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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 Paris] 태도를 만드는 공간, 오가타 파리

오가타 신이치로가 섬세하게 기획한 라이프스타일 부티크
오가타 신이치로가 섬세하게 기획한 라이프스타일 부티크

2023. 07. 20

안녕하세요, 어쩌다 보니 파리에서도 글을 쓰고 있는 HAE입니다. 공간이 가진 힘이라는 게 있죠. 종교가 없어도 성당에만 가면 괜스레 경건한 기분이 들고, 도서관에 가면 저도 모르게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하물며 도시에 살던 사람이 가까운 산이나 바다에만 가도 가슴이 뻥 하고 뚫리는 기분이 듭니다. 이렇듯 공간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큰데요. 오늘 소개할 ‘오가타 파리(OGATA Paris)’라는 공간을 처음 만나게 된 것도, 이곳만이 지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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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작은 우산을 푹 눌러쓰고 좁은 마레의 골목 사이사이를 쏘다니고 있었어요. 그러다 한 건물 앞을 지나는데, 우산 아래 보이는 창문 너머로 어떤 부티크의 모습이 비치는 게 아니겠어요? 그곳에선 마레 거리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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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는 오가타 파리와의 첫 조우였죠. 사소한 끌림은 이내 공간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고, 거처로 돌아오자마자 이곳을 취재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적어 보내게 되었습니다.

오가타 파리는 디자이너 오가타 신이치로(緒方 慎一郎)의 디렉션 아래에 섬세하게 기획된 라이프 스타일 부티크입니다. 그는 일본의 디자인 스튜디오 심플리시티(SIMPLICITY)의 설립자로, 이솝 도쿄 매장, 하얏트 호텔 안다즈 도쿄 토라노몬 힐스 등의 공간 기획을 비롯해, 레스토랑 히가시야마 도쿄, 종이 테이블웨어 와사라 등 자그마치 7개 이상의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디자인 및 브랜딩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입지를 지닌 디자이너입니다. 그런 그가 무려 본인의 이름 석 자를 따서 지은 건물이라니, 얼마나 애정이 듬뿍 담긴 공간인지 짐작할 수 있겠죠?

파리에서 지내다 보면 일본 문화에 대한 파리지앵들의 각별한 애정을 느낄 수가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 중 대부분은 일본 문화라고 하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프렌치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된 일본 문화가 주를 이루고 있었죠. 그렇기에 오가타 파리의 등장은 일본과 프랑스 두 나라 모두에게 의미가 있는 일이었을 겁니다. 일본인 디자이너에 의해 만들어진 가장 일본적인 공간을 파리의 중심에서 세련되고 모던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재밌는 점은 이곳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이 단지 일본의 문화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가령 오가타 파리가 들어선 이 건물은 17세기부터 호텔로 사용되던 곳입니다. 파리의 부르주아들과 예술가들이 즐겨 찾던 이 호텔은,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장인들의 부티크가 들어서기도 했답니다. 실제로 건물 내부의 기둥이나 계단, 벽체나 천창 등에서 옛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가장 프랑스스러운 공간을 일본 전통문화를 위한 무대로 선택했다는 점도 무척 재밌습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공간을 둘러볼까요? 오가타 파리는 크게 일본식 다실, 레스토랑, 부티크, 그리고 갤러리로 구성됩니다. 각 공간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죠. 오가타 파리의 매니저 샤를은 모든 공간을 하루에 걸쳐 온전히 체험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귀띔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래 기획된 의도와는 달리 파편적인 경험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 말이죠.

레스토랑과 티룸은 예약제로, 반드시 리셉션을 거쳐야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이는 오가타 파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 중 하나인 ‘환대(hospitalité)’를 보여주는 부분인데요. 손님들이 온전히 공간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한 배려이자, 방문객 한 명 한 명을 정성껏 대하고자 하는 오가타 파리만의 사려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에게 이 과정은 오가타 공간으로의 입장을 알리는 일종의 리추얼(ritual)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리셉션을 지나면 바로 보이는 것이 갤러리입니다. 다양한 국가와 장르의 작업물을 함께 전시하는 컬렉션을 지향하죠. 다가오는 6월 14일부터는 ‘신체, 파편, 추상화(Le corps, fragments et abstractions)’라는 주제로, 고대 서양에서 현대 동양에 이르는 인체의 표현을 탐구하는 [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고 합니다.

