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글쓰고 향 만드는 사람, 객원필자 전아론이다. 내가 직접 조향한 향수를 선보이는 향수 브랜드 ahro를 운영(?)하고 있다는 건 다들 알고 있지? (엥? 무슨 향수? 싶다면 여기로) 지난 달부터 올해 12월 27일까지 ahro가 서울숲 바로 앞에 팝업 쇼룸을 오픈했다. 팝업치고 좀 긴 편이니까 파아아아압업 정도이려나? 쇼룸은 월요일 빼고 매일 오픈하는데, 덕분에 매일 성수와 뚝섬 그리고 서울숲을 오가며 새로 생긴 가게와 식당들을 섭렵하느라 (입이) 바쁘다.
내가 객원필자로 섭외된 이유가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하도 잘 먹고 다녀서’라는 후문이 있더라고. 어디가서 푸디라고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내 인생의 팔 할이 먹고 마시는 일이라는 건 주변 사람들이 다 안다. 나머지 20퍼센트로 글도 쓰고 향도 만들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먹고 다니는 썰을 좀 풀어보려고 한다. 그 첫 번째 타자가 바로 아이스크림. 나는 아이스크림의 제철이 가을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설마 아이스크림은 여름에 먹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없겠지? 여름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하면 입 대신 손이 다 먹어버리잖아. 녹는 게 싫어서 급하게 먹다보면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고. 게다가 날씨가 더운데 뱃속에 찬 걸 집어넣으면, 바깥과 뱃속 온도가 급격히 달라져서 배탈이 나기도 쉽다. 맛있자고 먹는 건데 아프면 짜증나니까. 사실 나는 겨울에 아이스크림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손이 시렵다는 단점이 있으니 추천은 안 하겠다. 성수 일대에는 근사한 카페가 많다는 건 다들 아는데, 근사한 아이스크림 가게가 많다는 건 잘 모르더라. 아이스크림의 제철, 가을이 된 기념으로 매일 들락거린 곳들을 소개한다.
[1]
엔디디
망원동에서 유명한 아이스크림 당도의 2호점. 처음에 이름을 보고 했던 대화.
“ndd가 무슨 뜻이지?”
“앤드 당도?”
“ㅋㅋㅋ그게 뭐야.”
궁금해서 카운터에 질문을 했다. “ndd의 n이 뭐예요?” 돌아온 답은 “natural이요.” 터무니없이 크게 벗어나서 머쓱해진 탓에 나머지 dd는 뭔지 묻지도 못했다. n이 내추럴이면 dd도 뭔가 더 멋진 뜻일 거 같아서. 근데 이 글 쓰면서 찾아보니까 그냥 natural 당도란다. 하하….
가장 작은 사이즈에서는 두 가지 맛을 고를 수 있고, 시그니처처럼 ‘맛보기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정도 올려주신다. 그러니 총 세 가지 맛을 먹어볼 수 있는 셈.
종류도 꽤 많은데 갈 때마다 조금씩 바뀌는 라인업 때문에 먹고 싶은 맛이 한두가지가 아니니, 맛보기 정책(?)은 아주 반갑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정 장애가 해결되는 건 아니더라. 결정 한번 할 때에도 엄청난 고민이 필요한데 세 가지 맛을 고르려면 결정을 세 번이나 해야되는 거잖아! 나는 아이스크림 취향이 좀 극단적이다(사실 다른 취향도 극단적인 편). 그래서 진득한 초콜렛과 크림 베이스 스타일을 좋아하는 동시에, 상큼한 소르베 스타일도 좋아한다. 엔디디는 그 두 가지를 다 잘 만든다.
결국 무슨 맛을 골라도 맛있다는 뜻이다. 그냥 취향에 맞게 고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을 하자면, 조향사로써 향을 위주로 선택할 메뉴가 많다는 게 장점이다. 바질이나 바질토마토, 라벤더 같은 허브 계열 맛을 고르면 입 안에 풀밭이 펼쳐진다. 허브 계열 중 하나와 유자, 레몬 등 시트러스를 섞으면 상큼함과 싱그러움의 시너지가 생긴다. 초콜렛 계열은 말해 뭐해. 비슷한 뉘앙스에 더 섬세한 결을 느끼려면 구운 피스타치오, 커스타드 크림, 호지차 같은 맛도 좋다. 19금인 이태리 와인이나 다크초콜렛 소르베(위스키가 들어갔다)도 추천. 소금, 바질 우유 맛은 나도 아직 못 먹어봤으니 누가 좀 대신 먹어주세요.
🍦ndd
📍서울 성동구 서울숲2길 19-18 2층
[2]
코타티 성수
내 마음 속 1등 엔디디를 위협하는 신흥 아이스크림 강자. 오픈한 지 얼마 안되는 코타티 성수점이다. 코타티는 원래 이태원 해방촌에서 명성을 날리던(?) 아이스크림 가게였다고 한다. 이태원 젤라또 가게 하면 코타티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쩌렁쩌렁) 이제 그 명성을 성수에도 날리려고 진출한 모양이다.
