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객원 필자 김고운이다. 오늘은 세월의 가치를 만드는 브랜드 세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데밀, 듀테로, 카네이테이가 그 주인공이다. 세 브랜드 모두 시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담아 각자의 방식으로 옷을 만든다. 먼저 2019년부터 데님을 만들어오고 있는 국내 브랜드 데밀부터 살펴보자.
[1]
“사라진 원단을 부활시키다”
데밀
데밀은 2019년부터 데님을 주축으로 치노팬츠, 워크자켓까지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는 국내 브랜드다. 데밀(Demil)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첫 번째는 비무장화라는 의미의 Demilitarize. ‘비무장지대로 만들다’라는 뜻이다. 과거의 의복은 노동자의 작업복이나 군인의 군복처럼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했지만 현대에는 이런 기능은 불필요해졌다. 이런 부분을 제거하고 현대에 맞게 옷을 제작한다는 의미다. 두 번째 뜻은 비무장화된 의복의 대표격인 데님을 생산하는 공장, denim mill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데밀이 주력으로 다루는 데님은 셀비지 데님이다. 셀비지(selvedge) 데님은 ‘self-edge’에서 유래했다. 셀비지를 생산하는 구형 방직기는 self-edge 이름대로 생산되면서 원단의 가장자리가 스스로 마감이 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신형 방직기는 젊은피답게 압도적인 생산 속도를 가지고 있지만 원단의 가장 자리에 실들이 튀어나와 있어 따로 마감을 해주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데밀은 얼마 전 피땀 흘린 노력 끝에 사라진 국산 셀비지를 재현했다. 신형 방직기가 등장한 후로 한국의 구형 방직기는 해외로 수출된 상황이라 데밀은 셀비지 데님을 만들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원단을 수입해야 했다. 하지만 전국의 방직 공장을 수소문한 끝에 구형 방직기를 찾는데 성공했고 이렇게 ‘코리안 셀비지’가 탄생했다. 코리안 셀비지에 대한 이들의 순수한 열정은 이 영상을 참고하자.
Lot. 009R Regular Straight 13oz Korean Selvedge Denim Pants
데밀의 대표 제품이라고 하면 데밀이 처음으로 개발한 모델인 009다. 009는 1950년대 데님 스타일을 참고했다. 1950년대는 데님이 작업복에서 케쥬얼로 넘어가던 시기로 와이드한 작업복과 깔끔하게 떨어지는 일상복의 특성이 모두 드러난다.
009는 골반부터 무릎까지는 조금씩 좁아지고 무릎 아래로는 스트레이트로 떨어지는 실루엣으로 일상의 어느 부분에서도 거리낌 없다. 유니온 스페셜 43200G와 같이 1950년대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기계로 봉제한다. 지긋하신 할아버지 뻘 되는 기계이기 때문에 다루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지만 힘이 좋아 봉제 부분이 뒤틀리게 되고 착용하면서 사용감이 극대화 된다(역시 노장은 죽지 않는다). 구매는 여기에서. 가격 24만 9,000원.
데밀 쇼룸에 방문하면 데님을 입고 미싱 앞에 앉아 데님을 생산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이런 진심과 더불어 과거의 것을 현재로 가져오려는 열정은 세월의 가치를 만든다. 진심은 제품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분명 새 건데 뭔가 나보다 연배가 훨씬 있는 중후한 아우라를 풍기는 어른의 느낌이랄까.
데밀
- 서울 중구 다산로 139 지하 1층
[2]
“90년대에 대한 경의”
듀테로
복고 열풍이 쉽게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짧은 상의와 와이드 팬츠가 유행하고, 뉴진스의 등장으로 Y2K의 대표격인 카고 팬츠, 팔 토시, 발 토시까지 유행하는 모양새다. 두 번째 소개할 듀테로는 이처럼 지나간 것들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브랜드다.
듀테로라는 이름은 ‘두 번째’, ‘다시’라는 의미를 가진 영어 접두사 deutero를 빌려왔다. 과거를 다시 해석한다는 거다. 그 대상은 문화의 황금기라 불리는 90년대. 애석하게도 90년대 초에 태어난 나는 문화 황금기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래서 원고를 준비하면서 그 시대를 온몸으로 흡수한 지인에게 90년대에 대해 물어봤다. 그 지인은 애송이에게 어디부터 말해야 하나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한 인물로 긴 설명을 대신하였다. 바로 마이클 조던이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라스트 댄스’ 스틸]
조사를 해보니 90년대는 과연 문화의 황금기였다. 비록 우리나라에는 IMF 금융위기가 있었지만 90년대는 냉전이 종식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였다. 자연스레 음악, 패션, 스포츠 등 문화 장르들에 자본이 유입되었고 <레옹>, <매트릭스>, <펄프픽션> 등 역사에 길이 남을 영화들이 제작되었다. 영원한 우리의 성탄절 친구 <나홀로 집에> 또한 이때 만들어졌다. 듀테로의 제품들은 이런 문화에서 얻은 영감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옷에는 과거를 향한 사랑이 듬뿍 담겨있다. 다음 제품으로 확인해보자.
