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디자인·건축 글을 쓰는 전종현이야. 지난 2월 24일 조용하던 여의도가 술렁거렸어.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파크원’에서 미개장 상태였던 백화점과 호텔이 공식적으로 선보였거든. 현재 ‘서울 최대 규모 백화점’ 타이틀을 거머쥔 현대백화점의 ‘더현대 서울’과 프랑스 호텔 기업 아코르 산하의 럭셔리 호텔 브랜드인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이 그 주인공이야.
[파크원 풍경. 중간이 더현대 서울, 오른쪽이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이야. ©현대백화점]
10년 만에 서울에 새로 생긴 백화점이라서 그런지, ‘현대백화점 여의도점’이 아니라 백화점 떼고 여의도 떼고 현대와 서울만 남긴 작명 센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코로나19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이 엄청 몰린 덕분에 더현대 서울에서 첫 6일 동안 발생한 매출만 370억 원이래.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도 2016년 방영한 tvN 드라마 <도깨비>에 캐나다 퀘벡시의 명물인 ‘페어몬트 르 샤또 프롱트낙’이 나와서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고,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로건 리가 머무는 장소로 실제 펜트하우스 룸이 쓰이면서 위드 코로나 시대에 신규 오픈한 호텔이라는 단점을 상쇄하고 첫 장사가 잘 됐나 봐.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야경 렌더링 이미지 © Accor]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은 이미 외관부터 존재감이 엄청나. 건물 정면 지상부터 꼭대기까지 붉은 철제 기둥들이 도열해 있으니 심심한 여의도 스카이라인을 보다 눈이 번쩍 뜨이는 게 당연하지 뭐. 파크원을 설계한 건축가는 영국을 대표하는 거장 리처드 로저스야. 영국의 하이테크 건축 운동을 주도한 그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았고, 영국 왕실에서 실제 귀족 작위를 하사해 공식 명칭은 리버사이드의 로저스 남작이지. 부럽다…절친인 건축가 렌초 피아노와 함께 설계한 파리 퐁피두 센터는 지은 지 반세기가 다 됐는데 아직도 혁신적인 건축의 대표 사례로 꼽히고 있어.
[파리 퐁피두 센터 전경 ©Shutterstock]
그의 건축에서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부분은 밖으로 빠져나온 구조체야. 보통 건물을 지탱하는 구조체와 내장 요소는 잘 보이지 않게 건물 안에 꼭꼭 숨겨놓는데, 그는 오히려 건물 밖으로 꺼내서 색까지 칠하거든. 퐁피두 센터도 그랬고, 이번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도 예외는 아냐. 근데 왜 붉은색일까. 공식 답변에 따르면, 한국의 전통 건축 양식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해. 빨간 단청 색을 가져와서 모서리에 노출된 기둥에 적용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에 적용한 ‘단청 레드’의 모습이랄까…© Accor]
암튼 이런 파격적인 이미지에 유독 놀라거나 실망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페어몬트 호텔을 기대하던 사람들이야. 페어몬트 이름을 쓰는 것에 비해 이질감이 크다는 이유지. 이건 상당히 보편적인 반응일 수도 있어. 왜냐하면 페어몬트의 브랜드 이미지는 중후하고 고풍스러운 면이 강했거든. 페어몬트가 이제껏 걸어온 길이 과연 어떻길래 그럴까? 호텔 전문가가 아니라 조심스럽긴 한데 이번 글에서는 페어몬트 이야기를 조근조근 풀어볼까 해. 흥미진진해서 나 혼자 알기엔 너무 아깝거든!
[페어몬트 호텔&리조트 로고 © Wikipedia]
먼저 페어몬트 호텔의 탄생으로 돌아가 볼게. 1800년대 후반 미국에는 제임스 그레이엄 페어라는 사람이 있었어.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으로 나중에 미국 연방 상원 의원까지 지낸 인물인데, 네바다 은광에 투자해서 벼락같은 행운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 당대 별명이 ‘실버 킹’이었을 정도야.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전망 좋은 언덕배기에 저택을 지으려고 부지를 왕창 매입했는데 금방 하늘나라로 가버렸지 뭐야. 그의 두 딸은 저택 부지에 아버지를 기념하는 호텔을 짓기로 했어.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터라 프랑스어로 ‘산山’을 뜻하는 ‘몬트mont’와 가문 이름인 ‘페어Fair’를 조합해 호텔 이름은 ‘페어몬트Fairmont’라고 정했지.
