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IT 칼럼니스트 최호섭입니다. CES2023이 이제 막을 내렸습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매년 1월 첫 주에 열리는 이 가전 박람회는 최신 IT 기술이 모이는 자리로 주목을 받지만 사람들이 이 이벤트에 관심을 기울이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의 흐름을 보고자 하는 데에 있을 겁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불안감인 것이지요. 많은 기업의 임원들이 직접 미국까지 찾아가는 이유도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트렌드를 읽기 위함이고요.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이 CES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시에 나서는 기업들도, 참관하는 관람객도 아주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올해 현장에 가지 않았지만 늘 CES 현장에 가면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이 많습니다.
혹시라도 CES 출장 보고서를 써야 하는 분들은 조금 답답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에 비해서 부쩍 달라진 트렌드나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이 눈에 띄지는 않았을테니 말이지요. CES는 개별 기술이 모이는 자리이고, 이제는 오랜 기간을 이어오는 추세를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고 수많은 분들이 전시회를 참관하고, 뉴스를 살피고 지금 이 글도 읽고 있는 것이겠지요. 기술에 대한 단순한 환호에 대한 이야기들은 많이 보셨을테니 우리는 조금은 삐딱하게 CES를 다시 한번 돌아봅시다.
모빌리티의 혁신은 어디까지 왔나요?
모빌리티는 아마도 CES가 가장 주목하는 분야일 겁니다. 10년 전만 해도 CES에 자동차 관련 기업들이 등장하고, 자율주행 기술이 선보이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라스베가스 컨벤션 센터의 전시관 하나가 통째로 자동차 브랜드와 차량용 IT 기술들로 가득차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 흐름은 2023년에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BMW는 새로운 콘셉트의 완전 전기차 플랫폼을 공개했고, 폭스바겐의 신형 ID.7도 CES에서 첫선을 보였습니다. 지난해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한 소니는 혼다와 합작한 콘셉트 차량 아팔라를 꺼내놓았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전기차 플랫폼과 자율주행 관련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사실 조금 식상한 면이 있습니다. 애초 자율주행에 대한 청사진은 2020년을 즈음해서 큰 전환이 일어날 것으로 비춰졌습니다. 2021년, 혹은 2022년이면 레벨3, 4 수준의 완전 자율주행 차량이 도로를 누비고, 우리는 운전대에서 완전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자율주행 기술은 사람의 운전을 당당하게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완전한 자율주행은 짧은 기간 내에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기술들의 발전은 더 똑똑한 주행 보조 장치들로 우리의 운전을 훨씬 편리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기업들이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논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기계가 하는 운전을 완전히 신뢰하고, 자율주행 차량의 사회적, 제도적인 장벽을 뚫고 들어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미래의 모빌리티에 대한 기대는 이제 자율주행에서 UAM, 도심형 항공 장치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거점간의 이동을 빠르게 할 수 있고, 차량 공유 서비스의 연결로 새로운 형태의 이동 형태를 그리는 것이지요. 국내에서도 SKT와 현대자동차가 크게 관심을 갖고 비즈니스를 만들어가고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도심형 항공 장치를 단순한 이동 수단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전체적인 이동 서비스 플랫폼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역시 안전성이 확보되는 항공기와 무인 비행에 대한 기술 확보라는 근본적인 환경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자율주행 자동차 만큼의 항공 관련 규제와 기반 인프라 확보가 더 큰 장벽으로 지적되기도 합니다. ‘빠르긴 하지만 안전할까?’라는 의문과 함께 대중화될 수 있는 적절한 요금 체계가 뒤따라야 하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차량이나 지하철을 대체하는 이동 수단만으로서의 접근이 아니라 항공기를 타고 내리를 거점에 다양한 서비스가 함께 이뤄지는 기반의 치밀한 플랫폼 구상이 뒤따라야 할 겁니다.
지금 꿈꾸는 모빌리티는 아주 빠른 시일 내에 현실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기술들이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이동 경험을 바꾸긴 할 겁니다. 어떻게 보면 ‘무엇으로 이동하느냐’에 대한 고민 만큼이나 세상이 이 기술들을 어떤 시각으로 받아들일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진짜 시작되어야 합니다.
무슨 회사지?
