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내돈내산 공예품 리뷰로 돌아온 객원필자 김정년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장인을 만나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여행 중 또래 도예가를 만나고 나서 도자기에 푹 빠졌습니다. 그들은 운전하다 마음에 드는 흙을 발견하면 차를 멈추고 논두렁에 들어가 샘플을 채취하는 열정가였습니다. 퍼 온 흙을 이리저리 주무르며 어떤 모양으로 무엇을 만들면 좋을지 수다를 떠는 모습은 천진난만한 아이 같았죠.
우리는 같은 숙소에서 밤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뜨거운 가마터로 출근해 하루 종일 불에 그을린 모양입니다. 스승의 도제식 수련은 가혹했고 버티지 못한 동료를 생각하면 외로웠을 테죠. 그럼에도 흙과 가마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말해줬습니다. 그들이 고생 끝에 마주한 희열이 궁금해 도자기를 직접 사 모으기 시작했네요.
도자기는 창작자의 일상이 정직하게 반영된 예술작품입니다.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새긴 그릇이며, 도자기를 소유하는 건 도예가가 추구하는 태도를 내 삶에 이식한다는 뜻이기도 하죠. 오늘은 도자기와 사랑에 빠지는 법 4가지를 소개합니다.
[1]
“유광도기 쓸까? 무광도기 쓸까?”
무자기 MUJAGI
혹시 편집숍 아이쇼핑 좋아하세요? 저는 백화점 직영 PB 편집숍을 눈여겨보는 편입니다. 특히 지하 1층 대형식품관 옆에 입점한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이요. 이런 곳은 본사 소속 바이어들이 공들여서 입점시킨 브랜드 제품으로 꽉 찼는데요. 도자기의 경우 모양이나 색감이 독특한 그릇이 하도 많아, 진열대 위에서 주기마다 교체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죠,
언뜻 마음에 드는 물건을 직접 만진 후, 집으로 돌아가 해당 제품에 얽힌 모든 정보를 검색해봅니다. 됨됨이가 괜찮아 보이는 브랜드인지는 직접 판단해보는 것이죠.
무자기는 앞서 밝힌 루틴 덕에 만난 한국의 테이블웨어 브랜드입니다. “우리는 삶이 애착있는 물건들로 채워지길 바랍니다.”라는 슬로건이 인상 깊은데요. 정든 물건이 일상을 조금씩 바꾼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브랜드 철학이죠. 저는 반찬 그릇을 채우기 위해 요리를 배우고, 이웃을 초대해 좋아하는 식기로 만찬을 즐기는 것이 삶을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준다고 믿습니다. 무자기도 같은 신념을 지닌 브랜드로 짐작되네요.
무자기의 주력 제품은 광택이 감도는 자기와 아닌 자기로 구분되는데요. 유광자기는 백자에 미묘한 푸른빛이 감돌고, 무광자기는 눈이 쌓인 듯한 거친 질감이 특징입니다. 가격대는 1만 원 이상 10만 원 이하. 머그잔이나 반찬 그릇처럼 작은 제품은 1~2만 원대, 면기나 대접시는 4~5만 원대를 형성합니다.
SNS 공식 계정(@mujagi_official)을 살펴보니 오프라인 공간 운영에도 큰 힘을 쏟는 브랜드였습니다. 저는 해방촌 신흥시장 인근에 자리한 무자기의 쇼룸을 찾아갔어요. 차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바 테이블형 카페 공간과 전시 공간이 준비됐네요.
현장쇼룸에서는 타사와 협업해 만든 반려동물 급식기와 도자기로 만든 소반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도자기의 쓰임새를 창의적으로 고민한 흔적이란 인상이 들었습니다.
가장 궁금했던 무광도기와 유광도기의 관계나 실사용 시 장단점 등을 체크할 수 있었어요. 오프라인 쇼룸에서 경험한 환대는 처음 만난 브랜드에 던진 의심을 거두게 만들었죠. 대부분의 진열 제품은 현장 구입이 가능했고. 선물 포장 의뢰도 즉석에서 신속하게 진행됐습니다. 10만 원 안팎의 예산으로 도자기 선물을 준비하는 분이라면, 해방촌 나들이 코스에 담아두시는 걸 추천합니다.
✅Editor’s Pick Flower 29 bowl(유광)
1인용 면기. 라면 한 봉지 끓여 담으면 안성맞춤입니다. 편의점 샐러드 1인분도 쏙 들어가니 만족스럽네요. 저는 전시 공간을 안내해 주신 매니저님의 조언 덕에 유광 그릇으로 결정했습니다. 수저재질에 따라 그릇에 스크래치가 나는 정도가 다르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저처럼 스테인리스 커트러리를 자주 쓴다면 상대적으로 긁힘이 덜한 유광 도기가 낫다는 설명을 접수했죠.
