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H는 어떤 아이폰 살 거에요?”
아이폰 12 시리즈의 국내 출시를 앞둔 즈음, 많은 사람들이 내게 어떤 아이폰을 살 계획인지 물었다. 댓글로 물어본 사람도 있었고, 인스타그램에서 DM을 받거나, 실제로 만난 사람에게도 허다하게 듣는 질문이었다. 다들 가벼운 호기심으로 물었을 테지만, 나는 한국의 대표 앱등이가 된 것처럼 그 질문 앞에 엄숙해졌다. 선택지는 네 가지였다. 아이폰 12 mini, 아이폰 12, 아이폰 12 Pro, 아이폰 12 Pro Max. 이상하게 매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깜찍한 mini]
“이번엔 색다르게 미니 모델을 써볼까 생각 중이에요. 너무 큰 것만 썼더니…. 호호.”
[왼쪽부터 12 Pro Max, 12 Pro, 12 mini]
아니었다. 거짓말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아이폰 12 Pro Max를 쓸 작정이었던 것이다. 아이폰 12부터 시작해서 아이폰 12 Pro, 아이폰 12 mini… 띄엄띄엄 출시되는 신제품들을 하나하나 도장 깨기처럼 리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역대 가장 거대한 아이폰을 만났다. 박스에서 꺼내서 6.7인치 화면을 쥐는 순간 “아, 뭐야. 이거 진짜 너무 커서 못쓰겠다.”며 손사레를 쳤다. 그립감이 나쁘다며 투덜거렸다. 그리고 1년 동안 사용했던 아이폰 11 Pro Max에서 데이터 전송을 시작했다. 감격스런 기기변경의 순간이었다.
내가 대화면 아이폰을 쓰기 시작한 건 아마 아이폰6 시리즈부터였던 것 같다. 처음으로 5.5인치 플러스 모델이 출시됐고, 애플답지 않다며(정확히는 스티브 잡스가 무덤에서 일어날 거라며) 욕을 징하게 먹었던 제품이다. 나 역시 절도 있는 앱등이였기 때문에 아이폰6 플러스를 거부했다. 이태원의 한 술집 화장실에서 아이폰을 침수시키고 회사폰으로 놀고 있었던 아이폰6 플러스를 쓰기 전까지는 말이다. 처음에는 무겁고, 버거웠다. 그러다 며칠 지나고 나니 다른 아이폰이 코딱지처럼 보였다. 대화면 뽕에 취해버린 것이다.
그 뒤로 계속해서 플러스, 혹은 맥스라는 수식어가 붙는 아이폰을 사용했다. 대화면이 주는 시각적 경험 때문만은 아니다. 애플이 자꾸자꾸 큰 아이폰에 한 가지씩 더 좋은 기능을 넣어줬기 때문이다. 다들 무거워서 불편하지 않냐고 물었지만, 나는 큰 아이폰을 고집했다. 제일 좋은 아이폰을 쓰고 싶었다.
아이폰 XS Max에서 아이폰 11 Pro Max로 넘어오면서, 내 고집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너무 무거웠던 것이다. 화면 크기는 그대로 6.5인치인데 트리플 카메라가 들어가고, 제품 두께가 더해지며 무게도 무거워져 버렸다. 아이폰 XS Max는 208g, 아이폰 11 Pro Max는 226g. 내 손이 18g 차이를 계량할 수 있을 만큼 섬세하진 않지만, 몇 년 동안 누적된 피로는 상당하지 않았을까. 오른팔이 저리고 아프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은 세 가지였다. 과로, 자세 불량, 아이폰 11 Pro Max.
이 얘기를 왜 이리 길게 늘어놓고 있냐면, 대화면 폰은 실제로 불편한 요소가 많다는 거다. 무겁고, 손에 쥐기도 어렵고, 한 손 조작이 어렵다 보니 떨어트리기도 쉽다. 심지어 가격도 더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다. 그래서 답정너처럼 또다시 Max 모델을 선택한 거다.
[왼쪽 11 Pro Max, 오른쪽 12 Pro Max]
신제품인 아이폰 12 Pro Max의 화면 크기는 6.7인치. 역대 아이폰 중에서 가장 큰 화면이다. 전작인 아이폰 11 Pro Max에 비해 화면은 0.2인치 커졌지만, 무게는 그대로다. 화면을 둘러싼 베젤을 현저히 줄이고, 두게도 8.1mm에서 7.4mm로 줄인 결과다.
