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백종원 없이 떠나는 넷플릭스 식도락 여행

안녕. 저 멀리 훌쩍 떠나고 싶은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요즘은 날이 좀 풀려서 그런가 여행 욕구가 더 끓어오른다. 한 번씩...
안녕. 저 멀리 훌쩍 떠나고 싶은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요즘은 날이 좀…

2022. 03. 13

안녕. 저 멀리 훌쩍 떠나고 싶은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요즘은 날이 좀 풀려서 그런가 여행 욕구가 더 끓어오른다. 한 번씩 여행병이 도질 때면 세계 각지의 풍경을 담은 영화나 다큐멘터리로 마음을 달래곤 한다. 여행 욕구와 함께 식욕까지 왕성한 요즘, 식도락 여행에 대한 간절함을 안고 넷플릭스를 뒤졌다. 역시는 역시. 뛰어난 기획력과 감각적인 영상미로 무장한 음식, 여행 관련 오리지널 시리즈가 상당히 많다. 그중에서 5개를 추렸다. 나처럼 대리만족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준비했다. 식도락 여행을 떠나기 전, 꼭 봐야 할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얼리티 &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1]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

한국에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가 있다면 미국에는 시트콤 제작자 필 로즌솔의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이 있다. 두 프로그램의 공통점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월드투어 먹방이다. 요리와 문화를 사랑하는 호스트가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도시를 대표하는 음식을 경험하는 프로그램. 또 한 가지 공통점은 ‘두 사람 다 돈 내고 방송 찍어라’ 말하고 싶을 정도로 내내 세상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 차이점이라면 백종원이 고독한 미식가 마냥 혼자 돌아다닐 때, 필 로즌솔은 인싸력을 자랑하며 매번 다양한 지인들을 데리고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것. 덕분에 이 귀여운 아저씨가 얼마나 음식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지 영상을 보는 내내 그 행복하고 긍정적인 기운이 가득 전해진다.

📺Episode : 영국 런던

시즌 3의 런던 편을 재밌게 봤다. 식도락 여행을 하는데 런던을 간다는 점에서부터 묘하게 끌렸다. 영국이라 함은 음식 맛없기로 유명한 나라가 아닌가. 대체 어떤 음식을 소개하며 호들갑을 떨어댈지 궁금했다. 보고 나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설득됐다. 200년 동안 영국을 대표한 음식 ‘피시 앤 칩스’로 스타트를 끊고, 각종 채소를 장작불에 구워내 건강하면서도 풍미 가득한 요리를 하는 음식점 ‘로비’를 거쳐, 과일가게와 베이커리와 커피숍을 훑는다.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청과 시장인 ‘버로우 마켓’에서의 모닝 샌드위치와 근사한 정원을 가진 ‘로셸 캔틴’의 스크램블드에그는 또 어떤가. 제임스 본드가 사랑하는 마티니를 홀짝이고, 자연산 넙치를 맛보고, 현대 인도 음식점 ‘디슘’에서 배 터질 때까지 흡입하고 있는 필을 보고 있으면 영국 음식이 맛없다는 말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될 거다. 도시와 음식의 역사를 깊게 다루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대신 여행 뽐뿌 자극하는 근사한 풍광과 군침 도는 장면이 때깔 좋게 펼쳐진다. 행복한 에너지를 느끼며 부담 없이 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2]
<데이비드 장의 맛있는 하루>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이 만족스러웠다면 이 프로그램도 맘에 들 확률이 높다. 좀 더 경쾌하고, 좀 더 유머러스하고, 거기에 한 스푼의 B급 감성까지 더해진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더더욱. <데이비드 장의 맛있는 하루>는 세계적인 셰프 ‘데이비드 장’이 4명의 할리우드 셀럽과 4개의 도시로 떠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도시를 한 사람과 여행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먹는 컨셉이라 두 사람이 여행 내내 나누는 대화를 구경하는 재미가 크다. 각자의 가족 얘기, 일 얘기, 잡다한 취향 얘기 등을 뒤섞어가며 수다를 떠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새삼 여행 파트너의 중요성이 느껴진다. 쿵짝이 잘 맞는 사람과 떠나는 즐겁고 맛있는 여행이라니.

📺Episode : 모로코 마라케시

모로코에 대한 추억과 애정을 가진 모델 ‘크리시 타이겐’과 함께 여행하는 마라케시. 모로코는 아프리카와 중동과 유럽의 문화가 절묘하게 섞이며 그 안에서 독특한 고유 문화를 만들어낸 나라로, 중앙부에 위치한 마라케시는 그런 모로코의 전통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도시다. 음식도 다양하다. 시장에서 손으로 뜯어가며 먹는 양고기와 타진이라는 그릇 안에 닭고기와 감자, 향신료 등을 넣고 만든 가정 요리, 사막에서 마시는 민트 티와 바에 앉아 들이키는 데킬라, 마지막으로 북적거리는 야시장에서 맛본 매운 야채수프까지. 개성 강한 음식들이 알록달록한 도시의 색감을 비롯한 이국적인 정경과 어우러지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가만두지 않는다. 중간중간 현지인과 나누는 대화는 마라케시의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설명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유익한 내용임에도 유쾌하고 위트 넘치는 분위기를 놓치지 않아 전혀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3]
<소금. 산. 지방. 불.>

아름다운 도시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음식 자체에 좀 더 집중하는 프로그램을 찾는 분들, 식재료와 요리를 통해 그 도시와 국가의 문화를 엿보고 싶은 분들에게는 <소금, 산, 지방, 불>을 추천한다. 명성 높은 요리연구가 ‘사민 노스라트’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4부작 다큐멘터리다. 사민 노스라트는 훌륭한 요리를 만드는 4가지 공신으로 소금, 산, 지방, 불을 꼽는데, 이 4가지를 보다 깊게 들여다보기 위해 일본, 이탈리아, 멕시코, 미국을 다니며 현지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직접 요리를 만들어본다.

