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1일, 애플이 올해 첫 온라인 이벤트를 열었다. 한국에서 애플 팬으로 살아간다는 건 지난한 장거리 연애와 비슷하다. 16시간의 시차를 뚫고 당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새벽 2시까지 모니터 앞을 지키는 일. 이게 뭐겠는가. 틀림없이 사랑이다. 하지만 모든 연애가 그렇듯 오래된 연인을 바라보는 눈빛에 늘 애정이 샘솟진 않는다. 이번 신제품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그랬다. “널 많이 좋아하고, 헤어질 생각은 아직 없지만, 가끔 이럴 때마다 실망스러워.”
오늘 이야기할 신제품은 에어태그. 보랏빛 아이폰 12부터 7가지 컬러의 아이맥, 역대급 디스플레이를 가진 아이패드 프로가 공개됐던 이벤트에서 가장 작고 가장 저렴한 아이템이었다. 동전만 한 사이즈에 11g의 무게, 개 당 3만 9,000원의 가격. 심지어 4개들이 패키지를 구입하면 훨씬 더 저렴해진다. 라이트닝 케이블도 3만 9,000원에 판매하는 회사치고는 합리적인 가격 정책이 아닌가. 팬들에겐 애플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싼 최신 ‘굿즈’이기도 했다. 그런데 많은 관심 속에 출시된 에어태그에 대한 평가가 어쩐지 좀 심드렁하다. 왜일까.
Q. UWB가 뭔가요?
일단 에어태그가 뭐 하는 물건인지부터 설명해보자. 흔히 ‘스마트 태그’라고 부르는 카테고리의 제품이다. 지갑이나 열쇠 같은 소지품에 스마트 태그를 붙여두면, 연결된 스마트폰에서 위치를 파악해 분실이나 도난을 방지하는 용도로 흔히 활용되고 있다. 당연히 애플이 처음 만들어낸 것은 아니고 후발주자에 가깝다. 가장 유명한 미국의 타일(Tile)을 비롯해 크고 작은 브랜드에서 비슷한 크기의 위치추적기를 출시했던 바 있으니까. 삼성 역시 에어태그보다 먼저 갤럭시 스마트태그를 내놨고, 최근에는 UWB 기술이 추가된 갤럭시 스마트태그+를 출시했다. 삼성과 애플 제품에 대한 기능 비교는 뒤에서 언급할 예정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에어태그나 스마트태그+나 기술적으로는 썩 다를 바가 없는 제품이다. 두 제품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UWB. 울트라 와이드 밴드(Ultra wideband)라고 부르는 무선 기술이다.
울트라 와이드 밴드는 해석하자면 초광대역 무선 기술을 말한다. 기존에 우리가 블루투스나 무선 랜에서 사용하던 주파수 대역에 비해, 매우 넓은 폭의 주파수 대역을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이론상 500Mbps의 고속 전송이 가능한데, 소모 전력은 휴대폰이나 무선 랜에 비해 100분의 1 수준이다. 그러니까 결국 배터리 소모가 거의 없는데도 대용량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얘기다.
또 하나의 특징은 정밀도다. 여태까지 GPS나 블루투스 기반으로 위치를 파악할 때는 ‘이 근처에 있다’라는 대략적인 위치 정보만 알 수 있었다. 소파 쿠션 밑에 깔린 물건이나, 모래사장에 떨어트린 열쇠를 찾을 땐 무용지물이었단 얘기다. 그런데 에어태그는 UWB 기술을 기반으로 U1 칩을 탑재한 아이폰에서 ‘정밀 탐색’ 기능을 제공한다. 화살표로 방향을 표시해주며, 3m, 2m, 1m… 점점 정확한 위치를 찾게 해준다. 오차 범위가 10cm 이내일 만큼 정밀한 기술이기 때문에 여태까지 우리가 사용했던 어떤 무선 기술보다 정확한 위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셈이다. 예를 하나 들자면 야바위 게임 마냥 서로 다른 아이폰과 연결된 에어태그 3개를 나란히 두었을 때, 진짜 ‘내 것’이 무엇인지 구분해 낼 수 있을 정도다(이 영상을 참고하시길).
