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샌프란시스코. 골목마다 부랑자가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도시다. 날씨 좋은 9월 7일, 애플이 예정대로 아이폰7을 공개했다. 솔직히 말할까? 우리가 짐작하지 못한 내용은 없었다. 루머로 알려졌던 이야기들이 놀라울 만큼 그대로 현실에 옮겨졌다. 한 가지 다른 것은 이제 그 변화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할 얘기가 많은데 일단은 제품을 직접 만져본 소감부터 전할까 한다. 별 다를 게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아이폰7은 생각보다 낯설었다.
디자인엔 새로운 마감이 추가됐다. 아마도 다들 가장 눈독 들이고 있을 컬러는 제트 블랙이겠지. 본래 루머를 통해 알려졌던 네이밍은 ‘피아노 블랙’이었는데, 실물을 보면 제트 블랙이라는 표현보다는 피아노 블랙이 더 어울린다. 그랜드 피아노처럼 반지르르 빛나는 광택이 아름답다. 이리보고 저리보아도 예쁘다. 손을 대는 순간 지문이 선명하게 묻어나니 아이폰님을 수시로 닦아 드리자.
애플은 아이폰7을 통해 6 시리즈의 주홍글씨였던 안테나 절연선을 극복하려 애쓰고 있다. 절연선이 후면을 가로지르게 두지 않고, 최대한 모서리로 숨긴 모습이다. 인터넷에 나돌던 사진 속에서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조악해 보였는데, 실물로 보면 은은하게 잘 처리했다.
특히 블랙이나 제트 블랙은 더욱 감쪽같다. 전처럼 절연선이 눈에 거슬리는 일은 없다.
새로운 컬러를 추가함으로써 얻은 디자인의 리프레시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제트 블랙 모델 주변으로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가 끊이지 않았다. 뒷모습에서 `아이폰3GS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그리움이 묻어난다. 반질반질한 플라스틱 옷을 입고 떠나갔던 그 아이가 견고한 알루미늄 옷을 입고 돌아온 기분이다. 백번 설명해 뭐하겠는가. 사진을 보자. 실물은 더 예쁘다.
어떤 느낌이냐면, “아이폰7 뭐 별 거 있어? 왜 다들 유난이야? 이어폰 잭은 왜 없애는거야? 아몰랑 난 제트 블랙 살거야아!!!” 이렇게 된다.
기존 실버나, 골드, 로즈 골드와 같은 느낌으로 무광 처리한 블랙 컬러도 차분하고 보기 좋다.
아이폰7에는 드디어 방수 기능이 들어갔다. 내가 서울에서 하나, 베를린에서 하나. 무려 두 번이나 아이폰을 변기에 빠트려 본 사람이다. 뒤늦은 방수 설계 소식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사실 삼성전자 같으면 핸즈온 섹션에 자신만만하게 물에 빠트린 아이폰이나 애플워치를 전시해 놓았을 텐데, 우아한 깍쟁이 애플은 그러질 않더라.
블랙 아이폰의 등장이나 방수 지원보다 더 놀라운 것은 새로운 홈 버튼이다. 아이폰7을 손에 쥐고 홈버튼을 누르자마자 익숙한 듯 낯선 감각에 “어머머?”를 연발하게 된다. 이제 아이폰7의 홈버튼은 물리적으로 ‘딸깍’ 눌리지 않는다. 다만 내가 누르는 압력을 감지해 마치 버튼이 눌린 것처럼 느껴지는 촉각 피드백을 주는 것이다. 이 안에는 새로운 탭틱 엔진이 들어가 있는데, 홈 버튼을 지긋이 누르면 ‘부르르’ 가볍게 떨며 반응한다. 평면에서 입체를 표현한 속임수인 셈이다. 약간은 다르지만 맥북에 적용한 포스터치 트랙패드에서 경험하던 느낌과 닮았다. 물리적으로 버튼이 눌릴 때와는 같을 순 없겠지만, 버튼을 만지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가벼운 진동이 자꾸 홈버튼을 눌러보고 싶게 만든다. 디지털로 아날로그의 감각을 표현하려는 끝없는 시도는 애플의 매력이자 결벽증의 산물이다.