[왼쪽 아이폰12 Pro Max, 오른쪽 11 Pro Max]
하지만 실제로 손에 쥐고 사용했을 때의 경험은 조금 더 부담스러워졌다. 조금이지만 세로 길이와 가로 폭이 늘어났기 때문. 그래서 한 손에 쥐었을 때 버겁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폰 측면의 둥글게 처리되었던 마감이 각진 디자인으로 변한 것도 이런 느낌에 한몫 거든다. 칼같이 각 잡힌 측면이 그립감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위 11 Pro Max, 아래 12 Pro Max]
이런 버거움을 이기고 쟁취한(?) 시각적 경험은 제법 매혹적이다. 0.2인치 차이가 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넷플릭스나 유튜브에서 화면을 꽉 채워 영상을 플레이하면 몰입감이 다르다. 이건 특히 ‘아이폰’이기 때문에 0.2인치의 차이가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아이패드나 노트북 등의 디스플레이는 감상할 때 사용자와 일정 거리가 유지된다. 하지만 아이폰은 손에 들고 얼굴 바로 앞에서 감상할 때가 많다. 자기 전에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는 게 나의 유일한 휴식인데, 그 순간에 아이폰 12 Pro Max의 화면이 커졌음을 제대로 실감했다.
[왼쪽 12 Pro Max, 오른쪽 12 Pro]
PIP 모드는 대화면의 장점을 만끽할 수 있는 기능 중 하나다. 아이폰 12 Pro나 그보다 작은 기기에서는 영상 감상 중에 다른 작업을 위해 임시로 띄워놓은 화면이라면, 아이폰 12 Pro Max에서는 PIP 모드로 쭉 영상 감상이 가능할 정도다. 미세하지만 자막 크기의 차이도 가독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하나 더 언급하자면, 애플이 스피커 차이를 공식적으로 기재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바디가 큰 만큼 아이폰 12 Pro Max의 사운드가 더 좋더라. 전작인 아이폰 11 Pro Max와 비교했을 때도 그렇지만, 함께 출시된 다른 아이폰 12 시리즈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재밌는 비교를 하나 더 해보자. 나는 집에서는 거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미니만 사용한다. 지난 주말에도 아이패드 미니 5세대로 드라마를 보다가 묘한 위화감에 아이폰 12 Pro Max에 같은 영상을 틀어서 비교해보니 표시되는 크기가 거의 비슷하더라. 화면 비율이 아이패드에 맞는 옛날 콘텐츠를 볼 때는 괜찮지만, 2:1 비율의 영화를 감상할 때는 아이폰 12 Pro Max와 아이패드 미니의 실제 화면 영역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막의 가독성 등을 고려했을 때 아이패드가 훨씬 보기 편한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아이폰 12 Pro Max가 크다는 얘기다. 영상 비율에 따라서는 훨씬 사이즈가 큰 기기보다 효율적인 멀티미디어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말이다.
[왼쪽 12 Pro Max, 오른쪽 12 Pro]
이번 아이폰 12 Pro 시리즈에는 저조도에서 활성화되는 야간 모드로도 인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능이 들어갔다. 카메라 밑에 들어간 LiDAR 스캐너 덕분이다. 빛이 부족한 환경에서도 LiDAR를 사용해 순식간에 피사체와의 거리를 파악하고 포커스를 잡을 수 있다. 덕분에 저조도 촬영이나 인물 사진의 결과물이 훨씬 좋아졌다. 아이폰12와 아이폰12 Pro의 차이가 꽤 두드러졌기 때문에 아이폰 12 Pro Max도 그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박스를 뜯어보니 아이폰 12 Pro Max는 카메라 렌즈 크기부터 다른 게 아닌가. 애플 홈페이지에도 따로 고지되어 있지 않았던 내용이라 자를 들고 몇 번이나 재봤는지 모른다. 정말 카메라가 더 컸다. 카툭튀의 폭도 더 깊었다. 거대한 폰 위에 거대한 카메라 섬이었다.
