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디자인·건축 글을 쓰는 전종현이다. 얼마 전에 반가운 연락이 왔다. 요즘 주가 폭등 중인 태오양 스튜디오의 양태오 디자이너(@teoyang)가 책 한 권을 선물로 준 것이다. 여러 행사에서 자주 마주치다가 2019년에는 인터뷰까지 한 인연이 있던 터라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계속 내 눈길을 끌어왔다. 요 몇 년 사이에 정말 굵직한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내놓는 모습에 탄성을 지르기도 했는데, 그가 선물한 책 이름은 파이돈 프레스Phaidon Press에서 나온 『바이 디자인BY DESIGN』. 파이돈 프레스는 세계 3대 아트 전문 출판사로 워낙 명성이 높고, 특히 자체적인 기획에 따라 전 세계 디자인의 흐름과 주요한 디자이너들을 묶어서 주기적으로 책을 발간하기도 한다. 이번 『바이 디자인』에서는 세계 최고의 동시대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100곳을 뽑았는데 한국에서 유일하게 태오양 스튜디오가 선발된 것이다.
[파이돈 프레스에서 출간한 『바이 디자인』]
90명의 심사위원단이 추천한 스튜디오를 2~3년간 유심히 보면서 100개를 추려내는 데도 보통이 아닌지라 그 결과물인 100대 리스트는 객관성이 담보된, 믿을 만한 프리미엄 리포트라 할 만하다. 실제 다른 디자인 스튜디오를 찾아보니 저번에 소개한 책 『더 터치』를 만든 덴마크의 놈 아키텍츠를 비롯해 홍콩을 대표하는 럭셔리 인테리어 회사인 앙드레 푸 스튜디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중국 최고의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네리&후,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이 야심 차게 오픈했던 레스케이프 호텔의 인테리어를 맡았던 스튜디오 자크 가르시아, 이미 최고의 자리를 획득한 디모레스튜디오 등 정말 내로라하는 글로벌 스튜디오가 포진해있었다. 알파벳 순서로 소개된 책에서 태오양 스튜디오 바로 전에 포진한 스튜디오만 해도 야부 푸셀버그다. 캐나다의 대표적인 스타 디자이너 듀오로 지난 6월 오픈한 파리 중심부의 새로운 랜드마크인 사마리텐 퐁 뇌프 파리 백화점 내부 인테리어를 맡은 바 있다.
이런 대단한 이름들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에 손뼉을 가득 쳐주고 싶은데, 공간의 기획과 연출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기에 월드 클래스에 속하는 인테리어 스튜디오가 한국에 꼭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인 것 같다. 공간에 대한 투자가 고도화되고 있는 지금 매번 외국에 SOS를 칠 순 없으니까 말이다. 특히 태오양 스튜디오가 선정된 이유에는 한국성을 보편적으로 해석한 면이 빠지지 않는다.
[태오양 스튜디오를 이끄는 양태오 디자이너]
“양태오는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 세계적으로 환영받는 독창적이고 현대적인 ‘한국의 미학’을 만들며 전 세계 공간의 다양성에 기여했다. 그는 과거를 현재로 옮기는 데 탁월하다. 한국 전통문화에서 힌트를 얻어 현대적인 맥락으로 잘 디자인한 공간에는 그의 모토인 ‘미래 속 과거’가 잘 표현돼 있다. 현대와 전통을 혼합하는 그만의 접근 방식에서 비롯된 결과다.” – 파이돈 프레스 –
이미 업계를 넘어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셀럽인지라 양태오 디자이너에 대한 설명은 크게 필요 없을 것 같다. 대신 이름만 자주 듣고 작업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2020년, 2021년 한국에서 진행한 근작 중 흥미로운 작업 5개를 뽑아 사진 위주로 소개하려고 한다. 사진으로 느끼는 그의 작업은 무척 명징한 표정을 가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심윤석 포토그래퍼가 그의 모든 작업을 일관성 있게 기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록의 중요성을 잘 아는 양태오 디자이너가 포트폴리오로 쌓은 결과를 함께 보며 기분 좋은 영감을 공유했으면 좋겠다.
