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디에디트의 말 많고 고독한 평론가 차우진이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요즘 음악계 이슈가 뭐에요?’란 질문을 종종 받는데, 사실 그게 한두 개로 딱 떨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최근 흥미롭게 듣는 음악들과 엮어서 생각해보니 단번에 떠오른 것이 ‘20대 싱어송라이터의 약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음악계야말로 대대로 20대들의 놀이터 같은 곳이지만, 특히 요즘 세대만의 공통점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있어서 추려본다.
먼저 대중적으로 알려진 경로를 얘기하고 싶다. 지금 활약 중인 20대 싱어송라이터들은 대체로 SNS 아니면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려진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되는 게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만, 쉽게 말해 세상이 바뀌었다.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10대였던 2010년대에는 소셜 미디어와 오디션 프로그램이야말로 그 시절의 미디어였으니까. 어찌 보면 20세기에 지역 라디오나 라이브 클럽 같은 역할을 떠맡은 셈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메시지다. 요즘 활약하는 20대 음악가들은 정체성, 젠더, 환경 등 사회적 메시지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기성세대의 눈에 이 메시지가 얄팍하고 가볍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인터뷰나 가사를 들여다보면 정말로 이 문제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게다가 기성세대가 20대일 때는 뭐 얼마나 깊이가 있었겠나… (쉿)
아무튼, 이런 젊은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참 세상은 넓고 음악은 많고 잘하는 사람은 더 많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잠깐. 이쯤에서 ‘나는 스무 살에 뭐 했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있을 텐데, 됐고 일단 즐겨 보길.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속도계 같은 게 있는 법이니까 20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년의 아저씨가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 (응?) 참고로 오늘은 마일리 사일러스, 코난 그레이, 할시, 빌리 아일리시 같은 ‘거물’은 빼고 살짝 숨어 있는 20대의 싱어송라이터들을 ‘최신곡’ 위주로 소개한다. 총 30곡인데 다 소개할 수 없어서 최대한 간추렸다. 나머지는 알아서 찾아보시길.
[1]
mxmtoon – wallflower
(2020.10)
‘엠엑스엠툰’의 본명은 마이아(Maia)로 중국계 미국인 어머니와 독일계와 스코틀랜드계 혼혈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2000년생으로 올해 막 20살이 된 싱어송라이터로 13살에 첫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통해 팬들을 만나는데 사려 깊은 목소리가 매우 인상적인 싱어송라이터다. 작년에 데뷔했고 2020년 9월 기준으로 틱톡에서 220만 명의 팔로워와 8,800만 개의 좋아요를 모았다. 틱톡, 바인, 텀블러, 페이스북, 트위치, 스냅챗, 밴드캠프와 사운드클라우드에 이르는 거의 모든 MZ세대의 미디어 플랫폼에서 총 3억 회 이상 스트리밍이 된 가수다.
[2]
Gracie Abrams – I miss you, I’m sorry
(2020.04)
1999년생, 21살의 싱어송라이터, 그레이시 에이브람스는 인스타그램에 자기 음악을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그리고 <로스트>,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등을 제작한 ‘떡밥왕’ J. J. 에이브람스의 딸이다. 2019년 10월 [Mean It]으로 데뷔했는데 ‘I miss you, I’m sorry’ 같은 경우엔 감성적인 가사와 베드룸 아티스트 같은 뮤직비디오의 분위기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크게 바이럴되고 있다. 또 다른 싱글 ’21’은 <하트시그널> 시즌 3에 삽입되며 국내에서도 인지도를 올렸다.
