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맥주 네 캔에 만 원’ 공식이 깨져서 아쉬운 예화림 에디터다. 그동안 아빠가 물가를 짜장면 값에 비유할 때 별로 와닿지 않았다. 김밥 한 줄에 삼천 원이 넘어갈 때도 그러려니 했다. 맥주 네 캔에 만 원이 아닌 만천 원이라는 문구를 보고서야 물가 상승을 체감했다. 자주 가는 분식집도, 국밥집도 가격이 올랐지만 맥주가 유독 아쉬운 이유는 만 원의 행복을 외치지 못해서가 아닐까.
퇴근 후 가장 큰 즐거움은 편의점에 들러 맥주 네 캔과 안주를 고민하는 시간이다. 유튜브를 보다가 돈을 모으려면 ‘맥주 네 캔에 만 원’과 같은 행사에 현혹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한꺼번에 네 캔을 사는 게 돈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한 캔만 샀다가는 10분 뒤에 다시 편의점으로 향할 게 분명하다. 내가 맥주를 고르는 기준은 별거 없다. 마셔보지 않은 맥주 세 캔과 즐겨 마시는 무난한 맥주 한 캔을 고르는 것. 네 캔 중에 오늘 먹을 안주와 어울리는 맥주가 한 개쯤은 있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한강 가기 좋은 계절이다. 무더운 여름을 싫어하지만, 탁 트인 한강 앞에 돗자리 펼 수 있는 건 좋다. 여기에 술과 음식이 더해지면 그 순간만큼은 여름을 사랑해볼 법하다. 이번엔 한강 근처 편의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맥주와 안주를 소개했다. 한강에 온 대다수가 배달 음식을 시켜 먹기 때문에 적어도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배달존 앞을 서성이면서 기사님과 서로의 인상착의를 묻는 과정도 꽤나 번거롭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는 수고로움을 덜고 싶다면 편의점에서 해결하자. 어차피 편의점에서 맥주를 살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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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동 X NCT 핫 양념치킨
에어팟이나 버즈와 같은 블루투스 기기를 휴대폰과 연결하기 위해서는 페어링을 해야 한다. 페어링이란 블루투스 기기를 서로 연결하여 동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과정이다. 뜬금없이 페어링을 설명하는 이유는 서로 어울리는 술과 음식을 짝짓는 행위도 페어링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피자하면 맥주가 떠오르는 것처럼 피맥도 일종의 페어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트로피컬 향이 나는 맥주는 어떤 안주와 어울릴지, 제주맥주에서 새롭게 출시한 라거 맥주는 어떤 안주와 어울릴지 페어링해봤다.
첫 번째 맥주는 고길동 에일.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고길동이 주인공이다. 심통난 표정의 고길동을 보고 쌉싸름한 라거일 거라 예상했는데 상큼한 에일이다. 캔을 열자마자 자몽 향이 툭 치고 들어온다. 한 모금을 크게 들이키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다는 뜻이다. 자몽을 포함한 트로피컬 향이 기분 좋게 입 안을 감싼다. 단맛 혹은 쌉싸름한 맛이 두드러지는 에일이 있는데, 고길동 에일은 누구나 무난하게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에일에 반감이 있거나, 에일을 처음 마셔보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에일 중에서도 IPA는 과일 향이 풍부하고 쓴맛이 강하다. 이 맥주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향과 쓴맛이 강해서라는 답변이 많았다. IPA로 에일을 처음 접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고길동 에일은 맥주의 쓴맛을 나타내는 수치가 일반적인 에일에 비해 낮아 씁쓸한 맛이 현저히 적다. 일반적인 에일이 30에서 50이라면 고길동 맥주는 20이다. 과일 향이 풍부하거나 쓴맛이 강한 맥주는 별다른 안주 없이 맥주 자체의 향과 맛을 느끼면서 마시길 추천하지만, 고길동 에일은 양념치킨을 먹은 후 맥주로 입가심하기에 딱 좋다.