구입처는 [여기]
무자기 쇼룸
-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흥로26길 35 (용산동2가) 1층
[2]
“한국 차의 묘미, 격식 없이 편하게!”
33MARKET
개인의 취미는 도자기 수집의 방향을 크게 좌우합니다. 저는 커피와 차를 좋아합니다. 덕분에 액체를 담을 주전자나 찻잔에 흥미를 갖게 됩니다. 밥그릇은 어찌어찌 타협하더라도 물 잔만큼은 골고루 써보는 편이죠.
해서 다기(茶器)의 쓸모를 효과적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카페를 즐겨 찾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과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릇을 짝짓는 경험은 도자기 취향이 깊어지는 계기였죠.
제가 다닌 단골 카페 중에서 추려보면 33마켓 같은 곳을 추천하게 됩니다. 격식 차리지 않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차를 음미할 수 있는 곳이거든요. 차 입문자에게 특화된 카페로 서촌의 복합문화공간인 보안여관 1층에 자리합니다.
마당과 뒤뜰, ‘ㄷ’자로 된 키친을 중심으로 원하는 자리에 편하게 흩어져 앉아 차와 다식을 즐깁니다. 특히 잔 당 1만 원 안팎의 가격으로 ‘최상급 국내산 명차’를 만날 수 있죠.
주문한 차를 좋은 찻잔에 담아봅니다. 이곳에선 도예가의 개인 작품에 차를 따라 마실 수 있어요. 카페에서 제안하는 기본 세팅이 있지만, 따로 요청하면 카페에서 수집한 다기를 직접 사용해 볼 수 있죠. 유리 티포트로 우린 차와 개완과 숙우를 활용해 음미하는 차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 경험해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개인적으로 백자는 찻물의 색감 표현이 아름다웠고, 황차처럼 스모키한 향미가 깃든 차는 분청사기에 따르는 편이 더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찻잔에 따라진 차는 유약의 발림여부에 따라 맛이 미묘하게 변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약이 빈약하면 그릇이 차의 향미를 강하게 흡수하는 셈이죠. 기분 탓으로 퉁칠 수도 있지만, 자기 특성을 구분하는 힘을 기르며 나만의 조합을 발견하는 것도 차음료 덕질의 재미!
기억에 남는 명차는 단맛이 그윽했던 전라남도 구례의 햇차와 분청사기 조합이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차시배지로 지리산 자락 장죽전에서 갓 채엽된 차였죠. 그중 인근 다원으로 옮겨져 특별 가공된 발효차의 경우, 향미가 특히 빼어났는데요. 따로 값을 치르고 집으로 데려올 정도였죠. 한국차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스태프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차와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었어요.
동무를 새로 사귀는 것도 소소한 기쁨입니다. 팝업 커뮤니티 이벤트에 참여하며 차 문화에 관심을 쏟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중국차 전문 티 카페 오너, 차를 좋아해서 매주 관련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사람, 월간 차모임을 기획하는 직장인 등을 사귈 수 있었죠. 이들과 어울리며 차와 얽힌 도자기의 이름을 차근차근 익혀갈 수 있었답니다. 수시로 올라오는 커뮤니티 이벤트 공지 확인은 [여기].
✅Editor’s Pick 먹기 편한 사이즈의 스콘 두 조각 + 호지차 밀크 스프레드 set
카페갔는데 디저트가 빠지면 섭섭하죠. 33마켓에 가면 국산 밀로 만든 스콘 꼭 시켜드세요. 차와 함께 꼭 곁들여 먹는 별미랍니다.
[3]
“Love is Real, Love is Touch”
국립중앙박물관 도자공예실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때마침 반가운 소식! 지난 겨울, 국립중앙박물관 도자공예실이 리노베이션을 모두 마쳤습니다.
고화질 터치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유물 사진 감상, 공예기법을 직관적으로 소개하는 촉각 체험 등 새로운 콘텐츠가 전시동선 곳곳에 재배치됩니다. 달항아리처럼 명성이 자자한 작품은 반가사유상처럼 독립된 공간에서 따로 감상할 수 있게끔 재설계됐죠.
고려시대에 차를 어떻게 달여 마셨는지를 보여주는 영상과 관련 소장품을 나란히 배치하는 등, 스토리텔링을 더한 작품전시도 눈에 띕니다. 관객이 유물의 사용 배경과 공예품의 쓸모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되는 셈이죠. 이는 방구석에 누워 바라보던 OTT나 숏폼 콘텐츠에서 느낄 수 없는 희열입니다.
