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잡지 없이 못 사는 에디터B다. 사람마다 필요한 영양소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탄수화물, 단백질 이런 진짜 영양소 말고, 문화적인 영양소랄까. 하루에 한 번은 카페에 가야 한다거나, 주말엔 쇼핑을 하거나 전시회에 가야 하는 그런 것. 내게는 잡지가 영양소다. 아무리 못해도 한 달에 한 권은 광합성하듯 읽어야 말라죽지 않거든. 그래서 한 달 살기를 떠나면서도 잡지를 챙겨왔다. 무려 세 권씩이나. 시칠리아 한 달 살기를 함께한 세 권의 잡지를 소개한다.
부엌 매거진(BOOUK)
‘먹고 사는 일에 관심이 있다면’
여러분은 ‘부엌’이라는 잡지의 이름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나? 제철 음식을 활용한 레시피를 알려주거나 올바른 주방용품 사용법에 대해 말할 것 같지 않나? 하지만 이 잡지는 그런 실용적인 지식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이 잡지를 VOL.2로 처음 읽었는데, 주제는 ‘미니멀리즘’이었다. ‘부엌과 미니멀리즘? 이 잡지 정체가 뭐지?’하는 생각이 잠시 들겠지. 대충 식문화와 관련된 라이프스타일 잡지 정도로 이해하면 편할 거다. 패션을 다루지만 그 외의 것들도 다루는 패션 라이프스타일 잡지가 있듯, 식문화를 다루면서 라이프스타일도 함께 다루는 잡지도 있다고 생각하자. 결국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셈이지. 그동안의 이슈를 보면 제주, 베를린, 슬로브레드 같은 것들이 있었다.
내가 이번에 산 이슈는 ‘시네마 키친’를 다뤘다. 영화 <더 테이블>의 김종관 감독을 인터뷰했고, 웹드라마 <출출한 여자>에 출연한 배우 박희본도 인터뷰했다. 이외에도 <누들로드>의 이욱정PD, 영화 포스터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파간다, 영화 잡지 프리즘 오브도 목차에 있다. 한 호마다 한 영화만 깊게 파는 프리즘 오브는 전에 내가 이미 소개한 적이 있었지?
재밌는 건 이 잡지가 내용 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잡지스러움을 살리고 있다는 거다. 자동차 기사가 나왔다가, 다음 페이지에서 소설 신간을 소개하는 잡스러운 잡지처럼 말이야. 사진이 인쇄된 곳은 색감을 살리기 위해 유광재질의 종이를 사용하고, 인터뷰 기사에는 읽기 편한 종이를 사용했다. 전에 읽었던 ‘미니멀리즘’편에는 미농지 같은 것도 썼었다. 그래서 첫 장부터 넘기다보면 종이의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이 든 달까. 가격은 1만 8천원이라 부담스러울 순 있지만, 한번쯤은 사보는 걸 추천한다. 먹고 사는 일은 모두의 관심사니까. 참고로 부엌 매거진을 만드는 로우프레스는 나우(NAU) 매거진이라는 한 도시를 깊게 소개하는 잡지도 만들고 있는데, 다음엔 그걸 소개할까 싶다. 아, 정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나우는 포틀랜드에 있는 패션회사인데 2014년에 블랙야크가 인수한 곳.
Achim
‘남들의 아침이 궁금하다면’
매거진 아침은 흔히 떠올리는 잡지의 생김새와는 많이 다르다. 아홉 면으로 접히는 한 장의 잡지는 언뜻보면 신문과 비슷해 보인다. 아침이라는 이름처럼 이 잡지는 매호마다 아침과 관련된 것들을 메인 토픽으로 삼는다. 아홉 번째 이슈는 ‘LIGHT’였고, 열한 번째 이슈는 ‘NIGHT’였다. 굳이 설명할 필요없는 직관적인 소재 선정이다. 아침을 여는 건 빛이고, 아침이 되기 전에는 밤이 있으니까. 그럼 아침과 관련된 아티클이은 어떤 게 있을까? ‘LIGHT’편에서는 ‘개운한 아침을 시작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밤의 일 세 가지’를 알려주고, 아침에 어울리는 시리얼을 추천하고, 작가를 인터뷰하며 어떤 밤을 보내는지 질문한다.
이 잡지를 읽으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잘못된 띄어쓰기다. ‘수밖에’를 ‘수 밖에’로 띄어쓰는 헷갈리는 문법이 아니라 ‘나는’을 ‘나 는’으로 띄어쓰는 정도의 실수라 너무 눈에 띄었다. 그런 부분 때문에 재밌게 읽다가도 과속방지턱처럼 턱턱 막혔는데, 그것만 빼면 괜찮았다. 이 잡지에는 에디터가 한 명이라 대부분의 글을 혼자서 쓰는데, 그래서 잡지보다는 개인의 인스타그램을 구독하는 느낌도 들었다. 문체는 취향이니, 이 사람 글 정말 좋아! 같은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일단 한 번 사서 읽어보고 취향이 맞다면 계속 사보는 게 어떨까. 아 그리고 잡지가 가볍다고 가격도 가벼운 건 아니니 방심하지는 말 것. 온라인으로는 책방 노말에이에서 구매할 수 있는데, 가격은 6,000원이다.
아이브 매거진
‘깊은 대화에 갈증을 느낀다면’
아이브(IVE) 매거진은 최근에 발견한 가장 흥미로운 잡지다. 이런 저런 잡지 많이 봤지만, 인터뷰 잡지는 또 처음이다(톱클래스가 있지만 그건 대기업에서 만드는 거니 제외한다). 창간호 커버는 정치인 윤여준이 장식했는데, 그럼 윤여준 인터뷰 기사가 창간호의 메인일까? 노노. 아니다. 그는 인터뷰 당한 사람이 아니라 인터뷰를 한 사람이다. 그가 인터뷰어다. 아이브 매거진은 단순히 인터뷰 기사들을 묶어놓은 잡지가 아니다. 한 명의 인터뷰어를 선정하고, 그 인터뷰어가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는 방식이다. 독특하지 않나? 근데 독특하고 싶어서 독특한 척하는 게 아니라 이게 옳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라고 하더라.
아이브 매거진의 머릿말에는 대략 이런 말이 적혀있다. ‘인터뷰라는 포맷은 질문과 답으로 구성되어 쉬어보이고 인터뷰이의 유명세에 기대기 때문에 그동안 무분별하게 생산되어왔다’ 그래서 아이브 매거진은 인터뷰를 할 만한 사람에게 마이크를 주기로 했다는 거다. 창간호의 주제는 ‘주류 속 비주류’다. 다르게 말하자면 주류에 속해서 휩쓸려가지 않고 소신발언을 하는 사람.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이사, 이병한 역사학자, 성한용 기자 등이 그 주인공이다. 주진형 전 이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초면인데, 잡지 디자인을 꽤 멋있게 해놓아서 그런지 궁금증이 막 생긴다. 지면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덜어내고 정제하려고 했다. 전 지면은 흑백으로 인쇄되었는데, 중간 중간에 들어간 광고 역시 흑백이다. GQ 블랙에디션처럼 흥미롭다. 가격은 1만 5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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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