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디자인 우선주의자 에디터B다. 새로 산 물건을 자랑할 때면 왜 샀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매번 내가 하는 답은 비슷하다.
“예뻐서 샀는데요?”
사람들에게 디자인이란 전부이기도 하고 일부이기도 하다. 나 같은 사람에겐 아주 중요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지 않겠지. 중요도는 각자 다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구매에 있어서 디자인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 제품의 기능이 상향 평준화될수록 디자인의 가치는 올라갈 수밖에 없고, 이제는 디자인을 덜 본다고는 말해도 안 본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생각해보면 혼수 가구를 구매할 때도 취향이 달라서 문제인 거지, 디자인은 언제나 중요했다.
접시, 조명, 의자처럼 기능보다 디자인이 더 중요한 제품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차이가 성패를 가르는 테크 제품의 영역에서도 디자인은 중요하다.
좋은 디자인이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은 마치 ‘신은 존재하느냐’ 같은 질문처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서 취향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상대적이라고 말하게 된다. 하지만 매번 그런 태도를 취하면 좋은 디자인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내게 ‘좋은 디자인이 뭐냐’고 질문을 한다면 고개를 들어 iF 디자인 어워드를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iF 디자인 어워드는 1953년 독일에서 처음 시작되어 68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디자인 어워드이자 축제다. 동시대에 탄생한 세계 각지의 디자인이 모이기 때문에 뻔하지 않고 매혹적이며 개성있는 디자인을 자랑한다. 오늘은 ‘iF 디자인 어워드 2021’에서 수상한 ‘작품’을 소개하려고 한다. 제품보다는 ‘작품’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물건을 보면 마치 한 편의 전시를 본 듯한 기분이 들 거다. 그럼 시작한다.
[1]
“아름다움을 탑재한 무선 이어폰”
트위그
처음으로 소개할 제품은 오딕트의 무선 이어폰 트위그(TWIG)다. 오딕트라는 브랜드를 처음 들어본 사람도 있을 텐데, 40년 가까이 음향 기기를 제작하고 있는 한국의 크레신이 만든 브랜드로 최근에는 준지(Juun.J)와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등 디자인적으로 마음을 홀리는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최우수상 있고 그 위에 대상이 존재하듯, iF 디자인 어워드에는 ‘iF 골드 어워드’가 있다. 잘한 디자인 중에 더 잘한 디자인을 뽑는 건데, 그 상을 트위그가 받았다. 국내의 작은 브랜드가 7,000여 개의 출품작 중 단 75개만 받을 정도로 치열한 경쟁률을 뚫었다고 생각하면 자랑스러워서 지금 당장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16만 9,000원에 판매 중이다.
이제 디자인을 보자. iF 디자인 어워드의 한 심사위원은 “알루미늄 실린더와 검은색 이어피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건축적 접근과 대비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을 만들어냈다”며 평가를 내렸는데, 나는 ‘건축적 접근과 대비’라는 어려운 표현은 못 하겠고, 그냥 ‘예뻐서 사고 싶다’는 말로 평을 하겠다.
트위그의 디자인은 오딕트의 디자인 가치를 잘 표현하고 있다. 오딕트는 제품이 사용되지 않는 시간을 고려해서 디자인한다.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는 공간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쓰이지 않는 시간의 디자인’도 중요하다는 게 오딕트의 믿음이다.
디자인뿐만이 아니라 오디오 기기로서의 기본 스펙도 좋다. IPX4 인증을 받아 가벼운 비와 생활 방수 정도가 가능하고, 무선 충전, C타입 급속 충전, 전용 앱을 통해 디테일한 사운드 설정도 가능하다.
[2]
“프리츠커상을 기다리는 공청기”
코웨이 노블 공기청정기
두 번째 소개할 수상작은 코웨이 노블 공기청정기다. 이 제품을 보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게 공기청정기라고?’ ‘건축물 같이 생겼네?’
