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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의 파스타는 이런 맛입니까?

이탈리아에서 먹은 진짜 파스타의 맛
이탈리아에서 먹은 진짜 파스타의 맛

2019. 10. 22

안녕, 디에디트의 맛쟁이, 맛추격자, 에디터B다. 시칠리아를 기대했던 이유는 첫 번째도 음식, 두 번째도 음식이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기대한 건 첫 번째도 파스타, 두 번째도 파스타였다. 오늘은 시칠리아에서 먹은 파스타에 대해서 솔직하게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참고로 나는 이탈리아 초심자이기 때문에 날카로운 비판은 수용하지 않겠다. 상처가 된다. 부드러운 조언은 언제든지 환영.

1[라구 파스타 a.k.a 볼로네제 파스타]

파스타는 한국에서 기묘한 포지션을 점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면 요리는 대체로 비싸지 않고 서민적인 음식인 경우가 많다. 대량 생산이 가능하며,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고, 주재료인 밀은 저렴하기 때문이다. 짜장면이나 국수, 라면처럼 저렴하다. 춘장을 볶은 짜장면이나 해물이 잔뜩 들어간 짬뽕, 냉면, 칼국수도 모두 서민 음식의 대명사. 그런데 이상하게 파스타는 그렇지 않단 말이야. 이미지가 그리 서민적이지 않다. 배고픈 자취생이 혼자 집에서 파스타를 먹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어울리지 않잖아?

파스타는 보통 만 원을 넘어간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비쌀 이유가 있나 싶다. 알리오 올리오(Alio e olio)의 조리법만 봐도 굉장히 간단하다. 풀네임은 ‘알리오 에 올리오’인데, 알리오는 마늘이란 뜻이고, 올리오는 오일이라는 뜻이며 에(e)는 ‘~와’라는 의미다. 올리브 오일에 마늘을 구워 향을 내고, 삶은 파스타를 섞으면 끝. 이렇게 간단한 음식의 가격이 5,000원이 아니라는 게 의아할 뿐이다. 아니면 바지락 칼국수가 5,000원밖에 안 하는 게 신기한 건가?

내가 시칠리아에서 처음 먹었던 파스타는 몬델로 광장에 있는 칙앤록(Chik’n’ rock)이라는 식당이다. 몬델로 광장은 아침에는 할아버지들이 에스프레소를 마시러 광장에 모이고, 저녁이 되면 연인들이 벤치에 앉아 데이트를 하고, 꼬마들은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노는 그런 곳이다. 몬델로의 핫플레이스인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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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먹었던 토마토 파스타는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 먹었던 토마토 파스타를 싹 지워버릴 만큼! 넓은 쟁반에 파스타를 무심하게 담아준 비주얼이 투박했다. 한국에서는 면을 돌돌 말아 예뻐 보이게 만드는 플레이팅을 하곤 하는데, 여긴 그런 거 없었다. 그냥 파스타! 토마토! 끝!

3[크림이 들어가지 않고 치즈, 베이컨, 달걀만으로 맛을 낸 까르보나라]

온도도 달랐다. 뜨겁지 않았다. 이건 이탈리아의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였는데, 겨우 시칠리아, 그것도 몬델로라는 작은 도시에서 몇 번 먹어봤을 뿐이지만, 경험상 뜨거운 음식은 많이 못 봤다. 따끈따끈한 음식이라는 건 있지만, 한국에서 먹는 국이나 탕처럼 호호 불어서 먹어야 할 건 없다. 스튜도 뜨겁지 않고 따끈한 정도.

그건 커피도 마찬가지인데,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침에 마시는 에스프레소, 카푸치노를 그 자리에서 바로 호로록 마시기 때문에 미지근해야 하거든. 입천장 데일 걱정? 전혀 안 해도 된다. 글을 쓰며 찾아보니 파스타 탄생 초기에는 사람들이 손으로 먹었다고 한다. 그러니 파스타는 원래 미지근했던 거다. 아무튼 다시 토마토 파스타 얘기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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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은 둘째치고 맛도 정말 달랐다. 소스가 왜 이렇게 맛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셰프를 인터뷰하고 싶은데 내가 이탈리아어를 하나도 하지 못하거든. 맛 평가를 하자면, 맛에 꾸밈이 없고 심플했다. 무언가와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맛. 소스의 점성도 약하고 꾸덕꾸덕하지도 않았다. 내가 서울에서 먹었던 파스타는 뜨겁고 소스가 면을 잡아먹어서 내가 소스를 먹는건지 면을 먹는 건지 헷갈렸는데, 여긴 확실히 면이 맛있었다. 이건 취향 차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곳의 면이 마음에 든다. ‘이게 진짜 본토의 토마토 파스타인가?’라고 3초 정도 생각하다가, 이제 시칠리아 2주 차라 살짝 민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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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토마토 파스타의 충격 뒤에 나는 생각했다. ‘식당 가기 전에 메뉴판을 보고 미리 해독해야겠다’ 왜냐하면 영어 메뉴판을 갖추고 있는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 하나씩 검색하기에는 많이 번거로웠다. 구글 렌즈나 빅스비 비전도 썩 시원찮았다. 하루 동안 날 잡고 메뉴판을 쭉 공부하고 나니 그렇게 어려울 게 없더라.