[은광 산업으로 떼돈을 번 제임스 그레이엄 페어의 초상 © Wikipedia]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현장 © Wikimedia]
호텔 공사를 거의 마무리한 시점인 1906년 4월 18일 새벽, 샌프란시스코에 대지진이 강타했어. 도시 전역을 덮치며 많은 건물이 파괴되고 화재 사고도 엄청났지. 다행히 호텔 건물은 무너지지 않았지만 내부가 완전 엉망이 됐고 화재로 인한 피해도 심해서 얼른 건물을 복구하면서 제대로 완성할 사람을 찾아야 했어. 이 때 발탁된 사람이 건축가 줄리아 모건이야. 백인 남자로 가득한 보수적인 건축계에서 대성공한 전설적인 여성 건축가로 ‘허스트 캐슬’을 만든 장본인이지. 1907년부터 미국건축가협회(AIA)는 건축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에게 최고의 영예를 바치는 의미로 AIA 골드 메달을 수여했는데, 그는 1957년 사망 후 57년이 지난 2014년 골드 메달을 받으면서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상자가 됐어. 비록 직접 설계를 하진 않았지만 이런 건축가가 젊었을 적 노력과 기운을 다해 만든 게 페어몬트 호텔의 시작점인 ‘페어몬트 샌프란시스코’라는 사실이 너무 신기할 따름이야. 잘 되는 건 떡잎부터 다르나봐.
[허스트 캐슬의 실내 수영장 ‘로만 풀Roman Pool’. ‘언론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의뢰한 허스트 캐슬은 응접실 19개, 침실 56개, 욕실 61개를 갖추고 저택 실내와 실외에 거대한 정원, 수영장, 테니스코트, 극장, 심지어 비행기 활주로까지 있었던 초호화 저택이었어. © Shutterstock]
1907년 4월 18일 페어몬트 샌프란시스코가 개관하자 곧 지역의 명물이 됐어. 부유한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사교의 중심이 됐지. 특히 세계사에서 중요한 사건의 배경이 되었는데 바로 1945년이었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움직임이 여기서 열매를 맺었거든. 전 세계 50개국 대표가 6월 26일 호텔 가든룸에 모여서 지난 몇 년간 토의했던 범국가적인 연합의 목적, 회원국, 구조, 평화, 안보, 공조 등을 정리한 문서 초안을 바탕으로 헌장을 작성해 여기에 모두 서명을 했어. 같은 해 10월 24일 헌장이 발효되면서 국제기구가 정식으로 발족됐지.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근한 ‘세계연합(UN)’의 탄생이야.
[페어몬트 신화가 시작된 페어몬트 샌프란시스코 ©CoStar]
문화적으로도 특별한 구석이 있어. ‘토니 베넷’이라고 미국의 전설적인 재즈 가수가 있는데, 1926년 태어나 1945년 가수로 데뷔하고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니까 가수 경력만 75년이야. 20세기에는 슈퍼스타였고, 21세기에는 에이미 와인하우스, 레이디 가가와 함께 호흡을 맞춘 멋진 노년의 신사가 되었지. 그의 인생을 한 방에 바꾼 곳이 바로 페어몬트 샌프란시스코야. 1953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라는 노래가 탄생했는데, 부르기로 한 가수는 공연 때만 부르고 막상 정식 녹음을 하지 않았어. 그러다 흘러 흘러 베넷 할아버지에게 그 존재가 알려졌고 그와 매니저는 1961년 겨울 페어몬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행사 때 이 노래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지. 샌프란시스코 시장 등 유력 인사들이 참석한 행사에서 베넷 할아버지는 처음으로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를 불렀는데 관객 반응이 폭발적이었어. 1962년 정식으로 녹음해서 앨범으로 냈고 미국 전역에서 대히트를 치면서 1963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레코드상’까지 타게 됐지. 그때부터 베넷 할아버지도 날아다니게 됐고, 이 노래는 샌프란시스코를 상징하는 찬가가 됐어.
