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에디터H입니다. 지난밤 애플이 온라인을 통해 이벤트를 열고 신제품을 공개했습니다. 이 회사는 가을을 참 좋아하죠. 아무래도 수금의 계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신제품을 우르르 쏟아내고 우리 반응을 엿보다가, 돈을 뜯어가니까요. 이 정도면 과일 이름을 딴 깡패나 다름없죠. 올해도 아이폰13에 애플워치 시리즈7, 아이패드 미니 6세대까지 굵직한 제품이 연이어 출시됐지만 오늘을 위한 빌드업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거야말로 게임 체인저죠. 새벽 2시에 맥북 화면 앞에 앉아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이벤트를 보며 얼마나 설레고 재밌던지.
홈팟 미니와 에어팟 3세대 같은 깜찍한 제품들도 공개됐지만, 오늘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제품은 오직 하나(어쩌면 둘), 새로운 맥북 프로입니다. 그리고 이번 맥북 프로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M1 Pro’와 ‘M1 Max’ 칩셋이죠.
📌M1 프로세서가 그렇게 대박이었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잠깐 시간을 1년 거슬러 올라가볼까요. M1 프로세서에 대해 통달한 분이라면 이 챕터는 지나가셔도 좋습니다. 2020년 6월, 팀 쿡은 WWDC 키노트를 통해 앞으로 2년 안에 모든 맥 기반을 ‘애플 실리콘’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애플 실리콘은 애플이 직접 설계한 칩셋의 통칭입니다. 애플 실리콘의 첫 칩셋이 ‘M1’이고요. 2020년 당시에는 애플이 판매하는 모든 PC 라인업에 인텔 프로세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인텔과 작별하고 독립적으로 맥 생태계를 꾸려가겠다고 선언한거죠. 물론 단순히 인텔과의 작별이라기 보다는 굉장히 오랫동안 기존 PC 시장을 주름잡았던 x86 아키텍처를 대체하겠다는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x86 진영의 반대라고 할 수 있는 ARM 기반으로 칩을 만들게 되죠. 두 진영은 캐릭터가 많이 다릅니다. x86은 PC를 위한 고성능 아키텍처입니다. 높은 성능을 목표로 발전해왔으며, 전력소모와 발열이라는 약점이 있죠. ARM은 고성능보다는 저전력 설계를 기반으로 모바일에서 주로 사용해왔습니다. 실제로 애플 역시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모바일 기기에 들어가는 칩셋을 ARM 아키텍처 기반으로 만들어왔고요.
그러니까 애플이 ARM 기반으로 M1 프로세서를 만들었다는 건, 어떻게 보면 스마트폰에 들어가던 설계 방식의 프로세서를 PC에 넣었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작년 11월에 M1을 탑재한 첫 맥북 에어와 맥북 프로, 맥 미니가 나왔을 때 일부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ARM 기반의 노트북 따위, 제대로된 성능을 낼 수 없다면서 말이죠. 게다가 프로그램 호환성도 문제로 떠올랐고요.
x86은 현재까지도 가장 많은 PC에서 사용하는 설계 방식이며, 업계 표준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동안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x86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짠! 하고 등장한 M1 맥은 기존에 설계된 프로그램과는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외계인이나 마찬가지치기 때문에 기존에 인텔 맥에서 멀쩡히 사용하던 프로그램이 돌아가지 않을 상황에 처한 거죠.
그런데 실제로 등장한 M1 맥북 에어를 한 달동안 써보고,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저만 놀란 게 아닐 거예요. 다들 놀랐겠죠. 생각보다 많은 프로그램이 빠르게 M1 최적화를 마쳤고, 지원하지 않는 앱은 일종의 번역기 프로그램인 로제타2를 통해 네이티브 앱처럼 자연스럽게 구동됐습니다(물론 모든 앱이 완벽하게 호환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발열과 소음은 구시대의 유물이 된 것 같았습니다. 배터리가 정말 오래 갔구요. 8GB의 기본 메모리로도 얼마나 가볍게 돌아가는지, 무려 64GB 메모리를 쓰던 지난 세월이 머쓱해질 정도였습니다.
이런 효율성과 성능의 비결은 ‘통합 메모리 구조’ 였습니다. 원래는 CPU와 GPU가 따로 떨어져서 명령어와 데이터를 주고 받으며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각자 자기 몫으로 할당된 메모리를 연산에 사용하죠. 둘 사이에 물리적인 거리가 있기 때문에 데이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비효율성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GPU는 보통 메모리 용량이 적기 때문에 빡센(?) 그래픽 작업을 할때는 버벅이는 현상도 생길 수 있었습니다. M1은 통합 메모리에 CPU, GPU, 뉴럴 엔진 등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메모리를 공유해서 사용하는 셈이죠. CPU와 GPU가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기 때문에, 일감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손실을 줄일 수 있었구요. 결과적으로 통합 메모리 구조는 한정된 리소스 안에서 체감성능을 올릴 수 있는 M1의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분명 윈도우즈 호환성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성공적인 데뷔였죠.
