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어젯밤 독일과 프랑스 여행을 한 객원 필자 조서형이다. 여행은 거실 소파에 앉은 채로 했다. 내가 간 건 아니고 그들이 왔다. 바로 ‘카우치 서핑’ 이야기다.
처음에 카우치 서핑을 선택한 건 돈이 없어서다. 방 보증금과 오토바이 판 돈을 여행 첫째 날 핀란드에 도착해서 봉투째로 잃어버렸거든. 돈은 찾을 수 없었고 여행도 멈출 수 없던 그때 나를 초대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 덕분에 무사히 북유럽 여행을 마쳤을 뿐 아니라 매번 특별한 손님이 되는 기분을 만끽했다.
나의 동거인 역시 한때 같은 경험을 했다. 몇 년에 걸친 자전거 여행 중 지붕과 따뜻한 샤워를 제공받은 것. 그의 제안으로 우리는 4년째 ‘카우치 서핑’과 ‘웜샤워’ 호스트를 하고 있다. 호스트는 누군지 모를 여행자를 위해 기꺼이 문을 열어 환영한다. 게스트는 낯선 집의 여행자가 된다. 둘 사이에 돈은 오가지 않는다. 대신 마음이 오간다.
낯선 사람 집에 초대되는 경험은 대단하다. 낯선 세상을 향해 문을 여는 기분 역시 특별하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남긴 말 중에는 이런 게 있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지니는 것’ 소파 위 여행 같은 이야기는 충분히 가능하다. 아래 이런 플랫폼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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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치 서핑 Couch surfing
카우치 서핑은 남의 집에 남는 소파를 서핑하듯 다니는 여행이다. 2004년 아이슬란드에서 시작해 지금은 20만 개 도시에 1천 4백만 이용자가 있다. 카우치 서핑의 목적은 여행자와 호스트의 교류. 그 외 다른 규정은 없다.
이용 방법은 이렇다. 사이트에 가입하고 프로필을 작성한다. 여행 목적지와 날짜를 입력하면 소파를 제공하는 호스트 목록이 뜬다. 게스트가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고 나의 일정을 보고 호스트가 먼저 연락이 오기도 한다. 호스트에게 승인을 받으면 날짜와 시간을 정해 집을 찾아가면 된다. 코로나 이후 가입 시 월간 기부금 2,900원 또는 연간 기부금 1만 5,000원을 받는다.
북유럽의 호스트는 디저트를 굽고, 가족 여행을 가고, 사우나를 하고, 호수를 걷고, 하이킹을 했다. 이 모든 일에 나를 끼워 줬다. ‘어머, 공짜다!’ 하는 마음이 다라면 카우치 서핑을 추천하지 않는다. 문화 교류가 필요한 만큼 게스트와 호스트 모두의 노력이 드는 일이다. 호스트는 깨끗한 잠자리와 간단한 식사를 제공하고 대화의 시간을 비워야 하며 호스트 역시 돈 대신 나눌 수 있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려면 저렴한 호스텔로 가는 게 모두에게 나은 선택이다.
‘거기가 어딘 줄 알고 가서 자?’라는 마음은 호스트도 같다. 당신이 누군지 알아야 집에 들일 수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카우치 서핑은 프로필이 중요하다. 하는 일과 얼굴이 드러난 사진, SNS 계정, 취미, 관심사 등을 볼 수 있도록 상세히 기입할 것. 반대로 호스트 역시 공간에 아이나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지, 주거 형태와 동거인이 있는지, 역에서부터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자세히 써주는 게 좋다.
✅ Tip. 카우치 서핑 사이트에서는 이용자들이 여는 이벤트가 있다. 서울을 기준으로 따릉이 투어, 심야 광장 시장 밋업, 남산 트래킹 등.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도시 이모저모를 알 수 있다.
