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B다. 기름 한 방울로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 하더라. 씨름에서 출시한 ‘화유’ 이야기다. 씨름? 생소한 브랜드겠지만 사실 씨름을 만든 브랜드는 신생 회사가 아니다. 1998년부터 각종 소스류, 냉동식품 등을 만든 식품회사 ‘시아스’에서 새롭게 출시한 브랜드다. 시아스는 주로 대용량 소스를 팔았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나마 ‘아, 그게 시아스에서 만든 거야?’라고 할 만한 것은 홈플러스의 햅쌀밥이나 노브랜드의 각종 소스 정도.
시아스 관계자의 6년 전 인터뷰를 읽어보니 “브랜드가 일반 소비자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는 내용이 있다. 브랜드 홍보나 마케팅에 대한 고민을 있다고 했는데, 지난 8월에 출시한 씨름은 바로 그 고민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었다.
우선 디자인부터 보자. 제품 전면에는 단원 김홍도의 <씨름>을 패러디한 일러스트가 있다. 멋진 운동화를 신고, 오른손에는 씨름 제품을 손에 걸고 있다. 중화요리사가 웍질을 할 때 재료들이 이리저리 뒤섞이는 모습이 마치 모래 위에서 뒹구는 선수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씨름으로 지었다고 한다. 브랜드 스토리와 디자인은 좋지만, 브랜드명이 보통명사라 검색이 어려운 건 아쉬운 부분이다.
내가 구매한 제품은 불맛이 나는 기름 ‘화유’, 파 향이 나는 ‘파유’ 이렇게 두 가지다. 씨름에서는 향미유 외에 김치볶음밥, 제육볶음밥, 김치치즈주먹밥 등도 판매하고 있으나 내가 궁금한 건 화유, 파유의 성능이기 때문에 다른 제품은 주문하지 않았다.
집에서 파기름을 내 본 적은 없지만 귀찮은 과정이라는 건 알고 있다. 원래 파기름을 내기 위해서는 식용유를 두르고 파가 타지 않도록 잘 관찰해야 하는데, 그 귀찮은 과정을 파유 하나로 생략할 수 있다면 이건 정말 꿀템이다.
처음으로 해본 메뉴는 베이컨 달걀 볶음밥. 프라이팬에 파유를 두르고 베이컨, 즉석밥, 달걀을 볶았다. 간단한 요리여서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제품을 개봉했을 때는 파 향이 조금 난다 싶었는데, 요리를 하고 나니 파 향의 존재감은 줄어들었다. 은은하다고 표현하면 맞을 것 같다. 파유는 다른 향을 서포터하는 역할로 봐야 할 것 같고, 파유 하나로 요리의 맛에 큰 영향을 미치기엔 힘들다. 볶음요리를 할 때 식용유, 올리브유 대용으로 쓰기에 좋겠다.
파유로 한 번 볶은 요리에 화유를 추가로 넣으니 마침내 화려한 불맛이 났다. 화유를 넣자마자 볶음밥이 붉게 변했는데, 색깔만 새빨갛고 그렇게 매운맛이 나는 건 아니었다. 짬뽕면에 들어 있는 유성스프 맛이랄까. 파유와 달리 화유는 요리의 맛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음식의 장르를 중화풍으로 바꿔버린다. 간단하고 효과적이다.
그래서 바로 시도를 해본 게 CU에서 산 ‘고기 듬뿍 불고기 백반 도시락’이다. 편의점 알바 시절, 폐기 직전의 도시락과 삼각김밥을 챙겨와 집에서 볶아 먹곤 했다. 폐기 도시락을 먹었다니, 애잔해 보이지만 나름 풍족한 식사였다. 편의점 도시락에 들어가는 음식은 기본적으로 자극적이고 짠 편이라 별도의 간을 하지 않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평범한 불고기 백반이 화유를 만나면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다.
밥에 수분이 많아서인지 볶음밥을 하기에 적합한 상태는 아니었다. 한 알 한 알 기름으로 코팅하는 중국식 볶음밥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서로 엉겨붙으며 실패했다.
이번에도 마지막 단계에 화유를 몇 스푼 첨가하니 맛이 확 달라졌다. 내가 만든 요리에 이런 평가를 하는 게 부끄럽지만, 편의점 도시락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음식이었다. 그렇다고 식당에서 파는 요리 같다는 얘기는 아니고, 레벨이 1 정도 오른 느낌.
요리는 맛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조리를 하고, 세팅을 하는지도 정말 중요하다. 편의점 도시락을 먹고 심리적 만족을 느끼기 힘든 이유는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게 유일한 조리 과정이고, 가벼운 플라스틱 접시와 일회용 수저를 쓰기 때문이다. 만약 언젠가 집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게 된다면 김치나 김을 넣고 간단하게 볶기라도 해보자. 심리적 허기를 채울 수 있을 거다.
가장 기대했던 조합은 짜파게티와 화유다. 짜파게티를 완성한 후, 마지막 단계에 화유를 세 스푼 첨가했다. 에디터H는 이 짜파게티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 맛은 사천 짜파게티의 상위호환”. 나도 동의한다. 시중에 판매하는 사천 짜파게티에도 비슷한 소스가 들어있지만, 별첨스프의 양이 넉넉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화유가 있으면 이젠 그런 걱정 없다.
불맛주의자들이 있다. “불맛이 없다”, “불맛이 부족하다”, “불맛이 없어서 아쉽다”. 불맛 만능설 같은 건 믿지 말자. 모든 볶음요리에 불맛이 꼭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불맛이 가미된다고 모든 음식이 다 맛있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불맛이 기존 음식이 가진 맛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러니 화유는 아주 가끔, 중화풍의 요리가 생각날 때 시도하는 걸 추천한다. 매운맛이 나는 볶음 요리라면 충분히 어울릴 것 같다.
오늘의 결론. 파유는 딱히 없어도 될 것 같고, 화유는 사두면 쓸모가 많을 것 같다. 사실 시아스에서는 씨름을 런칭하기 전부터 비슷한 제품을 판매했다. 패키지 디자인은 다르지만 성분은 같은 고추기름, 파 기름이다. 가격도 동일한 씨름보다 약 2,000원 정도 더 저렴하니 마음에 드는 것으로 구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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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