📌 ‘M1 Pro’와 ‘M1 Max’
2년 안에 애플 실리콘으로 모두 전환하겠다던 애플의 계획 중 딱 1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1년이 남았죠. 그리고 타이밍 좋게 M1 패밀리의 첫 프로급 칩이 등장했습니다. 사실은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M1X라는 이름의 칩이 나올 거라 예상했는데요. 막상 공개된 걸 보니 M1 Pro라는 네이밍이었습니다. 심지어 연이어 등장한 두 번째 프로급 칩은 더 강력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M1 Max라는 명칭을 사용했죠. 마치 아이폰이나 에어팟 등의 소비재에 사용하는 네이밍 방식을 프로세서에 차용했다는 게 재밌지 않나요? 그만큼 소비자 입장에서는 Pro와 Max라는 익숙한 이름을 통해 어떤 게 더 고성능 칩인지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애플이 M1의 마케팅에 얼마나 적극적인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M1 Pro는 통합 메모리 구조를 가져가며, 그 아키텍처를 확장했습니다. 수치적으로도 성능 향상이 쉽게 와닿습니다. M1의 2배 이상인 337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했습니다. 새로운 10코어 CPU는 8개의 고성능 코어와 2개의 고효율 코어로 구성되어, M1 대비 최대 70% 빨라진 CPU 속도를 구현했습니다. GPU 성능의 향상은 더 드라마틱합니다. 최대 16코어 GPU를 지원하며, M1 대비 2배 빠르고, 특정하진 않았지만 최신 8코어 PC 노트북 칩의 통합 그래픽 대비 3배 빠른 속도를 보여준다고 하네요. 또한 최대 32GB의 통합 메모리와 최대 200GB/s의 메모리 대역폭을 지원합니다. 메모리 대역폭은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명령어와 데이터가 CPU로 이동하는 길의 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길이 넓어지면 그만큼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데이터와 명령어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이 모든 변화가 GPU 성능에 큰 변화를 줄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에는 적은 용량의 메모리를 사용하던 GPU가 통합 메모리 구조에서 최대 32GB라는 어마어마한 메모리를 쓸 수 있게 되니까요.
M1 Max는 현재 공개된 애플 칩셋 중 물리적인 크기도 Max라고 합니다. 무려 570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했는데, 이건 M1 Pro와 비교해도 70% 더 많은 수준이죠. 최대 400GB/s의 메모리 대역폭으로 M1의 6배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메모리 인터페이스가 더 넓어진 덕분에 M1 Max에서만 최대 64GB의 통합 메모리로 구성 가능합니다. CPU는 M1 Pro와 동일한 10코어지만, GPU는 M1 Pro의 2배인 최대 32코어를 탑재했습니다.
수치상으로 확인했을 때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도, 전력 소비량은 외장 GPU를 탑재한 프로급 노트북 대비 40% 가량 적게 소모된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프로 노트북용 칩이라고 외치는 애플의 말이 허세는 아닌 것 같네요.
📌 14인치 맥북 프로와 16인치 맥북 프로
어려운 얘기가 길었습니다. 이제 좀 더 손에 닿는 제품 이야기로 들어가볼까요. 새로운 맥북 프로는 14인치 제품과 16인치 모델로 출시됩니다. 디자인은 기존과 조금 다른 느낌으로 둥글게 다듬어졌습니다. 사실은 크기 별로 프로세서 옵션에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기존에도 13인치 맥북 프로와 16인치 맥북 프로의 인텔 CPU 옵션이 달랐던 것처럼요.
그런데 2021년형 맥북 프로에서는 14인치 모델과 16인치 모델의 옵션이 동일합니다. 둘다 M1 Pro와 M1 Max 칩 중 선택할 수 있으며, CPU와 GPU의 최대 코어, 최대 메모리 용량, 최대 저장장치… 모두 동일하네요. 이번엔 정말 원하는 ‘사이즈’부터 고르면 된다는 이야깁니다.