놀랍게도 이건 공기청정기가 맞다. 미세먼지가 유난스러운 한국의 사계절에 맞게 한국엔 많은 종류의 공기청정기가 있다. 그동안 성능은 기본이고 디자인이 우수한 제품을 많이 봤다. 그 제품들이 ‘공기청정기처럼 생겼는데 예쁜 편’이라면, 코웨이 노블 공기청정기는 공기청정기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예쁘게 생겼다. 이렇게 생긴 제품이라면 디뮤지엄 한복판에 놔두어도 사람들이 전시품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진을 찍을지도 모른다.
한 눈에 봐도 건축물을 닮았다. 하지만 두바이나 뉴욕에 있을 것 같은 첨단 빌딩이 아니라 1980년대 지어진 점잖은 건물을 닮았다. 서울역 정문으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서울스퀘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뾰족하고 광택이 나는 건물은 왠지 정 없이 생겼으니까. iF 디자인 어워드에 프리츠커상을 함께 줘야 할 것 같다.
찾아보니 실제로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어서 디자인을 했다고 하더라. 노블이라는 이름처럼 기품 있는 디자인을 자랑한다.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는데, 제품 아래에는 바퀴가 알 듯 모를 듯 숨어 있어서 전체적인 디자인을 훼손하지 않는다. 공기 청정을 하며 움직이는 상단 커버의 동작도 여유롭고 유려하다. 마치 턱시도를 입은 남자가 파트너의 손을 잡고 에스코트하는 느낌이랄까. 이것 또한 사고 싶어서 가격을 찾아보니 100만 원 초반이었다.
[3]
“주연을 꿈꾸는 스피커”
뱅앤올룹슨 베오사운드 밸런스
음악 감상은 내가 하루도 거르지 않는 취미 활동이다. 책 읽기과 영화 감상은 쉽게 거르지만 음악 감상은 빠뜨리지 않는다. 그 정도로 내가 음악을 사랑한다기보다는 우리 삶에 음악이 그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홈파티를 할 때도, 혼자 술을 마실 때도, 방 청소를 할 때도 음악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스피커는 중요하다.
세 번째 소개할 수상작은 뱅앤올룹슨 베오사운드 밸런스다. 베오사운드 밸런스는 전혀 기계적으로 생기지 않아서 어떤 공간에 두어도 조화롭다. ‘밸런스’라는 이름은 균형 잡힌 소리에 대한 의미도 있지만 주변과 잘 어우러진다는 디자인적인 정의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원목과 패브릭 소재를 함께 써서 전자제품들이 가지고 있는 차가운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도 디자인적인 매력이다.
컬러는 베이지와 블랙 두 가지, 소재는 같지만 컬러만 달리했을 때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다는 게 재미있다. 베이지색이 조화롭다면 블랙은 좀 더 자기주장이 강하다. 공간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컬러랄까. 코웨이 노블 공기청정기와 마찬가지로 베오사운드 밸런스 역시 가만히 두었을 때 오브제처럼 보인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마 멸망한 지구에 외계인이 찾아와 베오사운드를 발굴한다면 인테리어 소품쯤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제품은 구석에 두는 것보다는 하이라이트를 받을 수 있게 배치해도 좋을 것 같다. 예전에 박물관에서 달항아리를 다른 작품과 함께 두었을 때는 크게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빈 공간에 홀로 두고 핀 조명을 비추었을 때 인기 폭발했다는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다. 베오사운드 역시 그런 제품 같다. 많은 이들의 주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아름다운 제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4]
“마음의 벽을 낮추는 디자인”
구글 크롬캐스트
네 번째 수상작은 ‘크롬캐스트 위드 구글 TV’다. 크롬캐스트 4세대 제품이다. 디자인을 보기 전에 우선은 크롬캐스트에 대한 설명부터 하자. 크롬캐스트는 일반 모니터나 TV를 스마트하게 만들어주는 제품이다. TV나 모니터에 이 작은 기기를 연결하면 스마트 TV가 되고 스마트 모니터가 된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OTT뿐만 아니라 게임도 큰 화면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데, 가격도 7만 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다. 여전히 저렴한데, 이것도 1세대에 비하면 가격이 많이 오른 거다. 미미한 가격 인상이 분식집 할머니의 가격 정책에 버금간다.