[1]
드고네이 한국 컬렉션, 2020
영국을 대표하는 실크 벽지 브랜드인 드고네이De Gournay는 모든 작업을 장인의 수작업에 의지해 만든다. 작은 방 하나를 채우는 데 드는 비용만 5000만 원 정도라, 드고네이 벽지의 구매자는 대체로 부호들이며, 이사할 때 벽지를 떼어가는 거로도 유명하다. 기존에 중국, 일본 컬렉션만 존재하고 한국 컬렉션으로는 제대로 된 벽지 디자인이 없는 상황에서 양태오 디자이너가 드고네이의 첫 한국 컬렉션을 의뢰받게 됐다. 그가 고심 끝에 선택한 주제는 책가도와 궁궐도. ‘한국의 정원’인 창덕궁 화계는 궁중화로, 책거리 문화는 민화로 디자인했다. 드고네이와 협업한 한국 컬렉션은 파리의 디자인 거리로 불리는 제르맹 데 프레에 위치한 드고네이 쇼룸에 전시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가득 끌었다고.
[2]
국립경주박물관 로비 리노베이션, 2020
국립경주박물관은 천년왕국 신라의 찬란한 유물이 모여있는 대표적인 국립박물관 중 하나다. 양태오 디자이너는 국립경주박물관의 신라역사관과 신라미술관 두 곳의 로비를 리노베이션하면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로비 공간을 극적으로 탈바꿈했다. 그중 가장 참신한 발상은 로비에 실제 유물을 안전유리 없이 그대로 노출해 배치한 것이다. 그는 코로나 시대 박물관 로비는 새로운 여행 공간으로서 가치를 더해간다면서 지식의 공간을 넘어 휴식을 주는 감성적인 공간을 위해 유물을 보호하는 유리를 벗겨냈다고. 유물을 만지진 못하지만, 유리를 통과하지 않는 사진을 찍으며 영감과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유물이 혹시 상하진 않냐고?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켜보며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3]
국제갤러리 내부 리노베이션, 2020
국내를 대표하는 갤러리 중 하나인 국제갤러리는 1987년 현재의 삼청동 자리로 이전해 총 세 채의 건물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 가장 먼저 세웠던 K1 본관을 2년 동안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통해 재개관했는데 여기에도 양태오 디자이너가 깊게 참여했다. 2층과 3층, 지하 1층의 인테리어 및 가구, 조명까지 맞춤형으로 구축했는데 세심하게 예술 작품을 큐레이팅한 컬렉터의 집처럼 보이길 원했다고. 2층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과 3층의 웰니스 공간 곳곳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적당한 중용의 아름다움에 여러 예술 작품이 포인트로 작용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여타 갤러리 공간과는 다른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세계적인 건축·디자인 잡지 《월페이퍼》가 주최한 ‘디자인 어워즈 2021’에서 ‘최고의 문화 공간’으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4]
이스턴 에디션, 2021
올해 양태오 디자이너는 ‘이스턴 에디션Eastern Edition’이란 가구 컬렉션을 론칭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겠지만, 동양, 그중에서도 한국성에 관한 디자이너의 감각을 세밀하게 갈아 넣은 작업이다. 이스턴 에디션이 중시하는 콘셉트는 ‘무기교의 기교’다. 의미 없는 장식에서 벗어나 시간의 질주에서도 유연함을 유지할 수 있는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진정성 어린 한국의 미적 태도를 나타내는 데 집중했다. 무기교의 미학에 대해 야나기 무네요시는 작위가 없고 방황이 없어 인간의 기술을 통해 자연을 살린다고 극찬한 바 있다. 이스턴 에디션은 선비의 묵향이 느껴지는 데스크와 의자뿐 아니라 방석을 두 겹 놓은 스툴이나 전통 천으로 만든 소파 등 독특한 시그니처 제품을 내놓았다.
[5]
엘리먼트 바이 엔제리너스, 2021
얼마 전 오픈한 공룡 백화점인 롯데백화점 동탄점에는 엔제리너스와 양태오 디자이너가 함께 구상한 세컨드 브랜드, ‘엘리먼트A’lement 바이 엔제리너스’가 함께 문을 열었다. 엘리먼트는 Angel’s와 Element를 합친 신조어로 백화점 1층 럭셔리 명품 존 중앙부에 위치한다. 양태오 디자이너는 커피, 디저트 등 카페 상품을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술, 공예, 라이프스타일, 친환경 등 이미지와 사회적 가치, 감성을 함께 소비하는 장소로 엘리먼트의 콘셉트를 짰다. 88평 규모의 공간사면의 코너를 일부 막고 삼삼오오 모여 커피와 티를 즐기는데, 그 중심 공간에는 공예 작품들이 모여 있어 마치 오픈 갤러리처럼 예술적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즉 예술적 공간 구성을 통해 높은 브랜드 감성 지수와 가심비가 존재하는 공간을 여러 물성으로 세련되게 펼친, 엔제리너스의 미래를 제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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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디자인, 건축, 예술 관련 글을 기고한다. '중소기업을 전전하며 손기술로 먹고산다'는 사주 아저씨의 말을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