Old ‘D’ Swing Top Jacket Beige
이 자켓은 90년대 생산된 스윙 타입 자켓을 재해석한 제품이다. 여유 있는 아웃핏, 요즘은 보기 힘든 짧은 소매 시보리까지 어디서 본 듯한 매우 익숙한 실루엣이다. 네모난 작은 지퍼를 보고 기억이 선명해졌다. 이 자켓, 초등학교 졸업 앨범에서 보았다. 담임 선생님이 저 옷을 입고 잔디밭에 앉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사진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은가?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이 자켓에서는 그런 올드한 느낌은 찾아 볼 수 없다(선생님 죄송합니다). 아우터치고는 짧은 기장과 조그만 카라는 오히려 귀엽기까지 하다. 이게 재해석이 가지는 힘이 아닐까? 과거의 것을 현재에 녹여내는 일. 세월의 가치가 생성되는 순간이다. 올드가 레트로로 바뀌는 순간. 구매는 여기에서. 가격 23만 6,000원.
[듀테로의 상세 페이지]
듀테로는 문화를 직접 경험한 어른이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알려주는 강의 같다. 상세 페이지만 봐도 그렇다. 상세페이지에 글이 매우 많다. 영감의 원천이 된 영화, 음악, 인물들에 대해 주욱 나와있다. 보고 있노라면 이 영감부터 제품까지 어떻게 생각이 흘러왔을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한 번 찾아보았다. 스윙자켓에 영감을 주었다던 음악들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기획자의 생각을 상상해보자. 아주 재밌을 거다. 듀테로 제품을 착용한 상태라면 더 좋고. 플레이리스트 바로 듣기
[3]
“군용품을 원단으로”
카네이테이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주목. 알다시피 의류 폐기물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1년에 국내에서만 8만 톤의 의류 폐기물이 쏟아지고 전 세계적으로는 9000만 톤의 옷들이 버려진다. 9000만 톤이라니 너무 큰 단위라 가늠이 어려울 정도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많은 업사이클링 브랜드가 탄생했다. 그중 카네이테이는 버려지는 군용텐트를 업사이클링하여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다.
업사이클 제품 생산 과정은 기존 의류 제작 공정에 해체와 재구성하는 수고로운 과정이 더해진다. 우선 전 세계에서 소임을 마친 폐 텐트를 수입하여 세척한다. 세척을 마치면 재활용하기 어려운 부분을 제거하고 보관에 용이하게 일정한 크기로 재단하는 과정을 거친다. 의류 폐기물이었던 텐트의 70%가 재활용된다. 그 다음, 패턴에 맞게 재단하여 장인의 손길로 제품이 만들어진다. 이런 고유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니 하늘 아래 같은 제품이 없다.
뮤지엄 2.0 13”, 16”
벌써 3월이 되어버렸다. 지금 시즌엔 학생을 대상으로 각종 전자제품 프로모션이 한창이다. 학생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할인은 쇼핑에 좋은 핑계가 된다. 그래서 입학한 지 10년이 지난 나도 최근에 노트북을 장만했다. 바늘 가는데 실도 가듯 노트북을 샀는데 파우치를 사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카네이테이의 뮤지엄을 샀다. 뮤지엄은 두 가지 이유로 노트북 파우치에 아주 적합하다. 첫 번째는 당연히 소재. 내구성, 방수 등의 속성에서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군용텐트에 방수 지퍼를 사용했으니 안심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아이러니하게도 사용감이다. 카네이테이 제품은 이미 오래된 새것이기 때문에 막 샀다고 긴장할 필요 없다. 중요한 물품을 보호하려고 파우치를 사용하는 건데 파우치가 다칠까 걱정하는 양상이라면 이거 어딘가 잘못되었다. 하지만 이 뮤지엄은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다 흘려도 닦으면 될뿐더러 티도 나지 않는다. 이런 넓은 마음을 가진 파우치라니. 13인치와 16인치로 노트북 사이즈에 맞춰 구매할 수 있다. 구매는 여기에서. 가격 9만 9,000원
카네이테이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업사이클링이 인상적이었다. ‘이미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소재를 재활용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다시는 버리지 않을 만큼 오래오래 사용할 수 있는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 측면에서도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니, 역시 카네이테이라면 내 마음을 알아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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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운
패션 관련 글을 씁니다. 헛바람이 단단히 들었습니다. 누가 좀 말려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