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book] 마음의 일교차를 줄여줄 책 5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회사에 도움되는 글을 쓰고, 주말엔 내가...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2023. 04. 12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회사에 도움되는 글을 쓰고, 주말엔 내가 도움받은 책에 대해 쓴다. (주말을 쪼개 낱말퍼즐 뉴스레터 <퍼줄거임>도 만들어 보내고 있다.)

소설만 읽는 사람도 있고, 자기계발서만 읽는 사람도 있다. 존중한다. 다만, 소설 몇 권 읽고 ‘다 비슷비슷해서 지겨워’라는 결론을 섣불리 내리진 않았으면 한다. 자기계발서에 치여 ‘자기’를 잃진 않았으면 한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소설 세 권과 자기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책 두 권을 골랐다. 사실 나에겐 모든 책이 다 자기계발서다.


[1]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지금이 가장 이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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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 하는 이유가 제목에 다 있다. 이 책의 타깃 독자는 이미 ‘나이 든’ 사람이 아니다. 앞으로 ‘나이 들’ 사람이다. 아무래도 ‘든’ 사람보다 ‘들’ 사람이 많을 것이다. 느리게 나이 들 방법이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잘못했다가는 빠르게 늙어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거북목을 하고 밥 대신 과자를 먹으며 마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나처럼.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을 일단 믿어보기로 한다.

느리게 나이 든다는 건 뭘까. TV 건강 프로그램에선 출연자들의 신체 나이를 비교하곤 했다. 신체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젊게 나온 사람은 입이 귀에 걸린다. 그 반대인 사람은 울상이다. 울상이 되기 싫으면, 내재역량을 키워야 한단다.

내재역량은 세계보건기구가 2015년 제시한 개념으로, 크게 4가지로 나뉜다. 1)이동성, 2)마음 건강, 3)건강과 질병, 4)나에게 중요한 것. 이렇게만 들어서는 알 듯 말 듯한데, 책을 읽고 나면 감이 잡힌다. 이 4가지가 무엇인지, 잘 챙기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당장 내일부터 뭘 해야 하는지. 나도 생활 습관을 바꿔보려고 한다. 6층에 있는 회사 사무실로 갈 땐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한다. 집에 와서는 스마트폰을 신발장 옆 서랍에 넣어둔다. 당 떨어질 땐 과자를 먹는 대신 스트레스의 원인부터 찾는다. 남에게만 중요하고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적당히 걸러낸다.

사실 나도 서점에서 책 제목만 봤을 땐 그냥 지나쳤다. <시사in>에서 저자 인터뷰 기사를 읽고 구매를 결심했다. 최소한 기사는 읽어보길 바란다. 지금 읽고 있는 자기계발서가 있어도 잠시 미뤄둬라. 가장 시급한 자기계발은 이쪽이다.

  •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정희원 | 더퀘스트 | 17,800원

[2]
<세이노의 가르침>

“아무 일이나 재미있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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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되기 전부터 베스트셀러였다. 세이노도 몰랐고 너도나도 가르침을 못 줘 안달인지라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1위 자리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PDF 파일로만 돌던 이 책이 드디어 출간되다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예약 구매했다”는 댓글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요즘처럼 글 안 읽는 세상에 글이 PDF 파일로 돌았다고? 책값은 왜 겨우 7,200원이지? 전자책은 심지어 무료? 호기심에 책을 샀다.

세이노는 자수성가했다. 10대 때부터 이것저것 돈 되는 일은 다 했다. 돈 되는 공부, 돈 되는 경험도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을 몰아붙여 지금은 순자산 1000억 원 대의 자산가가 됐다. 가장 싫어하는 것은 부자인 척하는 자들의 블러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문제 해결, 그리고 사람을 가르쳐 깨우치는 것.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수두룩하다. 하지만 대부분 안 그런 척 한다. 꼰대 소리는 또 듣기 싫으니까. 저자는 꼰대 되는 게 두렵지 않다. 두려운 건 “머릿속에서 옳다고 믿는 생각들과 행동이 엇갈림 없이 하나 된 상태”, 즉 인테그리티(integrity)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을 포장하지 않는다. 나쁜 사람이라고 욕 먹을까봐 자신을 감추지 않는다. 그래서 잘 읽힌다. 거부감을 느낄 부분도 있지만, 취사 선택은 읽는 사람의 몫이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안 해본 생각들을 많이 했다. 10대 이후의 내 모습을 하나씩 돌아봤다. 가르침은 그걸로 충분하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내 학력이 초라하게 느껴진다면,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힌트 하나쯤은 무조건 얻을 수 있는 책이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전자책은 무료다.

  • <세이노의 가르침> 세이노(지은이) | 데이원 | 7,200원

[3]
<N>

“독자 여러분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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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 서서 책을 읽는데 앞에 앉은 사람이 자꾸 힐끔거렸다. 책에 뭐가 묻었나 싶어 읽던 책 표지를 들춰보고 이유를 알았다. 아, 내가 책을 거꾸로 들고 있었구나. 모르는 사람 입장에선 의아했을 것이다. ‘이 남자는 왜 책을 거꾸로 들고 읽는 척 하는 거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이 책은 장과 장의 물리적 연결을 없애기 위해 장이 바뀔 때마다 위아래가 뒤집히도록 인쇄되어 있습니다.” 파격적인 편집에 혹시 독자들이 놀랄까 싶어서인지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방법’을 따로 적어뒀다. 한 줄로 요약하면,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지 말라는 거다. 소설 여섯 편을 읽는 순서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게끔, 이야기를 만들 때부터 철저히 설계했기 때문에. 말하자면 ‘인터랙티브’ 소설이다.