화면에서는 달라진 점이 두드러집니다. 베젤을 드라마틱하게 줄이고, 화면 영역을 키우면서 카메라 좌우 영역까지 디스플레이가 들어찼습니다. 그 결과 맥북에도 노치 디스플레이가 생겼습니다. 처음엔 몹시 당황스러웠는데, 애플이 공개한 영상과 사진을 계속 보니 나쁘지 않습니다. 어차피 화면 최상단은 작업바 영역으로 사용하고, 기존보다 세로가 길어진 비율이라 영상물을 전체 화면으로 감상할 때도 노치게 걸릴 일은 없어 보입니다.
아이패드 프로 12.9 모델에 먼저 적용되었던 미니 LED의 등장도 새롭습니다. 덕분에 최대 500니트의 밝기를 유지하던 맥북 프로의 화면이 전체화면 지속 밝기 최대 1000니트로 어마어마하게 밝아졌습니다. HDR 피크 밝기는 1600니트에 달하고, 명암비는 100만:1입니다. 신형 아이패드 프로의 스펙과 동일하죠. 반가운 소식인 동시에 염려도 밀려옵니다. 같은 방식이라면 아이패드 프로 12.9 모델에서 문제가 되었던 블루밍 현상이나 녹테 현상이 그대로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앞서 ARM 기반의 프로세서가 전력 효율에서 유리하다고 설명드렸었죠. M1 칩셋의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이번 신제품에서도 배터리 사용 시간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기존 인텔 프로세서 맥북 프로 16인치와 신형 맥북 프로 16인치를 비교했을 때, 무선 인터넷 사용 시간 기준으로 3시간 늘어난 최대 14시간을 지원합니다. 애플 TV 앱에서 동영상 재생 시간은 최대 11시간에서 최대 21시간으로 비약적으로 늘어났구요.
키보드 역시 완전히 바뀐 모습인데, 이제는 터치바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모습입니다. 터치바 조작을 혼자서 쓸쓸하게 좋아하던 저는 마음이 조금 허전하네요. 애플은 왜 항상 줬다가 적응하면 뺏어갈까요?
희소식도 있습니다. 오히려 이걸 더 반길 사용자들이 많을 거예요. 신형 맥북 프로의 포트 구성이 다채로워졌거든요. USB-C 포트 외에는 모든 것을 일절 금하던 맥북에 HDMI 포트와 SDXC 카드 슬롯이 자리했습니다. 세상에! 물론 썬더볼트4를 지원하는 USB-C 포트도 빠지지 않고 3개나 들어갔습니다. 여기에 맥세이프 충전 포트까지 부활했으니 정말 놀랄 일이죠. 애플이 뺏었다가 다시 주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은데,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메라부터 오디오, 포트 구성까지 모든 게 좋아졌는데 단 하나의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는 첫 M1 맥북 에어를 사용하며, 인텔 기반으로 설계되었던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한 셈이니 M1용으로 완전히 새롭게 설계된 맥북이 나온다면 휴대성이 훨씬 좋아질 것이 틀림없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배터리 효율이나 팬 설계, 통합 구조 등등 무게를 들어낼 수 있을 만한 요소가 가득해보였거든요.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16인치 맥북 프로를 기준으로 했을 때 2kg에서 2.1kg을 오히려 무게가 늘어났습니다. 물론 실제 화면 크기가 16.2인치인 만큼 디스플레이도 커졌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휴대성에서도 굉장한 차이를 보여주리라 기대한 건 저의 욕심일까요?
📌 선택의 시간
몇 가지 불만도 털어놨지만, 역대 어떤 맥북 신제품을 볼 때보다 두근거리고 설렜습니다. M1 Pro와 M1 Max가 프로들이 작업하는 방식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단순히 “예전 맥북 프로보다 좋아졌어!” 수준이 아니니까요. M1 Pro는 최대 2대의 Pro Display XDR을 연결할 수 있으며, M1 Max로는 최대 3대의 Pro Display XDR과 1대의 4K TV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들리지만 한 개의 노트북에서 7,500만 개 이상의 픽셀을 구현하는 거죠. 또, M1 Max의 새로운 미디어 엔진으로 4K ProRes 영상 최대 30개, 또는 8K ProRes 영상 최대 7개를 파이널컷 프로에서 편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애프터버너를 설치한 28모어 맥 프로를 웃도는 처리량입니다. 비현실적이지 않나요? 호들갑이 길었던 것 같지만, 그 만큼 기념비적인 제품입니다.
이제 저의 몫은 애플의 여우같은 옵션 플레이에서 최선의 조합을 찾아내는 길입니다. 이번엔 14인치와 16인치 모델 사이의 스펙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화면 크기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네요. 그 다음에는 코어 수와 통합 메모리, SSD를 놓고 예산 안에서 나 자신과의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신제품을 직접 만나본 뒤에 리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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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