[3]
Gus Dapperton – Palms
(2020.09)
거스 데퍼튼은 1997년생으로 올해 23세. 넷플릭스 시리즈 <루머의 루머의 루머> 시즌1에 ‘Of Lacking Spectacle’이 삽입되면서 유명해졌는데 당시 나이 20세. 이 곡에서는 잘게 쪼개지는 베이스라인이 너무 매력적이다. TMI지만, <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총 제작자에는 셀레나 고메즈가 있다. 20대의 팝 스타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드라마에 투자하는 것, 그를 통해 자신의 역할과 메시지를 던진다는 게 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4]
girl in red – Rue
(2020.08)
걸 인 레드는 노르웨이의 싱어송라이터 마리 울벤 링하임(Marie Ulven Ringheim)의 프로젝트명이다. 1999년생으로 올해 21세. 2018년의 데뷔 싱글 ‘I Wanna Be Your Girather’는 1억 5천만 회 이상의 스트리밍을 기록했고, 일찌감치 커밍아웃해서 동 세대의 퀴어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곡 ‘Rue’는 HBO의 드라마 <유포리아>(2019)의 주인공 루에게 바치는 곡인데, <스파이더맨: 홈 커밍>에 MJ로 출연한 젠데이아가 연기를 했다. 젠데이아는 이 작품으로 2020년 제72회 에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5]
GRAE – 2725
(2020.07)
김예림을 닮은 목소리 ‘그래’의 최신곡. 2725는 사랑하는 사람과 2,725마일이나 떨어져 인터넷으로 연애를 하는 마음을 담은 곡이다. 토론토에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로, 10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80년대 뉴웨이브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자넷 잭슨은 음악뿐 아니라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에 대한 방향을 정하게 해 준 인물이라고 한다. 스포티파이와 유튜브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으며 ‘젊은 캐나다 작사가’ 상을 받기도 했다. 정확한 출생연도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20대 초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6]
beabadoobee – Care
(2020.07)
비바두비는 필리핀계 영국인 싱어송라이터 베아트리체 라우스의 활동명이다. 2000년생으로 올해 20살. BBC에서 선정한 ‘2020년의 사운드’에 꼽히기도 했는데, 1990년대 전반에 걸쳐 유행한 그런지와 인디펜던트 록 스타일의 음악을 한다. 당장 이 한 곡에서 너바나, 펄잼, 스매싱 펌킨스, 앨라니스 모리셋과 에이브릴 라빈, 예예예스 같은 이름이 떠오른다. 최근에 틱톡에서 정말로 메가히트를 한 파우푸의 ‘Death Bed’에 과거 노래가 샘플링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는데, 그렇게 생긴 팬들 중 다수가 ‘비바두비는 그저 틱톡 뮤지션이 아니다!’라며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사실 2017년부터 크게 주목받으며 빌리 아일리시와 나란히 차세대 기대주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7]
Powfu – Death Bed ft. beabadoobee
(2020.04)
파우푸는 유튜브와 틱톡이 만든 동시대의 슈퍼스타다. 비바두비의 2017년 데뷔곡 “Coffee”를 샘플링으로 만든 ‘Death Bed’가 영향력 있는 유튜브의 플레이리스트에 소개되며 바이럴되다가 마침 농구스타 코비 브라이언트의 비극적인 죽음을 애도하는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며 틱톡의 바이럴 효과를 누렸고, 곧이어 심각해진 코로나19 상황에서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연인들의 사랑 고백 음악으로 재활용되면서 550만 건의 동영상에 수록되며 수십억 뷰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파우푸는 콜럼비아 레코드와 음반 계약을 맺었고, 지난 6월 13일부로 빌보드 핫 록&얼터너티브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다. 거듭된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력적인 비트와 공감도 높은 가사가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
[8]
Sasha Sloan – Is It Just Me?
(2020.09)
러시아계 미국인 사샤 슬론의 본명은 알렉산드라 아르투로브나 야트첸코, 1995년생으로 올해 25살이다. 5살 때 선물 받은 피아노를 독학해서 작곡을 시작했고, 19살에는 보스턴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떠나 커피숍 알바를 하면서 작곡가로서의 커리어를 쌓았다. 이디나 멘젤(<겨울왕국>의 엘사), 카밀라 카베요, 카이고, 챨리 XCX 등의 싱글에 작곡가로 참여하던 중 솔로 데뷔를 했다. ‘Is It Just Me?’는 모성, 정치, 종교와 약물, 결혼, 인터넷, 취향 등등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직접적으로 다루며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생각을 담는다. 우아하면서도 고독하다. 폐쇄된 우주 기지에 홀로 남은 상황을 담은 비디오 역시 이 고립감을 부각시킨다.
