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이 재밌냐고? 나는 그 질문에 대해 영화가 끝나자마자 답을 내렸다. “아주 재미있다.” 오늘 리뷰에는 핵심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왜 재미있었는지, 어떤 부분이 ‘킬포’였는지에 대해 간단히 썼다. 긴말할 것 없이 바로 시작하자.
기대치가 높을수록 만족하기 힘들다. 영화뿐만이 아니라 세상만사가 다 그럴 거다. 맛집에 대한 기대, 사람에 대한 기대, 여행지에 대한 기대 역시 높으면 높을수록 바사삭 부서지기 쉽다. <외계+인>에 대한 기대는 오로지 ‘최동훈’에 근거하고 있다.
최동훈은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감독 중 한 명이다. <타짜>, <전우치>, <도둑들>, <암살> 모두 크고 작게 흥행했다.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은 212만으로 소소하게 출발했고, <타짜>, <전우치>는 600만을 넘겼으며, <도둑들>, <암살>은 1,000만을 넘겼다. 강제규, 강우석 등 흥행작을 다수 연출한 감독도 흥행 기복이 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최동훈과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그러니 그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하지만 <외계+인>은 제작 단계부터 우려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영화의 소재 때문. 외계인이 나오는 SF라는데, 시간 여행과 무협을 곁들인? 아무리 최동훈이어도 이런 복잡하고 낯선 소재를 잘 버무릴 수 있을지 염려됐다. SF는 안된다는 한국 영화계의 오랜 징크스도 있었으니까. 최동훈 감독 역시 그런 우려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도전했다. 그리고 도전 결과는? 성공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두 개의 시공간이 있다. 도사와 신선이 존재하는 고려 그리고 외계인의 침공을 받는 2022년의 한국. 두 시간대를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가드(김우빈)다. 가드는 외계에서 온 로봇이다. 외계 행성의 죄수를 지구인의 몸속에 가두고 그 죄인이 탈옥하면 체포하는 게 가드의 역할이다. 어느 날, 가드는 탈옥한 죄수를 잡는 과정에서 꼬마 아이를 거두게 되고 딸처럼 키우게 된다. 한편, 고려시대의 얼치기 도사 무륵(류준열)은 신검을 찾는 모험 중에 천둥을 쏘는 여인 이안(김태리)을 만나고 힘을 합쳐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당과 싸우게 된다.
여기서 살짝 아쉬운 점 하나.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따로따로 전개시키다 중후반이 되어서야 연결시키기 때문에 초중반까지는 다른 장르의 두 영화를 감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산만하게 느낄 수도 있다). 생각보다 거대한 세계관이라 배경지식을 쌓아나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 또, 코믹한 장면이나 호쾌한 무협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고려 장면과 달리, 가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현재 장면은 다소 느리다. 과거와 현재에 각각 평점을 매길 수 있다면 과거에 1점 더 주고 싶을 정도.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캐릭터다. 최동훈 영화 아니랄까 봐 등장인물이 정말 많은데, 겹치는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 허술해 보이지만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도사 무륵(류준열), 천둥을 쏘는 여인 이안(김태리), 삼각산의 두 신선(염정아, 조우진)을 중심으로 조연 하나 하나의 존재감이 강렬하다.
특히 두 신선의 코믹 연기는 <외계+인>의 백미다. 온갖 신기한 아이템으로 상대를 농락하는 영화 후반의 전투씬은 최고의 킬링포인트. 한때 잠재적 구매자였다가 적이 된 악당에게 “이걸 샀어야지!”하며 아이템을 쓰는 모습은 또 보고 싶은 명장면이다. 동작 그만 부적, 잠들게 만드는 피리, 고양이를 숨겨두는 부채 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이템이 많이 등장한다. 단순히 신기한 아이템 소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액션에 활용하면서 화려한 전투씬을 만들어낸다. 덕분에 액션은 지루할 틈이 없다.
캐스팅에도 빈틈이 없다. 얼치기 도사 무륵(류준열)의 비중이 높은 편인데, 허술한 듯 천재성을 보이는 캐릭터를 류준열이 완벽히 소화한다. 기구한 사연을 가진 이안(김태리)은 무륵과 달리 진중함과 비장함을 지닌 캐릭터다. 두 등장인물의 가벼움과 무거움이 적절히 밸런스를 이룬다. 또 포스터에도 나오듯 이안의 주무기는 권총인데, 이안의 권총을 쏘는 장면은 그야말로 간지가 넘친다. <암살>에서 장총을 들고 지붕 위를 뛰어다니던 전지현 이후 가장 멋진 총격씬이다.
나는 <외계+인>이 최동훈의 마스터피스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작들과 비교하면 <외계+인>의 구성은 다소 복잡하고 산만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외계+인>이 인생 오락 영화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몇 년 동안 이것과 비슷한 오락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외계+인>이 가족끼리 유쾌하게 감상하기에 좋은 ‘적당히 유치한 영화’다. 여기서 말하는 적당히 유치하다는 말은 칭찬이다. 다 큰 어른이 박쥐 수트를 입고, 손에서 거미줄이 나가는 그 영화들 역시 유치해서 보기 좋은 영화의 예다. <외계+인>은 어린아이에게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어른에게는 어린 시절 봤던 무협 영화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로 남지 않을까.
이렇게 칭찬해놓고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또 말하고 싶어졌다. 감독의 전작을 떠올려보면 맛깔나는 대사로 캐릭터의 입체성을 표현하는 장면들이 많다. 인물의 성격과 서사를 표현하는 건 대사와 행동인데, 최동훈 감독은 대사 몇 줄로 캐릭터성을 참 잘 살리는 감독이다.(타짜의 주옥같은 명대사를 떠올려보자) 하지만 <외계+인>에서는 인상적인 대사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게 좀 아쉬었다.
세상엔 여러 종류의 관객이 있다. 스릴러, 멜로, 호러를 좋아하지 않는 관객 등 장르만큼 취향도 다양하다. 호불호 없는 절대 취향의 영화란 없다. 1,7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명량>뿐만 아니라 <극한직업>, <신과함께-죄와벌>, <국제시장>도 호불호는 갈린다. 관객 수와 무관하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영화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계+인>도 마찬가지다. 나는 <외계+인>이 잘 만든 오락영화라 생각하지만, 무협과 SF라는 소재 때문에 관객들이 관심이 갖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이 말인 즉, 소재에 대한 거부감만 없다면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는 오락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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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