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B다. 딱 한 입으로 기분을 전환하는 디저트. 그 무엇도 아닌 아이스크림. 시원함, 달콤함, 싱그러움을 모두 가진 이것의 가격은 인플레이션이 심해져도 2,000원을 넘어가지 않는다.
“인생 아이스크림 하나 소개해 줄래요?” 이 질문을 던졌을 때, 대부분은 어떤 아이스크림을 골라야 할지 망설였다. 이해한다.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잔인한 질문이니까. 차라리 다섯 개쯤 골라달라는 요청이라면 모를까. 그럼에도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10인이 각자의 최애 아이스크림을 소개해 줬다. 플레이버만큼이나 이유도 사연도 다양하다.
더위사냥 / 영화 평론가 김철홍 @cjfghd
아이스크림은 왜 아이스크림인가. 우리는 왜 아이스크림에 열광하고, 이것과 사랑에 빠졌는가. 그건 바로 아이스크림이 우리의 ‘더위’를 ‘사냥’해 줬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더위사냥은 이름부터 아이스크림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아이스크림 그 자체인 아이스크림이다. 심지어 커피 섭취를 제한받던 유년 시절에 카페오레와 더불어 합법적으로 커피의 맛을 즐길 수 있게 도와줬던 귀중한 존재이기도 하며, 동시에 친구와 반으로 나눠 먹음으로써 시원한 우정의 시간을 보내는 데 보탬이 되기도 했다. 물론 더위사냥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혼자 먹는 것이다. 혼자 먹는 더위사냥은 반으로 자를까 말까 선택할 수 있는 그 크기 덕분에, 손에 쥘 때부터 이미 행복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에 앞서 슈퍼 냉동고에서 너무 딱딱하지 않은 것을 고르는 것이 필수. 만약 완전히 얼어붙은 것을 골랐다 하더라도 당황할 필요는 없다. 늘 뜨거운 목 뒤에 더위사냥을 갖다 대면 되니까. 세상이 아무리 바뀐다 해도, 내 마음속 최고의 사냥꾼은 더위사냥, 당신이다.
본가 찰옥수수 / 브랜드 에이전시 하티핸디 손꼽힌 @kphnsohn
맛도 중요하지만 붕어빵이나 국화빵처럼 귀여운 모양도 중요하다. 찰옥수수는 옥수수 모양의 모나카가 아이스크림을 둘러싸고 있어 흘리지 않고, 손 시리지 않게 먹을 수 있다. 30대 중반의 치아가 놀라지 않게 버퍼가 되어주기도 한다. 고소한 옥수수 향과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데 쌀 맛 젤라또처럼 슴슴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먹다 보면 옥수수 알갱이와 찰떡, 초콜릿이 식감에 변주를 준다. 모양도 귀엽고 맛있고 식감도 다양한 본가 찰옥수수… 부동의 최애 아이스크림.
빠삐꼬 초코 / 프리랜서 에디터 HAE @_haeinlee
이상 기온 현상 때문인지 여름엔 선선하던 파리마저 요란스럽게 더운 요즘이다. 버스나 트램, 하물며 지하철에도 변변한 에어컨 하나 없는 이곳에서 불볕더위를 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 푹푹 찌는 열기에 이마엔 금세 땀방울이 송글, 입고 있던 티셔츠도 땀에 절어 찰싹 달라붙으니, 아무리 낭만의 도시 파리라지만 짜증이 밀려오기 마련이다. 이럴 때 간절히 떠오르는 아이스크림이 바로 빠삐코! 겨울에 손난로가 있다면, 여름엔 쮸쮸바 아닐까? 슈퍼마켓 냉장고 속에서 몇 시간 동안 꽝꽝 얼어있던 쮸쮸바는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즉각 열을 식혀주는데 탁월하다. 이때 하수는 포장지 껍질을 까자마자 버릴 테지만, 빠삐코 마니아는 이걸 버리지 않고 차가움을 완화시켜줄 홀더로 사용한다. 빠삐코의 미덕은 누가 뭐래도 ‘가벼움’. 카카오가 몇 퍼센트 들어갔느냐 따위는 이 녀석에게 전혀 중요치가 않다. 꽁꽁 언 아이스크림을 아사삭 깨물었을 때 퍼지는 그 한없이 가벼운 초코맛! 이거야말로 덥고 눅눅한 여름을 시원하게 만들어 줄 비장의 무기가 아닐까?
