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패션 트렌드에 대해 글을 쓰는 객원 에디터 이예은이다. 앞으로 디에디트에서 패션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해 볼 예정이다.
현재 유럽 몇몇 도시에서는 패션쇼가 한창 열리고 있다. 여느 때와 같이 패션쇼를 보다가 문득 든 의문이 있다. 이런 패션쇼는 대체 누가, 언제 처음 만들었을까? 잠시 역사 이야기를 짧게 하자면, 1860년대 파리에서 활동하던 영국 디자이너 찰스 프레드릭 워스가 고객들을 자신의 아뜰리에로 초대해 마네킹이 아닌 실제 모델에게 옷을 입혀 선보인 것이 패션쇼의 시초다. 그 형태가 점점 발전하여 1918년 유럽의 패션 브랜드들이 일 년에 두 번씩 컬렉션을 선보였고,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패션쇼로 자리 잡았다. 150년 이상 지난 지금도 패션쇼는 여전히 가장 효과적이고, 중요한 홍보 수단이자 사업의 장이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패션쇼에 제동이 걸렸다. 바로 코로나19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의 관객이 가득 찬 패션쇼장 ©Dior]
전 세계 수많은 연예인, 바이어와 미디어 그리고 각종 인플루언서를 불러 모아 수개월에 동안 만든 의상을 선보이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 고객들을 유혹하고 판매를 도모한다. 이게 기존의 패션쇼가 운영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기존 방식은 무용해졌다. 특히나 작년 2월에 열렸던 밀라노 패션위크가 이탈리아발 유럽지역 코로나 감염 확산에 큰 초기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을 모아 성대한 패션 잔치를 여는 건 패션 브랜드 입장에서도 큰 리스크가 된 것이다.
1세기가 넘는 동안 줄곧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패션쇼는 팬데믹이란 위기 상황 속에서 이례적인 변신을 선보였다. 바로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관객 없는 디지털 런웨이다.
[패션쇼를 예고하는 초대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스타들. 왼쪽부터 헨리, 윤아, 이종석 인스타그램.]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의상으로 패션 잔치를 벌인들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그럼 대체 누가 옷을 사주나). 각 브랜드 마케터들은 자신들의 옷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입힌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를 패션위크에 초대하며 미디어의 주목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대신 패션쇼 날짜와 시간이 담긴 초대장을 유명인들에게 보냈다. 수 백만의 팔로우를 거느린 계정에 패션쇼 초대장이 포스팅되자, 많은 사람들이 라이브 방송으로 패션쇼를 보기 시작했다.
패션위크의 라이브 중계는 기존에도 있었지만, 이전까지는 남의 집 잔치를 지켜본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의 패션쇼는 달랐다. 런웨이를 지켜보는 관객이 사라지자 라이브 방송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곧 유일한 관객이 되고, 패션쇼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모든 시청자가 가장 귀한 손님들만 앉을 수 있는 프런트로(패션쇼 가장 앞자리 줄)를 차지하는 게 가능해진 셈이다.
패션 브랜드의 마케팅 방식이 달라진 건 이 뿐만이 아니다. 패션쇼는 물론, 대형 오프라인 행사도 더이상 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찾은 돌파구 역시 소셜 미디어다. SNS를 활용해 새롭고 똑똑한 마케팅 전략을 펼쳐 나갔다.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인스타그램 기능을 활용해 콘텐츠를 만들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 IGTV, 인스타 필터 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학생과 화상통화로 대화를 나누는 라프시몬스와 미우치아 프라다]
패션쇼 스태프와 모델 업계의 에이스가 다 모여 있다는 프라다는 신선한 방법을 모색해냈다. 판데믹이 한창이었던 작년 4월, 프라다는 벨기에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를 공동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했다.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2021 F/W 프라다 맨즈쇼 컬렉션이 끝난 후, 라프 시몬스와 미우치아 프라다가 화상 통화로 전 세계 예술학도의 질문들에 답해주는 시간을 가졌다. 컬렉션에 대한 감상과 학생들이 마주한 디자인, 패션, 예술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며 굉장히 21세기스러운 소통방식을 보여줬다. 이 대담을 담은 영상은 프라다의 이전 동영상들보다 10배 이상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프라다가 선보인 온라인 이벤트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를 달성했다.
