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을 처음 샀던 때가 떠오른다. 2011년 1월 28일이었다. 난 그때까지 피처폰을 쓰고 있었다. LG전자의 롤리팝2라는 셀카가 기가 막히게 잘 나오는 핑크색 휴대폰이었지. 롤리팝이 약정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망가졌을 때도 나는 스마트폰을 극구 거부했다. 어렵고 무서워 보였으니까. 하지만 당시 직장상사였던 J씨는 “아이폰을 사면 삶이 바뀐다”며 쉴새없는 전도를 펼쳤다. 결국 반쯤 떠밀려 아이폰4를 구입했다. 밤새 카카오톡 하나를 설치하지 못해 끙끙거렸다. 아이튠즈는 무엇인지, 앱스토어는 왜 있는지, 계정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2016년 10월 21일. 고작 6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란 여자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보자. 와이파이가 뭔지도 모르던 내가 여러분에게 아이폰7이 어떤 제품인지 썰을 풀겠다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맥북으로. 여전히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게 많다. 그래도 한국 출시 전에 미리 한 달간 꼬박 써보고 리뷰를 준비했으니 차분히 읽어주시면 좋겠다.
사람들이 애플이란 회사에 품고 있는 기대는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다. 마치 걸그룹 먹방을 바라보는 시선과 닮았다. 여자 아이돌이라면 기름기 없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해야 하지만, 밥상머리에선 내숭 없이 복스럽게 먹길 바란다. 애플이 기존(이른바 스티브 잡스 시절)에 가지고 있던 외골수적 고집을 유지하길 바라는 동시에 시장의 흐름에 편승하기 바라는 기대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나저러나 악플의 대상이 된다는 점도 비슷하다. 물론 애플은 걸그룹 멤버보다 훨씬 많은 돈을 긁어가며, 강철같은 멘탈과 용기를 지녔으니 우리가 걱정해줄 필욘 없다.
애플은 사람들의 이런 복잡한 기대에 탁월한 ‘밀고 당기기’로 보답한다. 아이폰7은 애플이 그간 보여준 밀당의 정점에 이른 제품이다.
디자인은 6시리즈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앞모습을 보고 아이폰6s인지 아이폰7인지 구분하라고 하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나조차 헷갈릴 정도다. 뒷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신제품을 샀다는 사실을 뽐내기 어렵다. 아이폰6 시리즈의 후면 디자인을 해치던 씬스틸러, 안테나 절연선이 슬그머니 모습을 숨겼다.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고 모서리로 귀양 간 정도다. 이 정도론 부족하다. 애플은 성난 군중들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블랙’이라는 카드를 내놓았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고작 껍데기 색칠 바꿔준 거 하나에 이토록 열광하다니. 이미 많은 리뷰와 영상을 통해 아이폰7을 보셨으리라. 더러는 이미 실물을 손에 쥐고 있겠지. 아이폰7의 블랙과 제트 블랙은 짜증 날 만큼 근사하다. 공기만 닿아도 흠집이 생기고, 손끝만 스쳐도 지문이 남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섹시한 블랙이다. 특히 두 가지 블랙 컬러는 안테나 절연선이 없는 것처럼 감쪽같이 처리됐다는 점에서 디자인 완성도가 높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로즈 골드가 내 인생 컬러인 것처럼 찬양했는데. 나란 여자는 왜 이렇게 신상에 약할까. 많은 분이 매트 블랙과 제트 블랙을 두고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고민이 길었다. 결국 매트 블랙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재밌는 사실은 이 매트 블랙 컬러의 피니쉬가 실버나 로즈 골드 아이폰7과는 살짝 다르다는 것이다. 똑같은 알루미늄 7000을 사용했지만 공정을 달리해 매트 블랙 컬러의 표면이 조금 더 부드럽고 매끄럽다. 입자가 더 곱다고 표현하면 이해가 쉬울까. 깊이감 있는 블랙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이 얘기를 듣고 블랙 바디를 다시 보면 괜히 더 좋아 보인다. 아무래도 요즘 애플은 본인들이 알루미늄을 창조했다고 믿는 것 같다.
[블랙은 국내 버전, 실버는 일본 버전]
이건 깨알 같은 요소인데, 국내 버전 아이폰7의 경우 뒷면이 훨씬 깔끔해졌다. 아이폰 로고 밑에 쓰여있던 기술표준 등의 텍스트가 싹 사라지고 한 줄만 남았다.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사진 속의 실버 컬러 모델인 일본 버전 아이폰7과 비교해보면 훨씬 깔끔해 보인다.
껍데기로 이야기가 길었다. 이제 홈버튼 누를 시간이다. 아이폰7을 들고 다니면, 사람들은 으레 묻는다. 뭐가 달라졌어? 그럼 난 일단 홈버튼을 눌러보라고 말한다. 사실 이거 말곤 바로 보여줄 수 있는 차이점이 없기도 하고.
