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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위한 우렁각시酒

안녕, 에디터M이다. 다들 풍성한 한가위 보내셨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딱 작년 이맘때쯤에 추석을 맞아 복순도가를 리뷰한 적이 있다. 궁금하다면 여기로. 명절- 전통주의...
안녕, 에디터M이다. 다들 풍성한 한가위 보내셨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딱 작년 이맘때쯤에 추석을…

2019. 09. 15

안녕, 에디터M이다. 다들 풍성한 한가위 보내셨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딱 작년 이맘때쯤에 추석을 맞아 복순도가를 리뷰한 적이 있다. 궁금하다면 여기로. 명절- 전통주의 뻔한 연상작용이라니. 나란 사람의 얄팍함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지만 이번에도 역시 준비했다. 왜냐하면 명절마다 마실 음복주를 고르는 건 우리 가족의 오랜 전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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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술은 청주다. 맑을 청(淸)에 술 주(酒) 말 그대로 맑은 술을 말한다. 청주의 재료는 쌀과 누룩 그리고 물 정도가 전부다. 이름이 우렁이쌀인 이유는 농약을 쓰지 않고 소라, 골뱅이랑 친척인 우렁이를 논밭에서 풀어 키운 무농약 쌀을 써서 그렇다.

본디 양촌양조장은 쌀막걸리가 유명하지만 내가 이번에 굳이 청주를 고른 이유는 이게 더 예뻐서. 게다가 청주가 명절과 더 잘 어울리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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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라벨 디자인을 참 잘 뽑았다. 라벨의 1920이란 숫자는 양촌양조장이 시작된 연도를 말한다. 그러니까 벌써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는 것. 자랑할 만하지. 과거의 아픈 역사 때문에 집집마다 술을 빚던 가양주 문화가 사라지고 대신 양조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 양촌양조장이 시작된 이후 벌써 3대째 내려오고 있다. 세대가 3번이나 바뀔 동안 명맥이 유지되었다는 건 적어도 술맛만큼은 인정할만하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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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청주를 갈색병에 담을 생각을 하다니! 게다가 병의 모양이 술병이라기보다는 약병에 더 가깝다. 괜히 이솝이 떠오르기도 하고, 내가 즐겨 가는 힙한 카페에선 콜드브루를 이런 병에 팔고 있던데. 통통하니 귀엽고 든든하기까지 한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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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에 따르니 노란 게 꼭 보석 같다. 맛은 뭐랄까… 굉장히 신기한 맛이다. 첫맛은 진득할 정도로 단데 조금 지나면 이상하게 달지가 않다. 단맛의 뒤끝이 없달까. 곡물을 오래 씹을 때 느낄 수 있는 단맛이 나는데 그 맛이 뚝 하고 사라져 버린다. 뭐지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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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고개를 갸웃대며 생경하면서도 익숙한 맛을 추리해 보려고 자꾸 잔에 입을 가져다 댄다. 입을 오물대며 입안에 공기를 통과시켜 맛과 향을 음미한다. 그러다 불현듯 어떤 맛이 떠오른다. 꿀이 잔뜩 든 사과를 껍질째 베어 물고 난 뒤 느껴지는 풋내와 향긋함! 매년 이맘때쯤 맛볼 수 있는 잘 읽은 부사의 맛이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곡물의 고소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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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쌀 청주는 온도에 따라 맛이 확확 바뀌는 예민한 술이다. 상온에서 마시면 맛과 향을 한결 뭉근하고 부드럽게 즐길 수 있다. 뚝 떨어지는 단맛이 조금 줄고 들큰하고 고소한 맛은 배가 되는데, 에디터B는 그 맛이 더 낫다고 하더라. 반면 나는 차갑게 마시는 게 더 내 취향이다.

60일간의 저온 숙성을 하고 멸균처리까지 한 덕분에 유통기한이 따로 없는 것도 좋다. 개봉만 하지 않으면 오래 두고 마실 수도 있지만, 한 번 맛보고 난 뒤에는 잔을 손에서 떼기란 쉽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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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랑 오손도손 모여 거의 한 병을 비워갈 때쯤에 용량에 대한 생각도 했다. 750ml의 와인 한 병보다는 적고 350ml의 일반적인 청주보다는 많은 500ml의 용량. 가족 혹은 친구와 나눠마시면 적당히 취할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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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큰하고 고급스럽고 용량도 참 좋은 명절에 마시기 좋은 술이었다.

사실 좋은 술을 마시기 위한 이유 같은 건 없다. 핑계만 있을 뿐.  꼭 명절이 아니어도 좋다. 전통주의 가장 큰 장점은 성인 인증만 하면 로켓처럼 빠르게 물건을 받을 수 있다는 거 아니겠나. 이번 주말 우렁이쌀 청주 한 잔과 함께 풍류를 즐겨보자.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