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객원 에디터 김은아다. 이렇게 완벽한 하늘이라니.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일단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향해야 될 것만 같은 날들이다. 이 가을 감성을 충전할 수 있는 전시 네 편을 소개한다.
[1]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우리에게는 <황소>로 친숙한 화가 이중섭. 그렇지만 이번 전시에서 이 작품은 만나볼 수 없다. 대신 아주 개인적인 작가의 인생의 한 페이지가 펼쳐진다. 그 중심에 가족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있다.
1940년, 작가는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나 결혼식을 올리고 두 아들을 낳아 화목한 가정을 꾸린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한국전쟁으로 연이은 피난과 극심한 생활고에 작가는 가족을 아내의 친정이 있는 도쿄로 보낸다. 작가는 빨리 자리를 잡아 다시 네 가족이 만날 수 있도록 작업에 열중하는 한편, 가족들에게 거의 매일 편지와 그림을 보냈다.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 그는 일주일에도 몇 차례씩 편지를 보냈는데, 그때마다 가족이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그림을 그려 보내곤 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이 시기의 것들이다. 결혼 전 3년간 아내에게 보낸 엽서화, 1950년대에 아이들과 가족을 그린 회화 등 90여 점이 공개된다. 전시에서는 네 가족이 얼싸안고 춤을 추는 장면을 그린 작품을 여러 점 만날 수 있다.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서 담뱃갑 속 은박지에 그림을 그릴 정도로 가난에 시달렸지만, 그림 속에는 사랑하는 가족을 다시 만나겠다는 간절한 희망을 잃지 않은 것이다. 그림 한편에 남덕, 태성, 태현이라고 식구들의 이름을 꾹꾹 써놓은 흔적이 무척이나 애틋하다. (남덕은 ‘남쪽에서 온 덕이 많은 여자’라는 뜻으로, 작가가 아내에게 지어준 한국 이름이다.)
- 일정 2022.09.19~2023.4.23
- 장소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
<류성실 : 불타는 사랑의 노래>
도산공원 메종에르메스 지하에 화장터와 장례식장이 생긴 거 알고 있었나?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싶지만 일단 들어보라. 사업주는 이대왕이라는 사업가다. 이름부터 남다른 그는 돈 냄새를 맡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데, 코로나19로 많은 죽음이 발생하는 것을 보고 상조업계 진출이라는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정도로는 비범하다고 할 수 없을 터.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인간보다 수명도, 화장 시간도 짧은 반려견상조사업을 택한다. 그의 고객이 되면 화장 서비스는 물론,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를 통해 반려견의 영혼이 보내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고, 이대왕 대표가 직접 작곡한 추도곡 ‘진짜배기 사랑’까지 불러주는 풀서비스를 제공한다.
어쩐지 읽을수록 환멸이 느껴진다고? 그럼 작품의 의도를 잘 따라온 것이다. 이 희비극 같은 퍼포먼스는 작가 류성실의 개인전 <불타는 사랑의 노래>의 한 장면이다. 그는 이대왕, 체리장 등의 인물이 등장하는 세계관을 통해 우리 사회의 황금만능주의를 거울로 비춘다. 우선 유튜브를 통해 그의 또 다른 페르소나 ‘체리장’을 먼저 만나보자. 전시장으로 떠나지 않고서는 못 견딜 거다.
- 일정 2022.7.29~10.2
- 장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5길 7 아뜰리에 에르메스
[3]
<2022 부산 비엔날레>
도시가 미술관으로 변신한다. 2년 만에 돌아온 부산 비엔날레에서 부산항과 영도, 초량동 일대에 예술 작품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물결 위 우리(We, on the Rising Wave)>로, 근대 부산의 역사에서부터 출발한다. 작은 어촌에서 시작해 언덕을 빼곡히 채운 집들, 고층 빌딩과 대로가 교차하는 부산이라는 도시의 이야기를 전 지구적 현실과 연결해낸다. 인류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현상을 다루는 자리인 만큼,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는 물론이고 아프리카와 중동, 오세아니아까지 모든 대륙에서 참여작가들이 출품한다. 1930년대생부터 1990년대생까지 폭넓은 세대로 구성된 26개국 출신의 64개 팀·작가는 회화와 영상, 영상설치, 조각, 퍼포먼스, 사진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자신만의 관점을 펼쳐낸다. 특히 영도에는 부산의 도시 풍경을 바라보며 영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야외극장이 설치되니 놓치지 말 것.
- 일정 2022.9.3~11.6
- 장소 부산현대미술관, 부산항 제1부두, 영도, 초량 일대
[4]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오만한 눈빛으로 ‘OBEY(복종하라)’라고 외치는 로고, 2008년 대선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의 포스터 초상화 <희망HOPE>. 강렬한 색감과 메시지로 관객을 사로잡는 이 작품은 미국 시각문화를 대표하는 작가 셰퍼드 페어리의 작업이다.
© Obama Hope, AP, 2008 2022 COURTESY OF SHEPARD FAIREYOBEY GIANT ART INC.
그는 그림을 통해 평등, 반전(反戰), 인권, 반-자본주의 등 현대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분명한 어조로 전달한다. 한국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 EYES OPEN-MINDS OPEN>에서는 그의 30여 년간의 예술세계를 망라하는 470여 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그가 던지는 질문에 귀를 기울였다면, 이제 전시장 밖으로 나가 행동으로 옮길 차례다. 그것까지가 셰퍼드 페어리 작품 감상의 완성이다.
- 일정 2022.7.29~11.06
- 장소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300, 에비뉴엘 6층 롯데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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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일로 여행하고, 취미로 술을 씁니다. 여행 매거진 SRT매거진 기자, 술 전문 뉴스레터 뉴술레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