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난 디에디트의 신제품 코너 소개를 맡고 있는 객원필자, 올드리뷰어 기즈모다. [기즈모 pick]은 디에디트의 인싸인 에디터H나 에디터M의 간택을 받지 못했지만, 여러분들이 놓치면 섭섭한 제품들을 모아 소개하는 코너다.
신제품 코너지만 소개하다 보면 이게 신제품인지 옛날 제품을 다시 내놓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가는 제품들이 많다. 나이가 들면 원래 한 번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하는 법이다. 그냥 옛날 제품들의 역사를 듣는다고 생각하고 가볍게 읽어줬으면 좋겠다. 오늘도 또 인트로부터 슬픈 것 같다. 어쨌든 시작한다.
아폴로 11호를 기억하시나요?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아폴로11 50주년 기념 워치
나는 한정판, 기념판, 특별판, 파산, 디폴트, 모라토리엄 같은 단어를 아주 좋아한다. 여러분들도 이런 감성이 있으면 좋겠다. 먼저 소개할 제품은 인간이 위대한 발자취를 기념하는 제품이다. 알다시피 지구에서 380,000km 떨어진 곳에는 커다란 돌덩어리 하나가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 이름은 ‘달’이라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1969년 아폴로 11호라는 우주 왕복선을 통해 달착륙에 성공했다고 한다. 음모론자들은 이게 거짓이라고 아직도 꾸준히 주장하고 있지만 아폴로 11호에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시계가 실리게 된 과정을 듣게 된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나사(NASA)는 우주왕복선 프로젝트인 ‘아폴로 프로젝트’를 계획하며 우주에서도 작동하는 스톱워치 내장형 시계(크로노그래프 워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전자시계도 있고 컴퓨터도 있지만 태엽과 톱니바퀴로 돌아가는 기계식 시계는 혹시 모를 이상 상황에서 전자장치가 작동을 멈춘다면 꼭 필요한 백업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나사는 이를 위해 해밀턴, 롤렉스, 론진, 오메가 등의 브랜드에 샘플을 요청했다. 샘플이 도착하자 우주의 가혹한 환경을 버틸 수 있는 11개의 테스트 항목을 거쳤고 고온, 다습, 중력, 진동 등의 가혹한 테스트를 거쳐 오메가의 3세대 스피드마스터가 최종 낙점됐다고 한다.
오메가는 이를 기념해 1965년 4세대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를 만들었다. 다가올 우주여행을 위해 3세대보다 내구성을 보강했다. 그리고 이로부터 4년 후에 아폴로 11호에 실제 탑승하며 세계 최초로 달에 간 시계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래서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의 또 다른 별명은 ‘문워치’다. 음모론자들이 믿든 안 믿든 오메가는 인류가 달에 착륙한 50주년을 맞이해 ‘스피드마스터 아폴로11 50th Anniversary’ 모델을 선보였다.
42mm의 케이스에 스피드마스터의 상징인 스톱워치(크로노그래프)가 달려 있고, 시계 뒷면에는 암스트롱의 달착륙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1969년을 기념해 6969대 한정 판매에 가격도 $9,650로 정했다고 한다. 내 상식으로는 $1,969가 더 1969년을 기념할 것 같은데, 오메가는 가격 앞에서는 냉정을 유지했다. 존경스럽다. 국내 가격은 1200만원.
50주년의 두 배, 100주년 기념
라이카 CL 바우하우스 100주년 기념 에디션
[© VG Bild-Kunst, Bonn 2018]
바우하우스는 독일 바이마르에 설립됐던 미술학교다. 1919년 설립됐다가 1933년 폐교됐기 때문에 역사는 14년에 불과하지만, 독특한 교육 이념과 커리큘럼으로 많은 디자이너를 배출했다. 바우하우스는 예술과 기술을 합치려는 시도를 했고 산업디자인 초창기에 전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바우하우스는 특히 현대 건축 양식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근대 가구 디자인이 시작된 곳으로 평가된다.
우리가 잘 아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바우하우스의 유산이며, 애플의 CDO인 조나단 아이브에게 큰 영향을 끼친 디터람스 역시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계승한 디자이너다. 애플의 디자인 언어 중 하나였던 ‘형태는 감정을 따른다’는 바우하우스의 슬로건 중에 하나인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의 변주로 평가된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바우하우스 설립 100주년이다. 그러자 독일을 대표하는 한정판 기업 ‘라이카’가 라이카 CL 바우하우스 100주년 기념 에디션(100 years of bauhaus Edition)을 출시했다.
바우하우스 정신에 맞지 않는 기능적이지 못한 빨간 라이카 로고 대신에 모노 라이카 로고를 박아 넣었고, 스트랩과 커버에 ‘바우하우스’ 로고를 몰래 새겨 넣었다. 라이카 CL은 원래 미러리스 렌즈교환식 카메라라서 렌즈가 포함되지 않지만, 이 특별 에디션은 엘마리트-TL 18mm/F2.8 ASPH 렌즈를 슬쩍 끼워팔고 있다.
