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흑백요리사> 시즌 2를 기다린 객원 에디터 김정년이다. 넷플릭스의 요리예능이 남긴 흥밋거리 하나를 꼽자면, ‘심사위원인 안성재 셰프는 어떤 맛을 선호할까?’라는 질문일 것이다. 그는 프로그램 내내 단호했다. 요리사를 향한 피드백은 짧고 굵게 그리고 침착하게 내뱉었다. 음식을 심사할 때는 평가 기준이 분명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묘한 신뢰가 생긴다. 그런 인물이 한국 식품업계의 광고 모델로 등장하는 순간,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과연 그는 어떤 점을 좋게 보고, 그 광고를 수락한 걸까?”

광고 모델 활동은 출연자에게 부와 명예를 보장한다. 하지만 사람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돼 있다. ‘미쉐린 쓰리스타 출신 셰프’가 얼굴을 비추기로 결정한 제품이라면, 적어도 ‘선택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미각적 취향이든, 제품의 방향성이든, 셰프가 납득한 무언가 말이다.
광고가 단순한 비즈니스였다 하더라도, 광고할 가치 있는 제품이었기를 기대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안성재 셰프가 얼굴을 내민 광고를 확인하고 다양한 식품을 직접 사 먹어봤다. 그리고 그중 기억이 남는 제품 여섯 가지를 골라 리뷰를 남긴다. 마케팅 팀의 승부수와 셰프의 안목 사이에서, 이븐하게 헤엄쳐보자. 참고로 오늘 글에는 광고가 일절 없다.
[1]
“국수보다 먼, 파스타와는 가까운”
필로테아 그라노벨로 파로면

자가제면하는 라멘집 면사리가 떠오르는 비주얼이다. 패키지를 열면 건면이 둥글게 말려있는데, 삶아서 면을 맛보면 진한 통밀향과 약간의 산미가 느껴진다. 길쭉길쭉한데다 펄펄 끓는 물에 10분 정도는 담가야 면발이 부드러워지는 일반 파스타 면과는 다르다. 면의 성질 맛 모두 낯설고 독특하다.

주목해야 하는 레시피 포인트는 면 삶는 시간이다. 다른 파스타 면보다 삶는 시간이 짧다. 2~3분 안팎이면 냄비 안에서 충분히 익는다. 오래 삶으면 밀가루 반죽이 서로 뭉치며 떡진 수제비처럼 변하니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파로(Farro)는 고대 로마 시절부터 재배된 밀이요, 그라노벨로(Granobello)는 파로를 갈아 만든 밀가루 면의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파스타 면은 듀럼밀을 곱게 간 밀가루(세몰리나,Semolina)에 계란을 섞어 탄력있는 면을 만드는데, 이탈리아 중부 마르케(Marche) 지역 사람들은 물과 파로 통밀가루를 치대며 첨가물 없이 순수한 밀가루면을 만들기에 이른다. 오늘날에도 필로테아(FILOTEA)라는 현지 식품회사에서 그 전통을 잇고 있다.

그라노벨로 파로면처럼 유서 깊은 해외 식품을 수입하는 경우, 안성재 셰프 같은 스타를 필요로 한다. 다루는 음식의 역사는 깊지만, 인지도는 얕기 때문이다. 낯선 식재료를 대중화시키려면, 음식을 조금이나마 친숙하게 만들어 줄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라노벨로 같은 면을 팔기 위해 안성재 셰프 같은 전문가를 광고모델로 세우는 이유다. 미쉐린 셰프 손에 들린 파스타 면을 본 순간, 우리는 낯선 식재료와 조금 더 친해질 수 있다.

