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인테리어 관련 글을 연재하고 있는 필자 남필우다. 기분마저 밝아지는 조명들’, ‘의자와 소파 사이, 라운지체어’에 이은 세 번째 시리즈를 들고 왔다. 연재들이 쌓이면서 꽤나 그럴싸한 아카이빙이 되기를 바라며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빈티지 오디오’다. 인테리어 시리즈로 오디오를 풀기엔 설렘과 동시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 광범위해질 수 있는 주제이기에 오디오의 ‘디자인’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고 이야기해보겠다. 참, 기존 글과 다른 점이 있는데, 한 명의 디자이너 그리고 하나의 브랜드 안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려 한다.
인테리어에 있어서 오디오는 조금 다른 포지션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한다. 소파나 테이블, 책장처럼 공간에 비치되어 있으면 단순한 형태지만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부터는 공간에 새로운 감각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걸 거꾸로 말하면 음악을 틀지 않을 때의 오디오는 다른 가구들과 마찬가지로 공간에서 포인트가 되는 오브제가 되거나 또는 이웃하는 가구들과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인테리어 요소로의 역할을 해줘야 했고, 그렇게 해왔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빈티지 오디오 브랜드라면 ‘Braun’이 아닐까 싶다. SNS이나 온라인상에서 #BRAUN #브라운오디오 #빈티지오디오 등의 해시태그가 달린 콘텐츠가 불과 몇 년 전보다 상당히 많이 많아졌다. 특히 미니멀한 인테리어의 공간이라고 자부하는 공간에는 브라운 오디오들이 한껏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브라운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디터 람스’ 역시 떼어놓을 수 없는 키워드 중의 하나이다. 그도 그럴 것이 디터 람스가 입사한 1955년부터 브랜드 디자인 스타일이 확고해짐과 동시에 대중에게 인기를 얻는 브랜드가 되었기 때문이다.
디터 람스
Dieter Rams
[‘미스터 브라운’이라는 별명을 가진 디터 람스]
1932년 독일의 비스바덴에서 태어난 디터 람스는 23살이란 젊은 나이에 브라운에 합류해서 6년 만에 수석 디자이너가 되었고, 40여 년 동안 브라운에서 대표적인 디자인들을 발표한다. 독일의 바우하우스(예술과 기술의 새로운 통합을 슬로건으로 삼았던 예술대학)의 정신을 계승하는 디자이너로 평가받고 있으며, 실제로 그가 발표한 좋은 디자인 10계명은 현재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이 되고 있다.
[1958년 T3포켓 라디오에서 영향을 받은 애플의 아이팟]
[MUJI CD Player를 디자인한 일본의 산업디자이너 ‘나오토 후카사와’ 역시 디터 람스 디자인에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sgustokdesign]
<디터 람스의 좋은 디자인 10계명>
1. 좋은 디자인은 혁신적이다.
기존 제품을 모방하거나 새로운 디자인 그 자체만을 위해 디자인하지 말 것
2.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유용하게 한다.
디자인의 목적은 제품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디터 람스는 스스로를 ‘디자인 공학자’라 한다.
3. 좋은 디자인은 아름답다.
잘 만들어진 제품은 아름답다.
4. 좋은 디자인은 제품의 이해를 돕는다.
좋은 제품은 설명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제품 스스로 어떤 기능을 갖고 있는지 드러내야 한다.
5. 좋은 디자인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제품은 도구와 같은 것으로 언제나 중립적이어야 한다.
6.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
과시적이거나 있는 그대로 이상의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
7. 좋은 디자인은 오래간다.
단순한 디자인을 통해 제품의 수명이 길어지게 할 것. 환경과 결부되는 일이다.
8. 좋은 디자인은 마지막 디테일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결과다.
“난 언제나 디테일을 사랑했다. 디테일이 품질을 결정짓는 기준이다.” 어떤 요소도 애매하거나 우연적으로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9. 좋은 디자인은 환경을 생각한다.
좋은 디자인은 환경에도 기여한다.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는 계명과 이어진다.
10. 좋은 디자인은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디자인한다.
핵심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은 디자인이다. ‘Less but Better’
디터 람스가 BRAUN에 몸담고 있던 시절 발표되었던 오디오 시리즈를 전부 소개하기엔 너무 벅차다. 그래서 라디오, 턴테이블, 스피커 순으로 최고의 디자인 모델을 하나씩만 소개해볼까 한다. 기준은 너무나 단순하게도 필자의 취향.
[1]
라디오 부문
RT20
Brand – Braun
Designer – Dieter Rams
Model – RT20 Radio
Year – 1961
Size – 234 x 152 x 130mm
[©sgustokdesign]
1961년에 디자인된 라디오 RT20의 인기 비결은 라디오의 기능을 넘어선 오브제의 디자인으로 주변 가구들과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디테일하면서도 간결함을 유지할 수 있는 균형이 돋보인다. 전면에 메탈과 우드 재질의 바디가 서로 이질감 없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느낌을 준다. 이런 게 디자인의 힘이겠지? 사운드 홀과 버튼의 배열은 디자인의 강약을 이리 잘 맞출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을 하게 만든다. 매끈한(?) 디자인과는 달리 따뜻한 진공관 사운드를 들을 수 있으니, 현대에 마주할 수 있는 좋은 빈티지의 요건을 다 갖췄다고 볼 수 있기에 대표 모델로 꼽았다.
