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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 당신의 인생과자는 무엇입니까?

안녕, 에디터B다. 60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으며 다이어트를 한 사람이 61일째 처음 입에 대는 것은 티본 스테이크일까, 뿌셔뿌셔일까. 어복쟁반일까, 자갈치일까....
안녕, 에디터B다. 60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으며 다이어트를 한 사람이 61일째 처음…

2021. 04. 21

안녕, 에디터B다. 60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으며 다이어트를 한 사람이 61일째 처음 입에 대는 것은 티본 스테이크일까, 뿌셔뿌셔일까. 어복쟁반일까, 자갈치일까. 나는 후자라고 본다. 과자에는 어떤 고급스러운 음식도 채워주지 못하는 자극적인 맛이 있다(몸에 안 좋은 그 맛). 그래서 과자 좀 먹어본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신의 인생과자는 무엇입니까?’ 질문에 대한 답은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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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디트 에디터B> 닭다리 후라이드 치킨맛

이 과자를 사람에 비유하면 과하게 치장하지 않으며 만나도 만나도 지겹지 않은 친구다. 특이한 컨셉이나 맵고 짠 맛으로 한번에 마음을 빼앗으려 하지 않고, 은은한 단짠과 바삭함으로 어필한다. 손흥민의 화려함보다는 박지성의 우직함이 떠오르는 맛이다. 이름과 생김새도 얼마나 솔직담백한가. 어이없게도 생긴 것도 닭다리, 이름도 닭다리(정확히는 닭다리 후라이드 치킨맛)다. 1988년, 제품명을 정할 때 농심 기획팀의 회의 현장을 상상해본다. “그래 김 대리, 닭다리처럼 생긴 저 제품은 이름은 무엇인가?” “네, 제품 이름은 닭다리로 하겠습니다.” 요즘엔 대용량 버전의 ‘닭다리 너겟’도 출시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인데, 치킨을 먹을 때도 순살보다는 뼈를 선호하는 과자인으로서 너겟은 인정할 수 없다. 나같은 닭다리 근본주의자는 자고로 치킨이란 뼈를 잡고 먹어야 제맛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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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ro 조향사 전아론> 포카칩 어니언맛

30대가 넘어가며 봉지 과자를 먹는 횟수가 급격히 줄었다. 애주가인 나에게 이제 남은 건, 단독으로도 ‘안주’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감자칩 뿐이다. 그 중 1등은 단연 포카칩. 우리네 입맛에 딱 맞춘 듯 양파의 향을 은은하게 입힌 초카칩(초록색 포카칩)이다. 감자의 맛을 가리지 않고, 슬쩍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그 맛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아! 얼마 전에 릴보이와 원슈타인이 인스타그램으로 초카칩VS파카칩 대결을 펼쳤다던데. 파카칩이 초카칩의 적수가…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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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T매거진 에디터 김은아> 쌀로별 김을 만난 라이스칩

‘단짠단짠’, ‘맵느맵느’ 같은 단어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밸런스가 중요하다는 것. 그런 점에서 쌀로별의 ‘김을 만난 라이스칩’은 맥주와 만날 때 완벽한 균형을 보여준다. 파삭, 하고 부서지는 경쾌한 식감, 짭쪼롬하면서도 텁텁하지 않은 끝맛. 라거의 청량감이나 에일의 쌉싸름함, 그 모두와 조화를 이룬다. 바다의 완전식품이라는 김과 한국인의 힘의 원천 쌀이 만났으니 건강에는 또 얼마나 좋겠나(그렇다고 봉지 뒷면을 읽어보는 실수 같은 건 하지 말길). 김 라이스칩과 맥주는 편의점에서 찾을 수 있는 최고의 마리아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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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드저널 에디터 조서형> 오레오

오레오는 자기주장이 강하다. 어디든 주저 않고 자신 있게 나댄다. 두어 개만 먹어도 기분이 싹 달아진다. 머핀, 치즈케이크, 추로스, 와플, 빙수, 셰이크 재료로도 좋다. 오레오는 내게 든든히 쟁여두고픈 생활용품이다. 때가 되면 시즌 한정 오레오가 나오고, 외국에 가면 국가별 오레오가 또 있다. 어떻게 변주를 해도 오레오는 태가 난다. 그러고 보니 발음도 귀엽다. 오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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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 에디터 기명균> 오징어땅콩

오징어땅콩 한 봉지가 있다. 나는 한 번에 2알씩, 동생은 한 번에 1알씩 집어먹는다고 했을 때, 한 봉지에 든 50알 중 나는 몇 알의 땅콩을 먹게 될까? 25알? 32알? 힌트1: 이건 수학문제가 아니다. 힌트2: 나는 ‘오징어땅콩’이 아니라 ‘땅콩’ 개수를 물었다. 정답! 방금 50알이라고 답했다면 왕년에 형누나오빠언니동생과 오징어땅콩 좀 먹어보신 분이리라. 요즘도 난 오징어땅콩을 종종 먹는데, 그때의 그 ‘수상한 땅콩’이 떠올라 포항에 있는 동생에게 카톡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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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디트 에디터H> 촉촉한 초코칩