- www.couchsurf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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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샤워 Warmshowers
자전거 여행자의 컨디션은 전날 ‘지붕 아래서 잤는가?’와 ‘샤워를 했나?’로 판가름 난다고 했다. 웜샤워는 뜨거운 샤워와 잘 곳을 제공하는 자전거 여행자를 위한 플랫폼이다. 1993년 두 명의 캐나다 자전거 여행자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져 2005년 정식 사이트를 열었다. 회원 수는 10만 명이며 그중 절반이 호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웜샤워는 2016년부터 기부금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강제성은 없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웜샤워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등록된 호스트에게 메일을 보내면 된다. 자전거 여행자만 쓸 수 있냐고? 그렇다. 커뮤니티 약관에 자전거 여행자에게만 숙박을 허용할 것을 호스트에게 충고하고 있다. 그 덕에 게스트와 호스트에 성향이 잘 맞는 경우가 많다. 자전거 여행을 경험하지 못한 호스트라면 건강한 에너지를 가진 친구를 기대해도 된다.
자전거 여행이 처음인 게스트라면 호스트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다. 현지 교통은 어떤지, 경로는 어떤 걸 택해야 하는지. 서울을 벗어나면 식재료는 하나로 마트에서 사는 게 신선하고 저렴하다는 수준으로도 충분하다. 웜샤워는 문화 교류의 부담도 덜하다. 타고 온 자전거와 장비, 길에서 만난 날씨와 사람 얘기만 나눠도 즐겁다.
✅ Tip. 현지의 단체 라이딩이나 자전거 관련 활동에 참여하기 좋다. 연령층이 다양해 1950년대 세계 자전거 여행자나 가족 자전거 여행자를 만날 기회도 많다. 내가 호스트일 때는 난지 캠핑장에 바이크 캠핑을 종종 데리고 갔다.
- www.warmshower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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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웨이 Workaway
워커웨이는 노동력과 숙식을 바꾸는 플랫폼이다. 사용법은 앞과 비슷하다. 나를 소개하는 프로필을 만든다. 24시간 안에 승인이 난다. 찾아갈 지역의 호스트를 찾아 연락을 한다. 얼마나 머무를지, 머무르는 동안 뭘 할 수 있을지 상의를 거친다. 여행지에서 일을 하고 밥과 잘 곳을 제공 받는다. 일은 대체로 공공성을 띈 학교, NGO, 배, 동물 복지, 농장 등이 많다. 언어 교환, 번역, 가사 도움, 아이 돌보기, 페인트칠,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같은 일도 있다. 20년이 넘은 플랫폼으로 184개국에 5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등록되어 있다.
워커웨이를 이용하는 ‘워커웨이어’가 되려면 18세 이상이어야 한다. 노동은 하루에 5시간, 주말은 쉰다. 돈이 오가지 않기 때문에 무비자로 일을 할 수 있다. 여행으로 방문한 지역에 나의 힘을 보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나중에 “내가 모로코 지역의 아이를 키웠어.” 또는 “내가 아일랜드의 학교를 지었어.” 같은 얘기도 가능하다.
워커웨이 사이트 가입은 유료다. 1년에 인당 49달러, 2인은 59달러. 두 달 이상의 장기 여행을 생각하면 큰돈은 아니다. 무료 숙박과 얻을 경험이 훨씬 가치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 호스트는 가입비가 따로 필요 없다.
✅ Tip. 일주일 이상 한곳에 머무는 장기 여행에 좋다.
- www.workaway.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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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프 WWOOF
일을 돕고 숙식을 제공 받는 컨셉은 워크어웨이와 같다. 다만 우프는 유기농가 및 친환경적 삶을 추구하는 시골에만 있다. 우프 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의 앞 글자를 따 1971년 영국에서 시작했다. 지금은 전 세계 130여 국에 12,000 호스트가 있다. 우퍼 게스트가 되면 농장에서 일하며 유기농 음식을 먹고 지속가능성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우퍼 역시 멤버십 비용이 있다. 가입 전 도착지를 설정하면 국가마다 다른 비용이 책정된다. 대체로 30달러 안팎이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시간은 최대 6시간이며 남은 시간을 활용해 여행을 다닐 수 있다. 도시 밖의 삶이나 환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우프를 통해 간접 체험이 가능하다. 농장뿐 아니라 생태 건축, 양봉장, 기후 미식 레스토랑, 생태 공동체 일이 있다. 캐나다에서 메이플 시럽을 만들고 하와이에서 나무를 돌보다가 제주도에서 호박을 따는 식이다.