편의점에 닭강정을 비롯해 양념치킨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강공원에서 치킨을 배달시켜 먹는 것도 맛있지만, 배달존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과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간편하지만 퀄리티 높은 ‘NCT 핫 양념치킨’을 소개하려고 한다. 아이돌 ‘NCT DREAM’과 ‘더핑크퐁컴퍼니’와 편의점 ‘CU’의 콜라보. 무려 세 곳에서 콜라보한 제품이다. NCT DREAM의 타이틀 곡인 ‘맛(Hot Sauce)’의 가사에 맞춰 상품을 구성했다. 운동할 때마다 NCT DREAM의 노래를 들었는데 이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근래에 마주한 콜라보 제품 중에 가장 압도적인 세계관이었다.
노래처럼 맛도 핫하다. ‘이 정도면 하나도 안 매운데?’라고 생각할 때쯤 알싸함이 올라온다. 이름은 양념치킨이지만 뼈가 없고 양념이 꾸덕해서 닭강정에 가깝다. 닭강정을 먹다 보면 첫입은 황홀하게 맛있지만 몇 개 먹지 못하고 물린다. NCT 핫 양념치킨은 달콤한 뒤에 올라오는 매운맛 덕분에 자꾸만 손이 간다. 이때 맥주로 매운맛을 씻겨 내리면 무한으로 들어간다.
캡사이신의 매운맛이 아닌 고추가 주는 매운맛이다. 크러쉬드 레드페퍼가 들어있어서 매움이 간간이 치고 올라온다. 신라면을 먹을 수 있다면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맵기다. 맛있게 맵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았다. 고길동 에일과 페어링이 정말 좋다. 라거와 마셔도 나쁘지 않지만, 이 안주는 고길동 에일을 단호하게 추천한다. 라거는 양념치킨의 매운맛을 단호하게 끊어서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다면, 고길동 에일은 알싸함을 끊지 않고 자몽 향과 어우러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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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라거 X 할랄 가이즈 콤보 플래터
한강에 유리잔을 가져가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나는 가져간다. 가끔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복잡한 서울에 싫증이 나지만 한강을 바라보면 금세 편안해진다. 복잡함과 편안함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맥주를 잔에 따라 마시며 여유 부리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예쁜 잔에 맥주를 따라 마시면 더 맛있게 느껴지고, 더 많이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알고 보니 잔에 맥주를 따라 마시면 향과 질감을 잘 느낄 수 있고, 탄산 때문에 더부룩할 일이 줄어서 맥주 애호가들은 잔에 따라 마시길 권장했다.
맥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제주맥주’를 들어봤을 거다. 에일만 생산해온 제주맥주에서 첫 라거 맥주인 ‘제주라거’를 출시했다. 첫인상은 목 넘김이 좋다. 거슬리는 향 없이 깔끔하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 보리맥아, 물, 홉, 효모가 필요하다. 여기에 다른 첨가물을 넣지 않은 맥주를 올 몰트라고 부르는데, 제주라거는 올 몰트 라거에 속한다. 맥아의 풍미가 가득하고 끝맛이 깔끔하다. 사실상 어떤 안주와 마셔도 무난하게 잘 어울린다. 한강에서 치킨, 피자, 라면만 먹어 왔다면 할랄 가이즈 콤보 플래터와 먹어 보길 추천한다.
나는 20년 이상 서울이 아닌 지방에 살았다. 한강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도 부러웠지만, 낯선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더 부러웠다. 미국의 햄버거 프랜차이즈 쉑쉑버거,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 등 수많은 해외 브랜드는 1호점을 서울에 오픈했다. 할랄 가이즈도 궁금한 음식점 중 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전국 편의점에서 맛볼 수 있다.
할랄 인증을 받은 할랄 가이즈 음식점과 GS25가 만나 ‘할랄 가이즈 콤보 플래터’와 ‘치킨 플래터’를 출시했다.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제품을 할랄 음식이라고 하는데, 돼지고기와 동물의 피, 부적절하게 도축된 동물로 음식을 만들 수 없다. 한국 쌀에 비해 찰기가 없고 가느다란 밥 위에 닭과 양고기, 채소, 화이트소스와 핫소스를 뿌려 비빔밥처럼 섞으면 된다. 예상했던 이국적인 맛이다.