크롬캐스트는 2013년에 1세대를 출시하고 꾸준히 디자인에 변화를 줬으나 솔직히 예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아하진 않았다. 사실 디자인에 힘을 쏟을 필요가 없기도 했다. 나도 ‘모니터 뒤에 꽂아서 안 보이는 제품을 굳이 예쁘게 만들 필요는 없지’ 이런 생각을 했으니까. 그런데 최근에 출시한 4세대 제품을 보면 급격하게 디자인 퀄리티가 좋아졌는데 이제는 리모콘이 들어갔기 때문이 아닐까. 리모콘은 숨기는 제품이 아니니까. 세상 모든 걸 조종할 수 있을 것처럼 버튼이 잔뜩 들어간 전통적인 리모콘 디자인과 달리 필요한 버튼만 직관적으로 들어가 있다. 컬러는 화이트, 파스텔 톤의 핑크, 스카이 블루 세 가지.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면 아들이 아버지에게 비디오 플레이어 사용법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아버지가 이해를 못 하니 아들은 답답해하는데 만약 비디오가 아니라 크롬캐스트였다면 더 어려웠을 거다. 그 정도로 크롬캐스트는 스마트TV, OTT에 대한 기본 배경이 없이는 설명하기가 힘들어서 접근하기 어려운 기기다. 하지만 마카롱을 닮은 귀여운 디자인은 마음의 벽을 허무는 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역시 귀여운 게 최고다.
[5]
“드론의 시대를 끌고 가는 DJI”
DJI 매빅 미니
마지막은 DJI 매빅 미니다. 20세기 초반에 태어난 사람이 21세기로 시간여행을 한다면 어떤 제품을 보고 가장 놀랄까. 스마트폰? 컴퓨터? 나는 드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드론은 소수를 위한 테크 제품이었지만 이제는 영상 촬영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대중적으로 많이 보급되었다. 드론 대중화에는 DJI의 역할이 컸다. 크기는 점점 작게 만들면서 바람을 견딜 힘을 가진 드론을 개발하는 건 쉽지 않으니까. DJI 매빅 미니는 현재 DJI의 경량화 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는 제품이다. DJI 매빅 미니가 수상하게 된 이유 역시 가벼우면서도 힘이 있는 초경량 드론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무게는 239g, 크기는 손바닥에 올라갈 정도의 사이즈다. DJI 매빅 미니의 경우, 디자인이 모든 걸 다 이루었다기보다는 기술이 이루어낸 성취를 디자인이 잘 서포트했다고 볼 수 있다. 수상작 소개는 여기서 끝.
디자인이 뭘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디자인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디자인이 뭐길래 마음을 흔드는 걸까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주변을 둘러보면 디자인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될 거다. 디자인 때문에 구매한 제품이 한두 개가 아닐 테니까. 스마트폰, 휴대폰 케이스, 머그컵, 운동화, 가방 등 셀 수도 없이 많다.
좋은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좋은 걸 많이 보면 데이터베이스는 자연스레 쌓이는 것 같다. 디자인은 100퍼센트 직관의 영역일 것 같지만 결국 직관을 만드는 건 데이터베이스니까. 그래서 iF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을 구경하는 건 재미있기도 하고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오늘 소개한 제품은 전부 테크 제품이었지만 iF 디자인 어워드에는 패키지, 건축, 인테리어,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다른 수상작이 궁금하면 여기서 확인 해볼 수 있다. 앱으로도 볼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여기서 다운 받아 보자. 그럼 이만.
*이 글에는 iF 디자인 어워드의 유료 광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