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딴에는 식사량을 줄여봤는데, 막내 에디터는 내가 먹는 걸 보고 환히 웃으며 “아, 이제 다이어트 끝내셨나봐요”라고 묻는다. 왤까? 나 지금 배고픈데.
혀끝에서 채워지지 않은 배고픔은 물욕으로 이어진다. 나만 그래? 요즘 우리 집 현관에 택배 박스가 매일 쌓여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자꾸만 뭐가 갖고 싶어진다. 양말도 사고 레깅스도 사고 하다못해 화장솜도 두 박스씩 산다. 이런 것들로는 내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다. 좀 더 큰 것. 좀 더 거대한 것이 필요햇!
그래서 질렀다. 요즘 줄 서서 산다는 그 카메라. 회사 카드로 긁은 소니 A7M3에 대한 지름을 신고하는 바다.
사실 밑밥은 진즉에 깔아두었다. 에디터M(다들 아시는 것처럼 우리 대표)에게 소니 A6500을 팔아야겠다고 속삭였다. 판매는 곧 수익이다. 돈이 나가는 것엔 예민해도 들어오는 것엔 관대한 에디터M이 곧장 ‘call’을 외쳤다. 바보녀석. 나간 물건이 있으면 채워지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사족을 붙이자면 디에디트 초창기부터 사용해온 A6500은 꽤 괜찮은 제품이다. 특히 가격 대비 성능을 고려했을 때 소니가 만든 최고의 가성비 카메라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나는 작년 말부터 A7R3의 맛을 본 몸. 너무나 도도해진 것이다. 원래 나처럼 촬영을 못하는 애들이 장비병에 쉽게 걸린다. 부족한 실력을 돈으로 커버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서다.
A6500을 지나가던 유명인에게 순조롭게 판매하고, 몸을 낮춰 때를 기다렸다. 사실 우리는 영상을 촬영할 때 대부분 2대 이상의 카메라를 사용한다. 바디 하나에 한 개의 와이어리스 핀 마이크를 연결해 보이스를 녹음하기 때문에, 최소 2대의 카메라가 있어야 에디터M과 나의 목소리를 동시에 깨끗하게 담을 수 있다. 게다가 리뷰 영상이라는 게 큰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클로즈업과 풀샷의 2개 화면 정도는 함께 있어야 풍성한 내용과 그림을 담을 수 있는 법. 이렇듯 나는 주야장천 독자들 생각뿐이다.
그리고 어느 날, A6500이 사라진 빈자리 때문에 촬영에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타이밍을 잡았다. 당황한 에디터M에게 다시 속삭인다. “카메라가 한 대 더 필요할 것 같아. 이번에 아주 싸게 나온 게 있어. 이걸 안사면 바보 소리를 들을 정도라고!”
바보가 될 수 없었던 대표님은 언짢은 표정으로 카드를 내민다. 그리고 잠깐의 기다림을 거쳐 A7M3을 구입하는데 성공했다. 초반에 판매량이 몰렸는지 생각처럼 빨리 구할 수 없었다. 압구정 스토어에서 온 따끈따끈한 카메라는 내 물욕을 채워주었다. 거짓말 안 보태고 반나절 동안 배가 안 고프더라.
이쯤 되면 여러분은 궁금하겠지. 이게 얼마고, 대체 뭐가 그렇게 좋냐고. 내가 작년 말에 구입한 A7R3는 꽤 비싼 카메라였다. 출고가가 무려 389만 원. 물론 그만큼 만족스러웠다. 영상도 잘 찍히고, 반응 속도도 빠르고, 배터리도 오래가고. 가장 좋은 건 4,240만 화소의 무시무시한 고화소라는 것. 과한 보정과 크롭을 즐기는 디에디트에게 딱 맞는 카메라였다. 디에디트의 사진은 일단 찍고 난 뒤에 보정으로 완성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만지면 만지는대로 사진이 살아나는 즐거움이란. 물론 보정을 도맡은 건 90% 이상이 에디터M이지만!
그런데 249만원에 출시된 A7M3는 고화소 부분만 쏙 빼고 389만원짜리 바디가 가진 장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배터리도 동일하고, 외관으론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 심지어 AF 성능이나 연속촬영은 더 앞선다. 여기에 S-log3까지 지원하는 등 훨씬 상위 모델인 A9에 대한 팀킬로 보일 정도였다. 기존에 A9을 구입한 사람들이 마음이 아팠더라는 이야기도 숱하게 들렸다. 나 역시 그중 하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후속작이 훨씬 더 가성비 좋은 팀킬 모델로 나왔다면 그것도 취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새 카메라를 들고 신이 난 나]
자, 여기까지가 내가 디에디트에 새로운 카메라를 들인 이유다. 이제 좋은 콘텐츠를 만들러 가겠다. 절대 배고파서 산 게 아니다. 다이어트 중이라 탐욕스러운 게 아니다. 내 머리속엔 오로지 콘텐츠 생각뿐. 잘 고른 물건이 좋은 순간을 만들어준다는 디에디트의 모토를 충실히 지킬 뿐이다. 민첩하게 반응하는 AF에 손끝을 맡기고 셔터를 누르련다. 이 명문을 읽고 독자 여러분은 물론 에디터M 역시 납득하였으리라 믿는다. 그럼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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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