일단 뚝섬역에서 무척 가까워서 접근성은 만점. 하지만 명확한 간판이 없어서 생각없이 걷다보면 지나치기 쉬울 것 같다(그러고 보니 엔디디도 2층인데 아이스크림 모양 나무 판자 하나말곤 그럴듯한 간판이 없다). 하지만 센스있게 촬영된 아이스크림 사진이 입구에서 가게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으니, 찾는 게 엄청 어렵진 않다. 전반적으로 힙한 느낌의 심플한 인테리어와 자연스러운 민트 컬러가 매력적이다.
코타티의 아이스크림은 전통 이탈리안 방식을 써서 제조한다고 하던데, 시즌마다 조금씩 바뀌는 메뉴들이 심플한 편이라 두 가지를 고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다음 시즌에는 또 새로운 맛을 고르면 되니까!
코타티 성수의 독특한 점이라면 라인업이 스탠다드와 프리미엄이 나눠져있다는 것. 프리미엄은 스탠다드 가격에서 2000원이 추가된다. 스탠다드는 다크 초콜렛, 구운 피스타치오, 얼그레이처럼 한가지 맛을 성실하게 구현한다. 개인적으로는 보통의 아이스크림들보다 좀 더 크리미하고 부드러운 질감과 맛을 가진 게 장점이라고 느꼈다.
프리미엄은 특정한 맛의 업그레이드 버전인데, 거기에 과일이나 크럼블 혹은 견과류 등의 요소가 추가된다. 그래서 그 자체로도 완성된 디저트처럼 보인다.
코타티 성수의 또 다른 매력은 공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실내에 앉을 곳은 1도 없지만 바깥 공간이 아주 멋지다. 외국에 온 듯한 느낌도 살짝 들고. 코타티 성수가 위치한 레이어 10 스튜디오는 유명한 대관 스튜디오 그룹(?) 플러스준 스튜디오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그러니 공간 또한 포토제닉할 수밖에. 특히 요즘처럼 빛이 예쁜 날에 앉아 아이스크림 먹기 딱 좋은 느낌이다. 볕은 따사롭게 비추고, 바람은 선선하고, 공간은 무심한듯 시크하게 꾸며져있고, 아이스크림은 맛있고!
🍦코타티 성수점
📍서울 성동구 상원4길 10
[3]
글레이셔박
서울숲 가까이에 위치한 글레이셔박. 1층에 위치 했고 제대로 된 간판도 있어서, 셋 중 찾기 가장 쉬운 곳이다. 심지어 아이스크림 라인업을 밖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써붙여뒀다. 친절해! 어떤 메뉴가 있는지 찬찬히 확인하기도 전에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질문을 받으며 혼란스러울 일이 없다는 뜻이다. 어떤 맛을 먹으면 좋을지 미리 고민하며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
글레이셔스박 대표님은 이탈리아에서 정통 젤라또 과정을 이수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매장 벽에 여러가지 자격증이 붙어있다. 맛 종류는 코타티 성수처럼 심플한 쪽에 가깝다. 그리고 매장 안에 앉을 자리가 가장 많다. 나야 걸어다니면서 아이스크림 먹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무조건 서울숲까지 아이스크림을 들고 걷는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겠지. 누굴 데려가도 편하게 매장에서 먹고 나올 수 있어 좋다. 메뉴에 소르베는 소르베라고 적혀있어서 스타일을 확실히 예측할 수 있다. 한국색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누룽지, 흑임자, 연시, 바나나우유 등의 맛은 누구라도 끌릴 맛(바나나우유… 한국색 맞죠…?).
개인적으로는 블루베리 치즈케이크나 브라우니처럼 녹진한 맛을 추천하고 싶다. 진짜로 치즈케이크하고 브라우니를 때려 넣어서(!) 만드셨는지 맛이 너무도 확실하고 매력적이다. 소르베류나 과일 맛은 대부분 은은하고 부드러운 풍미가 느껴지는 스타일. 혀 끝에 맛이 확 오는 게 아니라 목구멍과 콧구멍으로 향이 올라온달까. 고급지다는 말이다. 아이스크림 위에는 설탕으로 만든 튀일을 올려주는데, 아몬드가 있어서 고소하다. 그리고 탄수화물을 안 좋아해서 안 먹어봤는데, 와플콘을 무려 매장에서 구우신단다.
생강 시럽과 시나몬이 들어갔다는 와플콘이 얼마나 향긋할지는 이미 상상된다. 디저트 러버라면 컵 말고 콘을 선택하는 게 행복에 행복을 곱하는 길일 듯. 시나몬 향이 느껴지는 와플콘 안에 가득찬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 아이스크림… 글로 쓰기만 했는데 벌써 황홀하네.
🍦글레이셔박
📍서울 성동구 서울숲2길 9
About Author
전아론
글쓰고 향 만드는 사람. 에세이스트, 프리랜서 에디터, 향수 브랜드 ahro의 조향사까지. 예술적 노가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