메인 홀에서 오른 편으로 방향을 틀면 보이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미슐랭 1스타에 빛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식공간에도 오가타 신이치로의 신념이 담겨있는데요. ‘자연을 존중하기 때문에 자연을 초월하는 것을 만들어내서는 안 된다’는 일본의 미의식에 따라, 제철 재료를 사용한 메뉴부터 테이블, 의자와 같은 가구와 젓가락, 그릇 등 모두 자연에서 온 소재로 제작한 물건들로 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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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식당이지만 각 테이블마다 공간 구성이 무척이나 다채로웠다는 점도 재밌었습니다. 덕분에 어느 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식당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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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마다 프라이빗한 분위기에서 미식과 담소를 즐길 수 있도록 신경 쓴 점도 눈에 띕니다. 예컨대 공간을 가려주는 가벽 혹은 대나무발이라던가, 공간 자체가 지닌 어두운 조도 역시 이런 분위기에 한몫했죠. 예약은 [이곳]에서 할 수 있습니다. 점심은 €120, 저녁은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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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 볼까요? 오가타 파리의 코어이자, 이곳을 좀 더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프랑스에서 꺄브(cave)라고 불리는 이 지하 공간은 주로 와인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는데요, 오가타 파리에서만큼은 오롯이 차(茶)를 위해 헌정되었습니다. 프랑스 정신이 담긴 와인의 공간이 일본 전통문화의 핵심인 차 공간으로 변신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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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실로 들어가는 입구는 묵직한 철제 문으로 한 번 더 구분이 되어 더욱 비밀스럽고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외부의 소음과 빛이 차단된 환경에서 온전히 차를 마시는 경험에만 집중할 수 있죠. 배경 음악마저 부재한 이 공간에서는, 차를 우리는 과정에서 나는 소리들이 그것을 대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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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둘러보는 또 하나의 묘미는 모던함 속 숨겨져 있는 일본의 전통 요소를 발견하는 재미입니다. 무심코 내딛고 있는 바닥도 유심히 살펴보면 전통식 바닥재인 다다미의 패턴이 새겨져있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평범한 콘크리트 소재인 줄 알았던 벽 장식은 일본식 종이(와시)로 만들어진 것이었죠. 다실도 예약은 필수입니다. [이곳]에서 준비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확인할 수 있고, 가격은 €35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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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룸 옆에 딸린 작은방에는 프래그런스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자연 소재를 사용해 취향에 맞는 드라이 향수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곳이죠. 이곳을 지나면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이 하나 등장하는데요, 이 계단은 출구이기도 하지만 부티크로 이어지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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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과점과 찻집 그리고 잡화점으로 구성된 부티크에서는 지금까지 오가타 파리에서 직접 보고, 느끼고, 먹어보고, 사용했던 모든 것들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공간 속에 충분히 젖어들게 만든 후 자연스럽게 판매 공간으로 이끈다… 정말이지 치밀한 공간 기획이 아닐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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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티크의 모든 제품을 온라인 구매가 가능하도록 접근성을 높인 것 역시 무척이나 영리한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가상의 공간이지만, 온라인몰 역시 오가타만의 분위기로 섬세하게 설계가 되어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에요. 경험을 중요시하는 오가타 파리답게 레스토랑, 다실 등을 위한 기프트 카드도 준비되어 있습니다(아쉽게도 한국 직배송은 어렵지만 유럽권과 아메리카 대륙권까지는 온라인 주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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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타 파리를 다녀온 사람들은 입을 모아 ‘비움’이 느껴지는 공간이라고 하더군요. 저 또한 분주한 바깥 공간과 단절될 수 있는 고요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여러 상념이 들게끔 만들어주는 공간으로도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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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타 파리의 특징은 다양한 국적과 문화를 가진 오브제들이 혼재되어 있는 공간이지만 누구든 ‘일본스럽다’라는 감상을 갖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 비법은 ‘분위기’에 있었는데요. 오가타 신이치로는 줄곧 공간을 기획함에 있어서 구체적인 형태보다도, ‘분위기’를 중심에 둔다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이곳의 매니저 샤를 또한 오가타 파리가 일본 전통문화를 ‘전시’하는 박물관이 아니라고도 강조했죠. 흔히 전통문화라고 하면 순혈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기가 쉬운데요, 이렇게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는 관점을 지니니 오히려 전통 문화에 대한 허들을 낮출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오가타 파리를 방문한다는 것은 단순한 심미적인 체험을 넘어서, 전통을 이어나가는 방식, 문화에 대한 열린 태도,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 등 오가타 신이치로가 지향하는 가치와도 직접 맞닿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먼지는 탈탈 털고, 영롱히 빛나는 영감을 가득 채워보시길 바라요.

About Author
HAE

파리에서 패션을 공부하는 에디터. 내면에 락 스피릿을 간직한 미니멀리스트. 내세울 숟가락 색깔은 없어도 글 쓰는 펜수저 만큼은 대대로 물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