전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타계 이후 젊은 소비자 유입을 위해 영한 브랜드로 탈바꿈 중인 샤넬은 어떨까. 버지니 비아르가 이끄는 샤넬은 코로나 대유행 속에 집에만 머물러야 하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벨기에 아티스트 Angèle의 라이브 공연을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송출했다. 그리고 지드래곤, 제니, 크리스틴 스튜어트, 마리옹 꼬띠아르 등 전 세계 샤넬 뮤즈와 앰버서더를 앞세워 샤넬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2021 S/S 컬렉션을 예고하며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여놨다. 샤넬을 멋드러지게 차려입은 스타들이 이번 컬렉션에 대한 감상을 말하는 인터뷰 영상이 인스타그램,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됐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21 S/S 컬렉션 시작 전 샤넬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제니와 지드래곤]
이렇게 패션 브랜드들은 소셜미디어에 진심이었다. 아니 사실 이 시기엔 모두가 진심일 수밖에 없었다. 팬데믹 속 소셜미디어는 효과적인 디지털 마케팅 도구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떤 브랜드에게는 그 자체가 영감이 되기도 했다.
입생로랑을 생로랑으로 바꾼 디자이너이자, 2018년 셀린에 부임하자마자 셀린의 로고, 기존 스타일마저 다 갈아엎은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 그는 셀린의 2020 S/S 캠페인 모델로 유명 틱톡 스타를 기용할 정도로 소셜미디어에 적극적이었다.
[틱톡 스타 Noen Eubanks를 모델로 한 셀린 2020 S/S 캠페인©Celine Photography by Hedi Slimane]
틱톡을 향한 슬리먼의 애정은 컬렉션 주제로까지 발전했다. 2021 S/S 셀린 맨즈웨어 컬렉션은 콘셉트조차 ‘The Dancing Kid’였으니까. 틱톡에서 수많은 챌린지를 유행시키고 춤을 추는 아이들 즉, 틱토커들에게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레이싱 경기장을 배경으로 한 패션쇼의 배경음악마저 틱톡 챌린지로 유명해진 Tiagz의 ‘They Call Me Tiago’였다.
셀린의 이 컬렉션은 틱톡에서 춤을 추는 행위에서 영감을 받았을 뿐 아니라 틱톡 속 화려한 스타일의 e-boys, e-girls의 머리 색깔, 프린팅 티셔츠, 피어싱, 스케이트보드, 체인 목걸이 스타일을 그대로 채용해 자신들의 옷에 녹여냈다.
패션쇼 공개 전의 홍보 과정까지 셀린이 사랑해 마지 않는 e-boy들의 틱톡 채널을 통해 전개됐다. e-boy들은 셀린의 컬렉션 콘셉트이자 영감이었고 그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Z세대는 셀린이 지향하는 소비자 타겟이었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 그 자체가 패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소셜미디어가 패션 브랜드에게 작용하는 기능과 영향력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셀린의 새 시즌 옷을 입고 ‘The Dancing Kid’ 컬렉션을 홍보하는 영상을 올린 틱톡 스타들. 왼쪽부터 @lilhuddy, @noeneubanks, @curtisroach]
최악의 코로나 상황으로 고전 중인 나라, 영국의 대표 브랜드 버버리는 또 소셜미디어를 어떤 식으로 활용했을까. 버버리는 홈페이지를 통한 가상 팝업 스토어를 열었고,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 중 하나인 위챗과 협업해 버버리 스토어 전용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그 프로그램을 이용한 라이브 챗, 가상 예약 시스템, 가상 고객 이벤트를 열면서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 중국에서 전년 대비 두 배 넘는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코로나라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젊은 고객을 유입시키며 매출 선방을 이뤄낸 셈.
이렇게 패션계는 커져가는 소셜미디어 비중과 함께 완전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이루기 위한 준비 중이다. SNS는 코로나 시대 전에도 분명 훌륭한 마케팅 도구였지만, 이제는 명품 브랜드가 열망하는 ‘젊은 소비자 사로잡기’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시대의 흐름과 아주 대조적인 행보를 보인 한 브랜드가 있었다. 바로 보테가 베네타다. 지난 1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는 모든 소셜미디어 계정을 돌연 삭제했다. 원래대로라면 패션 브랜드는 지금쯤 2021 S/S 패션 상품들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홍보에 열을 올려야 할 때다. 양질의 콘텐츠를 디지털 플랫폼에 마구 마구 업로드하며 소비자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때다. 그런데 대체 왜 보테가 베네타는 갑자기 디지털 월드에서 자취를 감췄을까? 그 이야기는 2편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