다들 아시겠지만 물리 홈버튼이 사라졌다. 눌러도 눌리지 않는다. 그런데 누른 것 같다. 착각이다. 애플은 이 착각을 위해 탭틱 엔진을 사용했다. 사용자가 납작한 ‘가짜 홈버튼’을 누르는 순간, 아이폰이 그 압력을 감지하고 탭틱 엔진은 진동을 일으킨다. ‘드륵’하고 손가락 끝에 전달되는 진동 피드백 때문에 아둔한 내 엄지 손가락이 속아 넘어간다. “어? 눌린 건가?” 실제로 눌리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뭔가 눌린 것 같다는 착각을 억누를 수 없다.
전원을 끈 상태에서 아이폰7 홈버튼을 눌러보면 우리가 주고받던 정다운 진동이 모두 가짜였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차갑고 딱딱한 홈버튼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상한 기분이다. 우리는 이렇게 알량한 ‘감각 트릭’에도 쉽게 넘어간다.
탭틱 엔진을 홈버튼에만 써먹는 건 아니다. 애플은 물리적 경험을 디지털로 가져오는 동시에, 가상 경험에 물리적 반응을 적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어렵게 들린다. 영화관으로 치자면 4D 상영관 쯤 되겠다. 아이폰7에서 상단 알림센터를 내려보자. 화면 위에서 내려온 알림바가 화면 제일 아래쪽에 닿으면 ‘툭’하고 가벼운 진동이 느껴진다. 마치 알림바가 정말 물리적인 바닥에 부딪힌 것 같은 효과다. 이런 촉각 피드백은 iOS10 곳곳에 숨어있다. 하다못해 알람 시간을 정할 때도 커서를 위아래로 조절하면 여러 장의 카드를 넘기는 것처럼 ‘타라락’ 빠른 진동이 느껴진다. 아,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참고로 나는 홈버튼 진동 강도를 3단계(제일 세게)로 설정해두고 사용한다. 탄력 있게 울리는 느낌이 좋아서다.
전작인 아이폰6s의 3D 터치가 창대한 시작에 비해 미약한 발전을 보인 건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이폰7의 탭틱은 조금 더 활용도가 높으리라 생각한다. 만지면(?) 촉각 반응이 일어나는 iOS 미연시 게임 앱이 나오면 좋을 것 같은데 애플이 허락하지 않으려나….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는 먼저 언급한 컬러와 홈버튼이다. 그러나 내가 진짜 찬양하고 싶은 건 디스플레이다. 아이폰7의 디스플레이는 거의 완벽하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디스플레이만으로 봤을 때, 내가 써봤던 기기 중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제품은 아이패드 프로 9.7이었다. 애플은 아이폰7에 아이패드 프로 9.7의 화면을 그대로 이식했다(덧붙이자면 신형 아이맥의 화면과도 같다). 구태의연한 표현을 빌리자면 밝기는 전작보다 25% 향상됐고, 디지털 시네마 표준 색영역을 사용한다. sRGB보다 넓은 색영역인 P3를 지원한다는 얘기다. 사실이긴 한데, 이렇게 말하면 도무지 와 닿지 않는다.
아마도 나를 포함해 여러분 대부분이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디스플레이는 sRGB 영역 안에서 색을 표시하고 있을 것이다. 자연 속에 있는 컬러는 실로 다양하다.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자. 포토샵 페인트 툴로 일괄 색칠해서는 얻을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색이다. 회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고, 파란색도 있고, 하얀색도 있고, 설명할 수 없는 색도 보인다. 스케치북에 하늘을 그려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때, 여러분에게는 24색 크레파스가 있다. 실제 하늘을 표현하기엔 부족한 컬러다. 정확히 그릴 순 없지만 최대한 비슷한 컬러로 대치해 눈에 보이는 하늘을 표현해낸다. 디스플레이 속 컬러도 마찬가지다. 실제와 똑같은 컬러를 담을 순 없다. 가지고 있는 컬러 팔레트에서 비슷한 컬러를 사용해 흉내낼 뿐이다. 그런데 sRGB가 24색 크레파스라면, P3는 48색 크레파스 정도 된다(숫자 그대로 2배가 된다는 뜻은 아니고, 예를 든 것이다). 요컨대 같은 하늘을 그려도 사용할 수 있는 컬러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48색 크레파스를 가진 부잣집 아이는 당연히 24색 크레파스를 가진 아이보다 실제와 더 비슷한 하늘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왼쪽 아이폰7 오른쪽 아이폰6s, 각각의 기기로 촬영한 사진]
P3의 크레파스는 적색(R)과 녹색(G) 인심이 유독 후하다. 따뜻한 컬러의 영역이 더 넓어진다. 따뜻한 톤은 아이폰 카메라의 특징이기도 하다. 아이폰7은 촬영할 때도 P3 영역을 포착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P3를 담아내고,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애플 기기다. 일반 사용자들이 이를 바로 체감할 수 있냐고? 아니, 일반적으로 그럴리는 없다. 나처럼 알아보고 연구하면 세뇌되어 느낄 수 있다. 아이폰7의 디스플레이를 보고 즉각 “좋아졌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폰7을 보다 이전 모델의 화면을 보면 컬러 표현이 보다 차갑고, 특정 컬러를 뭉뚱그려서 표현했음을 느끼게 된다. 가장 드라마틱하게 디스플레이의 차이점을 확인하고 싶다면 노란색 자연물을 촬영해보면 된다. 노란 꽃이나, 노을질 무렵의 노란 하늘이 알맞다. 아이폰7으로 찍어보면 노란 꽃잎이 보다 더 ‘여러가지 노랑’으로 나뉘어 표현된다.
