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전주에서의 하룻밤, 로텐바움 숙박기

안녕, 틈만 나면 놀러 다닐 생각하는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얼마 전 1박 2일로 짧은 전주 여행을 다녀왔다. 맛있는 밥도 먹고...
안녕, 틈만 나면 놀러 다닐 생각하는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얼마 전 1박…

2021. 11. 28

안녕, 틈만 나면 놀러 다닐 생각하는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얼마 전 1박 2일로 짧은 전주 여행을 다녀왔다. 맛있는 밥도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가고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산책도 했지.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숙소다. 이전 부산 카페 기사에서 간략하게 소개한 적 있는 ‘웻에버’ 제작자들이 두 번째 공간을 열었다길래 하룻밤 묵고 왔다. 숙소의 이름은 로텐바움. 오픈하자마자 SNS상에서 화제가 된 이곳을 구석구석 소개해보겠다.

1400_retouched_-25

로텐바움은 도시재생과 독립건축을 키워드로 삼은 프로젝트팀 ‘27club’이 기획했다. 지역의 낙후된 건물을 리노베이션해 동네와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자 하는 목표를 가진 팀이다. 부산 광안리(웻에버@wetever_offical)에 이어 이번에는 전주 한옥마을 옆 서학동으로 눈길을 돌렸다. 지어진 지 50년이 넘은 오래된 2층 단독 주택을 장장 7개월간 뜯어고쳤다고 한다.

1400_retouched_-6

로텐바움을 구상하며 1960년대의 Alsace-Lorraine 알자스-로렌 지방을 떠올렸다고. 프랑스와 독일이 국경을 맞댄 지역, 어느 젊은 사진작가가 사는 집을 상상하며 설계에 들어갔다. 전반적인 분위기를 잡아주는 상아색과 호두나무 소재,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미드 센추리 빈티지 가구에 독특한 앤티크 소품들까지. 공간 전반이 고즈넉하고 이국적인 정서로 가득하다.

마당 정원

1400_retouched_-221400_retouched_-21

철문을 열자 짙은 갈색의 나무문과 아치 형태의 통로, 옆으로는 풀과 돌이 있는 아담한 정원이 보인다. 성급하게 바로 들어가지 말고 느긋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어느 순간 재미난 걸 발견하게 될 거다. 저기 보이는, 담벼락에 붙은 작은 나무판자들을.

1400_retouched_-20

1400_retouched_-24

고양이 계단이다. 여기에는 ‘요르고스’란 이름을 가진 귀여운 고양이와 그 가족이 산다. 주택 공사 중에 태어난 친구들이 정원 한쪽에 터를 잡고 수시로 들락날락한단다. 친구들이 좀 더 안전하고 편하게 길을 오갈 수 있도록 담벼락 곳곳에 고양이 계단을 만들어둔 거다. 스위스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고양이 사다리’를 벤치마킹했다는데, 보기에도 귀엽고 의도까지 선한 이 장치를 더 많은 이들이 알아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실

1400_retouched_-14

1400_retouched_-1

체크인 후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따스한 분위기의 1층 거실. 커다란 폴딩도어를 열면 바로 정원과 이어진다. 이튿날 아침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놨더니 햇볕도 따스하고 바람도 솔솔 드는 게 오전의 여유를 즐기기 딱이었지. 한쪽에는 요가 매트도 있으니 자리를 잡고 앉아 고요한 시간을 만끽해보면 어떨까.

다이닝룸 & 주방

1400_retouched_-12 1400_retouched_-5

다이닝룸과 주방은 이 집에서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공간처럼 느껴진다. 널찍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노트북으로 일까지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다용도 공간이니 신경 많이 썼을 거다. 다양한 서적은 물론이고 턴테이블과 LP까지 있어서 영감도 얻고, 사색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기 좋다. 운 좋으면 요르고스 패밀리가 맛있게 밥 먹는 모습을 통창 너머로 관람할 수도 있다는 거. 나는 첫날 체크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목격했다. 한 마리 밖에 없었지만 잠시나마 행복했어…

1400_retouched_-3 1400_retouched_-23

귀여운 리빙 소품들로 가득한 안쪽 주방. 간단한 취사가 가능하다. 오일 파스타를 만들어 와인을 곁들이거나, 빵과 계란과 햄을 베이스로 브런치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저녁에 귀찮아서 치킨 시켜 먹은 건 비밀.) 커피를 내려 마셔도 좋겠다. 원두와 드리퍼, 드립 포트에 핸드 그라인더까지 향긋한 브루잉 커피를 위한 도구가 완벽하게 준비돼 있으니까. 글라스 컵을 비롯한 식기류도 하나 같이 다 예쁘다. 체크아웃 전 아침 햇빛을 즐기며 홀짝이는 커피 한잔이라. 진짜 나가기 싫어질걸.

침실

1400_retouched_-151400_retouched_-18 1400_retouched_-17

차분한 톤의 침실에서는 재밌는 구경과 안락한 휴식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제도용 자와 연필, 건축 서적 등으로 채워진 책상과 책장. 이것저것 둘러보다 옷장으로 시선을 옮기면 데님 베스트 한 벌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이 집에 사는 이의 옷을 걸어둔 것만 같다. ‘건축을 하는 사람일까’, ‘아르텍과 브라운을 엄청 좋아하는가 본데’, ‘무라카미 하루키나 류이치 사카모토 사진도 붙여둔 걸 보면 일본 문화에도 관심이 있을 것 같아’. 방 한 가운데 놓인 가죽 의자에 앉아 실없는 상상을 이어 가본다. 이야기와 상상이 넘쳐나는 숙소라니. 어딜 가도 똑같은 걸로 채워진 호텔이나 리조트에서는 느끼기 힘든 깨알 즐거움 아닐까.

