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응, 내 생각도 그래

누군가 그랬다. 물건을 사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피상적이야. 오래가지 않으니까 그건 진짜가 아니라고. 바보.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 사는...
누군가 그랬다. 물건을 사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피상적이야. 오래가지 않으니까 그건…

2017. 02. 02

누군가 그랬다. 물건을 사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피상적이야. 오래가지 않으니까 그건 진짜가 아니라고. 바보.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

사는 게 힘들수록 지르는 기쁨은 늘어난다. 이걸 ‘시발비용’이라고 하더라. 입에 착 붙는 이름이다. 캬악 퉤! 싸지르는 된소리처럼 쓰는 돈이란 뜻이다. 여유가 없으니 크게 지르진 못 한다. 기껏해야 만원 내외. 이 정도가 질렀을 때 큰 타격이 없는 마지노선이다.

“이 구역의 시발비용은 나야”

내 시발비용의 시발은, 젊음과 열정을 저당잡히고 몸과 마음을 바쳤던 잡지사 어시스턴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몇백만 원짜리 명품백, 30mL에 30만 원씩 하는 에센스를 소개하면 뭐하나. 눈은 높아지는데 현실을 시궁창. 격차가 너무 컸다. 일주일 내내 야근해 봤자 내 손에 떨어진 건, 겨우 교통비와 밥값이나 나올까 말까 한 돈. 쇼핑?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하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지르고 다녔다. 아무도 사지 않는 만 원짜리 치약, 2만 원 대 파우치. 가뭄에 콩 나듯, 아주 가끔 내가 살 수 있는 가격대의 물건이 잡지에 실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망설이지 않고 펑펑 질러댔다. 그래 이거면 됐어.

시발비용에 논리적인 이유 같은 건 대는 게 아니다. 이걸 사면 왠지 조금은 행복해 질 것 같은 느낌적인 필링이 오면 걍 산다.

“그래서 올해 첫 시발비용은 이거다”

서론이 아주아주 길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여기 만 원 대에 살 수 있는 아주 근사한 제품을 가져왔다. 오래 삶아 퍽퍽해진 닭가슴살 같은 일상에 들기름처럼 꼬수운 냄새를 더할 수 있는 그런 지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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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애정하는 브랜드 아이띵소(ithinkso)의 제품. 쓸데없는 멋은 빼고, 가격 거품도 걷어내고, 가볍고 튼튼한 소재로 가방을 만든다. 살을 잘 발라낸 골격을 보는 기분. 한 번 봤을 땐 눈이 덜 가지만 오래 볼수록 정이 가는 그런 가방을 만드는 곳이다. 내가 워낙 좋아하는 브랜드라 언젠가 또 다시 소개할 날이 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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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이띵소의 브리프 케이스다. 처음에 노트북 케이스인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내 맥북을 안전하게 지켜줄 만큼 쿠션감은 없는 것 같다. 그날 있을 회의 자료, 중요한 계약서, 스케줄러, 아이패드와 펜 정도를 예쁘게 담아내는 게 이 녀석이 할 수 있는 전부다. 솔직히 딱히 쓸모가 있는 물건은 아니다. 하지만 가격이 아름답다. 1만 9,000원. 푸른 배춧잎 두 장을 내면 천원을 돌려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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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엔 펜과 스마트폰을 넣을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있다. 가죽처럼 보이지만 폴리우레탄이다. 덕분에 가볍다. 141g.

DOCUMENTORGANIZER-M_03[아재에서 오빠되기 그리 어렵지 않아요.]

아무도 돈 쓸 것 같지 않은 것에 돈쓰기. 옷, 가방, 신발처럼 뻔한 거 말고, 아주 사소한 물건에도 본인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사람이 좋다. 명함지갑, 노트북 케이스 같은 게 바로 그 사람의 물건에 대한 취향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다.

“일단 갖고 싶지 않아?”
“I THINK SO,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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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hinkso Document Organizer
Point – 작은 돈으로 가죽 클러치 코스프레
Price – 1만 9,000원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