Q.쓸 만 한가요?
이제부터가 중요한 얘기인데, 기대보다 쓸모가 없었다. 에어태그가 출시된다고 하니 사람들은 저마다의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에어태그를 사서 반려동물에게 달아두면, 산책 중에 행여 놓친다고 해도 어디로 가버렸는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주차장에서 쉽게 주차 자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몇 차례 테스트해본 결과 행복 회로는 서서히 가동을 멈췄다. 에어태그의 UWB 무선 기술이 작동하는 거리가 생각보다 짧았던 것이다. 적어도 에어태그와 아이폰의 거리가 10m 이하로 좁혀져야 원활한 연결이 가능했다. 연결된 상태에서 점점 멀어지면 12m 정도까지는 유지되었지만, 처음부터 10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연결을 시도하면 적어도 6~7m 범위 내로 다가가야 제대로 방향과 거리가 표시되기 시작한다. 심지어 가방 안에 넣어두거나 장애물이 많은 환경에서는 연결성이 더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주차장에서 내 차를 찾기 위해 정밀 탐색 기능을 사용할 때도 거리가 10m 이내로 좁혀져야 방향 안내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게 더 빠르다. 아무래도 자동차처럼 큰 물건을 찾는 용도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지도에서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한 뒤에, 근처에 가서 정밀 탐색 기능을 활용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다. 애석하게도 애플 에어태그의 경우 한국에서는 지도상에서 위치찾기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상세 지도 데이터를 애플이나 구글 같은 해외 서비스에 반출할 수 없는 국내 상황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결국 에어태그를 달아둔 물건을 누군가 훔쳐서 멀리멀리 도망간다면 UWB 기술도 소용없고 도둑놈의 위치를 쫓을 수도 없다. 도둑맞은 물건값에 에어태그 값까지 더해지는 촌극이 벌어질 뿐이다.
대신 에어태그가 달려있는 물건을 분실한 상황에서는 야트막한 희망을 제시한다. ‘분실 모드’를 활성화하면 내 블루투스 범위 내에서 에어태그가 감지되거나 나의 찾기를 통해 위치를 파악했을 땐 알림을 보내준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 ‘나의 찾기’ 기능은 국내에선 유명무실 하기 때문에 열외. 그다음으로는 내 에어태그를 습득한 다른 사용자가 NFC를 지원하는 기기에 에어태그를 접촉했을 경우 미리 설정해둔 내 연락처가 표시되게 하는 기능이 있다. “이 물품을 분실했습니다.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번역기를 돌린 것 같은 메시지와 함께. 하지만 상대방이 이 기능을 모른다면? 분실한 물건값에 3만 9,000원이 또 추가되는 것이다.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했는데, 그렇다고 에어태그가 완전 형편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일정 범위 내에서의 정밀도에는 수차례 테스트해보며 정말 놀랐다. 아이폰을 이리저리 돌리며 방향을 찾다가, 에어태그가 있는 방향을 딱 맞추면 화면이 녹색이 되면서 가벼운 진동이 느껴진다. 그 방향대로 계속 다가가면 점점 진동의 세기가 강해진다. 처음 사용해보는 사람도 다가가는 발걸음에 확신을 주는 직관적인 사용자 환경이다. 0.1m 간격까지 인식해내는 걸 보면 확실히 UWB 기술의 정밀도에 감탄하게 된다.
딱 한 번 정말 쓸모 있게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친한 유튜버인 고나고님과 있을 때였다. 발렛을 맡겨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차 키가 보이질 않는 거다. 때마침 차 키에 에어태그를 달아두었기에 찾기 기능을 사용했더니, 뒤로 2m 가라고 나오더라. 시키는 대로 따라갔더니 차 키는 트렁크 짐에 휩쓸려 들어가 있었다.