[토니 베넷과 레이디 가가의 듀엣 ‘The Lady is a Tramp’]
[토니 베넷 할아버지의 초히트곡이자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이 된 노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참, 페어몬트 샌프란시스코는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깊은데, 노태우 전 대통령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1990년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한 곳이래. 그리고 2015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이 호텔 건물을 4억 5000만 달러에 인수했어. 당시 한국 자본이 샌프란시스코 명물의 주인이 됐다고 뉴스에서 계속 이야기하던 기억이 나. 건물은 여전히 페어몬트 샌프란시스코로 운영 중이지.
여러 가지 이야기가 넘치는 페어몬트 샌프란시스코의 성공은 사실 새로운 주인 덕분이었어. 1945년 벤저민 스위그라는 사업가가 호텔을 인수하고 여러 시설들을 채워 넣었거든. 스위그 가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한 페어몬트를 미국의 최고급 호텔 체인으로 만들려고 했어. 여기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게 호텔 체인의 성격이야. 우리가 알고 있는 거대한 호텔 기업들로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힐튼 월드와이드 홀딩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스 그룹, 아코르 등이 있는데, 이 회사들이 자사 브랜드로 운영하는 호텔 부동산을 모두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예를 들어 신세계 센트럴시티에 있는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이나 광화문에 있는 ‘포시즌스 호텔 서울’이 각 건물의 주인이라고 상정하는 거지. 그런 경우 글로벌 호텔 기업이 전 세계에 보유한 부동산의 가치는 대체 얼마일까 계산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는데 아쉽게도 호텔과 건물주는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실제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이 있는 신세계 센트럴시티는 신세계그룹이 소유하고 있고, 포시즌스 호텔 서울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가지고 있어. 건물주가 직접 호텔을 운영하는 것보다 전문적인 글로벌 호텔 기업에게 위탁 경영을 맡기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고, 호텔 기업 입장에서는 도시 요지에 더 많은 객실 수를 확보하는 기회가 되지.
그래서 어떤 호텔이 다른 호텔 브랜드로 바뀌는 경우도 흔해. 서울을 예로 들면, 2004년 ‘W 호텔 워커힐 서울’이 론칭할 때 아시아 최초의 W 호텔이라고 화제가 됐었는데 이제 서울에는 더 이상 W 호텔이 없어. 건물주인 SK네트웍스가 자체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비스타 워커힐 서울’로 이름을 바꿨거든. 얼마 전 폐업한 ‘르메르디앙 서울’(여기 나이트클럽이 바로 그 ‘버닝썬’이야)도 2017년 새롭게 문을 열기 전 20년 동안 ‘리츠-칼튼’ 브랜드를 달고 있었어. 이렇게 글로벌 호텔 기업이 위탁 운영에 주력하기 때문에 지금도 온 세상에서 그 많은 호텔들이 계속 생길 수 있는 거지!
[지금은 비스타 워커힐 호텔로 바뀐 옛 W 호텔 전경 © SK Networks Co., Ltd.]
하지만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호텔 오너는 건물주와 같은 의미였어. 오너 소유의 건물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형태였지. 미국에서 호텔 붐이 일어나자 지금 잘 알려진 거대한 호텔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호텔을 짓고 동시에 자사의 브랜드와 운영 노하우를 활용해 위탁 경영을 하면서 엄청나게 성장했어. 페어몬트는 사세 확장을 위해 신규 호텔을 짓기보다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유서 깊은 독립 호텔을 인수하며 페어몬트 브랜드를 붙이는 걸 선택했지. 그래서 1998년까지도 미국 전역을 통틀어 페어몬트 호텔은 지점이 6개밖에 없었어. 하지만 대부분 페어몬트 샌프란시스코처럼 위명을 가진 최고급 로컬 호텔을 기반으로 삼았기 때문에 페어몬트 하면 고풍스럽고 점잖고 역사성이 느껴지는 브랜드로 인식된 거지.