압출면 특유의 거친 표면 덕인지 시판 중인 파스타 소스가 제법 잘 달라붙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면의 식감이나 맛을 고려하면 들기름 막국수나 메밀소바를 만드는 감각으로 누들 레시피를 응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면의 성질을 이해하면, 그때부터 잠재력을 발휘하는 제품이다. 혹시 국내 공식 유통사에서 이 글을 보신다면, 안성재 셰프가 이 면을 어떻게 응용하는지를 레시피 콘텐츠로 만들어주시길 바란다. 그러면 사실상 1인분에 1만 원 정도 하는 프리미엄 면을 좀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가격은 온라인 쇼핑몰 기준 2만 원대(250g). 링크는 [여기].
[2]
“내 별명은 안성재 하이볼”
GS25 소비뇽 레몬 블랑 하이볼

올해 한국에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술을 하나 뽑아야 한다면, 알루미늄 캔에 담긴 하이볼이지 않을까. 특히 ‘프리미엄’을 표방하는 하이볼의 제작이 크게 늘었는데, 와인이나 양주 등 다양한 주종을 토대로 술 함유량을 높이거나 특별한 재료를 더하는 게 특징이다. 국산 하이볼 캔은 원액을 아끼거나 인위적인 주정을 넣어 하이볼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의 제품이 많았던 터라, 불쾌한 쓴맛을 줄이고 술 본연의 향미가 제대로 나게끔 설계한 하이볼 캔은 술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올해 GS25의 와인 베이스 하이볼이 큰 인기를 끌었다. 명백한 흥행 요인은 안성재 셰프의 샤라웃. <흑백요리사> 방영 이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안성재 셰프는 가끔씩 하이볼 이야기를 꺼냈다. 안 셰프는 GS25의 러브콜로 ‘소비뇽 레몬 블랑 하이볼’의 공식 모델로 발탁, 영상 리뷰를 통해 호평을 내릴 요소를 차근차근 짚었다. 사람들도 안 셰프의 평에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

이 제품은 ‘소비뇽 블랑’으로 담근 화이트 와인이 하이볼 캔 속에 34.5%가 담겨있다고 전해지는데, 소비뇽 블랑은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서 유래한 청포도 품종이다. 이 포도로 와인을 담그면 쿰쿰한 과일향과 가벼운 산미, 입안에서 드라이하게 떨어지는 바디감을 경험할 수 있다.
화이트 와인 본연의 매력이 크게 느껴지는 가운데 탄산음료의 청량함과 하이볼 특유의 단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는 인상을 받는다. 마케팅은 스타 셰프의 명성에 기대지만, 퀄리티는 하이볼 본연의 가치를 다한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편의점 할인 프로모션 때 따로 챙겨두고 싶은 캔이다. 정가는 4,500원.
[3]
“기대 안 하면 기대 이상”
롯데칠성음료 클라우드 논알콜릭

안성재 셰프를 홍보 모델로 앞세우는 알코올 도수 1도 미만의 저칼로리 맥주다. 맥주는 건조시킨 보리싹(맥아)과 홉으로 만드는 술이다. 몇몇 주류 회사는 논알콜릭 제품을 만들기 위해 술이 익는 동안 알코올 생성을 제한하는 특수효모를 사용하는 공법을 도입했는데, 롯데칠성음료의 클라우드 논알콜릭도 그 공법을 따른다.
개인적으로 도수 높은 맥주를 즐기는 편이지만,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논알콜릭 맥주를 먹어야 할 경우가 생긴다. 나는 수년 전 논알코올 맥주가 유행하던 시절을 기억한다. 회식이 끝날 무렵 마시는 김빠진 맥주의 맛. 입안은 텁텁하고 불쾌한 쓴맛이 감돌던 그 맛을 떠올리며 시식했는데, 클라우드 논알콜릭을 마시며 저칼로리 저도수 맥주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구수한 몰트향이 예상보다 진하고, 뒷맛이 깔끔하다. 논알콜릭 맥주 특유의 맹물맛이나 금속성 향이 적다. 톡 쏘는 탄산은 강하지 않기 때문에 목 넘김이 부드럽다. 마시고 나면 입안에서 맥주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허나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보리차를 떠올리게 하는 몰트향이 지배적인데, 이 때문인지 맥주에서 기대하는 홉의 풍미를 느끼긴 어려웠다. 쌉싸름하면서도 프루티한 향을 기대한다면 다른 맥주를 찾아야 한다.