이번엔 카메라다. 하드웨어적인 변화보다는 소프트웨어의 업그레이드가 눈에 띈다. 동영상을 촬영해 보았는데, 흔들림이 눈에 띄게 줄었다. OIS(광학식 흔들림 보정) 덕분인가 했는데, 소프트웨어에 적용된 동영상 안정화 기능 때문이더라. 동영상 퀄리티가 상당히 만족스럽다.
노출차가 큰 피사체 두 가지를 동시에 촬영할 때, 따로 따로 인식해 별도로 톤을 잡아준다. 인물 촬영에 대한 대응이 좋아졌다. 얼굴이 나오지 않고 뒷모습이나 머리카락에 눈코입이 가린 사진의 경우에도 사람을 인식해 노출 우선 순위로 잡아준다. 사진에 대한 해석이 굉장히 섬세하다.
아이폰7 플러스로 촬영한 사진을 몇 장 첨부한다.
나는 아이폰7 플러스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듀얼 카메라까지 체험해볼 수 있었다. 아이폰7 플러스에는 광학식 2배 줌과 디지털 10배 줌 기능이 들어갔다. 그냥 찍을 땐 광각렌즈를 사용하고, 한번 ‘탭’하면 망원렌즈로 전환돼 2배 줌이 된다. 길게 눌러 화면을 좌우로 움직이면 최대 10배까지 디지털줌을 당길 수 있다. 꽤 편리하다. 내가 직접 다가갈 수 없는 피사체를 촬영할 때 유용하더라.
비행기 창문에 대고 촬영해보니 드라마틱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다만 2배 줌에 사용하는 망원렌즈의 경우에는 평상시에 사용하는 광각렌즈보다 조리개값이 높으므로 빛이 충분한 환경에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듀얼 카메라를 활용한 인물사진 모드는 이번 신제품에서 가장 기대하는 기능이다. 아직 iOS 베타에만 공개된 기능이니 정식 업데이트 후에 따로 리뷰하려 한다.
저조도 촬영은 아이폰6s보다 더 깨끗하고 선명하게 나온다. 사진을 찍어 비교해봐도 확실히 좋아졌다.
[아이폰7으로 촬영한 야간 사진]
광량이 충분한 낮에 촬영했을 때, 아이폰7은 작품처럼 근사한 사진을 담아준다. 과장 없이 담담하고 감성적인 컬러표현과 디테일은 훌륭하다. 하지만 아이폰7의 경쟁상대가 아이폰6s만 있는 것은 아니지.아이폰7의 카메라는 ‘낮이밤저’ 스타일이다. 저조도 촬영은 여전히 경쟁사에 비해 떨어진다. 대놓고 말하자면 갤럭시S7에 비해서 말이다. 애플이 왜 이렇게 저조도 촬영에 인색한 것인지 묻고 싶다. 이것도 밀당인가. 아이폰7s 쯤 대폭 개선해주려고 아껴놓은 걸까.
[코딱지만 한 크기로 봐야 좋다]
전면 카메라까지 이야기해보자. 페이스타임 카메라의 화질이 대폭 향상됐다. 부담스러울 만큼… 모공이랑 주름이 너무 자세하게 표현돼서 전보다 셀카 횟수가 대폭 줄었다. 피부톤 표현도 정확해졌다. 앞서 말했듯 노란톤의 색영역이 넓어졌으니, 황인종의 피부톤을 표현하기 유리해진 것 같다. 화질은 좋고, 셀카는 나쁘다. 배드. 배드.
