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에디터M입니다. 날이 많이 추워졌어요. 낮은 짧아지고 밤이 길어졌습니다. 네, 겨울이라는 소리죠. 저는 겨울이 참 싫어요. 이 계절이 싫은 이유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시곗바늘은 아직 5시에서 6시로 넘어가고 있는데 이미 밖은 깜깜해서 야근의 기분을 느끼는 게 싫고요. 칼바람이 몰아치는 거리에서 택시를 잡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그 초조함도 숨 막혀요. 수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제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겨울이 위스키의 계절이기 때문이에요. 긴긴밤, 조금만 마셔도 속이 뜨거워지는 술을 아주 조금씩 홀짝이는 것만큼 매혹적인 게 또 어디 있을까요.
오늘 소개할 술은 바로 ‘에반 윌리엄스 블랙’입니다. 혹시 익숙하신가요? 위스키 아니 정확히 말해 버번 위스키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분명 익숙하실 거예요. 혹시 낯설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게 아니죠.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리는 버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만나기 힘들었거든요. 한국에서는 제대로 수입이 되지 않거나 혹은 수입이 되더라도 꾸준히 판매되지 못했던 비운의 술이죠. 그동안 에반 윌리엄스는 남대문 수입 상가에서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겨우겨우 구해야 했던 귀한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귀한 술을 이제는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국 이마트나 와인앤모어에서 그것도 3만 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대로요. 어때요? 좀 혹하지 않나요?
에반 윌리엄스 블랙은 버번 위스키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는 켄터키 주에서 왔습니다. 1783년 상업 증류소를 처음 세운 에반 윌리엄스의 이름을 따서 탄생했는데요. 고유의 헤리티지를 가진 이 위스키가 요즘 미국의 2030세대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버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거죠. 이 세상의 모든 위스키가 다 궁금하고 정복해 보고 싶은 제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잖아요?
가장 먼저 클래식한 라벨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요즘은 이런 클래식함이 오히려 더 힙하게 느껴지잖아요. ‘오래된 것이 더 새롭다’라는 말처럼, 오히려 역사와 헤리티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 거죠. 라벨에는 출신을 말해주는 켄터키라는 단어 아래로 ‘스트레이트 버번 위스키’라는 문구가 쓰여있습니다. 에반 윌리엄스가 아메리칸 정통 버번 위스키라는 어떤 자신감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투명한 병 아래로 붉은빛이 살짝 감도는 호박색의 위스키가 빛을 받아 찰랑거립니다. 바닥이 두툼해서 무게감이 있는 위스키 잔에 온더락으로 따라줍니다. 위스키와 얼음이 만나 생기는 아지랑이를 보고 있으면, 여름 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위스키란 술의 매력을 다시금 깨닫게 되죠.
일단 첫 입은 얼음이 많이 녹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할게요. 얼음의 차가운 기운이 약간 감돌지만 아직 온도는 많이 내려가지 않은 니트에 가까운 상태라 본연의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거든요. 조심스럽게 입을 갖다 댑니다. 서두를 필요 없어요. 입술을 적실 정도의 양으로도 충분해요. 마치 시럽처럼 부드럽게 퍼지는 달콤한 바닐라 향. 그리고 상쾌한 민트향이 코끝에서 감도네요.
역시 한 입으로는 부족했어요. 달콤하면서도 맵싸한 향에 취해 다시 한 모금을 맛봅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많이. 혀를 지나 목구멍까지 위스키의 맛이 모두 퍼지도록요. 카라멜과 바닐라의 달콤함이 지나가고 나면, 오크통의 나무 향이 입안 전체에 맴돌아요. 그 여운이 꽤 길어요. 끈질기다 싶을 정도로요. 에반 윌리엄스는 스트레이트 버번으로 인정받기 위한 2년의 숙성기간보다 2배 이상 더 길게 숙성하거든요. 4년에서 5년 동안 오크 통에서 차분히 기다려온 술은 그 시간만큼 더 근사해집니다.