무너지는 가전의 경계
이번 CES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린 전시 부스 중 하나는 캐논입니다. 캐논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신작 영화인 ‘노크 앳 더 캐빈(Knock at the cabin)의 세트를 구현한 가상 현실 부스를 꾸렸습니다. 헤드셋을 쓰고 멀리 떨어져 있는 배우와 가상 공간에서 만나 상호작용을 하면서 영화 속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에 수많은 사람이 몰렸습니다.
캐논은 매년 CES에 부스를 열고 있는데, 으레 새로운 카메라와 카메라 관련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부스에는 다양한 상황에서 캐논의 새 카메라를 이용해서 촬영할 수 있는 상황들이 마련되어서 캐논의 광학 기술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 중심이 카메라 그 자체가 아니라 카메라가 직접적으로 활용되는 관련 기술을 선보인 것이지요.
영화를 비롯한 미디어 시장에서 가상 현실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특히 MR, XR로 불리는 혼합 현실이 이 영상 시장에서는 세트와 로케이션 촬영의 경계를 허물어내고 있습니다. 현실과 가상 환경은 별개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되면서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환경의 카메라는 사실상 미래가 그렇게 밝지만은 않습니다. 2000년대의 디지털카메라 붐은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스마트폰은 더 나은 광학 기술 뿐 아니라 강력한 반도체 성능과 인공지능 기술을 더해서 일상의 기록 수준을 넘어 DSLR 카메라로 대변되는 다양한 표현도 빠르게 따라잡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광학적인 특성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인식은 이미 자리를 잡았죠.
캐논도 이를 ‘더 나은 카메라’만으로는 벗어날 수 없었을 겁니다. 가상현실, 메타버스 등 새로운 세상을 연결하는 기술은 지금 가장 주목받는 상황이고, 그 안에서 더 나은 경험을 주려면 결국 좋은 카메라 기술이 필요합니다. 메타버스 환경과 카메라를 잘 연결하는 것이 지금 캐논이 선택한 다음 성장의 방향일 겁니다. 이건 단순한 시장 확장이 아니라 ‘카메라를 뚫고 나왔다’는 의미로 바라보면 큰 전환 포인트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는 비단 캐논만의 일이 아닙니다. 통신사가 환경을 이야기하고, 전통적인 가전 기업이 자동차를 만들고, 농업 기계를 만드는 기업이 인공지능과 농업을 중심에 두고 비즈니스를 전환합니다.
팬데믹,
그리고 메타버스의 마지막 기회
메타버스는 이번 CES 관련 소식에 빠지지 않는 주제입니다. 단순히 메타버스만을 언급하기에 조금 식상한 감이 없지 않은데, 이를 의식하는 듯 웹 3.0도 메타버스와 함께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웹 3.0도 마찬가지지만 당장 메타버스에 대해서 ‘그게 뭐냐’고 물으면 속 시원한 대답을 내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사실 현재 단계에서 언급되는 메타버스는 온라인 게임과 가상현실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럼에도 가상현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을 잇는다는 개념은 기술과 함께 발전하고 있습니다. CES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라고 봅니다. 소니의 자회사인 호크아이는 특정 공간에 서 있으면 카메라 7대가 사람을 읽어서 지금 모습 그대로 가상의 아바타로 만들어서 가상 공간 안에 띄워줍니다. 이미 가상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소통하는 메타버스 서비스들은 많지만 가상의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의 내 모습이 보여지는 것은 분명 다른 느낌을 줍니다. 이 역시 모션 캡처와 3D 스캔을 비롯해 인공지능 기술에 기반한 모델링 등 개별 기술들을 기반으로 하지만 이 기술들을 이야기가 되도록 묶는 것이 차별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메타버스의 본질은 결국 현실과 비슷한 경험을 가상 공간 안에서 하는 데에 있고, 그 가상 공간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지금 단계에서 가장 현실적인 메타버스의 방향성일 겁니다.