1400_retouched_-161400_retouched_-9

물론 침대와 침구는 호텔 못지않게 쾌적하다. 침대가 물렁하지 않고 적당히 묵직한 게 안정감이 느껴진다. 너무 물렁하면 자고 일어났을 때 허리가 아픈 나로서는 대만족이었다. 이불도 보기에는 얇아 보였지만 막상 덮으니 몸을 따뜻하고 아늑하게 감싸주더라. 간만에 푹 자고 상쾌한 아침을 맞았다.

1400_retouched_-71400_retouched_-11 1400_retouched_-10

2층으로 올라가면 양쪽으로 두 개의 침실이 더 있다. 책상이 딸린 큰 방과 좌식 테이블이 있는 작은 방. 동행한 이들의 취향에 따라 적절히 선택하면 되겠다. 1층 침실과 마찬가지로 공간을 이루는 작은 요소 하나하나를 뜯어보는 재미를 누려보시길. 큰 방 책상에 있는 슬라이드 필름 마운트로 작업물을 감상해보고, 일회용 필름카메라를 이용해 여행의 추억을 남겨보자. (한 팀당 3-4장을 찍으면, 추후에 필름을 현상해 인스타그램으로 업로드해준다고 한다.)

화장실

1400_retouched_-131400_retouched_-4

숙소에서 화장실 얘기를 빼놓을 순 없겠지? 1층과 2층에 하나씩 있는데 기능과 컬러 면에서 뚜렷한 대비를 이루는 게 흥미롭다. 1층은 초록색 타일로 덮인 작고 심플한 형태로 샤워 부스가 설치돼 있다. 반면에 2층 화장실은 붉은색 타일이 채워진 넓은 형태로 욕조가 구비돼 있다. 방의 층수에 따라, 그리고 용도에 따라 적절히 선택할 수 있어서 여럿이 놀러 갔을 때 불편하지 않을 것 같다. 기왕 놀러 온 거 하루를 정리하며 반신욕을 즐겨보자고. 욕조가 워낙 커서 목욕할 맛이 절로 난다.

아쉬운 점

1400_retouched_-2

비록 하룻밤만 묵었지만 로텐바움은 여러모로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다만 장점만큼 단점도 뚜렷했다는 거. 앞에서 좋은 점, 인상적인 점은 충분히 얘기했으니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 두 가지만 적고 마무리하겠다. 먼저 첫 번째. 과다한 정보로 인한 피로감 유발. 도시재생과 독립건축이라는 가치, 60년대 알자스-로렌 지방의 집을 표방한 컨셉, 유서 깊은 각종 빈티지 가구와 희귀한 음반 및 서적까지. 여기엔 신기하고 멋진 것들이 가득한 만큼 새롭게 받아들여야 할 정보가 엄청 많다. 심지어 공간 특성상 지켜야 할 유의사항이나 엄격한 금지사항도 많아서 (그리고 그게 여기저기 글로 붙어 있어서) 그냥 지나칠 수도 없다. 이런 요소들을 일일이 보고 읽고 만져보고 생각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신선하고 재밌는 경험일 거다. 하지만 편안한 휴식을 숙소의 최우선 기준으로 여기는 이에게는 너무 부담스럽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여기는 어디까지나 숙소이지 헤비 컬렉터의 개인 아카이브 혹은 아트 갤러리가 아니니까. 투숙객의 쉼과 이야기와 추억이 충분히 머물 여백이, 이곳을 기획하고 만든 이의 야심과 취향과 설명으로 미리 채워져 버렸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1400_retouched_-19

두 번째는 실질적으로 불편한 문제들. 특히 창문 밖이 은근히 신경 쓰인다. 외부 담장은 맘만 먹으면 쉽게 넘을 수 있는 높이인데, 다이닝룸의 통창은 블라인드가 설치돼 있지 않다. 만에 하나 누군가 담을 넘어 정원까지 들어온다면 적어도 다이닝룸과 부엌은 들여다보일 수밖에 없는 구조. 침실이나 화장실이 아니라 해도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만큼 민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오해는 없으시길. 다이닝룸을 제외하고는 모든 창에 블라인드가 있고, 철제 대문 외에도 튼튼한 나무 소재 현관문만 두 개다. 보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400_retouched_-8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은 이 근사한 숙소를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약간의 아쉬움이나 불편함을 상쇄시켜주는, 또 하나의 색다른 여행 경험이 되어줄 테니까. 판단은 한 번 묵어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아, 숙소가 워낙 넓은 만큼 1-2인보다는 3-4인 정도의 규모로 예약할 것을 권한다. 비용 면에서도 더 합리적이고, 즐길 거리가 풍성한 공간을 낭비 없이 만끽하기 좋을 것이다.

로텐바움 Roten Baum

About Author
김정현

라이프스타일 잡지부터 토크 프로그램까지, 분야 안 가리는 프리랜스 콘텐츠 에디터. 멋있는 사람과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할 때 제일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