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B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했을 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에디터삐!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2초 정도 고민을 하다 ‘기후 위기’라고 답했다.
알고 있다. ‘기후 위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느껴지는 당연하면서도 너무 오래전부터 들어서 좀 지겨운 느낌? 하지만 지겨운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몇십 년 동안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인걸. 그러니까 지겨워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도록 하자. 그래서 개인이 할 수 있는 활동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음…소비를 줄이라고?
사실 나는 신제품 쇼핑을 워낙 좋아하는 인간이라 아무래도 쇼핑 자체를 포기할 자신은 없다. 대신 싸고 안 좋은 건 줄이되, 좋은 걸 오래 쓰자고 마음먹었다.
일단 작은 것부터 실천하기로 했다. 시작은 빨대! 찾아보니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빨대가 많았다. 풀 빨대도 있고, 대나무 빨대도 있고, 쌀 빨대까지?! 여러 종류의 빨대를 써보다가 지금은 유리 빨대와 풀 빨대에 정착했다. 오늘은 각 빨대를 써보며 느꼈던 장단점을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다. 그럼,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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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빨대
작년에 출장차 태국에 갔었다. 여름이었고 덥고 습했다. 한국인답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너무 간절해서 카페에 갔다. 그때 처음으로 풀 빨대라는 걸 써봤다. 신기하다는 생각도 잠시, 아메리카노를 한 입 흡입했을 때 ‘이건 좀 아닌데…’ 싶었다. 녹차 맛 합성 착향료를 넣은 것 같은 묘한 맛이 느껴졌다. 대단한 미각의 소유자이거나 요리왕 비룡이거나 장금이가 아님에도 정말 그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구입한 ‘클로에코 풀빨대’는 다행히 그런 단점이 없었다. 제품 상세 정보에는 ‘녹차 향이 날 수 있으니 감안할 것’이라고 적어놓았는데, 내 미각 수준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감각이 예민한 사람은 느낄 수도 있나 보다.
태국에서 썼던 풀 빨대는 건조 상태가 아니었다. 방금 풀밭에서 베어다가 아메리카노에 꽂은 느낌이었다. 클로에코 풀빨대는 다행히 잘 말린 상태였기 때문에 풀냄새 같은 건 거의 없었다. 따로 줄기 속을 파낸 건 아니고 원래 텅 비어있는 기다란 줄기를 자른 뒤 세척-건조하는 방식으로 완성한 제품이다.
가장 중요한 건 입에 물었을 때의 촉감이다. 얕고 단단한 것이 플라스틱 빨대와 꽤 유사한 느낌을 준다. 스타벅스에서 쓰는 종이 빨대만 하더라도 입안에 넣었을 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나.
풀 빨대도 단점은 있다. 플라스틱과 비교해 탄성이 없고 내구성도 약해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없다. 손톱으로 찢으려고 하면 아주 쉽게 찢어진다. 다른 구매자들의 사용 후기를 봤더니 풀 빨대 중간에 미세하게 균열이 있어서 액체가 새어나올 수 있다고도 하는데, 나는 아직 그런 경험은 없었다.
풀 빨대의 가장 좋은 점은 일회용이라는 점이다(물론 쓰레기를 많이 배출한다는 점에서는 친환경적이지 않을 수 있다). 제주 말차 프라프치노나 아인슈페너 같은 걸 마셔도 힘들게 세척할 필요가 없다. 애초에 생물이기 때문에 원지름이 균일하지 않고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 재미있는 부분이다. 가격은 1박스(50개입)에 9,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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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빨대
실물로 보고 가장 놀랐던 제품이 바로 대나무 빨대다. 의외로 만듦새가 좋다. 대나무 다듬기 무형문화재가 만들어준 것처럼 아주 깔끔하다. 풀 빨대처럼 허술하게 생기지 않았고(풀 빨대 미안), 단단하고 견고한 생김새를 자랑한다. 퀄리티는 좋지만 며칠 동안 사용해보니 나와는 맞지 않았다(갑자기 반전).
대나무 빨대는 일회용이 아니라 다회용이다. 상품 설명서에 따르면 잘 씻고 말리기만 하면 1년 정도는 쓸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나는 판매자의 말을 믿지만, 문제는 나를 믿지는 못한다는 거다. 평소에도 커피를 절반 정도 마신 채로 빨대를 컵에 담가 놓은 경우가 꽤 많다. 이런 내가 대나무 빨대를 쓸 수 있을까? 세척을 꼼꼼히 했다고 해도 속이 보이지 않는 대나무 빨대를 1년 동안 쓰기란 찜찜한 일이다.