하지만 습관은 무섭다. 아무리 페이지를 뒤집어 놨어도 앞에서부터 읽는 습관이 쉽게 바뀔까? 그래서 책 맨 앞에 각 소설의 ‘예고편’이 실려 있다. 무엇부터 읽을지 선택할 수 있도록. 소설 하나를 다 읽고 나면 다시 예고편 페이지로 돌아와 다음 소설을 고르면 된다. 예고편은 예고편답게, 하나같이 흥미롭다. 난 고민 끝에 ‘사라지지 않는 유리별’부터 읽기 시작했다.

게임하듯 즐길 수 있는 책이다. 방탈출 카페에서 머리 쓰는 건 좋아하는데 책만 들면 졸리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그렇다고 포맷의 참신함이 전부인 책은 아니다. 한국에선 비교적 생소한 이름이지만, 미치오 슈스케는 2004년 데뷔한 이래 100만 부도 팔아봤고 상도 많이 받았다. 여섯 편이 요령 있게 연결되는 것은 물론이고 따로 떼어놔도 충분히 재밌는 이야기들이다.

  • <N> 미치오 슈스케(지은이), 이규원(옮긴이) | 북스피어 | 16,800원

[4]
<러브 몬스터>

“염보라의 기준에서 사랑은 더는 내밀 패가 없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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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가득 채운 여자의 얼굴과 몸은 빨갛다. 그 배경엔 초록과 파랑, 또 샛노랑도 있다. 총천연색 표지는 소설과 잘 어울린다. 설렘, 고백, 거절, 집착, 배신 등 ‘러브’의 다양한 색깔을 숨김없이 다 보여주는 이야기라서. 불륜남녀, 살인범, 납치범, 사이비 목사 등 온갖 ‘몬스터’가 총출동함에도 왠지 모를 청량함이 느껴지는 이야기라서.

<러브 몬스터>의 주 무대는 수영장이다(그래서 청량한가?). 얼핏 보면 각자 다른 모양과 속도로 헤엄치는 풍경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라진 엄마를 찾아 나선 지민의 눈에는 이곳의 모든 게 다 수상하다. 수영강사 조우경도, 수강생 허인회도, 문자 하나만 남기고 자취를 감춘 엄마 염보라마저도.

염보라에게 사랑은 힘이다. “사랑을 하면 힘이 생기거든. 내가 누리고 휘두를 수 있는 힘이 생겨. 그럴 땐 남자들이 내 발밑에 있는 줄 알았지.” 허인회의 생각은 다르다. “사랑은 그런 게 아냐. 너희처럼 계산하고 값을 따지는 게 아냐.” 조우경은 목숨 건 사랑을 그린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죽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죽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바로 사랑에 빠지고 말 텐데.” 사랑하면 약해지고, 그래서 쉽게 악해진다.

사랑에 미친, 사랑에 질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끈적거리지 않는다.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감질나게 흘리는 저자의 솜씨 덕분에 사랑이고 뭐고 다음 장이 궁금해 페이지를 마구 넘기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뻔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이 책을 권한다. 이 이야기가 뻔하게 느껴진다면… 난 더 이상 해드릴 게 없다.

  • <러브 몬스터> 이두온 | 창비 | 16,000원

[5]
<제사를 부탁해>

“그러니까 나의 직업은 마음을 대신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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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의 직업은 제사상 코디네이터다. 종교 등 다양한 이유로 제사를 직접 지낼 수 없는 사람들이 주요 고객이다. 직접 지내지 않으면 그게 무슨 의미일까 싶지만 은근히 수요가 꽤 있다. “그래도 모른 체 하자니 마음이 참… 그래서요.” 그런데 오늘 일은 좀 다르다. 1년 전 죽은 친구 정서의 제사상을 차리기 위해, 친구 없는 친구 집의 문을 두드린다.

소설을 소개할 때마다 느낀다. 요약된 줄거리는 효율적이지만, 정작 중요한 건 하나도 알려주지 않는다. 수현은 어쩌다 제사상 코디네이터가 되었는지, 친구에게 제사상을 받는 정서의 마음은 어떨지. 둘은 서로를 어떤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는지. 책을 읽어야만 알 수 있다. 직접 봐야만 본인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나는 그저 ‘책 코디네이터’일 뿐이다. 은근히 수요는 꽤 있지만. “그래도 책을 아예 안 읽자니 마음이 참… 그래서요.”

각자의 다양한 이유로 책을 읽기 힘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특히 더 권한다. 매우 얇다. 마지막 장이 140쪽이다. 표지에서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소설/만화가 반반이다. 소설 ‘둘이 먹다 하나가’는 수현 입장에서 쓰였고, 만화 ‘죽어도 모르는’은 정서 입장에서 그려졌다. 책이 얇다고 이야기가 납작한 건 아니다.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마음을, 좀처럼 친해지지 않는 꿈과 일의 관계를 두루 살핀다.

드라마 마지막 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촬영장 스틸컷이 종종 삽입되곤 한다. ‘이런 표정으로, 이런 마음으로 찍었어요’를 말해주는 것 같아 스킵 없이 끝까지 보는 편이다. 이 책 끝에 삽입된 작가 후기와 창작일지도 스킵하지 마시기를.

  • <제사를 부탁해> 박서련&정영롱 | 문학동네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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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균

매달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기이할 기, 밝을 명, 고를 균, 이름처럼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