[1912년 오픈한 보스턴의 문화유산인 ‘페어몬트 코플리 플라자Fairmont Copley Plaza’를 상징하는 로비 ‘피콕 앨리Peacock Alley’ ©Accor]
그런데 현재의 페어몬트 이미지를 만든 건 이 페어몬트 혼자가 아니야. 지금까지 말한 이야기는 페어몬트 역사에서 반쪽에 불과하거든. 나머지 절반의 주인공은 1999년 페어몬트 호텔을 인수한 ‘캐나다 퍼시픽 호텔’이야. 우리에게 익숙한 ‘캐나다 산産’ 페어몬트 호텔의 장본인이기도 하지.
[캐나다 퍼시픽 호텔 로고]
캐나다 퍼시픽 호텔은 원래 ‘캐나다 퍼시픽 철도회사’의 호텔 부서로 시작했어. 1886년부터 모기업이 캐나다 방방곡곡에 깔아놓은 철도 노선을 따라 일련의 호텔을 건설하기 시작했지. 부유층을 유치하기 위해 그들이 내세운 방식 중 하나는 ‘샤또Château’ 스타일의 호텔을 짓는 거였어. 샤또는 프랑스어로 ‘성城’을 의미해. 프랑스 지방에 가면 아담하고 예쁜 고성이 관광 숙소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 스케일을 확 키워서 캐나다 곳곳에 프랑스 고성 느낌의 클래식한 호텔을 장대하게 지은 거지. ‘도깨비 호텔’인 페어몬트 르 샤또 프롱트낙이 샤또 스타일의 전형이야. 청동 지붕과 붉은 벽돌로 지은 프렌치 로마네스크 양식의 외형과 웅장한 내부가 압도적이야.
[캐나다 퍼시픽 호텔을 홍보하는 1942년도 광고물. 지금의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Fairmont Banff Springs를 배경 이미지로 썼어. © UBC Library]
캐나다 퍼시픽 호텔은 1980년대까지 차근차근 호텔 수를 늘려나갔어. 그중에는 샤또 스타일도 있고, 광활한 대자연과 함께 하는 통나무집도 있었어. 중요한 건 호텔 자체가 관광 명소가 됐다는 거야. ‘페어몬트 샤또 레이크 루이스’,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 ‘페어몬트 르 샤또 프롱트낙’, ‘페어몬트 엠프레스’, ‘페어몬트 로얄 요크’, ‘페어몬트 팰리저’ 등은 캐나다에서 내로라하는 호텔이 됐지. 경쟁사들은 ‘페어몬트 재스퍼 파크 로지’, ‘페어몬트 샤또 로리에’ 등을 지었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캐나다 퍼시픽 호텔이 됐어. 1988년 경쟁사를 인수해 캐나다 최대 호텔 기업이 되면서 그들이 지었던 핵심 호텔도 손에 넣었거든.
[페어몬트 샤또 레이크 루이스Fairmont Château Lake Louise ©Accor]
[캐나다 국회의사당(왼쪽)과 마주보는 페어몬트 샤또 로리에Fairmont Château Laurier ©Accor]
[1929년 오픈 당시 대영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페어몬트 로얄 요크Fairmont Royal York © Accor]
캐나다 퍼시픽 호텔이 일구었던 호텔들은 다들 그 수준이 엄청나지만, 두 곳만 간단히 짚고 넘어갈게. 먼저 퀘벡시의 관광명소이자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에 속하는 페어몬트 르 샤또 프롱트낙. 여기는 외형, 규모, 아름다움이 굉장하지만, 역사적인 장소로서의 가치도 있어.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3년 8월, 이곳에서 ‘퀘벡회담’이란 은밀한 모임이 진행됐어. 당시 캐나다 총리의 중재로 연합군의 양대 수장인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과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참석해 초특급 비밀 군사 회의를 가졌지. 당시 나치 독일이 유럽 대륙을 장악한 상태에서 반전을 꾀하려면 프랑스를 수복하는 게 필수였어. 근데 프랑스는 유럽 대륙에 있잖아. 육로로 접근할 방법이 없으니 해안으로 상륙을 시도해야겠다고 결정을 한 거야. 이를 기반으로 그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실행됐지.
