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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지난 여름, 갤럭시노트7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생각했다. 미쳤네. 미쳤구만. 아무래도 이건 역사에 길이 남을 스마트폰이 될 것 같았다. 코랄...
지난 여름, 갤럭시노트7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생각했다. 미쳤네. 미쳤구만. 아무래도 이건…

2016. 10. 13

지난 여름, 갤럭시노트7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생각했다. 미쳤네. 미쳤구만. 아무래도 이건 역사에 길이 남을 스마트폰이 될 것 같았다. 코랄 블루 컬러는 영롱하고, S펜의 섹시한 필기감은 애플펜슬 추종자인 내 마음조차 흔들어놨다. 홍채인식은 무적이었다. 세상 모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제조사의 앞날이 걱정될 정도였다. 이렇게 잘 만드는 건 반칙이다. 다 해먹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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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용으로 찍어놨으나 쓸 곳이 없어진 쓸데없이 잘 나온 제품 사진]

얼마 후, 내 생각은 이상한 방향으로 들어맞았다. 펑! 펑! 그렇게 만드는 건 진짜 반칙이었고, 갤럭시노트7은 진짜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됐다.

10월 13일부터 갤럭시노트7에 대한 교환 및 환불이 시작된다. 갤럭시노트7 구매자들은 당장 쓰려고 구입했던 제품과 억지로 헤어져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당연히 무언가 대체품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뭣으로? 대체 무슨폰으로 바꿔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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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용으로 찍어놨으나 쓸 곳이 없어진 쓸데없이 잘 나온 제품 사진2]

갤럭시노트7을 구입했던 사람들이 이제와서 구형 스마트폰이나 저가 스마트폰에 눈을 돌리진 않을 것이다. 노트7보다 마음에 드는 폰은 없는데, 노트7은 내 안전을 위협한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사실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골라야 한다.

그리하여 이 기사는 당황한 여러분을 위해 뻔한 스마트폰을 나열해보는 뻔한 기사.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우는 손님이 처음인가요….

(구글 픽셀은 국내 출시 여부나 일정을 알 수 없어 제외했다.)


LG V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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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꾸 노래를 부르게 된다. 이런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한 걸음 뒤엔 항상 내가 있었는데, 그댄 영원히 내 모습 볼 수 없나요. 타이핑만 해도 슬픈 가사다. LG에게 모처럼의 기회가 왔다. 갤럭시노트7이 펑펑 터져서 갈 곳을 잃은 소비자들의 수요가 V20으로 향할까? 안타깝게도 그럴 확률은 크지 않아보인다. 갤럭시노트7에 맞춰진 눈높이를 V20이 가진 브랜드 이미지가 채우긴 역부족이기 때문. 물론, V20은 훌륭한 음향기기… 아니, 스마트폰이다. 기기 자체의 완성도 문제라기 보다는 매력도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조심스레 예측을 해보자면, V20을 사려는 사람보다는 삼성전자가 (안 터지는)다음 제품을 내놓기를 기다리려는 소비자가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면 V20보다는 오히려 출고가를 내린 G5가 저렴한 맛에 각광받을지도. 다음 갤럭시를 기다리며 쉬어가는 차원에서 말이다.


소니 엑스페리아X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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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노트7 사태로 삼성에 대한 신뢰도는 이미 떨어졌는데 그렇다고 LG를 사긴 싫고, 아이폰은 선호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라면 소니를 향한 가능성을 활짝 열어보자. 엑스페리아XZ는 꽤 유니크한 선택이다. 일단 국내 사용자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에서 괜히 특별해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삼성 페이와 S펜은 없지만, 카메라와 음향 기술은 만족스러울 것이다. 디자인도 괜찮다. 다만, 자급제 단말기라 다른 모델에 비해 지원금 혜택이 적다는 점이 함정.


애플 아이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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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언론에서는 갤럭시노트7의 단종 조치에 따라 애플이 가장 큰 반사이익을 취할 것으로 보고 있다. 흥미롭고도 요상한 시장이다. 쟁쟁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도 있건만, 운영체제가 완전히 다른 아이폰7이 더 강력한 경쟁자라니. 실제로 국내 갤럭시노트7 구매자 중에는 아이폰7으로 마음을 바꾼 경우가 더러 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와 iOS의 벽은 그렇게 얄팍하지 않다. 애플이 이를 전부 흡수할 수 있을리는 절대 없다. 일부를 가져갈 뿐이다. 그러니 앞으로 아이폰7가 국내 시장에서 좋은 판매량을 거둔다고해서 그게 갤럭시노트7의 은혜는 아니란 얘기다. 타이밍 좋게 아이폰7을 출시하는 애플을 악역으로 묘사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삼성 갤럭시S7/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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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써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직전 모델인 갤럭시S7 시리즈를 택하는 것이다. 삼성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한 건 사실이지만, 애석하게도 그게 다른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 상승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이번 사태로 삼성에게 실망했지만 그래도 결국 갤럭시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대체품이 없기 때문이다. 씁쓸한 결론이다. 삼성 역시 갤럭시노트7에 대한 수요나 제품 교환이 갤럭시S7과 갤럭시S7 엣지로 몰릴 것을 대비해 구미와 베트남, 중국 생산 라인을 총동원할 예정이다.

덧붙이자면 삼성이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갤럭시S7엣지 블루 코랄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루머까지 들려온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 법이니, 갤럭시는 갤럭시로 잊으라는 걸까. 이번 사태는 헤어진 연인과의 실패한 연애담처럼 말랑말랑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잊을 수는 없지. 이렇게 보내줄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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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