삼성 VS 애플
[왼쪽이 삼성 스마트태그+ 오른쪽은 애플 에어태그]
이제는 모두가 좋아하는 시간. 삼성과 애플을 비교할 차례다. 앞서 설명했듯이 삼성 갤럭시 스마트태그+와 애플 에어태그는 동일한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블루투스 5.0과 UWB를 지원하며, 배터리도 동일하게 CR2032를 사용한다. 무게도 비슷하고, 가격도 비슷하다. 실내와 야외에서 연결성을 테스트해봤을 때도 큰 차이는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활용도를 따지자면 삼성 스마트태그+가 훨씬 앞서는 모습이다.
에어태그는 아이폰에서 조작해서 사운드 재생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찌로로롱’하면서 들릴 듯 말 듯한 구슬픈 소리가 들려온다. 반면 갤럭시 스마트태그+는 찾기 기능을 양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 사운드 재생 기능을 사용할 수 있음은 물론, 스마트태그+에 있는 버튼을 이용해 갤럭시 스마트폰에서 벨소리가 울리게 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스마트폰이 보이지 않을 때, 지갑이나 열쇠 같은 소지품에 달아둔 스마트태그+의 버튼을 누르면 벨소리가 울려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태그+는 이 버튼 조작을 기반으로 다양한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SmartThings 앱에서 스마트태그+의 자동화 기능을 설정해두면 꽤 재밌는 것들이 가능해진다. 버튼 조작에 지정된 동작을 설정해두면 SmartThings에 연결된 다른 가전제품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 TV나 조명, 에어컨을 켜고 끌 수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일종의 스마트 스위치처럼 쓸 수 있는 셈이다. 스마트 태그의 역할을 단순히 물건 분실 방지에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갤럭시 스마트태그+의 접근이 조금 더 모범 답안처럼 보인다. 게다가 한국에서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지도에서 위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것도 큰 메리트로 작용할 것.
물론 디자인은 에어태그가 훨씬 아름답다. 여기에 곁들여 구입할 수 있는 화사한 컬러의 다양하고 값비싼 액세서리까지. ‘사는 재미’를 자극하는 면에서는 애플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Q. 그럼 대체 이걸 왜 만든 거죠?
2주 동안 이리 궁리하고, 저리 궁리하며 사용해봤지만 에어태그는 결국 내게 실망만 안겨줬다. 애플은 대체 왜 이런 물건을 만들었을까? 당장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좀 더 장기적인 시나리오를 짜보자.
항간에선 에어태그가 소문만 무성한 ‘애플카’의 초석이라고도 이야기한다. 여기서 애플카는 단순히 자동차 하드웨어를 뜻하는 게 아니다. 애플이 자동차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에 더 가깝다. 만약 애플이 자동차를 만든다면, 그건 여태까지 만들었던 기기와는 전혀 다른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iOS 기기와 Mac OS 기기는 물리적인 제약이 크지 않다. 기기 안에서의 일들만 잘 돌아간다면,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동차는 다르다. 날씨부터 도로 상황, 신호, 함께 달리는 옆 차의 운전 실력까지 모든 것들이 안전의 변수로 작용한다. 특히 현재 자동차 시장의 가장 큰 목표인 ‘자율주행’을 위해서는 내 차는 물론이고 내 주변 차의 움직임까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걸 위해서 차량마다 더 좋은 카메라와 더 많은 센서를 도입하고 있지만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에어태그에 들어간 UWB 기술이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차량 하나하나가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주행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는 인프라가 된다면? 분실물을 찾을 수 있는 건 UWB 기술의 컨셉 중 하나일 뿐이고, 최종적으로는 애플카 생태계의 비료가 될 수도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래서 빠른 공급을 위해 애플 제품치고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판타지 소설 같은 얘기다. 사용자의 정보에 대해 결벽증에 가까울 만큼 엄격한 애플이 이를 어떻게 풀어낼지도 알 수 없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야 대중화되기 시작한 초광대역 무선기술을 기껏 잃어버린 차 키 찾기에 쓰는 것보다는 훨씬 흥미로운 시나리오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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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