반면 낮은 더 덥다. 공기가 통하지 않는 비옷을 입고 허겁지겁 짐을 옮기느라 땀이 났는데 텐트 안은 꿉꿉하다. 보온 장비에 더해 핸디 서큘레이터도 가져왔어야 했다.
- Tip. 여유로운 마음도 잊지 말고 챙겨야 한다. 비가 오는 날 캠핑을 하려면 예상과 다른 흐름에 당황하기 쉽다. 악천후에 대비하기 위해 날이 서 있어야 하고 텐트를 설치하거나, 불을 피우는 데도 오래 걸린다. 완벽한 캠핑을 하려 생각하지 말고 한 걸음 떨어져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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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설치 순서와 반대로”
작은 짐을 먼저 챙기고, 텐트를 접는다. 마지막으로 타프를 챙긴다. 바람이 불 때는 폴대를 먼저 제거하고 팩을 마지막에 뽑는다. 팩부터 뽑으면 텐트가 둥실 날아갈 수 있다. 바람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게 폴대를 빼 텐트를 주저앉힌다.
젖은 텐트와 타프는 김장 비닐, 방수 가방, 폴딩 박스 등에 넣어 온다. 파우치에 젖은 텐트를 접는 일은 쉽지 않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텐트를 구겨 넣는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다행히 나는 비가 멎었을 때 철수했다. 차 트렁크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탈탈 턴 텐트와 타프를 얹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 Tip. 비가 오는 날엔 야외활동의 난이도가 높아지지만, 날씨와 상황에 굴하지 않고 장비를 자주 쓰는 게 이득이다. 너무 과한 준비나 지나치게 장비를 아끼는 마음은 뒤로하자.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서 적당히 기쁘게 지내다 행복하게 돌아오는 게 최고다.
[5]
“장비는 바짝 건조해 보관하기”
젖은 장비는 상하기 쉽다. 캠핑을 마친 다음에는 텐트와 타프, 침낭을 포함한 장비 전체의 물기를 모두 말려서 보관하는 게 좋다. 플라스틱이나 티타늄 장비는 수건으로 닦고 크기가 큰 장비는 베란다를 이용해 널어 말린다. 지하 주차장에 주차한 차 위나 밤의 놀이터를 활용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차 트렁크를 이용해 집에 오는 동안 말렸다. 팩도 꼼꼼히 닦아 보관하지 않으면 녹이 슨다.
- Tip. 장비를 보관하는 가방이나 창고에 습기 제거제를 같이 넣어두면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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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형
아웃도어 관련 글을 씁니다. GQ 코리아 디지털 팀 에디터. 산에 텐트를 치고 자는 일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