에반 윌리엄스 블랙은 버번 위스키에요. 버번은 생각보다 꽤 엄격한 술입니다. 반드시 옥수수의 함량이 전체 곡물 재료의 51% 이상을 차지해야 해요. ‘옥수수를 주재료로 호밀과 보리를 섞어 미국에서 제조된 40도 이상의 위스키’ 이것이 버번 위스키의 가장 간단한 정의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미국 내에서 만든 새로운 오크 통에 숙성을 해야 합니다. 참나무로 만들어진 오크 통은 술을 담기 전에 안을 새카맣게 태워야 하고요. 여기서 버번의 강력한 캐릭터가 만들어집니다. 버번을 표현하는 영어 단어에는 ‘robust’가 있는데요. 강인한, 단단한, 활기가 넘치는 이란 뜻이죠. 확실히 캐릭터가 강한 술이에요. 향도 맛도 다른 위스키보다 훨씬 진하죠. 끈적일 정도로 진한 바닐라의 달콤한 향은 주재료인 옥수수에서 옵니다. 검게 그을린 참나무로 만든 오크 통을 썼으니 그 향도 짙게 배어있죠. 입술에서 들큰하게 달라붙는 맛 뒤로 톡 쏘는 맛이 바로 따라 들어옵니다. 이런 이중적인 맛이 바로 버번의 매력입니다.
에반 윌리엄스 블랙은 버번 위스키의 맛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이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도록 그 밸런스를 잘 잡은 느낌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젊은이들은 에반 윌리엄스 블랙을 넣은 하이볼을 즐겨 마신다고 들었어요. 저도 이번에 버번 하이볼은 처음 먹어봤는데요, 이거 정말 매력있더라고요!
사실 하이볼은 제가 여러 번 다룬 적이 있는데요. 세상에서 위스키를 가장 경쾌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레시피랄 것도 없을 정도로 간편하죠. 기다란 잔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4분의 1조각으로 썬 레몬즙을 넣습니다. 그리고 에반 윌리엄스 블랙을 부어주세요. 마지막으로 진저에일을 부어주면 되는 간단한 레시피입니다. 만약 조금 더 진하게 마시고 싶어졌다면, 마지막에 슬쩍 술을 조금 더 부어주세요. 괜찮아요. 하이볼은 이 세상 모든 칵테일 중 가장 유연하거든요.
다만 한 가지 꼭 지켜줬으면 하는 게 있어요. 에반 윌리엄스로 하이볼을 만들 땐 토닉워터보다는 진저에일을 꼭 사용해 주세요. 진저에일의 은은한 생강 향이 에반 윌리엄스 블랙의 이중적인 맛과 향의 중간을 꽉 채워주거든요. 에반 윌리엄스의 진하고 달콤한 맛과 진저에일 그리고 레몬의 맛이 섞이면서 어디 하나 비는 데 없는 꽉 찬 맛이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탄산까지 있으니 맛과 향 그리고 혀에 닿는 촉감까지 축제처럼 즐겁습니다.
그동안은 저도 부드러운 위스키로만 하이볼을 즐겼는데, 달콤하고 짙은 오크향이 나는 버번 하이볼도 얼마나 매력적인지! 어쩌면 에반 윌리엄스를 가장 맛있게 즐기는 방법은 바로 하이볼일지도 모르겠어요. 안주도 가리지 않습니다. 짠 것, 매운 것, 기름진 것까지 모두와 잘 어울립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한식이라면 어떤 것도 다 잘 어울리겠네요. 심지어는 안주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빈속에 찌르르하고 하이볼을 털어 넣으면 그것도 제가 참 좋아하는 방법이긴 해요.
리뷰를 핑계로 매일 밤 매력적인 술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긴 겨울 밤 친구처럼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위스키를 찾고 있다면, 너무 젠체하는 위스키가 질렸다면, 나만 알고 싶은 특별한 위스키를 찾고 있다면 그 답은 아마 에반 윌리엄스 블랙이 되지 않을까요. 오랜만에 돌아온 에디터M의 술리뷰는 여기까지!
*이 글에는 에반 윌리엄스의 유료 광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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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