[짙은 그레이에 가까운 블랙으로도 출시되었다. ©sgustokdesign]
[진공관 라디오 SK2의 인기도 빼놓을 수 없다. 디터 람스가 입사했던 1955년에 발표한 모델. ©dasprogramm]
[2]
턴테이블 부문
SK4
Brand – Braun
Designer – Dieter Rams, Hans Gugelot
Model – SK4 Turntable
Year – 1956
Size – 241 x 584 x 292 mm
©moma & dasprogramm
투명 아크릴 재질의 상판을 닫은 턴테이블의 모습이 마치 백설 공주가 누워있는 유리관 같아서 ‘백설 공주의 관’이라고 불린다. 1956년 SK4를 선보인 이후 기능과 디자인의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SK5, SK55, SK6 등 시리즈가 나왔다. 턴테이블 기능만 있는 기기들은 앰프와 스피커를 별도로 준비해야 하는데, 그와 다르게 SK시리즈는 턴테이블에 라디오 기능까지 있고 진공관 앰프가 내장되어 있어 ‘올인원’이라고 볼 수 있다.
[아크릴 커버를 열거나 닫아도 회전하고 있는 LP에는 간섭이 없게 설계되었다. ©dasprogramm]
이 시리즈가 근래에 많은 사람들에게 BRAUN 빈티지 오디오에 대한 관심에 대한 불을 붙인 모델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에 처음 선보였을 때에도 심플하면서도 디테일감이 살아있는 디자인으로 브라운이 가전 시장에서 성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개인적으로도 BRAUN 오디오들에 관심을 뻗어가게 해준 첫 모델이기도 하기에 턴테이블 대표 모델로 꼽았다.
[스피커와 턴테이블이 가방형태로 합쳐지는 PCV4모델도 추천 리스트 중 하나. ©sgustokdesign]
[LP 수납이 가능해 가구의 역할까지 해버리는 PKG5. ©bricks]
[3]
스피커 부문
L2
Brand – Braun
Designer – Dieter Rams
Model – L2 Loudspraker
Year – 1958
Size – 430 x 720 x 320mm
[요즘 특정 브랜드의 세탁기와 건조기를 보면 L2가 얼핏 연상되기도 한다. ©design-photographs]
1958년도에 디자인된 L2 스피커는 절제미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Less, but better’라는 디터 람스의 표현 그대로다. 바우하우스의 마르셀 브로이어를 연상케하는 금속 스탠드위에 스피커라니… 개인적으로는 오디오를 넘어 오브제로도 완벽한 디자인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독보적인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서 스피커의 대표 모델로 꼽았다.
[LE1 스피커는 애플 아이맥 디자인에 영향을 준것으로 보인다. ©Associated Press]
[4]
베스트 조합 부문
Audio1 + L50
Brand – Braun
Designer – Dieter Rams
Model – Audio1 Turntable + L50 Loudspeaker
Year – 1962(Audio1), 1961(L50)
Size – 165 x 648 x 279 mm (Audio 1), 650 x 360 x 280 mm (L50)
©iainclaridge
이전 ‘라운지체어’ 글에서도 언급되었던 디터 람스의 비초에(Vitsoe)처럼 이 조합도 마치 모듈처럼 너무나 완벽하다. 상단의 오디오 부분을 Audio1모델 외에도 Audio 2, 250, 300, 310 모델들로 조합하기도 하며, 하단의 스피커 역시 L50뿐만 아니라 L60을 조합할 수 있다. 이러한 룩이 완성될 수 있는 이유는 상단 위치한 오디오가 시리즈 외관 사이즈를 똑같이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비초에 모듈 선반과 함께 인테리어하는 빈도가 높다. 디터 람스의 본질적인 디자인 철학을 느낄 수 있는 Hi-Fi시스템인 이 조합을 베스트로 꼽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는 환상의 조합이다.
Braun을 경험할 수 있는 곳
4060 Design Haus
[개인 컬렉터의 공간이지만 뮤지엄 못지않다. ©4060 design haus]
아무래도 빈티지 특성상 전문 판매처라고 규정지어 언급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원하는 모델을 직접 독일 이베이를 통해 들여오거나, 이미 들여온 제품을 구매하는 경로로 크게 볼 수 있는데 오래된 오디오 특성상 수입 오디오 전문수리점의 손을 한번 거쳐야 하기 때문에 특정한 루트를 추천을 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다양한 Braun 오디오의 실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4060 Design Haus’라는 이곳을 방문하는 일이야말로 내게 맞는 오디오를 찾는 첫 순서가 아닐까 싶다.
“4560 Design Haus는 바우하우스의 계보를 잇는 미드 센추리 모던 거장들의 작품들을 비롯하여 ‘디자이너의 디자이너’ 디터 람스 작품들과 브라운(Braun), 애플(Apple) 등 50~90년대 미니멀 디자인 작품들로 구성된 개인 컬렉터의 공간입니다. “ 이 소개문만으로 이미 방문의 이유는 충분해진 것 같다.
본 글에서 충분한 설명이 되지는 못했겠지만, 이 부분을 읽고 있을 때쯤이면 브라운이나 디터 람스에 대해 궁금증이 커졌거나 이미 특정 오디오 모델에 마음을 뺏겼을 거라 감히 예상을 해본다. 뭐 그렇지 않다고 해도 2019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디터 람스>를 추천해본다. 디자인을 넘어선 디터 람스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최근 들어 인테리어적 접근으로만 빈티지 오디오를 구매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는 건 분명하고, Braun이 그 중심에 있는 것도 확실해 보인다. 오디오의 본래 기능은 음향을 내는 기기이기에 단순히 외관의 상태로만 가치가 책정되는 것이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적어도 50년 이상 지나온 오디오의 세월과 사연을 존중하는 빈티지 라이프를 즐기는 문화가 조금은 더 깊어지기를 소망한다.
About Author
남필우
필름 사진 매거진 'hep.'의 편집장.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는 오래된 물건들을 좋아한다. 자칭 실용적 낭만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