[9]
Charlotte Cardin – Passive Aggressive
(2020.09)
샬롯 카딘은 캐나다의 싱어송라이터로, 프랑스 문화권인 퀘벡에서 활동한다. 1994년생으로 26세. 15세 때부터 광고 모델로 활동했고 2013년에는 캐나다, 2014년에는 프랑스의 리얼리티 쇼 <더 보이스>에 출연하며 가수로서의 커리어를 쌓았다. 2016년에 데뷔해서 현재까지 다수의 시상식에서 신인상과 작곡상을 받으며 활동 중이다. 최신곡인 ‘Passive Aggressive’는 나쁜 관계를 힘들게 끝낸 여성이 자신의 이별을 자축하는 내용으로 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10]
Charlotte Lawrence – Why Do You Love Me
(2019.08)
샬럿 로렌스는 미국의 가수, 모델이다. TV 프로듀서 빌 로렌스와 배우 크리스타 밀러의 딸이다. 어린 시절부터 모델 활동을 하면서 자랐다. 2018년 3월 싱글 ‘Cold as Stone’를 선보이면서 가수로 데뷔한 그는 2018년 6월 데뷔작 EP [Young]을 통해 음악가로서의 자신을 소개했다. 2019년 싱글 ‘Why Do You Love Me’를 발표, 매력적인 음색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Acoustic, Riton, Klingande, Hippie Sabotage 등의 리믹스 버전을 탄생시켰다.
[11]
Maude Latour – One More Weekend
(2020.07)
모드 라투르, 올해 20살. 스웨덴, 런던, 뉴욕, 홍콩 등을 거치며 10대를 보냈는데 고교 시절 첫 싱글을 발표했고 19세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지금은 콜롬비아 대학에서 철학과 정치학을 전공 중인데, 가족들과 맨해튼에 살고 있다. 이 비디오를 찍은 곳도 콜롬비아 대학의 중앙도서관인 버틀러 도서관(Butler Library). 상류층 가정, 아이비리그 대학생, 팝 가수라는 정체성은 저 동네에서도 화제여서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다.
[12]
070 Shake – Guilty Conscience
(2020.01)
1997년생, 070셰이크는 23세의 싱어송라이터로 본명은 대니얼 발부에나, 뉴저지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2018년에 카니예 웨스트의 프로듀싱 작업에 참여하며 주목을 받았고 2020년 1월에는 카니예 웨스트의 굿 뮤직 레이블과 계약해 데뷔 앨범 <Modus Vivendi>를 발매했는데 서정적인 멜로디 안에 약물, 정체성, 자존감, 폭력 등 빡센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한편 동성애자냐고 묻는 무례한 인터뷰에서 그는 특정 정체성에 갇히고 싶지 않다며 ‘그냥 여자가 좋아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덧붙이기도 했는데, 이런 태도가 또래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확고한 팬을 만들고 있다.
[13]
Melanie Martinez – Play Date
(2015.08)
1995년생, 25세. 2012년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The Voice 시즌 3>에 출연한 그는 2014년에 첫 EP [Dollhouse]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싱어송라이터, 사진작가,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는 그는 기괴한 비디오와 섬뜩한 가사로도 유명하다. 그럼에도 비디오의 분위기는 너무나 핑크핑크한 데서 오는 갭이 있다. 확고한 아이덴티티와 높은 퀄리티의 뮤직비디오 덕분에 유튜브 구독자 수는 1000만 명이 넘는다.
[14]
The Regrettes – Seashore
(2017.06)
현재 ‘페미니즘 록’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리디아 나이트가 리더인 밴드로, 리디아 나이트는 2000년생으로 올해 20살, 그런데 경력은 올해로 13년째. 7살 때부터 밴드로 활동했는데 취미가 아니라 실제 프로페셔널하게 활동하며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 최연소 공식 초청 뮤지션으로도 기록되었다. 심지어 그때 리디아 나이트의 공연을 본 라이언 고슬링이 자신의 밴드 데드 맨스 본즈(Dead Man’s Bones)와 함께 투어를 하자고 제안해서 더 유명해졌다.
리그렛츠는 모타운 소울, 걸 펑크 등 6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친 팝 컬쳐와 소수자 운동을 음악적으로 반영한다. 특히 다이아나 로스, 마블러스, 포탑스, L7, 비키니 킬 등 시대와 인종을 막론하고 ‘음악하는 여자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Seashore’는 여러 장르가 뒤섞인 신선한 사운드에 중세부터 현대까지 여성의 수난사를 압축해서 담아낸다.
📻WE ARE YOUNG [믹스테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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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
음악/콘텐츠 산업에 대한 뉴스레터 '차우진의 TMI.FM'을 발행하고 있다. 팬덤에 대한 책 [마음의 비즈니스], 티빙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을 제작 등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