[퀘벡시의 아이콘, 페어몬트 르 샤또 프롱트낙Fairmont Le Château Frontenac ©Shutterstock]
[페어몬트 르 샤또 프롱트낙에서 열린 비밀 군사 회담. 아래 중앙에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와 윈스턴 처칠이 보여. ©Accor]
나머지 한 곳은 ‘페어몬트 더 퀸 엘리자베스’. 여긴 다소 평범하지만 문화적인 가치가 있어. 1969년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미국에서는 반전운동이 일어나고 있었어. 이때 비틀스의 멤버인 존 레넌과 행위예술가 오노 요코 커플은 몬트리올에 위치한 이 호텔에서 반전 퍼포먼스를 펼쳤어. ‘베드 인 포 피스Bed-In for Peace’라고 침대 위에서 반전을 외치는 콘셉트로 진행했는데 일주일 동안 침대 위에서 꼬박 먹고 자면서 아예 노래까지 만들어버렸어. 6월 1일 퍼포먼스를 지지하는 예술가들과 기자들을 앞에 두고 침대에서 작사·작곡한 노래인 ‘Give Peace a Chance’를 라이브로 녹음했는데, 존 레넌이 아직 비틀스 멤버일 때 최초로 발매한 첫 번째 싱글이었지. 이 노래는 1970년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떼창을 하면서 반전운동을 상징하는 곡이 되었어.
[페어몬트 더 퀸 엘리자베스 1742호 침대 위에서 ‘Give Peace a Chance’를 녹음하는 존 레넌 ©Joan E. Athey]
이런 역사와 전통의 캐나다 퍼시픽 호텔이 페어몬트를 인수하며 북미 지역의 유수한 럭셔리 호텔 기업으로 도약한 후에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선택을 했지 뭐야. 보통 기업을 인수하면 인수한 쪽 이름이나 브랜드를 피인수 기업에 붙이곤 하는데 여기는 정반대였거든. 2001년 캐나다 퍼시픽 호텔은 100년 넘는 회사 이름을 ‘페어몬트 호텔&리조트’로 바꿔버렸어. 그래서 본사는 캐나다에 있지만 브랜드는 미국 브랜드가 됐고, 미국과 캐나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최고급 호텔들이 페어몬트 이름 아래 재정비되면서 현재 우리가 아는 페어몬트의 브랜드 이미지가 구축된 거지.
[FRHI 로고 ©FRHI]
21세기 들어 업계에서 M&A가 활발해지면서 페어몬트도 합종연횡을 계속하게 돼. 2006년 미국의 부동산 투자사 ‘콜로니 캐피털’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투자사 ‘킹덤 홀딩 컴퍼니’가 공동으로 페어몬트를 인수하면서 합작회사를 만들었어. 그 이름은 ‘페어몬트 래플즈 홀딩스 인터내셔널(FRHI)’. 콜로니 캐피털이 2005년 인수한 호텔 브랜드인 ‘래플즈Raffles’와 ‘스위소텔Swissètel’을 페어몬트와 한 우산 아래 놓은 구조인데, 참고로 래플즈는 싱가포르의 관광명소 ‘래플즈 싱가포르’의 그 ‘래플즈’야. 싱가포르에서 가장 유서 깊은 럭셔리 호텔을 기반으로 확장한 브랜드지.