좋은 일도 귀찮지 않아야 지속 가능하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이 부지런한 건 아니니까. 대나무 빨대를 사놓고도 세척할 걸 생각하니 손이 잘 안 가더라. 아쉬운 말을 늘어놓긴 했지만, 그래도 풀 빨대에 비해 좋은 점이 있다.
첫째, 일단 풀 빨대에 비해 쓰레기를 덜 만들어낸다는 점이 좋다. 둘째, 버블티용 빨대가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셋째, 어떤 쇼핑몰에서는 빨대에 각인을 넣어주더라. 나같이 자기애가 가장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서비스다. 세척을 귀찮아하지 않고, 관리를 잘할 자신이 있다면 대나무 빨대도 좋은 선택지일 거다. 내가 구매한 제품은 4개입 한 세트로 9,900원.
[3]
유리 빨대
미리 밝혀둔다. 내가 최종 선택한 빨대는 유리 빨대다. 우선 장점부터 말한다. 유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내부까지 투명하게 보인다. 어디가 얼마나 더러운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투명함 덕분에 음료를 먹을 때 비주얼적으로 흡족한 것 역시 플러스 점수 요인이다. 이건 기존 플라스틱 빨대에도 없었던 매력이다. 유리이기 때문에 촉감도 좋다. 입에 물었을 때 느낌이 낯설지 않고 단단한 느낌이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유리이기 때문에 다른 빨대에 비해 내구성이 확실히 떨어진다. 아무리 단단한 유리를 썼다고 해도 어린이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나도 유리 빨대를 휴대하고 다니는 건 불안해서 실내용으로만 쓰고 있다. 외출용으로는 풀 빨대를 쓸 생각이다.
대나무 빨대와 마찬가지로 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있다. 나는 영화 <라라랜드>의 명대사를 썼다.
where are we?
Just wait and see.
“우리는 어디쯤 있는 걸까?”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자” 대략 이런 의미다. 본인이 어디쯤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참고로 다회용 빨대 중에는 실리콘 빨대도 있다. 빨대 전체를 개방할 수 있어서 세척하기엔 좋았지만 나는 불만족스러웠다. 먼지가 너무 쉽게 달라붙었다. 입에 물었을 때 촉감도 좋지 않았다. 다만 촉감에 대한 건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임을 감안해 주시길 바란다. 내가 구매한 제품은 SCHOTT의 유리빨대로 가격은 1만 1,5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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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빨대
쌀 빨대는 쌀로 만들었다. 쌀은 먹을 수 있다. 그러므로 쌀 빨대도 먹을 수 있다. 이 삼단논법이 쌀 빨대의 장단점을 간략하게 설명해 준다.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무해하고 친환경적인 빨대다. 유튜브에는 쌀 빨대로 요리를 해 먹는 영상도 있고, 다 쓴 빨대를 땅에 버리면 자연 분해가 되며 식물과 곤충에게 식량이 되기도 한다. 입에 닿는 촉감도 괜찮다. 딱딱한 것이 플라스틱과 비슷한 느낌이다. 단, 너무 세게 물면 ‘빠직’ 깨질 수 있다.
하지만 단점이 좀 치명적이다. 쌀가루와 타피오카 전분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쉽게 흐물흐물해진다. 판매 페이지에서는 ‘얼음물에서 60분 사용할 수 있고 이후에도 말랑말랑한 상태가 되지만 음료 섭취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물에 잔뜩 불어 퉁퉁해진 쌀 빨대를 보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뜨거운 음료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도 단점이다. 100개입 한 세트로 가격은 5,200원.
자, 이제 결론이다. 빨대마다 장단점이 명확하다. 다회용을 쓸지 일회용을 쓸지, 본인이 원하는 촉감은 어떤 것인지, 각인을 넣고 싶은지 등 꼼꼼히 살펴보도록 하자. 개인적으로는 집에서는 유리 빨대, 밖에서는 풀 빨대 조합을 추천한다. 또, 오늘 다루지 않았던 옥수수 전분 빨대도 있다. 옥수수에서 전분을 추출해서 만들었는데, 이건 플라스틱과 거의 흡사해서 사용감에서는 불만이 있기 힘들다. 위에서 소개했던 어떤 빨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옥수수 전분 빨대를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리뷰를 하며 친환경 빨대에 대해 조사를 하다 보니 세상에 완벽한 친환경적인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친환경 빨대가 플라스틱보다는 분해가 더 잘 되지만 제조 과정이나 소각 과정에서는 더 나을 게 없다는 말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무해한 걸 쓴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완벽하지 않다고 무의미한 건 아니니까. 뭐라도 한다는 것, 그게 중요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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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