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사무실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했다. 일 년 동안 박스 안에 돌돌 말려있던 트리의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곱게 펴주고, 오너먼트를 곳곳에 달아준다. 빨간 공, 초록 공, 토끼, 버섯, 황금열쇠, 별…. 권PD가 갑자기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리더니 타임랩스를 찍겠다고 했다. 이것도 다 추억이라고 기록해두자면서. 좋은 시도였지만 수고스럽게 촬영한 ‘트리 만들기 타임랩스’는 썩 잘 나오지 않았고, 막상 찍고 보니 써먹을 곳이 없더라. 결국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은 채 묻혀버렸다. 가끔 보면 ‘영상’이란 포맷은 가볍게 즐기기엔 그 과정이 너무 무거울 때가 있거든.
우리는 몇 년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오고 있다. 영상을 만들기 전에 기획 회의를 하고, 스크립트를 쓰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수정하고 그제서야 한 편의 영상을 릴리즈한다. 평균적인 길이는 10분에서 15분. 대부분 정보성 콘텐츠이기 때문에 ‘시시덕대며 트리 만들기 영상’ 따위가 끼어들 틈은 없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의미 없이 정다운 순간의 기록을 나누고 싶기도 하다. 그제야 요즘 소홀했던 틱톡이 떠올랐다.
[틱톡 디에디트 계정에서 영상을 꼭 보시길]
미니 전구까지 곱게 둘러 반짝반짝 빛나는 트리 앞에 가서 틱톡 앱을 열었다. 연말 스티커 중에 화려해 보이는 걸 고르고, 사운드는 ‘크리스마스 캐롤송 베스트’ 리스트에서 골라보자. 신나는 캐롤을 듣고 싶을 땐 ‘Jingle Bell Rock’만한 게 없다. 잽싸게 배경음악을 선택하고 15초 동안 음악에 맞춰 카메라를 흔들어 제낀다. 마치 2000년대 초반의 뮤직뱅크를 떠오르게 하는 화려한 카메라 무빙이다. 사방에서 폭죽이 터지는 스티커 효과와 만나 이렇게 화려할 수가 없다. 아이폰을 들고 트리 앞에서 춤을 추듯 촬영하는 내 모습을 보고 사무실에 있는 애들이 깔깔 웃는다. 녹화는 딱 15초. 이렇게 1분도 안 되어 걸작(?)이 탄생했다. 기획이나 스토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즐겁다. 2019년 12월의 겨울날 우리가 이렇게 웃어 제끼며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고, 흥겨운 캐롤이 어울리는 날이었다는 걸 기억하기엔 충분하다. 에디터B가 나의 예술적인 영상을 수회 반복해 보며 말했다. “역시 틱톡은 짧아서 좋네요.”
때마침 내가 걸어둔 해시태그는 ‘#숏확행세대’였다. 숏확행이 뭐냐고? 짧아서 확실한 행복이다. 나도 처음엔 몰랐다.
지난번에 나의 늦깎이 <틱톡 체험기>에서도 언급했지만, 틱톡은 거창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이 일상의 다양한 순간을 마음껏 표현하는 놀이터다. 이게 뭘까,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어려워하는 순간 숏확행과는 멀어진다. 디지털 콘텐츠를 만드는 직업을 택했다 보니 새로 생긴 플랫폼에는 다 한 번씩 집적거려보게 된다. 틱톡은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여태까지 내가 10년간 콘텐츠를 만들며 생각했던 문법과 고정관념이 산산이 부서지는 곳이었다.
[이 소년이 노엔 유뱅크스]
15초의 숏 비디오는 고민할 시간 따위 주지 않는다. 보는 순간 즐겁고 재미있으면 하트, 재미없으면 넘기고, 음악이 좋아도 하트, 따라 해보고 싶으면 나도 바로 챌린지에 참여하면 그만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에 비해 언어의 장벽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아무것도 아닌 영상이 사랑을 받고, 어제는 평범했던 사람이 스타가 되기도 한다. 명품 브랜드 셀린에서 틱톡 스타인 노엔 유뱅크스를 모델로 캐스팅했다는 것만 봐도 흥미롭지 않은가. 혹은 스타가 되지 않아도 그만이다. 같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손가락을 움직이며 촬영한 영상은 유쾌한 기록이 된다.