CES에서 냄새와 촉각 등의 기술을 옮기려는 노력들도 눈에 띕니다. OVR테크놀로지는 향기 카트리지를 이용해 여러가지 냄새를 곧바로 만드는 장치를 선보였고, 햅트X는 촉각을 만들어주는 장갑을 전시하기도 했는데, 사실 이 기술들 역시 이전부터 비슷한 아이디어들이 선보여 왔지만 기술적인 문제로 현실화까지는 어려웠습니다. 여전히 완벽한 가상의 오감을 구현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그보다도 메타버스가 이런 감각을 구현하는 기술들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각자의 제품만으로는 썩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플랫폼과 콘텐츠가 적절히 더해지면 그 경험을 폭발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메타버스는 사실상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서 어쩔 수 없는 대안으로 선택된 기술 중 가장 앞선 개념이었습니다. 다소 복잡한 이 개념은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를 얻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기술적인 완성도나 준비가 모자랐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지금은 많은 준비가 됐는데 우리는 다시 오프라인으로 되돌아가는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비대면의 경험이 아직 익숙해져 있는 지금이 사람들에게 메타버스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데에 중요한 기회인 것이지요. CES를 통해서 단순한 신기함이아니라 ‘가상현실과 메타버스는 다르다’라는 이미지를 시장에 심어 주었기를 바랍니다.
연결, 그리고 사람…
가전이 가야 할 길
CES의 기술적 흐름, 그리고 주제는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듯 하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지난해랑 똑같네…’라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습니다. 세밀한 기술, 제품을 하나하나 살펴 보면 숨 쉴 틈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큰 그림에서 기술이 움직이는 방향은 천천히, 우직하게 걸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봐야겠지요.
가전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가장 주목해야 할 주제는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메타버스도 결국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기 위한 기술 개념이고, 자율주행과 UAM도 이동 수단을 넘어서는 서비스를 통해서 우리 삶의 질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들입니다.
가전의 영역은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상 24시간 가전의 안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CES는 여전히 가전의 근본 기술인 모터,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의 발전을 이야기하고, 서로 접목되면서 그 가치를 만들어 갑니다. 그 중심에 사람이 있는 것이지요.
친환경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옵니다. 하나하나 언급할 필요도 없이 많은 기업들이 ESG를 비롯해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를 늘어 놓았습니다. 농업 기구를 만드는 존 디어는 키노트를 통해서 농업 기계의 미래가 단순히 농사 일거리를 거드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고, 빠르게 늘어나는 인구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요소 기술이 바로 인공지능과 로봇인 것이지요.
기술적인 고집과 장벽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CES의 성과 중 하나입니다. 한동안 인공지능 어시스턴트와 사물인터넷 붐을 통해서 각자의 가전 제어 플랫폼의 성을 쌓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특정 플랫폼에 갇힌 가전으로 일상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제한적인 연합체와 멀티 플랫폼을 통한 노력이 있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고, 그에 따른 피로만 쌓일 뿐이었습니다
이번 CES를 기점으로 선보인 매터는 이 모든 혼란을 잠재울 사물인터넷 표준 규약입니다. 이 사물인터넷 플랫폼을 가르던 아마존, 구글, 애플, 삼성전자 등 업계의 모두가 연결 방법을 통일하기로 했고, 그 표준 기술이 바로 매터입니다. 쉽게 말하면 앞으로는 모든 사물인터넷 기기를 어떤 플랫폼 위에서도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중요한 건 연결이라는 본질이었는데, 정작 기술의 폐쇄성이 연결을 막고 있었던 아이러니가 무너지는 것이지요. 어쩌면 CES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 사물인터넷의 소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술 그 자체가 신기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가전의 역할은 사람을 돕는 것에 있습니다. 조금 더 본질적인 부분을 보는 시선들이 전시회 곳곳에서 눈에 띄었고, 큰 틀에서 변화하는 가전의 철학을 공감하고 공유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왜 기술을 개발하고, 무엇을 위해서 제품을 만들고, 이를 통해서 세상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지는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립서비스가 아닙니다. 이제는 기업들이 기술들에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기술은 사람을 위한 것이고, 조금 앞서서 가더라도 그게 현실이 되려면 사람을 돌아봐야 한다는 본질적인 이야기가 지금 가전 시장의 중심에 놓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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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섭
지하철을 오래 타면서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모바일 기기들이 평생 일이 된 IT 글쟁이입니다. 모든 기술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공부하면서 나누는 재미로 키보드를 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