저조도 촬영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긴 했지만, iSight 카메라는 여전히 내가 가장 아끼는 폰카메라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촬영 셔터음이 너무 크다. 억울할 만큼 크다. 조용한 카페에서 사진을 찍으면 “차아아알칵!!!!” 이런 느낌으로 셔터음이 울린다. 셔터음이 없는 미국 버전을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하단에 있던 스피커가 위 아래에 장착되며 ‘듀얼 스피커’가 되었는데, 부작용으로 촬영 셔터음도 스테레오로 울린다. 부담스러워졌다. 물론 콘텐츠를 감상할 땐 듀얼 스피커의 등장이 반갑기 그지없다. 보통 넷플릭스를 보거나 유튜브를 볼 땐 화면을 가로모드로 거치한다. 화면 좌우에서 소리가 울려퍼지니 훨씬 듣기 좋다. 촬영음만 해결하면 되겠다.
이제 가장 예민한 얘기를 해보자. 3.5mm 이어폰잭이 사라졌다. 아이폰7 공개 당시에는 이게 크게 불편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근데 막상 경험하고 나니 불편하다. 물론 라이트닝 단자를 사용하는 번들 이어폰을 제공하며, 일반 이어폰을 라이트닝 단자에 꽂을 수 있는 어댑터도 기본 제공한다.
그러나 아이폰 충전과 헤드셋 장착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는 불편함은 상상 이상이다. 나는 밤에 유튜브를 틀어놓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잔다. 근데 요즘은 그럴 수가 없다. 유튜브 영상을 밤새 틀어놓으면 아침에 아이폰이 방전돼 있기 때문이다. 무선 충전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답답하다. 어쩔 수 없이 잘 땐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보다 자는데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
아직 출시되진 않았지만, 아이폰7 공개 현장에서 에어팟을 체험해봤던 기억을 더듬어보자. 착용감이나 음질이나 노이즈 캔슬링 기능 등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기기였다. 귀에 꽂자마자 음악이 나오고, 빼면 바로 음악이 멈추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에어팟을 위해, 다가올 무선의 시대를 위해, 충전하며 음악을 들을 자유를 박탈당했다고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일년 뒤에는 이런 변화가 아무렇지도 않을까. 섣불리 평가를 내리긴 이른 시기라 볼멘 소리 정도로 정리해둔다. 애플은 이걸 용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애플은 그동안 용기있는 결단을 통해 여러 번 업계를 바꿔왔다. 이번에도 통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다. 얼마 후에 내 귀에 에어팟에 꽂혀 있다면 그것 또한 내 선택… 헤헷.
새로운 프로세서나 성능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겠다. 모든 작업이 쾌적해졌다. 다만 iOS10은 안정화가 더 필요할 것 같다. 배터리 사용 시간은 만족스럽다. 특히 나는 아이폰7 플러스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일과시간 내에 배터리의 압박에 시달리는 일은 거의 없다.
[용기가 부족했다]
마무리는 방수. 애플이 드디어 아이폰7에 방수를 지원한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미 여러 번 언급해서 식상한 분들도 있겠지만, 한 번만 더 얘기해보자. 2014년 겨울엔 아이폰5s를 이태원의 어느 술집의 변기에 헌납했다. 2015년 9월엔 베를린의 한 전시회장 변기에 아이폰6를 떨궜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사실 몇 가지 에피소드를 더 하자며 아이폰4도 종로에서 도둑 맞았고, 아이폰6 플러스는 바르셀로나에서 소매치기 당했다. 사람들은 내가 아이폰과 맞지 않는다고 놀렸다. 아니다. 우린 잘 맞는다. 이제 방수도 지원하니까 행여 또 세라믹 물통에 빠지더라도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아이폰7의 겉모습에는 방수에 대한 힌트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유심 트레이를 뺐을 때야 고무 실링을 보고 “아, 방수 되지, 참”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아이폰과 촉촉한 일상을 즐겨보자. 다만 애플은 침수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으니 적당히 조심하는 게 좋겠다.
간단히 가볍게 톡, 터치하는 아이폰7 리뷰를 꿈꿨는데 실패했다. 나는 왜 이렇게 수다스러울까? 아이폰7은 겉으로 보이는 이야깃거리가 많지 않다. 까만색을 입고, 구멍이 하나 없어진 것 외에는 별 볼 일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애플의 밀당은 이런 포인트에서 빛을 발한다. 널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쓰면 쓸수록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개선이 돋보인다. 연애로 치자면 상당히 고단수다. 이런 은근한 변화들은 마치 귓속말 같다. 가까이 다가가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이미 애플 생태계에 깊게 발 담근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지만, 다른 소비자는 어떨까. 어쩌면 그냥 시시하게 느껴질까?
사소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집요하게 개발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비정하게 없애버렸다. 애플의 모든 선택이 옳았던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완성도 높은 제품이다. 실망은 있지만 배신은 없다.
당신은 아이폰7에 무엇을 기대했을까? 확실한 건 애플은 우리의 기대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플은 애플의 기대를 채우려 고군분투한다. 그래서 아이폰7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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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