비비빅 / 에디터 차영우 @eunnok
빵은 단팥빵, 떡은 팥시루떡, 칼국수는 팥칼국수를 좋아한다. 인생 아이스크림은? 당연히 비비빅이다.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기억이 흐릿할 정도로 어느새부터 자연스럽게 먹고 있었다. 몇 년 전까지는 여럿이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있으면 비비빅을 집기 어려웠다. 할아버지 입맛이라고 많이들 놀려댔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할매니얼’의 약진 덕분에 당당하게 고를 수 있게 됐다. 세련되게 달콤한 초콜릿,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이 많아졌지만 그래서 투박한 비비빅의 단맛이 더 소중해졌다. 끝이 조금 텁텁한 팥의 맛, 그리고 팥알이 씹히는 식감도 좋아한다. 여름이 오면 가끔 혼자서라도 팥빙수를 먹고 싶어지는 날이 있는데, 혼자 팥빙수 하나를 다 먹기 어려워서 포기할 때가 많다. 이럴 때 비비빅을 살짝 녹여, 우유와 함께 마시면 팥빙수와 비슷한 맛이 난다. 취향껏 농도와 양을 조절할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고, 두유나 귀리 우유 등 식물성 우유로 바꿔서 먹을 수 있는 것도 좋다. 참고로 2021년에는 ‘비빙수’도 나왔었다. 올해로 마흔여덟 살이 된 비비빅, 앞으로 백 살까지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겐다즈 바닐라 맛 / 요리먹구가&텍스트셰프 에리카팕 @eprikot
인생 아이스크림이 하겐다즈라니. 그런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돈 좀 있으신가 봐요?” 아니요. 그럴 리가요. 그렇지만 인생 아이스크림으로 꼽은 이유는 내 인생 전환점에 있던 아이스크림이기 때문. 집들이만 333번 하는 여자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을 집에 불러 초대하고 문밖으로 내보내기 직전 먹이는 것. 디저트로 늘 하겐다즈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 크림 발사믹을 드리즐 해서 대접한다. 백이면 백 모두가 좋아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두바이아이스크림 이라는 이름을 붙여 설명한다. 7성급 호텔 로비에서 아이스크림을 시키면 이런 모습일 거라고.
부라보콘 초코청크 / 인턴 에디터 손유정 @myouj_
인생 아이스크림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머릿속에 수많은 초코아이스크림이 떠올랐다. 하지만 역시 내 최애는 부라보콘 초코청크. 땅콩이나 쿠키 분태 같은 자질구레한 토핑 하나 없이 오로지 초콜릿에만 집중했다. 맨 위에는 얇은 초콜릿이 한 층, 부드러운 초코아이스크림 중간중간 씹히는 청키한 초콜릿 덩어리, 콘 맨 아래에 깔린 진한 초콜릿 시럽. 게다가 콘은 다 먹을 때까지 바삭함을 유지한다. 적당히 진하고 적당히 단맛 덕분에 아이스크림 하나를 다 먹기 전에 질리는 불상사도 없다. 초코덕후라면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구슬 아이스크림 디핀다트 / 에디터 기은 @editor_gieun
“삼촌! 나 구슬 아이스크림 좀 사줘.” 주변 사람 모두가 웃었다. 대사만 들으면 세살이 할 법한 대사를 서른 살인 내가 스무살 많은 삼촌에게 던졌기 때문이다. 내가 그때 카드를 안 챙기고 나온 바람에. 부산에 사셨던 외할머니의 상을 치르고 서울로 돌아가던 길 어딘가의 휴게소에서였다. 마음에 생채기가 난 어른들은 잔뜩 기운 빠진 채 어딘가에 기대앉아 있었다. 하필 그 타이밍에 구슬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던 바람에. 삼촌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파하하” 웃어 주었다. “야 그래 아이스크림 좀 사 와 봐.” 엄마, 아빠, 삼촌, 나. 어른 셋 그리고 덜 자란 어른 하나가 아그작아그작 작은 스푼 하나 꼭 쥐어 들곤 얍실한 구슬을 쉼 없이 퍼 입에 넣었다.
추억의 구슬 아이스크림의 맛에 대해 설파하고 싶진 않고 대신 멋있는 소식 하나 전해주려 한다. 세상이 발전했다. 대용량 사이즈의 구슬 아이스크림이 등장했더라. 어렸을 때와 달리 양껏 사 먹을 수 있는 어른을 위해서일까. 대구에서 시작된 브랜드 ‘포도도’의 구슬 아이스크림은 사이즈가 M부터 L, XL, 무려 2XL까지 있다. 요즘엔 잠실 롯데 푸드코트에서도 접할 수 있다고. 부산 서면에선 ‘로만’ 이란 브랜드가 대용량 구슬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고 서울에선 코엑스에 위치한 ‘더죠이’ 브랜드가 있다. 서울 마포구, 강남구에서도 여러 카페가 대용량 구슬 아이스크림을 취급하고 있으니 잘 검색해 보면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구슬 아이스크림은 가히 스티로폼 조각과 같은 사이즈이기에 야무지게 싹싹 긁어먹다 보면 아무래도 좀 모양 빠지긴 한다. 작은 알 하나 주워 먹겠다고 쉼 없이 손과 팔을 움직이는데 행동이 큰 것에 비해 입에 담는 것이 적다 보니 먹고 있는 모습이 퍽 귀여워진다. 휴게소에서 덩치 큰 아빠가 부지런히 먹는 모습에, 모두가 모여 작은 숟가락으로 열심인 모습에 엄마가 빵 터졌고 그 기점으로 우리 모두는 긴장이 풀렸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캐릭터들이 구슬 아이스크림 먹는 씬을 꼭 넣어야지. 이 기억을 기억하고 있는 내게 인생 아이스크림이 무엇이냐 물으니 절로 구슬 아이스크림이 떠올랐다. 따로 또 같이 먹어요 추억의 구슬 아이스크림.