6[홍합이 함께 들어간 봉골레 파스타]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Spaghetti con cozze e vongole’에서 스파게티는 면의 종류를 말한다. 파스타의 면은 크게 롱파스타와 숏파스타가 있는데, 스파게티는 롱파스타에 속하는 수많은 면 중에 하나. 그럼 스파게티 말고 다른 롱파스타도 있냐고? 있지. 링귀네, 딸리아뗄레, 페투치네는 면이 넓은 편. 만약 스파게티가 아니라 숏파스타 중에 페투치네를 재료로 쓰면 메뉴명은 ‘Fettuccine con~’ 이렇게 바뀌겠지. con은 with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con 말고 alla, al, alle도 많이 사용되는데 의미는 비슷하게 해석하면 된다. cozze는 홍합, vongole는 새조개다. 참 쉽지 않나? 나도 메뉴판을 공부하니 메뉴판 읽기 쉽더라. 다만 예외도 있는데, 그건 다음 기사에서 메뉴판 읽기 심화 코스로 다루도록 하겠다.

사실 디에디트에게 ‘어차피 일할 거라면’ 프로젝트는 일 년 중 가장 큰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대단히 객관적이고 분석적으로 접근하여 도시를 선정…하지 않았다. 시.칠.리.아, 그 발음이 좋아서 가게 된 것인데, 운 좋게도 시칠리아만의 전통 있고 특색 있는 음식이 많더라. 심지어 건조 파스타의 탄생이 시칠리아가 원조라는 기록도 있을 정도니까. 책 <이욱정PD의 요리인류 키친>에서도 아랍의 국수문화가 시칠리아에 전해지며 파스타가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고.

7[이게 팔레르미탄 파스타. 그냥 알리오 올리오였다]

시칠리아 전통 파스타도 있는데, 팔레르미탄 파스타(Palermitana Pasta)와 파스타 알라 노르마(Pasta alla Norma)가 그 주인공이다. 팔레르미탄 파스타는 몬델로 광장 근처 식당에서 처음 봤는데, 팔레르미탄 파스타를 해석하자면 팔레르모식 파스타 정도가 되겠다. 하지만 주문을 하고 보니 그냥 알리오 올리오였다. 구글에 검색을 해도 ‘알리오 올리오=팔레르미탄 파스타’라는 건 나오지 않더라. 혹시 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다면 제보를 바란다. 아무래도 관광객을 낚기 위한 마케팅용 작명이 아니었나 싶다. 지역 이름이 들어가면 괜히 먹고 보고 싶은 심리있잖아. 연남 페일에일, 가로수길 IPA처럼.

8[이게 노르마 파스타. 두 개의 큰 가지가 파스타를 덮고, 그 위에 토마토 소스가 올라간다]

진짜 시칠리아의 지역색이 담긴 파스타를 먹을 거라면 카사레체 알라 노르마(Casareccel alla Norma)를 먹는 게 나을 거 같다. 카사레체는 시칠리아에서 유래한 파스타 면의 한 종류로 짧은 면을 꼬아놓은 형태. 지금쯤이면 그 면이 어떻게 생긴 건지 사진으로 자세히 보여줄 텐데, 미안하다. 아직 카사레체를 식당에서 먹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저렴하다는 것도 노르마 파스타의 장점. 내가 위에서 설명한 메뉴 읽는 법에 따르면 노르마가 식재료명이어야 하는데, 노르마는 재료가 아니다. ‘normal’이라는 단어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오페라 <노르마>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들어가는 재료는 토마토 소스, 가지, 리코타 치즈 정도인데, 핵심은 가지다. 시칠리아 음식에는 가지가 정말 많이 들어간다. 유럽 음식에는 가지가 들어가는 요리가 많지 않은데, 이건 중동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시칠리아 음식의 특징. 이야기가 또 슬슬 길어지려고 하니까 아랍의 영향을 받은 음식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에서..!

시칠리아에서 나는 이틀에 한 번꼴로 파스타를 먹고 있다. 봉골레 파스타도 먹고, 까르보나라도 먹고, 오징어 먹물 파스타도 먹고. 슬슬 걱정이 된다. 난 한국으로 돌아가서 메이드 인 코리아 파스타에 적응할 수 있을까.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