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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노래

오늘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소개하려고 한다. 올해 초였나. 잣나무 숲 속에 있는 팔현캠핑장에서 처음 써보고 감탄했던 소니의 ‘히어고(h.ear...
오늘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소개하려고 한다. 올해 초였나. 잣나무 숲…

2016. 11. 01

오늘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소개하려고 한다. 올해 초였나. 잣나무 숲 속에 있는 팔현캠핑장에서 처음 써보고 감탄했던 소니의 ‘히어고(h.ear go)’. 사운드에 대해 빠삭한 편이 아니라 이게 최고인 것처럼 과장하거나 아는 척 하고 싶진 않다. 그저 내겐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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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 말곤 아무도 없었던 평일 오후의 캠핑장에서 히어고로 듣는 음악은 끝내줬더랬다. 활짝 열린 공간인데 나뭇가지마다 부딪혀 음표가 돌아오듯 흩어지는 소리 없이 공간이 꽉 차는 것 같았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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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기억을 더듬어 얼마 전 제주도에도 히어고를 가지고 갔었다. 한라산 소주로 칵테일을 말고, 비 오는 카페에서 책을 읽었던 그때에 말이다. 3박 4일 내내 쉼 없이 비가 오던 통에 바다 풍경은 거의 보지 못했지만, 제주의 냄새는 많이 맡았다. 우리가 머물던 <책과 잠> 민박은 때묻지 않은 제주도 시골 마을 한동리에 있었다. 마당에만 나가도 제주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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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심해 외출하기 무섭게 무릎팍까지 빗물이 올라왔다. 근성이 약한 우리는 금세 포기하고 주저앉았다. 에디터M은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비를 느슨하게 맞으며 담배 피우는 시간을 가장 즐겼고, 나는 인심 좋은 민박집 냉장고를 털어다 요리할 때가 가장 즐거웠다. 그리고 계속 음악을 들었다.

여러분 그거 알고 있는지. 소리와 소리가 레이어링 됐을 때의 맛깔스런 그 느낌. 비틀스의 음색에 에디터M의 방정맞은 노랫소리가 겹치고. 설거지하는 소리와 물 끓는 소리, 양파가 지글지글 볶아지는 소리에 음악소리가 겹치고. 모닝 커피 내리는 소리에 애플 뮤직이 추천해준 재즈가 겹치고. 제주도의 성난 바람 소리에 스윗 드림스가 겹치는 그 순간.

우리가 음악 듣는 방법은 요란하지 않다. 그냥 애플뮤직이나 멜론 따위로 스트리밍 음원을 듣는 정도다. 스트리밍 음원을 블루투스로 전송해 듣는 것치고는 훌륭한 사운드다. 으레 오디오 전문가들이 흔히 하는 말이지만, 저음이 좋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저음이 진짜로 좋다. 이렇게 작은 기기에서 나오는 거라고는 믿기 힘든 과장되지 않은 저음이다. 균형 잡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어디서 주워들은 표현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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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무지게 자리한 다섯 개의 물리 버튼은 누르기도 쉽고, 직관적이다. 특히 에디터M과 내가 툭하면 눌렀던 것은 ‘엑스트라 베이스’ 버튼. 뭐랄까. 그냥 음악을 듣다가 엑스트라 베이스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더 섹시해진다. 콩, 하고 울리던 소리가 쿵, 하고 울리는 느낌. 가장 극단적인 차이를 느꼈던 건 테레즈 몽캄의 Sweet Dreams. 아. 이게 말이지 갑자기 저음이 극단적으로 강조되면서 심장이 벌렁거리는데. 제주도에서 낮술을 마시고 중2병에 걸린 우리 둘의 감성은 갈 곳을 잃고 폭발. 아마 이 엑스트라 베이스 기능을 통해 더 다양한 장르를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힙합, EDM, 클럽 사운드 같은 장르를 감상할 때 추천한다는데 우리 귀엔 재즈와의 궁합이 제일 좋았다. 쿵쿵 울리는 저음이 괜히 좋아서, 아무 때나 눌렀다. 엑스트라 베이스, 클릭,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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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비가 잦아든 아침에는 마당에서 커피를 마시는 호사도 누렸는데. 이때도 분위기를 위해 스피커를 이고 지고 나갔다. 참 좋았다. 바람이 심했지만 춥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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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엔 파스타를 해 먹었다. 세 가지 소스를 놓고 고민하다 결국 세 가지를 다 만들었다. 아라비아따, 바질 페스토, 올리브 오일. 여자 둘이서 먹긴 정말 도전적인 양이었지. 그러나 우린 모두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배가 부르면 잠깐 자고, 책도 읽고.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내 여행 가방 가득히 들고 온 옷가지들 따윈 아무 쓸모없고 이 빨갛고 예쁜 스피커야 말로 완벽한 여행 준비물이었다고. 취향이 갈릴 수 있겠지만 찐득찐득한 저음을 좋아하는 디 에디트의 두 여자에게만은 완벽했지. 물론 불편함 점도 있었다. 일단 무거웠다. 작은 크기에 방심하고 손에 들면 ‘억’ 하게 되는 무게다. 실제 무게는 790g인데 느끼기엔 더 무겁다. 아령이 아닌가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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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가장 많이 들은 건 역시 쳇 베이커.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한동리 버스 정류장으로 우리를 데리러 나온 민박집 주인 L님의 낡은 갤로퍼에서는 쳇 베이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완벽한 선곡이라는 생각이 들어 계속 들었다. 한 앨범을 듣고, 듣고, 또 듣고.

아, 그리고 산울림도. 난 이상하게 제주도만 가면 산울림을 그렇게 듣는다. 

서울 시내의 아파트에서 쓰기엔 아까운 볼륨이다. 캠핑장이나 한적한 제주도에서 쓰기 좋았다. 우리가 소리를 높여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으니까. 겨울이 오기 전에 캠핑 한번 더 다녀오고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져 버렸다. 그래서 포기하고 그냥 쓰는 리뷰. 보너스로 에디터M과 에디터H가 개인 소장하려고 찍어둔 조악한 영상을 이어 붙여서 하나 공개한다. 잘들 논다. 하고 봐주시면 좋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CjKihIIVlAc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