Tip. 워커웨이와 우퍼 모두 공통적으로 단순 노동력을 구하는 게 아니다. 짧은 노동 시간으로 알 수 있다. 여행자와 현지인의 교류가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한다.
- www.wwoof.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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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1. 비웰컴 BeWelcome / bewelcome.org
카우치 서핑과 비슷한 웹사이트. 금전이 오가지 않으면서 여행자의 숙박을 지원한다.
2. 트러스트 루츠 Trustroots / Trustroots.org
문화경험 교환에 기반을 두고 있는 플랫폼. 관심사를 상세히 작성한 다음 경험과 문화를 교환할 수 있는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내 숙박을 공유한다.
3. 트러스티드하우스시터 TrustedHousesitter / trustedhousesitters.com
장기간 집을 비워야 하는 호스트가 숙박을 제공하고 게스트에게 반려견을 맡긴다. 멤버십 가입 비용은 연간 120달러.
4. 헬프엑스 HelpX / Helpx.net
헬프Help 익스체인지Exchange의 조합. 호스트는 여행자에게 숙식을, 여행자는 호스트 집에 머물며 노동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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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 팁
1. 호스트 입장에서 프로필을 작성한다. 밝은 표정의 사진, 신분을 파악할 수 있는 프로필, 플랫폼을 활용해 여행하는 이유 등은 꼭 들어가야 한다.
2. 돈을 낼 의무는 없지만 예절은 갖춰야 한다. 호스트가 식사를 제공했다면 게스트가 설거지 정도는 하자.
3. 최상의 시설과 서비스는 과감히 포기해라. 카우치 서핑으로 세계 여행을 한 사람의 블로그에서 호스트 별점과 서비스 평가를 본 적이 있다. 그러라고 만들어진 플랫폼이 아니다.
4. 물어봐라.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의 집에 머무르는 것이다. 화장실 이용 방법, 식사 문화, 외출과 귀가 시 주의사항을 묻고 따라야 한다.
5. 호스트에게 제공할 것을 준비하라. 한국 열쇠고리, 손수건, 간식도 좋고 자기를 소개하는 명함도 좋다. 호스트의 사진을 찍어 주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도 방법. 한글로 반듯하게 이름을 써서 선물하는 것도 좋다. 모든 게 여의치 않다면 귀국해서 엽서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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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 팁
1.프로필에 제공할 수 있는 범위를 상세하게 표시한다. 집 위치, 체크인 시간, 공간과 동거인 등.
2.숙박 요청에 빨리 답한다. 게스트 입장에선 이것만큼 고마운 일이 없다. 앞뒤 일정을 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니까.
3.추억을 남긴다. 잠자리 제공이 어딘가 싶지만 그 김에 친구도 만드는 거다. 아침을 같이 먹거나 근처 카페에 같이 가거나, 사진을 찍거나, 방명록 작성을 부탁한다. 떠나기 전 간식을 챙겨주는 일도 게스트에게 큰 감동을 준다.
4.무례한 여행자도 있다. 슬프지만 당신의 호의를 둘리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먼지 묻은 가방을 소파 위에 올릴 수도 있고 냉장고를 털어 주린 배를 채울 수도 있다. 예정 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호스트를 기다리게 하거나 아침 일찍 집을 떠나기도 한다. 호스트로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는 말자.
5.무리하지 말자.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넘어 손님을 받는 건 서로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동거인의 상태까지 꼼꼼하게 살필 것. 페이스를 조절해야 오래 호스트를 할 수 있다.
위 플랫폼을 이용해 나는 무사히 북유럽 여행을 마쳤을 뿐 아니라 매번 특별한 손님이 되는 기분을 만끽했다. 참고로 내가 여행자와 집을 나누는 일상은 볼트하우스(@bolthouse_seongsu)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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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형
아웃도어 관련 글을 씁니다. GQ 코리아 디지털 팀 에디터. 산에 텐트를 치고 자는 일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