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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보급이 시급하다, 서울 에스프레소바 9

이탈리아 차원달라병 치료해드림
이탈리아 차원달라병 치료해드림

2025. 07. 24

안녕, 에디터B다. 한국인이라면 으레 아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때리는 게’ 미덕이지만(반드시 때린다고 표현해야 한다), 나는 어쩐지 에스프레소에 끌리는 편이다. 사약처럼 쓴 에스프레소 한 잔이면 정신이 번쩍 들고, 소드락을 먹은 나가처럼 17분 동안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만능감을 느낄 수도 있다. 작년에 로마를 다녀왔지만 이탈리아 차원 달라 병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한국 에스프레소바가 정말 잘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에스프레소바 몇 군데를 소개한다.


1. 도터스 에스프레소바

청담동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신다면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하나는 리사르, 다른 하나는 도터스. 리사르는 서울 곳곳에 지점이 많고,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나는 도터스 에스프레소바를 추천하고 싶다. 도터스 에스프레소바는 낮에는 카페, 저녁에는 펍이 되는 곳이다. 그 하이브리드한 매력이 도터스 에스프레소바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든다. 지나치게 멋을 부리지 않은 인테리어가 아니라 자연발생적인 인테리어랄까. 기본 에스프레소인 1유로 에스프레소의 가격은 1,600원.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신 후에는 삐꼴로나 그라니따를 마시면 된다. 단골이 많고, 바리스타와 손님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 정겨움이 이 카페를 더 이탈리아스럽게 만든다.


2. 드로우 에스프레소바

충정로역에서 1시간 정도 시간을 죽여야 한다면 ‘드로우 에스프레소바’에 가면 된다. 동태탕과 짜장면, 백반을 파는 식당을 지나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가면 세련된 에스프레소바가 나온다. 그곳이 바로 드로우 에스프레소바. 에스프레소는 3,300원으로 가격이 조금 높은 편이기 때문에 기본 메뉴 말고 다른 걸 권한다. 바로 카페 리에토라는 메뉴다. 이 메뉴는 아이스크림(아마도 하겐다즈 추측), 에스프레소, 올리브오일이 들어가는 아포가토의 변형이라고 보면 된다. 올리브오일은 자신의 향도 잃지 않으면서 함께 놓인 디저트의 맛을 끌어올려 주는 역할을 한다. 커피, 올리브오일, 아이스크림의 시너지를 120% 업그레이드시킨다. 백설기, 말차 그라니따 등 다른 카페에서 보기 힘든 메뉴도 많다.


3. 피프 에스프레소

피프 에스프레소는 연남점이 유명하다. 훨씬 넓고, 야외 좌석도 있어서 날씨만 좋다면 연남점이 더 좋긴 하다. 작년에 오픈한 을지로점은 반대로 아주 좁다. 그래서 더 좋다. 인테리어는 나무를 써서 전체적으로 따뜻해서 오래된 LP바에 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좌석이 많지 않은데 가장 안쪽 자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밖에 앉은 손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수도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아늑한 분위기가 주는 맛을 포기할 수 없어서 을지로에 갈 땐 피프 에스프레소바를 찾게 된다. 데이트 코스로도 좋지만 혼자 가도 좋다.


4. 구테로이테

강남구청역 주변에는 개성 있는 카페나 느낌 좋은 카페가 비교적 적다. 고민 없이 구테로이테로 가면 된다. 구테로이테는 에스프레소바 치고는 매장이 넓은데, 스탠딩바에서 한 잔 털어 마시고 30초 만에 나오는 그런 공간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오래 머물 수 있는 에스프레소바를 찾는다면 구테로이테가 괜찮다. 너티크림이 들어간 구네 넛 슈페너, 흑임자가 들어간 스톤 슈페터 등 굉장히 많은 메뉴가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5. 카페 몰리나리

이탈리아 본토 바이브를 느끼고 싶다면 카페 몰리나리에 가면 된다. 폰트와 로고 디자인, 커피와 함께 놓인 티슈까지 모든 게 이탈리아스럽다. 이곳은 이탈리아 출신 방송 알베르토 몬디가 인정하는 에스프레소바이기도 하다. “진짜 이탈리아에 온 것 같다”라고 이탈리아 사람이 말할 정도면 더 설명이 필요 없지 않을까.


6. 스탠드업플리즈

이탈리아에서는 커피를 소비하는 방식이 한국과 다르다. 한국에서는 친구들끼리 카페에서 만나 수다를 떨거나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게 일반적인 풍경이라면 이탈리아에서는 입장과 동시에 커피를 주문하고 바 테이블에서 커피를 기다리며 주인과 대화를 하다가 몇 분 사이에 훌쩍 떠나는 게 일반적. 그래서 에스프레소바의 근본은 바 테이블이 될 수밖에 없다. 스탠드업플리즈 역시 그렇다. 에스프레소바의 바 문화를 그대로 추구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을 갖춘 곳이다. 성수동과 을지로점 두 군데 있다. 오전에 방문한다면 카푸치노 한 잔과 함께 생크림스콘을 먹은 후 에스프레소로 입가심하는 걸 추천한다.


7. 폴린

© pauline coffeebar

뚝섬역 부근 카페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보통 두 군데 말한다. 하나가 바로 위에서 소개한 스탠드업플리즈, 그리고 여기 폴린이다. 공교롭게도 두 카페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어서 나는 근처에 가면 오늘은 어디로 가볼까 고민을 하곤 한다. 폴린 역시 바 테이블이 있고 스탠드업플리즈와 달리 앉을 수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그리고 카푸치노가 아주 맛있다.


8. 오르소 에스프레소바

남영동에서 밥을 먹고 산책하다가 발견한 곳이다. 동네 주민들이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커피 한잔하고 싶을 때 방문하곤 한다.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이 나는데 커피 맛도 좋았다. 교통이 편하진 않아서 오르소 에스프레소에 가기 위해 후암동을 방문하는 건 어려울 수 있다. 역에서 조금 더 가까운 곳에 남영출판사라는 괜찮은 카페도 있기 때문에. 하지만 사람이 북적이는 곳을 벗어나 조용한 카페에 있고 싶다면 오르소 에스프레소바를 추천한다.


9. 프롤라

© frolla

뚝섬역 부근에 스탠드업플리즈, 폴린이 있다면 성수역 부근에는 구테로이테와 프롤라가 있다. 프롤라는 호주에서 오랫동안 카페를 운영했던 이탈리안 바리스타가 있는 곳인데, 특징이라면 브런치 메뉴가 강하다는 것. 모짜렐라 치즈, 프로슈토, 브리치즈, 살라미 등 각종 햄과 치즈를 활용한 다양한 브런치가 있어서 식사 겸 커피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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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