테트리스 / 여대륜 @ydryun
테트리스, 모두가 바로 그 게임을 떠올리겠지만 내 경우에는 아이스크림이 떠오른다. 쉽게 볼 수 없다. 쉽게 볼 수 없다는 점이 괜히 더 갖고 싶게 한다. 지나가다 들른 편의점에서 녀석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나는 참을 수가 없다. 굳이 임을 알면서도 사게 된다. 곡선이 없는 투박한 블록 형태의 테트리스. 사과 맛과 파인애플 맛이 빨간 블록과 노랑 블록으로 교차된 배치. 자극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다. 테트리스를 만난 이후로 편의점이나 슈퍼에 들르면 아이스크림 박스를 슬쩍 들여다보게 된다. 어쩌다 마주치는 날이면 사소한 우연이 괜히 행운 같아 하루가 달라지기도 하니까. 아무튼 여러분도 꼭 느껴보시길.
빵또아 딸기초코케이크 / 디에디트 에디터B @summer_editor
단짠단짠, 겉바속촉. 사람들은 극단의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길 욕망한다. 아마도 우리네 삶이 심심하고 밍밍하기 때문이겠지. 가끔 달고, 자주 씁쓸하거나. 달콤함이 부족해서 공허한 날에는 괜히 빵또아가 생각난다. 탄수화물과 당분으로 이루어진 불균형적인 영양소를 품은 이 디저트가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줄 리는 만무하다. 그래도 잠깐 동안 마음을 위로해 줄 수는 있겠지. 초코와 딸기의 비율을 적당히 손으로 떼어내 한 입 먹으면 “와, 이거 뭐야, 왜 이렇게 맛있어?”라는 혼잣말이 마치 토스트에 구워진 식빵처럼 튀어나온다. 번민없고 달콤한 인생은 왜 이리 요원할까. 누군가는 ‘달콤하기만한 인생이 무슨 재민겨’라고 묻겠지만, 한번쯤은 그런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걱정 없이, 고달픔 없이.
보석바 / 조향사 전아론 @ahro_official ahro.co.kr
나는 먹는 것이 느리다. 주변 사람들이 배려해 주지 않으면, 평균적인 식사 속도에서 낙오(?)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할 땐, 늘 점심 식사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다 먹었다 싶으면 숟가락을 내려놓고 “저도 다 먹었어요!” 해야 했으니까. 그러니 왜 그렇게 조금 먹느냐는 사람들의 핀잔엔 그냥 웃었다.
그런 나도 그 누구보다 빠르게 먹는 것이 있다. 바로 아이스크림이다. “벌써 다 먹었어?” 남들이 반도 채 비우기 전에, 내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은 사라져 버린다. 온갖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차별 없이 사랑하지만, 여름이 되면 유독 생각나는 건 역시나 ‘하드’다.
윙크를 부르는 생귤탱귤, 딸기 맛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사과 맛인 스크류바, 색소의 재미를 알게 해준 죠스바 등등. 내가 좋아하는 하드는 비교적 투명한 과일맛(?)류지만, 가장 좋아하는 하드는 예외다. 부드러운 질감, 밀키하면서도 소다 맛이 살아 있는 ‘보석바’거든.
고백하자면, 어릴 땐 보석바에서 ‘보석’만 빼고 좋아했었다. 밍밍한 얼음 알갱이뿐인데, 이게 보석이라니? 특별한 맛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먹는 속도만 늦출 뿐이잖아. 마음속으로 투덜대다가 술에 취해 남몰래 보석만 퉤퉤 뱉어내는 밤도 있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보석바의 보석도 차츰 좋아하게 됐다. 매 순간 달콤할 수만은 없다는 걸, 때로는 밍밍하고 별거 아닌 순간이 꼭 필요하다는 걸 알게 돼서일까.
주말마다 술에 취한 사람들과 시끌벅적한 거리를 걸으며 보석바를 크게 베어 물던 나는, 이제 보송한 침대 위에서 고양이들과 함께 누워 보석바를 천천히 녹여 먹는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심심한 듯한 행복이 얼마나 귀한지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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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