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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비가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12월 6일의 덧붙임. 아쉽게도 이 사랑스러운 앱이 저작권을 무시하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 애니메이션의 작화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나빴다. 앱으로라도 화창한...
12월 6일의 덧붙임. 아쉽게도 이 사랑스러운 앱이 저작권을 무시하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

2016. 12. 05

12월 6일의 덧붙임. 아쉽게도 이 사랑스러운 앱이 저작권을 무시하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 애니메이션의 작화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나빴다. 앱으로라도 화창한 세상을 보고 싶었던 우리 마음을 짓밟다니, 정말 나빴어.


주말 사이 갑자기 등장한 사진 보정 앱으로 온 세상이 들썩였다. 내가 빠질 수 없지. 아마 여러분 대부분이 이미 다운로드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 인기차트에 이름을 올린 ‘에버필터(EverFilter)’다.

이 앱의 매력은 단순하다. 모든 평범한 사진을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나 동화책에 나올법한 느낌으로 바꿔준다. 처음 써보면 촌스럽게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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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필터 보정으로 우중충한 도시의 풍경에 따사로운 햇살이 느껴진다. 너무 드라마틱한 변화라 아예 다른 사진처럼 느껴질 정도다. 디테일은 대범하게 뭉개버리고, 컬러는 놀랍도록 강조하며, 하늘은 푸르게 푸르게 색칠해준다. 애니메이션 작화같기도 하고 수채화같기도 하다.

재밌어서 수십 장을 넣고 보정해봤다. 보정 속도가 느린 편이라 인내심이 필요하다. 앱이 불안정해서 사진을 선택하고 보정을 돌리면 5번에 1번은 실패한다. 게임 아이템 강화처럼 복불복이랄까. 마음이 쫄깃해지는게 기대하는 재미가 있다. 원본과 함께 결과물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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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료앱으로 눈을 돌린다면 이것보다 더 근사하게 보정할 수 있는 앱은 많다. 수채화나 유화 필터를 이용해 정말 누군가 그려준 것처럼 만들어주는 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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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필터의 매력은 필터 효과 자체보다는 거짓말처럼 오려붙인 ‘하늘’에 있다. 잿빛 하늘도,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심심한 하늘도 푸른 하늘로 합성해준다. 애니메이션 속 그것처럼 푸른 바탕에 뭉게구름 떠다니는 모습으로. 물론 하늘과 사물의 경계가 완벽하게 표현되진 않지만, 워낙 보정이 과한 앱이라 어물쩍 넘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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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떠나는 곳마다 날씨가 좋지 않았다. 1월에 제주도에 갔을 땐 32년 만의 폭설을 만났다. 비행기가 뜨지 않아 흰 눈속에 갇혀있었지. 이에 굴하지 않고 4월에도 제주도에 갔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비행기가 회항했다. 이처럼 온우주가 제주도에 가지 말라고 외치고 있는데도 9월에 제주도에 또 갔다. 평생 탐라는 처음이라는 에디터M과 함께. 결과는? 보기 좋게 태풍과 비바람을 맞고 왔다. 모두 추억이지만, 해가 쨍쨍한 날씨였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컸다. 특히 제주도에 처음가는 에디터M에게 그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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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에버필터로 거짓말을 꾸며봤다. M, 이게 바로 제주의 맑은 날이야. 기억도 합성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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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 갔을 때도, 뉴욕에 갔을 때도 계속 비가 왔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풍경에 에버필터로 푸른 하늘을 덧붙여본다. 짠, 하고 만들어진 가짜하늘을 보면 기분이 이상하다. 그때의 하늘도 진짜로 맑았던 것처럼 기억을 조작하는 것 같다.

그 날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일어나지 않았던 일을 상상해본다. 소용없는 바람이지만 화면 속에서라도 나빴던 일을 돌이키고 싶어서다. 날씨말고 모든 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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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필터엔 몇 가지 정해진 하늘 패턴이 있어서 사진을 인식한 후에 어울리는 걸 골라 합성해준다. 하늘 주변부에 윤곽선이나 컬러가 희미한 건물이 있으면 구름에 뒤덮이게 되니 주의하자.

사진 보정 후에 달과 별이 그려진 아이콘을 터치하면 ‘밤 버전’을 볼 수 있다. ‘낮 버전’에 비해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덜하다. 야경 사진에는 밤 효과를 입혀 보정해보았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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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한 밤하늘을 그림처럼 표현해준다. 별똥별 떨어지는 효과는 너무 작위적이라 빼고 싶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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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진으로 밤과 낮을 연출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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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사진에는 이 앱이 필요 없다. 정말 맑은 하늘에도 필요 없고. 하지만 우리 인생이 늘 쨍한 하늘처럼 동화 같은 순간만 있지는 않으니까. 다소 우중충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사진에 MSG 같은 에버필터 보정의 힘을 뿌려보자. 험상궂은 날씨도 쨍하고 해가 비추는 마법을 보게 될 거다. 참고로 인물사진에는 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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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