📺Episode : 멕시코 유카탄

산Acid을 탐구하기 위해 떠난 곳은 멕시코의 유카탄 지방. 광귤이나 라임 같은 과일부터 시큼한 꿀과 멕시코인의 식탁에 반드시 올라와 있는 살사까지, 신맛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재료와 요리를 현지인과 함께 경험한다. 달다고만 생각하는 꿀이 사실은 어느 정도의 산성을 갖고 있으며 꿀 안에서도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맛이 있는지, 옥수수 가루를 이용해 만든 콘 토르티야의 일정하고 부드러운 풍미가 산도 높은 재료 간의 불균형을 어떻게 잡아주는지 설명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지식을 무겁지 않게 전달해준 덕분에 막연하게 알고 있던 신맛과 산성 재료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유카탄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다. 번화가와 시장, 소박한 가정집과 울창한 산골 마을 등 전반적으로 여유롭고 나른한 분위기가 흐르는 멕시코의 풍경이 훌쩍 떠나고 싶은 욕구를 불어 넣는다.


[4]
<미드나잇 아시아>

거리는 가깝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 많은 아시아. 비슷한 듯 보여도 천차만별의 매력과 개성을 가진 아시아 도시들을 여행하고 싶은 분들에겐 <미드나잇 아시아>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미드나잇’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이 다큐멘터리가 집중하는 건 아시아의 밤이다. 낮에는 볼 수 없었던 은밀하고도 활기 넘치는 에너지로 채워지는 시간. 어둠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밤이라는 시간대가 각 도시의 일상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음식과 술과 음악 등을 중심으로 탐구한다. 여행을 떠나는 컨셉의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그 도시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함으로써 관광과 여행 너머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해준다.

📺Episode : 대만 타이베이

타이베이의 위장으로 불리는 닝샤 야시장.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옌환펜 굴 계란 오믈렛’은 야식 문화가 발달한 타이베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는 식당 중 하나다. 상인회를 이끌며 야시장의 성공과 발전에 큰 공을 세운 가게의 스토리를 듣다 보면 노포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된다. 물론 오믈렛 한번 먹어보고 싶은 식욕이 마구 솟아오르는 건 당연하다. 식물들을 활용한 창의적인 칵테일 메뉴를 만들며 타이베이 칵테일 바의 흐름을 주도하는 ‘인덜디 익스페리멘털 비스트로’는 야시장과는 완전히 다른 젊고 신선한 분위기를 풍기고, 드래그 문화의 열기로 가득한 ‘카페 달리아’나 낙서예술로 거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미스터 오게이’는 밤 문화가 만들어내는 다양성과 가능성에 관한 시사점을 던진다.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체성을 표현하고 발산하는 타이베이의 밤. 그 표현과 발산이 가능하게 하는 안전하고 매력적인 공간들을 언젠가는 경험해보고 싶다.


[5]
<프레시, 프라이드 & 크리스피>

오늘 소개하는 프로그램 중 가장 텐션이 높다고 할 수 있는 <프레시, 프라이드 & 크리스피>.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가장 유명하고 맛있는 튀김 음식을 찾아 8개의 미국 도시를 돌아다니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호스트로 출연하는 유튜버 출신의 음식 평론가 ‘데임 드롭스’ 캐릭터가 재밌다. 거구의 몸집에 속사포 랩처럼 쏟아내는 찰진 멘트와 멈출 줄 모르는 다이나믹한 표정. 도시마다 세 군데 정도 음식점을 방문하며 시식하고, 행복한 감탄사와 함께 극찬의 향연이 이어지다가, 엔딩에 이르러서는 오늘 먹은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우승자로 선정하는 구성이다. 모든 걸 다 튀겨 먹을 것만 같은 미국의 독특한 식문화를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고 통통 튀는 분위기 속에서 엿보는 재미가 있다.

📺Episode :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주 남부에 자리한 샌디에이고. 연중 온화한 날씨 덕에 휴양지로도 인기가 높은 이 도시에는 푸른 해변과 여유 넘치는 서퍼들 사이로 크리스피한 음식들이 저마다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곳들은 구르메 콘도그와 꽃등심 스테이크가 인상적인 ‘카우 바이 베어’, 치킨을 넣은 와플 샌드위치가 맛있는 ‘리듬스 치킨 & 와플스’, 오레오 튀김 등으로 유명한 ‘치킨 찰리’다. 그중에서도 내 원픽은 리듬스 치킨 & 와플스의 대표 메뉴인 치킨 선라이즈. 벨기에 와플 사이에 시럽을 잔뜩 코팅한 치킨과 베이컨, 치즈와 써니사이드업 계란까지 넣어 비주얼부터 압도적이다. 단짠단짠의 조화가 환상이라고 하니 내가 만약 샌디에이고에 가게 되면 저것 때문일 거다. 데임 드롭스가 우승자로 뽑은 치킨 찰리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오레오도 튀기고 쿨에이드라는 주스도 튀기던데, 단 것도 좋아하고 튀김도 좋아하는 내가 봐도 그건 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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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라이프스타일 잡지부터 토크 프로그램까지, 분야 안 가리는 프리랜스 콘텐츠 에디터. 멋있는 사람과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할 때 제일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