[위 12 Pro, 아래 12 Pro Max]
기기 자체가 커지며 카메라 모듈에도 공간 여유가 생긴 것이다. 덕분에 기존 어떤 아이폰보다 큰 센서가 들어갔다. 아이폰 11 Pro에 비해 47% 큰 센서이며, 촬영 성능은 87% 더 향상되었다더라. 하지만 작년에 나온 아이폰보다 더 좋은 성능인 건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내겐 올해 함께 출시된 아이폰 12 Pro와 아이폰 12 Pro Max의 차이가 더 갈급했다.
역시 센서는 깡패다. 아이폰 12 Pro의 저조도 역시 놀라울 만큼 향상되었다고 이전 리뷰에서 평가했는데, 아이폰 12 Pro Max의 저조도 표현력이 더 우수하다. 심지어 저조도 인물 사진 모드에서는 완전히 다른 기기처럼 느껴진다. 저 촬영은 야근 중에 대표님과 “인생은 무엇일까?”라고 담소를 나누던 장면. 실제로는 정말 어두웠다. 빛이 하나도 켜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대표님 뒤통수도 잘 안 보일 정도였다. 그나마 있는 빛도 마주 보이는 건물 간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라 역광에, 저조도였다. 그야말로 촬영하기엔 최악의 환경. 놀랍게도 아이폰 12 Pro Max로 촬영한 사진에서는 머리카락 디테일이 어느 정도 표현됐다. 탈색을 거듭해 외국인에 가까운 오묘한 머리카락 색깔도 더 정확하게 나왔고 말이다. 빛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 정도의 색상 정보를 모을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
아이폰 12 Pro와 아이폰 12 Pro Max의 또 다른 차이는 바로 망원 렌즈의 화각. 아이폰 12 Pro는 2배 광학 줌을 지원하지만, 아이폰 12 Pro Max는 2.5배 광학줌을 지원한다. 65mm 화각이다. 이건 생각하기에 따라 단점이 될 수도 있고,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같은 기기로 더 멀리 있는 피사체를 가까이 줌인해서 찍을 수 있다는 건 얼핏 듣기에 성능 향상처럼 느껴지지만, 그 만큼 타이트한 화각이 되었기 때문에 좁은 실내에서는 써먹기가 어렵다.
특히 카페나 음식점에서 흔히 말하는 ‘항공샷’을 찍고자 한다면, 아이폰 12 Pro Max의 망원줌을 이용할 땐 드론처럼 날아올라야 할 정도다. 하지만 65mm 화각이 주는 느낌은 꽤 근사하다. 인물 사진을 찍기에 좋은 렌즈다.
영상 촬영에서의 결과물도 달라졌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저조도에서도 유리해졌겠지만, 아이폰 12 Pro Max만 적용된 센서 시프트 광학 이미지 흔들림 보정이 발군이다. 기존 아이폰의 OIS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보정할 수 있는 폭의 급이 다르달까. 전문 촬영 장비는 없지만 전문가 같은 부드러운 영상을 꿈꾸는 분에게 유용하겠다. 센서 시프트를 이용하면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느껴지는 모터의 진동을 잡아준다. 궁금하면 ‘여기’ 리뷰 영상을 참고하시길. 아이폰 12 Pro와 동시에 촬영했을 때 결과물이 생각보다 크게 차이가 나서 놀라고 말았다. 더 다양한 환경에서 테스트해봐야겠다.
[왼쪽 12 mini, 오른쪽 12 Pro Max]
카메라 성능이 좋아진 만큼, 그 결과물을 모니터링할 때도 6.7인치 디스플레이가 빛을 발한다. 아이폰 12 Pro Max에서 가장 Pro 다운 기능은 카메라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일반 사용자라면 필요치 않은 수준의 것들도 많다. 하지만 그 이상의 성능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값을 더 지불하고 이 사치스러운 카메라 기능을 스마트폰에서 만끽할 수 있는 것.
[왼쪽 12 Pro Max, 오른쪽 12 Pro]
아이폰 12 Pro Max는 참 크다. 커서 보기 좋고, 커서 더 많은 기능을 넣을 수 있었다. 앞서 구구절절 늘어놨던 것처럼 커서 무겁고 불편한 것은 내가 이 화면을 선택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맥스밖에 모르는 바보. 저릿한 오른팔로 6.7인치 화면을 만끽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내년에도 또 이러겠지.
아이폰 12 Pro Max의 카메라 리뷰는 따로 준비할 예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프라이즈 하나. 이 리뷰에 들어간 모든 사진은 아이폰 12 Pro Max의 망원 카메라로 촬영했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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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