남들은 밉다 말해도 내 눈에는 고운 물건들이 있습니다. 입을 닫고 가만히 서서 그 쓰임새를 짐작해 봅니다. 꽃병으로 여겼던 그릇은 알고 보니 휴대용 술병.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쓰임새를 도무지 알 수 없던 어느 그릇은 ‘태항아리’라 적혀있네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이름을 검색창에 입력하니 갓난아이의 탯줄을 담아 밀봉하는 그릇이랍니다. 하필 이런 게 무덤에서 발굴됐다니, 분명 조상님들이 탯줄을 밀봉한 뜻이 따로 있을 테죠. 그들이 어떤 얼굴로 태항아리를 다뤘을지도 상상해 봅니다. 상상력을 나눌 친구와 같은 자리에 동행한다면 즐거움은 두 배가 될 겁니다. 저도 제가 희멀건 백자를 한 시간 넘게 구경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Editor’s Pick 국립중앙박물관 사기장의 공방 ASMR
젊은 도예가가 물레를 박차는 소리, 가마터 장작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모습. 시청각적으로 쾌감을 주는 전시 공간입니다. 공간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투명 디스플레이를 통해 도자기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박물관 바깥에서도 감상 가능해요. 영상 링크는 [여기].
[4]
“내가 만든 도기~나를 위해 구웠지”
현역 도예가의 작품 소장
도자공예품은 가장 실용적인 아트컬렉팅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품 지분소유권에 투자하는 것과 비교하면 수익은 낮을 수 있겠죠. 하지만 공예품은 집으로 손쉽게 데려올 수 있어요. 어디서든 내 맘대로 쓸 수 있죠. 매일 직접 닦아내며 사용하는 물건에 제대로 된 애정이 깃들고, 그것이 세상에 둘도 없는 고유가치를 만들지 않을까요?
현역 작가가 자기 자신을 위해 만든 도자기. 의뢰인의 후원에 힘입어 탄생한 오더메이드 작품도 박물관 국보 못지않게 아름답습니다. 여러분이 어딘가에서 도예가의 출품작을 직접 만져보셨으면 좋겠어요. 공산품이 아닌 도자기를 만나는 경로는 크게 네 가지 장소에서 권장됩니다. 봄 겨울의 대형 플리마켓, 예술대학 도예과 졸업전시회, 작가 개인 공방의 상설전시, 아트 갤러리 주관 특별 전시회.
직접 방문하면 행사 주최자를 통해 작품 구입문의를 할 수 있는데요. 기회가 닿는다면 이런 곳에서 마음에 드는 도자기를 발견하고 구입 가능 여부를 물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생각보다 그리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요. 찻잔의 경우 경험적으로 작은 잔은 수만 원, 큰 그릇은 수십만 원대 선에 그치죠.
이참에 소개하고픈 도예가를 추려봅니다. 먼저 창의적인 도자조형을 빚는 박성극 작가. 한지를 닮은 독특한 흙의 질감이 인상 깊고요. 일상용품과 인테리어 오브제는 최수진 작가를 주목해주세요. 흙에 안료나 광물을 적극적으로 버무려 독창적인 텍스쳐를 느낄 수 있답니다. 푸른 안료로 새긴 문양이 멋스러운 토림도예 까지 추천해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분청사기에 도전하는 도예가를 좋아합니다. 이들이 빚어낸 투박한 겉모습을 멋스럽게 여깁니다. 특히 백토물에 그릇을 덤벙 담갔다 빼냈다는 ‘덤벙 분청사기’를 아끼죠. 이 친구들은 대체로 모양이나 장식이 자유분방합니다. 조형적으로 균형이나 비례가 잘 맞아떨어진 도자기는 아닌데요.
심지어 도자 표면에 새카맣게 탄 자국도 발견되죠.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가요. 모두가 예쁘다고 인정한 멋이 아니라 내가 인정한 멋. 긍지 높은 장인이 “내가 생각하는 도자기의 멋은 이거야~”라고 말하는듯합니다.
✅Editor’s Pick 은작기림 분청사기(개완 숙우 찻잔)
은성민 작가의 2022년도 전시출품작. 행사 종료 후 현장에서 직접 구입했습니다. 흙에 담긴 철 성분이 활활 타오르며 번진 흑갈색 얼룩이 매력적이죠. 흙을 울룩불룩하게 주무르는 작가 특유의 조형미가 마음에 쏙 들어요. 작가의 공식 계정은 [여기].
우리는 생각보다 세상에 도자기 브랜드가 꽤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도자기의 쓰임새를 터득했고, 마음에 드는 도자기가 몇 세기쯤 탄생했는지 구분할 수 있게 됐어요.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당당히 밝힐 수 있게 됐죠.
이쯤 되면 확고한 취향이 생깁니다. “A라는 도자기의 B를 좋아해. 왜냐면 C이기 때문이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셈이죠. 여러분은 도자기를 잘 쓰고 계신가요? 이들을 경유해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하셨나요? 여러분이 느낀 감흥을 댓글로 많이 만날 수 있길 기대하며 이번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About Author
김정년
브랜드와 음식문화를 탐구하는 피처 에디터. 세계를 떠돌며 아름다운 논픽션을 쓰는 게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