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에디터H와 나는 두 손을 꼭 잡고 병원을 방문했다. 어디가 아픈 건 아니고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서다. 솔직히 건강건짐은 벌써 일 년째 삶의 무게에 밀려 나의 할 일 리스트에서 지우지 못했던 숙원사업 중 하나였다. 우리 둘 다 제대로 된 검진을 받은 지가 디에디트를 시작하기 전이니 늦어도 한참을 늦은 셈이다. 대장내시경을 받기 위해 고난의 시간을 보낸 게 벌써 일주일 전.
드디어 결과가 나오는 날. 우리 둘은 떨리는 마음으로 의사 선생님 앞에 섰다. 다행히 결과는 대부분의 수치는 정상 범주였지만, 한 가지 내가 절대 지킬 수 없는 처방을 받았다.
“앞으로 탄수화물 섭취는 좀 줄이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럴 수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밥, 빵, 면인데. 탄수화물 없는 내 인생은 무슨 재미란 말인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최근에 탄수화물 섭취가 유독 많았다. 이게 다 오늘 소개할 이것 때문이다. 나 혼자 죽을 수 없지. 나는 여러분을 살찌게 할 자신이 있다. 이건 정말 위험하다. 혹시나 지금 뼈와 살을 깎는 다이어트를 감행하고 있는 분이라면 지금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는 것을 권장한다.
자, 여기까지 왔다면 각오가 되어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요즘 디에디트 사무실은 아침마다 고소한 버터 향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아침부터 배고픈 에디터H에게 출근도 전에 메시지가 온다. “혜민아, 나는 오늘 뺑오 쇼콜라.”
디에디트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는 나는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사무실에 서서 빵 구울 준비를 한다. 두 손을 걷어붙이고 볼에 뽀얀 박력분을 400g을 붓고 계란을 깬다. 그리고 반죽을 잘 섞어준다…
사실 거짓말이다. 그냥 냉동실 문을 열고 냉동생지를 꺼내 에어프라이어에 담을 뿐.
냉동 생지란 파이, 식빵 등등 각각의 레시피대로 반죽한 뒤, 발효를 거쳐 냉동 혹은 냉장 상태로 유통 가능하도록 한 것을 말한다. 호텔의 조식에서 갓 구운 빵은 대부분이 이 냉동생지를 가지고 구워낸 것이 많다. 집마다 오븐이 있고, 베이킹이 보편화된 외국에서는 냉동생지가 많이 상용화되어 있다. 생지는 원래 오븐에 구워내는 것이 맞지만, 외국에 오븐이 있다면 한국에는 자랑스러운 에어프라이어가 있지. 요즘은 아예 뒤쪽에 에어프라이어용 레시피를 달고 나오는 것들도 많다. 그리고 오븐용을 사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냉동생지와 에어프라이어만 있다면, 집에서도 누구나 손쉽게 갓 구운 빵을 먹을 수 있다는 아주 위험하고 통통한 소리인 것이다.
권PD는 크루아상을 에디터H는 크루아상에 초콜렛이 콕콕 박힌 뺑오 쇼콜라를, 나와 에디터B는 딸기 필링 파이를 골랐으니 각각의 생지를 에어프라이어에 담는다. 그리고 에어프라이어의 다어얼을 돌린다. 온도는 185도 시간은 13분. 에어프라이어를 돌릴 땐 권장하는 것보다 온도는 5도 정도 높게, 시간은 3분 정도 더 길게 약간 돌린다. 약간 오버쿡이 되어야 색도 돌고 맛도 좋아진다.
5분 정도 지나면 사무실은 행복의 향기, 버터 향으로 가득 찬다. 맞다, 아직 해가 어스름하게 뜨는 어느 새벽 불 켜진 빵집을 지나갈 때 나는 그 향기 말이다.
종료 알림이 울리고 모습을 드러낸 빵의 고운 자태는 어찌나 탐스러운지. 고소한 버터를 가득 머금은 채 한겹 한겹 결을 세수 있을 정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구운 빵을 찢을 때의 희열이란. 우리 모두 한 번씩은 다 해봤잖아요. 본디 아는 맛이 더 무서운 법. 빵을 찢는 손길에 조급함이 깃든다.
겉바속촉은 이럴 때를 위해 있는 말일까. 와사삭 부서지는 겉면의 크러스트를 헤치고, 버터를 가득 머금은 촉촉한 살결이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드러난다. 아아 갓 구운 크루아상의 맛은 정말로 위험하다. 아무리 유명하다는 빵집도 방금 구워낸 빵을 이길 순 없다. 솔직히 웬만한 빵집에서 먹는 크루아상보다 훨씬 맛있다.
안에 있는 딸기 필링이 너무 뜨거워서 호호 불고 요란스럽게 입을 움직이며 먹는 파이의 맛도 훌륭하다. 마트에서 사 먹는 프렌치파이를 열 단계 정도 업그레이드한 맛이랄까. 에어프라이어에 프렌치파이를 구워도 참 맛있다던데 다음엔 그걸 시도해봐야겠다.
요즘은 에어프라이어에 3분간 홈런볼을 굽는 게 유행이라던데. 아니 과자뿐일까. 만두, 감자튀김, 쥐포, 치킨까지 수많은 레시피가 나와 있지만 단언컨대 에어프라이어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은 아마도 이게 아닐까 싶다.
차가운 냉동실에 갇혀있던 허여멀건한 반죽이 에어프라이어에서 고작 10여 분이 지난 뒤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올 수 있다니! 해동도 별다른 스킬도 필요 없이 이 짧은 시간 만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으로 탄생하는 이것을 기적이라는 말 외에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요즘은 냉동 생지 종류도 참 다양하다. 이렇게 간단한 파이류는 물론이고, 치아바타, 마들렌까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빵 종류가 나와 있다. 브랜드도 굉장히 많은데, 이것저것 먹어봤지만 큰 차이는 없다. 그냥 냉동생지라고 검색해서 원하는 걸 골라도 된다. 모두 맛있을 거다.
요즘은 다들 집에 에어프라이어 한 대씩은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요즘 출시되는 만두나 핫도그 등의 냉동식품의 뒷면엔 에어프라이어용 조리 방법이 따로 나와 있을 정도니까. 필립스가 처음 공기로 튀기는 기기라는 ‘에어프라이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지만, 지금 에어프라이어는 단순히 건강한 튀김을 만드는 기기라기보다는 오븐이 없는 우리나라의 주방구조에서 최적화된 미니 오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 아침, 밖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 갓 구워낸 빵과 커피 한잔을 할 수 있다니. 기술은 오늘도 나를 살찌게 한다. 다음번에 나의 사랑스러운 에어프라이어에 또 무엇을 구워야 할까.
여러분이 알고 있는 에어프라이어 레시피가 있다면 공유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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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