[칵테일 ‘싱가포르 슬링Singapore Sling’이 탄생한 래플즈 싱가포르Raffles Singapore ©Accor]
킹덤 홀딩 컴퍼니는 중동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알왈리드 빈 타랄 사우디아라비아 왕자가 오너이자 회장으로 있는 회사야. 우리 왕자님은 호텔을 좋아하기로 유명해서 현재 포시즌스 호텔의 최대 주주이고, 존재 자체가 역사인 런던 사보이 호텔과 뉴욕 플라자 호텔의 오너이기도 했어. 무엇보다 왕자님은 페어몬트의 찐팬이었다는 사실! 페어몬트 샌프란시스코 시절부터 이미 지분을 가지고 있었고 공격적으로 확장하길 원했는데 스위그 가문이 캐나다 퍼시픽 호텔에 홀라당 팔아버렸거든. 1995년 뉴욕 플라자 호텔을 인수했을 때 페어몬트에게 위탁 경영을 맡겼고, 런던 사보이 호텔 오너일 때도 페어몬트에 위탁 경영을 맡겼는데 이 정도면 페어몬트 사랑꾼 아닐까 싶어. 참고로 두 호텔 모두 현재 페어몬트가 관리하고 있어.
[알왈리드 빈 타랄Al-Waleed bin Talal 킹덤 홀딩 컴퍼니 회장. 왕자님은 페어몬트를 사랑해… © Bloomberg Finance LP]
든든한 돈줄을 등에 업고 FRHI는 페어몬트, 래플즈 브랜드로 전 세계에 진출하며 사세를 확장했어. 특히 르 로얄 몽소 래플즈 파리, 페어몬트 피스 호텔 상하이는 파리와 상하이, 두 도시의 역사와 함께한 특별한 호텔들이야. 콜로니 캐피털이 자기 지분을 카타르 투자청(QIA) 산하 기관에 팔면서, 중동 기업 둘이 오손도손 FRHI를 경영하다가, 2016년 현 소유주인 아코르가 29억 달러에 회사를 인수하게 됐지. 아코르는 우리에게 ‘노보텔Novotel’, ‘머큐어Mercure’, ‘이비스Ibis’ 등으로 친근한 프랑스 호텔 기업이야. 미국 기업이 대다수인 세계 호텔 시장에서 유일한 글로벌 유럽 기업이기도 해. 유럽에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지.
[아코르가 전개하는 호텔 브랜드 현황. 참고로 반얀 트리는 아코르 소유가 아니라 전략적 파트너 관계야. © Accor]
요즘 서울의 럭셔리 호텔 지형도가 점점 다양해지는 걸 느껴. 아코르의 오리지널 럭셔리 호텔 브랜드인 ‘소피텔Sofitel’이 올 하반기 잠실 석촌호수 옆에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호텔 앤 서비스드 레지던스’란 이름으로 문을 열거든. 게다가 내가 주목하던 브랜드가 드디어 오는 4월 서울 역삼동에서 출격해. 신세계그룹 산하의 조선호텔앤리조트가 메리어트 인터내셔널과 합작한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 럭셔리 컬렉션 호텔’이야.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 럭셔리 컬렉션 호텔’은 옛 르네상스 호텔 부지를 재개발한 센터필드 빌딩에 위치해.]
‘더 럭셔리 컬렉션The Luxury Collection’은 세계 1위 호텔 기업으로 다양한 호텔 브랜드를 가진 매리어트 인터내셔널의 최상급 럭셔리 브랜드 7개에 속하는데 국내 최초로 들어와. 개인적으로 나머지 6개 중 하나인 ‘세인트 레지스St. Regis’가 서울에 생기는 날을 기대하고 있어. 작은 규모로 호화롭게 운영하는 럭셔리 부티크 호텔 브랜드와 종종 비교되거든. 그리고 혹 가능하다면, ‘만다린 오리엔탈Mandarin Oriental’, ‘샹그릴라Shangri-La’, ‘페닌슐라The Peninsula’도! 이 셋은 아시아에서 탄생해 서구에 역진출한 럭셔리 호텔 브랜드야. 이들이 서울에 들어오면 어떤 콘셉트로 모습을 보일지 무척이나 궁금해. 아, 오늘도 너무나 길게 써버렸다…그럼 다음에 또 봐!!
[런던에 진출한 ‘만다린 오리엔탈 하이드 파크Mandarin Oriental Hyde Park’. 저 아름다운 자태… © MOH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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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디자인, 건축, 예술 관련 글을 기고한다. '중소기업을 전전하며 손기술로 먹고산다'는 사주 아저씨의 말을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