가격은 렌즈 포함 $3,750(약 444만원). 바우하우스의 슬로건인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철학에 입각한 디자인이지만 가격은 기능에 비해 과도함을 유지했다. 그래도 150대 한정판이니 너무 분노하지 말자.
응답하라 1997
또 돌아온 다마고치
역사를 포장해서 비싼 부가가치를 만드는 회사도 있지만 역사의 한 톨까지 끝까지 짜내어 소비하는 회사도 있다. 때는 바야흐로 1990년대 말. IMF로 피폐화된 한국 남자들이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등으로 이계 공간에서 승리에 도취하고 있을 때, 한국 어린이들은 아주 작은 달걀 하나를 주머니에 품고 다니며 가상 육아에 열중했다.
‘다마고치(たまごっち)를 혹시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달걀같이 둥근 이 장난감에는 흑백의 작은 화면이 하나 달려 있었고 시간이 되면 먹이를 달라고 삐삐 울어 대는 조그마한 생물이 있었다. 사용자는 시간이 되면 밥을 주고, 놀아주며, 배설물을 치워줘야 한다.
일본에서 탄생한 간단한 아이디어의 다마고치 게임기는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경영악화로 인해 매각설에 시달리던 일본의 반다이는 이 게임기를 개발하며 단숨에 위기에서 벗어났을 정도다.
다마고치가 수업 시간에 이곳저곳에서 울어 대자 국내 교육부에서는 ‘다마고치 금지령’을 내릴 정도였고 다마고치 밥을 주려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직장을 결근하는 등의 해프닝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화이트 다마고치는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로 인기였는데 한정판 다마고치를 가지고 싶다는 애인을 위해 조직원을 풀어 완구매장을 뒤집어 놓은 야쿠자도 있었다고 한다. 역시 사랑은 위대하다.
하지만 다마고치 열풍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다마고치보다 더 중독적인 스마트폰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시대에 접어들며 다마고치가 팔릴 리가 없지만 일본인들은 최후의 소비자 1인에게까지 제품을 팔아 치우기로 유명한 민족이다. 반다이는 스마트폰 시대에도 꾸준히 다마고치를 출시하고 있고 놀랍게도 지난주에도 신제품을 발표했다.
‘다마고치 온’이라는 신제품은 컬러 디스플레이에 화려해진 그래픽으로 업그레이드됐고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결해 더 다채로운 기능을 제공한다고 한다.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결할 바에는 그냥 스마트폰으로 다마고치 앱을 다운받으면 될 일이지만 세상은 넓고 호갱은 끝이 없는 법이다.
하긴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다마고치 온이 여전히 매력적일 수도 있겠다. 가격은 $60(약 7만원)로 비교적 양심적이다. 그 시절의 추억속으로 빠지고 싶다면 해외직구를 시도해 보자. 그 시절 기계답게 AAA 배터리를 넣어줘야 한다.
영국 제품 중에 가장 살 만한 제품
네임오디오, 뮤조 2세대
영국 음식은 맛없기로 유명하다. 한 기내식 평가 사이트는 “영국 항공사 기내식 중에 가장 맛있는 것은 냅킨이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음식만이 아니다. 공산품 역시 품질이 낮은 편이다. 내가 누누이 얘기하지만 영국인이 만든 것 중에 살 만한 것은 스텔스 미사일과 다이슨 정도다. 그런데 영국 제품 중에 그나마 품질이 높은 분야가 있다. 오디오다. 탄노이, 오디오리서치, B&W, 하베스, KEF, 메리디언 등의 오디오들은 비틀즈와 퀸, 아델의 나라답게 높은 품질과 뛰어난 음악성을 자랑한다. 영국인들은 음식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오디오로 달래는 듯하다.
오늘 소개하는 영국의 네임오디오의 뮤조(Mu-so) 스피커는 최근 영국이 내놓은 제품 중에 가장 매력적인 제품이다. 스피커와 뮤직센터가 결합한 일체형 오디오지만 뛰어난 음질과 기능으로 편의성과 음악성을 모두 놓치지 않아 최근 5년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네임오디오가 국내 출시한 뮤조2는 32비트 284KHz의 초고해상도 음원을 지원하고 스포티파이, 타이달, 에어플레이2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지원한다.
여기에 저역을 조금 더 보강했고 청취자의 위치에 따라 손쉽게 음질 세팅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450와트의 앰프 출력으로 빵빵한 음악을 즐길 수 있다. TV용 사운드바, 블루투스 스피커, 음악 감상용 등 어느 용도로 써도 수준급의 음질을 즐길 수 있으며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 않아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잘 맞는 오디오다. 가격도 비교적 양심적인 $1,599(약 190만원) 정도다. 이 정도면 영국 음식의 기괴함을 용서하기로 하자.
About Author
기즈모
유튜브 '기즈모' 운영자. 오디오 애호가이자 테크 리뷰어. 15년간 리뷰를 하다보니 리뷰를 싫어하는 성격이 됐다. 빛, 물을 싫어하고 12시 이후에 음식을 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