카툭튀는 여전하고, 카메라는 더욱 좋아졌다. 애플은 아이폰7와 아이폰7 플러스 모두 광학식 흔들림 보정을 지원하는 은총(?)을 내렸다. 그럼 이제 두 모델이 공평해진 거냐고? 아쉽게도 그건 아니다. 이번 신제품에도 플러스 모델만을 위한 특혜가 존재한다. 바로 듀얼 카메라다. 제품 크기로 라인업을 달리하는 건 너무 촌스럽지 않아? 자꾸 플러스 모델에만 특정 기능을 몰빵하는 건 아쉬움이 남는 결정이다.
크기로 차별하기야? 나의 경우는 아이폰6 플러스 모델과 아이폰6 모델을 모두 사용해본 후, 5.5인치는 내 손에 너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처럼 4.7인치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듀얼 카메라의 특혜를 입지 못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휴대성과 카메라 중 하나만 골라야 하다니… 고통스러워.
앞서 힌트를 줬듯이, 아이폰7 플러스에만 듀얼 카메라가 적용됐다. 두 개 모두 똑같이 1,200만 화소 카메라다. 하나는 28mm 와이드 앵글, 하나는 망원 카메라다. 망원이면 멀리서도 피사체를 당겨 찍을 수 있다는 뜻이다. 화면을 탭하는 동작 만으로 2배 광학 줌을 적용할 수 있다. 그 뒤에는 디지털 줌이라 화질이 조금 떨어질 염려가 있긴 하지만 최대 10배까지 끌어당길 수 있다. 현장에서 시연해봤는데, 아이폰의 다른 기능이 그러하듯 조작법이 아주 인상적이다. 화면을 탭한 상태로 좌우로 끌어다 놓으면 줌인 줌아웃 동작으로 반응한다. 한 손으로도 쉽게 조작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다. 말로 하니까 어려운 것 같은데, 아니다. 되게 쉽다.
가장 흥미로운 카메라 기능은 마치 DSLR로 촬영한 것처럼 뒷 배경을 아웃포커스 처리하는 감성적인 피사계 심도 효과 기능이다. 두 개의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한 뒤, 아이폰 스스로 인물과 배경을 구분해내는 엄청난 작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 결과, 배경으로 인식한 영역은 더 확실한 아웃포커싱 처리가 된다. 고가의 카메라에 요란한 렌즈를 껴서 촬영한 사진처럼 감성적으로. 시연해보고 싶었는데, 아직 정식 출시 전인 기능이라 샘플 사진만 구경할 수 있었다.
소프트웨어로 뒷배경을 흐림처리 하는 앱이나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의 경우, 그럴싸하긴 하지만 배경과 인물의 경계가 뭉개지는 등 늘 문제가 있었다. 아이폰7 플러스는 두 개의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한 뒤 이미지 신호 프로세서를 통해 사진 속의 내용을 인지하고 배경과 얼굴을 구분해낸다. 얼마나 섬세한 수준까지 작업이 되는지는 추후에 직접 확인해보겠다.
전면 카메라도 상당히 좋아져서, 이제 700만 화소에 이른다. 혼잡하기 그지없는 핸즈온 현장에서 셀카도 몇 장 찍어보았다. 셀카를 향한 나의 패기. 아이폰6s의 전면 카메라보다 훨씬 밝게 나온다는 느낌이다. 머리카락 같은 디테일을 확인해보면 화질은 확실히 좋아졌다. 그러나 피부가 리얼하게 찍히면 찍힐수록 예쁜 셀카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
가장 참혹한 소문도 사실이었다. 3.5mm 이어폰 단자는 정말로 사라졌다. 라이트닝 단자를 사용하는 새로운 이어팟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애플은 본래부터 라이트닝을 오디오 커넥터로서 밀어 왔다더라. 다른 기능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는 동시에 더 나은 음질을 위해 라이트닝을 택했다는 설명이다.
다행히도 아이폰7의 박스 안에는 3.5mm 단자와 라이트닝을 호환할 수 있는 어댑터가 들어있다. 물론 여전히 충전과 동시에 음악을 들을 순 없겠지만… 아이폰을 충전하면서 음악을 듣고 싶다면, 번들 이어폰 말고 훨씬 비싼 무선 이어폰을 쓰면 된다.