혼자 먹기에는 많고, 둘이서 먹기에는 적은 양이다. 가격은 1만 3,900원으로 비싼 느낌이 있지만 할랄 가이즈를 편의점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양파와 피망이 느끼함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신선하다. 화이트소스는 그릭 요거트에 마요네즈를 섞은 맛이 나는데, 중간 중간에 뿌린 핫소스와 합이 좋다. 부담스러울 정도는 강한 향신료는 아니지만, 고기가 향신료로 간이 되어있기 때문에 과일 향이 강한 에일보다 제주라거와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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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 메이크 미 스마일 X 타키스 푸에고
맥주를 한 캔만 마시는 사람이 있을까? 내게는 한 캔만 마실 수 있는 자제력이 없다. 에일로 시작해 향을 음미하고, 묵직한 라거로 분위기를 전환한다. 곁들이는 음식에 맞춰 맥주를 고르고 마시다 보면 배부름이 찾아온다. 그럴 때 추천하는 ‘에일 메이크 미 스마일’과 ‘타키스 푸에고’.
레몬 에이드에 물 탄 맛이라는 후기를 보고 걱정했다. 내 입맛에는 괜찮다. 주관적으로 혹평보다 호평을 해주고 싶다. 레몬 향이 나는 에일로, 탄산이 세지 않아서 꿀떡꿀떡 넘어간다. 고길동 에일은 트로피컬 향 중에 자몽 향이 강했다면 이 맥주는 레몬이 압도한다. 단맛이 많이 나는 인공 레몬도 아니고, 너무 셔서 얼굴 찌푸려지는 레몬도 아닌 밸런스 잡힌 레몬 향을 구현했다.
배부를 정도까지 맥주를 마시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알딸딸해서 맛있다고 느끼는 건가 싶어서 맨정신에 마셔봤다. 맛살과 곁들어 마시기도 했고, 다른 과자와 함께 마셔봤다. 하지만 타키스 푸에고와 마셨을 때 가장 궁합이 좋다. 자꾸만 생각나는 조합이라 맥주와 과자를 집에 쟁여두기까지 했다.
‘포켓CU’ 앱을 통해 CU 편의점의 신상품을 구경하는데, 이달의 핫이슈에 타키스 푸에고가 올랐다. 심상치 않은 이름과 화려한 표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표지만큼 맛도 강렬하다. 매콤한 칠리페퍼와 시큼한 라임 향이 오묘하게 섞인 멕시코 과자다. 짜고 맵고 신 맛이 응축되어 있다. 스윙칩처럼 시즈닝이 한쪽에 몰려있는 게 아니라 균일하게 묻어 있어서 좋았다. 확실히 호불호가 강한 과자이면서 맥주를 부르는 맛이다.
빨갛고 기다란 타키스 푸에고의 식감은 딱딱하다. 아작아작 씹힌다. 혀에 시즈닝이 닿는 순간, 자극적인 짭짤함을 느낄 수 있다. 삼킬 때가 되면 라임 향이 느껴져 시큼하다. 신맛 과자를 처음 먹어본다면 당황할 수 있지만 라임 향이 매력 포인트이자 중독성을 이끄는 요인이다. 적당하게 달달한 ‘에일 메이크 미 스마일’을 마시면 매콤짭짤한 맛이 중화된다. 4.0%의 낮은 도수로 가볍게 즐길 수 있고, 술을 못하지만 분위기를 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무엇보다 패키지가 귀여워서 한강이나 피크닉에 들고 가기에 안성맞춤이다. 맥주는 3,500원, 과자는 1,500원으로 포켓CU를 통해 구매 가능한 근처 편의점을 찾을 수 있다.
갈증을 해소하는데 맥주만 한 게 없다. 차라리 시원한 물을 마시라는 훈계를 들었지만 꿋꿋하게 맥주를 찾는다. 갈증 해소는 물론이고 알코올이 들어가 기분까지 좋아지는 맥주가 있는데 왜? 만원에서 만 천원의 행복이 되었지만, 맥주 네 캔으로 행복해지는 건 변함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