마시고 나서 3초 간의 청량함이 썩 괜찮다. 논알콜릭 맥주를 ‘맛이 없거나 심심한 제품’으로 바라보던 시점에서 마신다면, 충분히 높은 퀄리티다. 클라우드는 대형 주류 회사의 일반 맥주보다 원가 부담이 높은 라거로 알려져 있다. 음식은 재료 원가를 아끼지 않을수록 맛있다는 게 식품업계의 정설.
논알콜릭 맥주는 몇 년 전만 해도 ‘대체 왜 마시는지 모르겠다’는 조롱을 얻곤 했다. 그러나 최근 시장은 완전히 뒤집혔다. 취하지 않는 술자리 혹은 가볍게 마시고 헤어지는 술자리를 선호하는 흐름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무알콜 맥주를 왜 마셔?’가 아니라 ‘어떤 걸 마실까?’라는 이야기를 꺼낸다. 어떤 걸 마실지 고민할 때, 라거를 즐기고 싶다면 클라우드 논알콜릭은 괜찮은 선택지다. 가격은 대형마트 기준 1,000원 대(350ml).
[4]
“담백한 캔햄을 찾는다면”
동원 리챔 캔햄

김치찌개, 계란말이 속재료, 볶음밥 등 쓰임새가 다양하다는 점에서 캔햄은 실용적인 육가공품이다. 그리고 어떠한 브랜드든 결국 ‘밥과 함께 먹으라’는 전제를 안고 있다. 리챔 CF에서 안성재 셰프를 마주했을 때, ‘파인 다이닝 셰프가 왜 캔햄을?’이라는 의아함이 있었다. 동시에 ‘파인 다이닝을 오래 해온 셰프라면, 이런 가공육 제품의 장단점도 객관적으로 비평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리챔은 최근 디솔트와 에이징을 강조한다. 안성재 셰프도 그 점을 호평했다. 나트륨은 낮추고 저온 숙성으로 햄의 풍미를 높인 결과, 타사 제품보다 기름기가 적고 균형잡힌 짠맛이 나오는 캔햄이 나왔다. 팬에 올려보면 알 수 있다. 햄에서 기름이 덜 나오고 바싹 익히면 표면에 부드러운 크러스트가 생긴다. 씹을 때는 ‘결이 부서지는 감촉’이 살아 있고, 안쪽은 은근하게 육즙이 돈다. 상대적으로 짜다는 리챔 오리지널과 저염제품인 더블라이트도 비교적 담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한국에서 캔햄은 ‘밑간 취향의 문제’에 가깝지 않을까? 어느 집은 짭조름한 스팸을 사랑하고, 또 다른 집은 상대적으로 간이 슴슴한 리챔을 고집한다. 요컨대 캔햄 브랜드를 고르는 일은 ‘간이 얼마나 이븐하냐?’의 문제인 것이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이븐한 간의 기준이 고자극이 아니라 담백함이라면, 당신은 스팸이 아니라 리챔으로 가는 게 맞다. 가격은 대형마트 기준 3,500원(200g).
[5]
“영상 보고 영업 당한 장맛”
청정원 태양초 찰고추장

고추장은 한국 식문화의 정체성이자 근본이다. 분식집 떡볶이부터 제육볶음, 비빔밥, 찌개 양념에 이르기까지 고추장은 ‘매운맛’을 넘어 ‘단맛·발효취·감칠맛’이 한데 섞인 독특한 식재료다. 한국인은 전국 어느 마트를 가나 한국 식품업계의 표준화된 고추장 맛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제품도 그중 하나다.
최근 고추장 시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간편식 조미양념을 목표로 설계된 ‘변형 고추장’. 다른 하나는 전통적인 제조법에 식품기업의 발효기술을 더하는 ‘기본형 고추장’. 찹쌀이 주재료인 청정원 순창 태양초 찰고추장은 후자다.