자, 이제 자연스럽게 에어팟을 소개할 차례다. 한국에서도 이미 이 제품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을 테지. 그만큼 논란의 여지가 많다. 애플이 이번에 라이트닝 단자의 이어팟을 만들면서 유선 이어폰을 유지한 것은 무선 이어폰으로 향하는 과도기를 메꾸기 위한 일종의 보증기간이 아닐까. 에어팟은 요상하고도 놀라운 기기다. 골프채를 아주 작게 축소한 듯한 괴상한 생김새. 다행히 착용감은 가볍고 편안하다. 귀에 살포시 얹으면 자연스럽게 착지(?)한다. 사운드는 진심으로 기대 이상이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핸즈온 공간에서도 효과적으로 외부 소음을 차단해 음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한 번 충전으로 최대 5시간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 타임이나 작고 예쁜 배터리 케이스도 만족스럽다.
낯선 생김새만큼이나 사용자 환경도 전에 없던 방식이다. 귀에서 에어팟을 꺼내면 바로 음악 재생이 멈춘다. 광학 센서와 동작 감지 가속도계가 오디오를 제어하기 때문이다. 통화를 할 땐 음성 감지 가속도계가 내가 대화 중이란 걸 인식해 마이크에 들어가는 외부 소음을 거르고 깨끗한 음성을 전달한단다. 아직 통화 음질까지 체험해보진 못했지만 에어팟의 완성도는 놀라운 수준이다.
배터리 케이스의 뚜껑을 열자마자 아이폰이 반응하며 연결되는 민첩함은 또 어떻고.
다만, 운동용으로 쓰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분실이 심히 염려되는 제품이다. 예전에 한쪽만 잃어버려서 못쓰게 된 귀걸이가 한가득이었는데, 에어팟은 한쪽만 구매가 가능할지…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21만 9,000원으로 책정된 한국 가격은 상당히 공격적이다. 어떤 의미로는 오늘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무방할 에어팟의 존재감과 가격에 주목하자. 우리의 지갑 사정과 무선 라이프를 동시에 바꿀 제품이 될지 모른다.
아이폰7은 이어팟이나 에어팟 연결 없이 내장 스피커만으로도 빵빵한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 위아래로 달린 아이폰7의 스테레오 스피커는 기존 제품 대비 2배 큰 음량을 뿜어낸다. 실제로 전시장에서 들어보니 엄청 빵빵하더라.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할 땐 아이폰을 주로 가로 모드로 사용하기 때문에, 스피커의 위치 선정도 좋았다.
디스플레이도 좋아졌다. 핸즈온 섹션에 가지런히 누워있는 아가들(?)은 마치 스티커를 붙인 목업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비현실적으로 밝고 화사한 화면이다. 아이폰7의 레티나 HD 디스플레이는 전작보다 더 넓은 색영역을 구현하게 되었고, 25% 가량 더 밝아졌다. 초딩 시절 난 24색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데, 64색 크레파스를 쓰던 짝궁을 봤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색 팔레트가 넓어졌다는 것은 무조건 좋은 소식이다. 기존 화면에선 표현할 수 없었던 색을 잡아낸다. 특히 빨강, 주황, 노랑 등의 컬러가 매혹적으로 표현된다.
혹자는 역대 가장 시시한 아이폰 발표가 될 것이라 전망했는데,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루머를 통해 수십 번 목격한 모습과 닮긴 했지만, 현장에서 실물이 주는 감동은 또 달랐다. 마냥 황당하기만 했던 3.5mm 이어폰 단자의 실종도 예상과는 조금 다른 얘기를 품고 있었다. 아이폰7은 아이폰6 시리즈를 사골처럼 우려낸 제품이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시리즈다. 어떤 부분에선 소비자의 목소리를 냉정하게 무시하고 변화를 감행했으며, 어떤 부분에선 소비자의 애타는 목소리에 다정하게 응답했다. 이를테면 지긋지긋한 16GB 모델을 드디어 치워버린 게 우리가 오늘 이뤄낸 쾌거라고 생각한다.
빨리 얘기를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에 제품을 만져본 소감부터 정리해봤다. 사진을 통해 느낌이 조금이라도 전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가 뭐래도 애플의 신제품을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만지고, 씹고, 감상하는 일은 재미있다. 실물을 보고 난 결론? 아이폰7 제트 블랙 사야지. 로즈 골드를 이렇게 빨리 배신하게 될 줄이야. 그런데 아이폰7이냐, 아이폰7 플러스냐 그 문제가 남았다. 나의 사사로운 고민은 넣어두고, 이제 현장에서 느낀 이야기들을 좀 더 자세히 정리하러 떠나겠다. 곧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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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