[음악이 틱톡의 가장 큰 강점이다]
여기에 ‘귀에 익숙한 배경음악’을 입힐 수 있다는 것도 큰 강점이다. BTS는 물론이고 빌리 아일리시까지 음원 선택의 자유도가 높다.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서는 저작권에 갇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손가락이 멈추지 않는다]
나의 30대 친구들에게 틱톡을 보여주면, 신기하다면서 한참을 넘겨본다. 교복 입은 아이들이 춤추는 것도 구경하고, JYP의 새로운 안무도 구경하고, 인기 해시태그 #이거슨댕냥인간을 클릭해서 깔깔거리기도 하고. 그러다 묻는다. “근데 이거 어린애들이 쓰는 거 아냐?” 실제로 틱톡엔 10대가 많다. 틴에이저 문화와 커뮤니티를 적극 반영하고 있는 콘텐츠도 많고 말이다. 그러나 10대만 써야 한다는 법은 없다. 다른 플랫폼이 그렇든 틱톡 안에도 다양한 연령대와 국가의 크리에이터가 존재한다. 이렇게 ‘발랄한 문화’는 10대만 향유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고리타분하다는 얘기다. 환갑의 엄마도 틱톡커가 될 수 있고, 아흔이 넘은 우리 할머니도 스노우 같은 앱으로 사진을 찍어드리면 재밌다고 좋아하신다. 나는 사람들이 새로운 플랫폼을 바라볼 때 “난 이제 이런 거 할 나이는 아니지”라며,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았으면 한다. 본인이 즐겁다면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제법 멋진 효과를 넣었는데 1분 만에 만들었다]
새해를 앞두면 사람들이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아, 내년엔 운동 좀 해야 하는데. 내년엔 영어 공부 좀 시작해야 하는데. 그리고 하나 더 추가됐다. 내년엔 유튜브 시작해야 하는데. 다들 시대적 트렌드에 편승해 영상 만들기를 배워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느끼고 있더라. 난 그럴 땐 사람에 따라 차라리 틱톡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 추천한다. 만약 정말 일상의 순간들을 재밌는 영상으로 남기고 싶은 거라면 촬영과 편집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는 플랫폼부터 시작해 보라는 의미에서다. 게다가 15초라는 시간이 참 좋다. 굳이 멋스러운 멘트를 넣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해방될 수 있다.
[숏확행세대 캠패인에서 받은 크리스마스카드 스티커로 만든 영상, 곧 에디터M이 춤을 춘다]
간만에 친구들과 모인 연말 술자리에서 다 같이 건배를 하는 모습을 찍어도 좋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고 싶다면 연말 스티커를 활용해도 좋겠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펼치면 친구들이 술잔을 부딪치는 모습이 나타나는 효과를 터치 몇 번으로 적용할 수 있다.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재밌는 배경음악을 고르고, 화면 전환 효과를 넣어본다든지. 맥주가 출렁이는 순간만 슬로우모션 효과를 넣는다든지. 영상 편집에 대한 테크닉이 전무해도 (심지어 맨정신이 아니라도) 금세 영상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영상은 그냥 밋밋하게 찍은 사진보다는 훨씬 더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게 분명하다. 같은 캠페인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의 영상도 구경할 수 있고 말이다. 제작부터 소통까지의 과정이 놀라울 정도로 짧고, 크리에이터와 팬의 구분이 모호하다. 그래서 즐겁다.
때마침 12월 23일부터 1월 1일까지 ‘숏확행세대’라는 재밌는 시즌 캠페인을 한다고. 이 기간에만 쓸 수 있는 연말 분위기 물씬 풍기는 스티커도 30여 개가 풀린다고 하더라. 평소보다 추억으로 남길 만한 만남이 많은 시즌이니 마구마구 써 보시길. 짧아서 확실한 행복이 뭔지 분명하게 알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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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