‘기본형 고추장’은 소비자가 원하는 맛과 향이 분명한 제품이며, 브랜드 간 품질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다들 자기네 제품이 한국의 깊은 전통 장맛을 지키고 있다며 힘주어 말한다. 요컨대 시장 점유율 향상을 위한 제품 홍보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청정원은 안성재 셰프와 전라북도 순창군으로 떠났다. 순창군은 발효명인과 대형식품회사가 모이는 국가대표 고추장 산지. 순창에서 안성재 셰프가 고추장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 다큐멘터리 필름을 촬영했다.
안 셰프와 고추장 장인 선생님들이 긴장을 많이 한 탓인지, 한없이 진지한 가운데 묘한 연기톤으로 고추장 자랑을 하신다. 안성재 셰프의 팬이라면 이 광고를 머릿속에 기억해뒀다 마트에서 청정원 고추장을 만났을 때 반가운 마음으로 사다 먹을 거 같다. 가격은 정가 1만 2,500원(500g). 매장마다 할인율 편차가 큰 제품이다. 가장 싸게 파는 곳에서 구입하자.
[6]
“소확행을 약속하는 프리미엄 샌드위치”
써브웨이 안창 비프 컬렉션

미국에서 온 패스트푸드 체인점 써브웨이는 이제 한국에서 가장 매장 수가 많은 샌드위치 프랜차이즈가 됐다. 한때 선택 장애를 유발했던 샌드위치 커스터마이징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주문하자마자 잠수함처럼 생긴 샌드위치의 빵, 치즈, 소스, 속재료를 고르는 즐거움은 써브웨이에 가는 이유 아닐까. 최근 써브웨이는 한국시장에서 에그마요나 BLT같은 스테디셀러 메뉴를 고수하는 가운데, 프리미엄 식재료를 더한 신제품을 발매하고 있다.
안성재 셰프가 광고 모델로 출연하는 안창 비프 컬렉션도 그중 하나다. 샌드위치에 특제 시즈닝이 버무려진 안창살이 들어간다. 안창살은 소 한 마리를 잡을 때 한 근 정도 얻을 수 있는 희귀 부위로 지방이 풍부하며 단백질 조직이 치밀해 씹는 맛이 진한 부위다.

샌드위치 속에 심지가 굵은 고기가 담기니 위트나 그레인처럼 거친 식감의 빵을 좋아한다면 입안에서 오래오래 질겅질겅 씹어먹는 샌드위치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여러 가게를 돌며 직원 추천 소스 조합을 물어봤는데, ‘랜치 + 스위트 칠리’가 가장 많이 언급됐다. 자기주장이 뚜렷한 소스를 여러 가지 넣는 게 맛있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이 메뉴는 2024년 겨울에 출시했는데, 올겨울 들어 컬트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특히 흑백요리사 애청자나 안성재 셰프 팬 사이에서 바이럴을 탄 것으로 보인다. <흑백요리사> 시즌 2 방영이 임박한 영향도 있겠으나, 바이럴의 시작은 아마도 올겨울 써브웨이가 준비한 시식 리뷰 영상. 흑백요리사의 경연 심사 장면을 오마주한 패러디 영상인데, “프랜차이즈에서 만든 샌드위치치고는 꽤나 만족스러운 거 같습니다.” 같은 시식평에 사람들이 댓글로 열띤 호응을 보내고 있다.
국물 요리 광고가 들어라면 “국물이 끝내줘요.”라고 말하던 한국의 흔한 음식 광고 영상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극찬은 아끼고 덤덤한 얼굴로 “가끔 가서 먹을 거 같아요.” 정도로 표현하는 안성재 셰프의 평가는 정확히 내가 이 샌드위치에 내리고 싶은 평가와 같다.

앞으로도 나는 프로모션 가격에 파는 샌드위치를 먹을 거다. 그럼에도 가끔은 1~2,000원 더 얹어서 한 끼 푸짐하게 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안창 비프 컬렉션을 고르지 않을까. 그대는 내게 가끔 생각나는 사치스러운 샌드위치. 단종 없이 써브웨이에서 오래 남아주시길. 가격은 15cm 기준으로 1만 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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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년
브랜드와 음식문화를 탐구하는 피처 에디터. 세계를 떠돌며 아름다운 논픽션을 쓰는 게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