촉촉한 초코칩? 지금 생각해보면 묘한 이름이다. 히알루론산이 들어간 수분크림도 아니고, 종이 박스에 담겨있는 납작한 과자 따위를 촉촉하다고 홍보하다니. 처음 맛봤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열 두 살 인생 최고의 맛이었다. 씹을 틈도 없이 입에서 사르르 녹아 내렸고, 이따금 씹히는 초코칩의 존재감도 확실했다. 동네 슈퍼에서 샀지만 제과점에서 산 빵처럼 부드러웠다. 한 박스에 여섯 봉다리가 들어있는데, 도저히 멈출 수 없어서 앉은 자리에서 한 박스를 먹어치웠던 기억이 있다. 97년 당시로서는 정말 비싼 과자였기 때문에, 내가 우리집 가계 사정을 위협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했다. 25년이 지나고 이제 이까짓거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됐다. 세상에 귀하다는 디저트는 종류별로 다 먹어보았는데도, 여전히 촉촉한 초코칩의 진득한 맛은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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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딩에그 A&R, 프리랜서 에디터 김정현> 초코틴틴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마트에서 마주칠 때마다 가슴 설레는 인연(이상하게 편의점에는 잘 없다). ‘빈츠’보다는 진하고 ‘다이제’보다는 덜 느끼하다. 임플란티드 키드보다 능수능란하고 최준보다는 덜 느끼한, 초콜릿 비스킷계의 이호창 본부장이랄까. 한 번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6봉지 전부를 해치우니 늘 후회만 반복하는 편. 군것질 좀 줄이려 했는데 오늘도 디에디트 덕분에 가뿐히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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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에디터 김정년> 도리토스 갈비천왕치킨맛

과자 취향은 어린 시절에 결정된다. 옛날에는 500원짜리 동전 하나면, 옥수수를 곱게 빻아 튀긴 과자를 마음껏 사 먹을 수 있었다. 그중 바비큐맛 시즈닝이 발린 과자를 제일 좋아했다. 슈퍼마켓 코인러쉬를 통해 장기학습된 과자취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요즘도 편의점에 가면 짭조름한 시즈닝이 듬뿍 발린 옥수수과자를 집어드니까. 결국 2+1행사를 자주 하는 도리토스 나초과자를 고르고 만다. 양념갈비 간장소스를 베이스로 만든 단짠단짠 나초과자, 갈비천왕치킨맛이 가장 마음에 든다. 캔맥주 4캔에 갈비맛 나초과자 3봉지, 편의점에서 1만 3,000원에 즐기는 나만의 최애픽이다. 맥주랑 함께 먹을 때, 치킨 대용으로 이만한 안주가 없다. 오래된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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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디트 에디터M> 오징어 숏다리

“인생 과자가 뭐예요?” 에디터B에게 이 질문을 들은 그날 밤, 집 앞 편의점에 들렀다. 나한테 그런 게 있었던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맛과 브랜드를 품은 요즘 과자들 앞에서 한껏 쪼그라들어 결국 그날 빈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오징어 숏다리’가 최고다. 그건 과자가 아니잖아? 이렇게 반문한다고 해도 딱히 항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입이 심심해서 들린 편의점 내 손에 들린 검은 비닐 봉다리 속엔 언제나 숏다리가 껴 있었다. 검게 짜부라든 10개(먹기 전 개수를 세 보는데 항상 정확하다)의 다리를 손으로 하나씩 뜯어 먹는다. 정말 위생적인 환경에서 말리긴 한 건지, 근데 왜 이렇게까지 냄새가 나는 건지, 수상한 단맛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다. 양 턱이 뻐근해질 때까지 질겅질겅 씹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냄새나고 못생겼다고 무시하지 말자, 고작 20g에 1,900원이나 하는 고오급 스낵이니까. 아, 내가 숏다리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몸통과 다리 사이를 연결하는 부분이다. 제일 짜고 달고 꼬릿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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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헵매거진 에디터 남필우> 프링글스 오리지널

10살 무렵 외할머니 집에서 처음 먹어본 빨간 통 감자칩은 충격 자체였다. 과자가 오목하게 휘어져있었고, 부스러짐 없이 지통 안에 단정하게 잘 쌓여있었다. 무엇보다 한번 개봉하면 짭조롬한 식감에 중독되어 2~3개 정도를 한 번에 입에 와구와구 넣고 먹게 되는.. (지금은 셀 수 없는 다양한 맛이 출시되어 오히려 오리지널 맛이 심심하게 느껴지지만..) 1999년에 국내 첫 수입되었다고 하는데 그보다 앞선 93년에 먹어볼 수 있었던 건 미군부대 근처에 외할머니 집이 위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운틴 듀도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보다 빠르게 먹어봤다지. 지금과는 다른 볼 빨간 큰 수염 아저씨의 순박한 패키지가 중독적인 짭조름한 과자를 담고 있다는 게 엄청난 반전이었고 충격이었다. ‘세상은 넓을 테고 그만큼 매력적인 과자도 많을 거다’라는 교훈을 심어준 인생 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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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